[스크랩] 건정동필담(乾淨?筆談) 1 건정동필담(乾淨?筆談) 을유년 겨울에 내가 계부(季父)를 따라 연(燕)에 갔다. 강을 건너면서부터 보이는 것이 모두 처음 보는 것이나, 그 크게 원하는 바는 한 아름다운 수재로 마음맞는 사람을 얻어 함께 실컷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연로(沿路)에서 방문하기를 부지런히 했으나 길가에..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건정동필담(乾淨?筆談) 2 “이역에서 벗을 만나 가슴을 풀어 뵈니 / 異域開襟有友生 찬 성에 머물며 해를 보내도 좋을시고 / 不妨經歲滯寒城 이별의 정자에는 석양볕에 풀빛이 푸르고 / 離亭草綠斜陽外 만리 길 채찍 날려 홀로 가는 이 심정 / 萬里垂鞭獨去情 나는 그 맨 아래의 한 첩에 다음과 같이 썼다. “새로 ..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견한잡록(遣閑雜錄)1 견한잡록(遣閑雜錄) 심수경(沈守慶) 찬(撰) ○ 조정의 과거를 말하면 거듭 장원한 이가 거의 없었으나, 정인지(鄭麟趾)는 급제와 중시(重試)에서 장원을 하였고, 남계영(南季瑛)은 생원시와 급제에서 장원하였으며, 이석형(李石亨)은 한 해에 생원시와 진사시 그리고 급제에서 장원을 하였..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견한잡록(遣閑雜錄)2 ○ 조정에서 사명(使命)을 받아 지방에 나가면 각 고을에서는 기생을 천침(薦枕 침실을 같이하도록 천거하는 것)하는 예(例)가 있다. 감사(監司)는 풍헌관(風憲官)이라, 비록 본읍에서 천침하더라도 데리고 가지 못하는 것이 역시 예로부터 있는 전례였다. 진천(晉川) 강혼(姜渾)이 영남 지..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부원군 이시언(李時言) 사간원이 아뢰었다. -계해정사록(癸亥靖社錄) - 계해정사록(癸亥靖社錄) 〈중도부처류(中途付處類)〉 ○ 부원군 이시언(李時言) : 사간원이 아뢰었다. “원래 간사하고 교활하며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무신년에 임해군이 화를 입을 때에 체포하는 일을 몸소 담당하였고, 이번 반정할 때에는 기미를 알고 군...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고려사절요 제26권 공민왕1 고려사절요 제26권 공민왕 1(恭愍王一) 공민왕 1 휘(諱)는 전(?)이요, 옛 휘는 기(祺)이고, 몽고 휘는 백안첩목아(伯顔帖木兒)이다. 충혜왕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충숙왕 17년 경오 5월에 출생하였다. 성품이 엄격ㆍ중후하고 또한 자애로우며 어질어 여러 백성의 인심을 많이 얻었으나, 만년..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고려사절요 제27권 공민왕2 고려사절요 제27권 공민왕 2(恭愍王二) 계묘 12년(1363), 원 지정 23년 ○ 봄 정월에 양부와 전 시중 윤환(尹桓)ㆍ이제현(李齊賢)ㆍ이암(李?)ㆍ염제신(廉悌臣)을 불러 환도할 일을 의논하니 모두 아뢰기를, “송도(松都)는 종묘가 있는 곳이요, 국가의 근본이옵니다. 서운관에서 음양에 구애되..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고려사절요 제28권 공민왕3 고려사절요 제28권 공민왕 3(恭愍王三) 갑진 13년(1364), 원 지정 24년 ○ 봄 정월에 최유(崔濡)가 원 나라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덕흥군(德興君)을 받들고 압록강을 건너와서 의주의 궁고문(弓庫門)을 포위하니, 도지휘사(都指揮使) 안우경(安遇慶)이 일곱 번 싸워 이를 물리쳤다. 최유가 산..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고려사절요 제29권 공민왕4 고려사절요 제29권 공민왕 4(恭愍王四) 경술 19년(1370), 대명 홍무 3년 ○ 봄 정월 갑오일에 혜성(彗星)이 동북방에 나타났다. ○ 우리 태조(이성계(李成桂))가 기병 5천 명과 보병 1만 명을 거느리고 동북면에서 황초령(黃草嶺 함남 함흥(咸興))을 넘어 6백여 리를 가서 설한령(雪寒嶺 평북 강..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
[스크랩] 고려사절요 제30권 신우1 고려사절요 제30권 신우 1(辛禑一) 신우 1 어렸을 때의 이름은 모니노(牟尼奴)인데, 신돈(辛旽)의 비첩(婢妾) 반야(般若) 소생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반야가 낳은 아이는 죽고 다른 아이를 훔쳐다 길렀는데, 공민왕이 자기 아들이라고 일컬었다."고 하였다. 왕이 훙(薨)하니 이인임(李仁任)..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201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