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伍子胥列傳第六(오자서 열전)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尙. 其先曰伍擧,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원이고 아버지는 오사이고 형은 오상이다. 그 선조는 오거인데, 직간으로 초 장왕을 섬겨 현달하여, 고로 후세에도 초에 명망이 있었다.
楚平王有太子名曰建, 使<伍奢>爲太傅, <費無忌>爲少傅. <無忌>不忠於<太子建>. <平王>使<無忌>爲太子取婦於<秦>, <秦>女好, <無忌>馳歸報<平王>曰 : “<秦>女絶美, 王可自取, 而更爲太子取婦.” 平王遂自取秦女而絶愛幸之, 生子軫. 更爲太子取婦. 초 평왕에게 태자 건이 있었는데, 오사를 태부로 삼고 비무기를 소부로 삼았다. 비무기는 태자 건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평왕이 비무기로 하여금 태자를 위하여 진나라에서 아내를 얻도록 했는데, 진녀(진나라 공주(여인))가 예쁜지라, 비무기가 말달려 돌아와 평왕에게 아뢰기를 '진 여인이 아주 예쁘니, 왕께서 직접 취하고, 다시 태자를 위하여 아내를 얻어 보겠습니다.' 평왕이 마침내 본인이 진 여인을 취하고 아주 총애하여, 아들 진을 낳았다. 다시 태자를 위하여 아내를 얻어 주었다.
無忌旣以秦女自媚於平王, 因去太子而事<平王>. 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 殺己, 乃因讒<太子建>. <建>母, <蔡>女也, 無寵於<平王>. <平王>稍益疏<建>, 使<建>守<城父>, 備邊兵. 비무기가 이윽고 진녀 일로 평왕에게 예쁨을 받으니, 태자를 떠나 평왕을 섬겼다. 갑자기 하루 아침에 평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여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 태자 건을 비방했다. 태자 건의 어머니는 채녀(채나라 여인(공주))인데, 평왕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다. 평왕이 점차 더욱 태자 건을 멀리하여, 마침내 태자 건으로 하여금 성보(지명)를 지키고, 변방의 외적을 대비하게 했다.
頃之, <無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 : “太子以<秦>女之故, 不能無怨望, 願王少自備也. 自太子居<城父>, 將兵, 外交諸侯, 且欲入爲亂矣.” <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問之. <伍奢>知<無忌>讒太子於<平王>, 因曰 : “王獨柰何以讒賊小臣疏骨肉之親乎?” <無忌>曰 : “王今不制, 其事成矣. 王且見禽.” 於是<平王>怒, 囚<伍奢>, 而使<城父>司馬<奮揚>往殺太子. 行未至, <奮揚>使人先告太子 : “太子急去, 不然將誅.” <太子建>亡奔宋. 얼마 후에 비무기가 또 밤낮으로 태자의 좋지 않은 점을 왕에게 말하기를 ‘태자는 진녀의 일로 원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원하건데, 왕께서 조금이라도 스스로 대비를 하소서. 태자가 성보에 머무름으로써 군사를 거느리고 밖으로 제후와 내통하여, 장차 도성으로 들어와 변란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평왕이 이에 그의 스승 오사를 불러 그것에 대해 물었다. 오사가 비무기가 태자를 평왕에게 비방하고 있음을 알아채고서, ‘왕께서는 홀로 어찌 비방하여 해를 끼치려는 소인배 때문에 골육 사이를 멀리하려고 합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비무기가 ‘왕이 지금 제압하지 않으면 그 일(태자 건의 반란)이 성사되어, 왕께서는 장차 사로잡힐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평왕이 노하여, 오사를 가두고 사마인 성보분양으로 하여금 가서 태자를 죽이도록 하였다. 거기 도착하기 전에, 성보분양이 사람을 시켜 먼저 태자에게 ‘태자께서는 급히 떠나시오. 그렇지 않으면 장차 죽음을 당할 것이오.’라고 고하게 했다. 태자 건이 송으로 도주했다.
無忌言於平王曰 : “伍奢有二子, 皆賢, 不誅且爲楚憂. 可以其父質而召之, 不然且爲楚患.” 王使使謂<伍奢>曰 : “能致汝二子則生, 不能則死.” <伍奢>曰 : “<尙>爲人仁, 呼必來. <員>爲人剛戾忍訽, 能成大事, 彼見來之幷禽, 其勢必不來.” 王不聽, 使人召二子曰 : “來, 吾生汝父 ; 不來, 今殺<奢>也.” <伍尙>欲往, <員>曰 : “<楚>之召我兄弟, 非欲以生我父也, 恐有脫者後生患, 故以父爲質, 詐召二子. 二子到, 則父子俱死. 何益父之死? 往而令讎不得報耳. 不如奔他國, 借力以雪父之恥, 俱滅, 無爲也.” <伍尙>曰 : “我知往終不能全父命. 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 後不能雪恥, 終爲天下笑耳.” 謂<員> : “可去矣! 汝能報殺父之讎, 我將歸死.” <尙>旣就執, 使者捕<伍胥>. <伍胥>貫弓執矢嚮使者, 使者不敢進, <伍胥>遂亡. 聞<太子建>之在<宋>, 往從之. <奢>聞<子胥>之亡也, 曰 : “<楚國>君臣且苦兵矣.” <伍尙>至<楚>, <楚>幷殺<奢>與<尙>也. 비무기가 평왕에게 ‘오사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현량하니 죽이지 않으면 장차 우리나라(초)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를 볼모 삼아 그들을 불러오게 하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우리나라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평왕이 사신을 시켜 오사에게 ‘너의 두 아들을 오게 하면 살 것이나, 그렇게 못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게 했다. 오사가 ‘상은 성격이 어질어, 부르면 올 것이오. 원은 성격이 고집이 세고 독한 데가 있고 모욕을 견뎌내어 능히 큰 일을 이룰 수 있으니, 자기가 와서 잡힐 것을 안다면 형편상 반드시 오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왕이 그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시켜 두 아들을 불러 오게 하며, ‘오거라. 그러면 나는 너의 아버지를 살릴 것이다. 오지 않으면 지금 오사를 죽일 것이다.’라고 말하게 했다. 오상이 가려고 하니, 오원이 ‘초가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아버지를 살리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있으면 훗날 화가 될까봐, 아버지를 볼모삼아 속여 우리 두 아들 부르는 것입니다. 두 아들이 가면 부자가 함께 다 죽게 되니 아버지 죽음에 어찌 보탬이 되리오. 가서 괜히 원수로 하여금 앙갚음을 당하지 못하게 도와 줄 뿐이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나 힘을 빌어 아버지의 치욕을 갚는 것이 낫소. 함께 다 죽는 일은 하지 않겠소.’라고 말하니, 오상이 ‘나도 가면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보존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목수을 구하려고 나를 불렀는데 가지 않으면 이것이 한이 될 것이고, 후에 아버지의 치욕을 갚지 못한다면 끝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또 오원에게 ‘떠나거라. 너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서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상이 곧 사자에게 나아가니 붙잡히고, 사자가 오서(오원)를 잡으려고 하니, 오서가 활시위를 매고 화살을 집어 사자에게 향하니, 사자가 감히 앞으로 오지 못하고, 오서는 도망을 갈 수 있었다. 태자 건이 송에 있다는 말을 듣고서 그를 따르려고 거기로 갔다. 오사가 자서(아들 오서)가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서, ‘초나라는 임금과 신하가 앞으로 전화(戰禍)에 시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상이 초에 이르니, 초는 오사와 오상을 아울러 죽였다.
伍胥旣至宋, 宋有華氏之亂, 乃與太子建俱奔於鄭. <鄭>人甚善之. <太子建>又適<晉>, <晉><頃公>曰 : “太子旣善<鄭>, <鄭>信太子. 太子能爲我內應, 而我攻其外, 滅<鄭>必矣. 滅<鄭>而封太子.” 太子乃還<鄭>. 事未會, 會自私欲殺其從者, 從者知其謀, 乃告之於<鄭>. <鄭><定公>與<子産>誅殺<太子建>. <建>有子名<勝>. <伍胥>懼, 乃與<勝>俱奔<吳>. 到<昭關>, <昭關>欲執之. <伍胥>遂與<勝>獨身步走, 幾不得脫. 追者在後. 至<江>, <江>上有一漁父乘船, 知<伍胥>之急, 乃渡<伍胥>. <伍胥>旣渡, 解其劍曰 : “此劍直百金, 以與父.” 父曰 : “<楚國>之法, 得<伍胥>者賜粟五萬石, 爵執珪, 豈徒百金劍邪!” 不受. <伍胥>未至<吳>而疾, 止中道, 乞食. 至於<吳>, <吳王僚>方用事, <公子光>爲將. <伍胥>乃因<公子光>以求見<吳王>. 오서가 송에 이르자, 곧 송에 화씨의 난리가 일어나, 이에 태자 건과 함께 정으로 달아났다. 정나라 사람들이 매우 그들을 잘 대해 주었다. 태자 건이 또 진(晉)으로 가니, 진 경공이 ‘태자는 정나라와 잘 알고, 정나라가 태자를 믿고 있소. 태자는 나를 위하여 정나라 안에서 우리와 내통을 해 주고, 내가 정나라 바깥을 공격한다면, 정나라를 멸하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니, 정나라를 멸하면 태자를 거기에 봉해 주리라.’라고 말했다. 태자가 이에 정으로 돌아갔다. 일이 아직 성사되지 않았는데, 마침 사적인 일로 종자를 죽이려고 하니, 종자가 그 계획을 알고, 그것을 정에 고했다. 정 정공과 자산이 태자 건을 주살했다. 태자 건에게 승(勝)이란 아들이 있었다. 이에 오서는 두려워 승과 같이 오(吳)로 도주했다. 소관(지명)에 이르니, 소관에서 그를 잡으려고 하니, 오서가 승과 함께 홀몸으로 발로 달아나니, 거의 위기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뒤쫓는 자들은 뒤에 있고 강(양자강)에 이르니, 강 위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있었는데, 오서의 다급한 상황을 알고, 오서를 건네주었다. 오서가 강을 건너가자 칼을 풀어 어부에게 주며 ‘이 칼은 백금의 가치가 있소.’라고 말했다. 어부가 ‘초나라 법에 오서를 잡아오는 자는 곡식 5만석과 높은 벼슬을 내린다고 하는데, 어찌 겨우 백금짜리 칼이오.’라고 말하며 받지 않았다. 오서는 오에 이르기 전에 병이 나서 도중에 머물며 걸식을 했다. 오에 이르니 오왕 료가 막 정권을 잡고 공자 광은 장수를 하고 있었다. 오서는 공자 광을 통하여 오왕을 만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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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之, <楚><平王>以其邊邑<鍾離>與<吳>邊邑<卑梁氏>俱蠶, 兩女子爭桑相攻, 乃大怒, 至於兩國擧兵相伐. <吳>使<公子光>伐<楚>, 拔其<鍾離>·<居巢>而歸. <伍子胥>說<吳王僚>曰 : “<楚>可破也. 願復遣<公子光>.” <公子光>謂<吳王>曰 : “彼<伍胥>父兄爲戮於<楚>, 而勸王伐<楚>者, 欲以自報其讎耳. 伐<楚>未可破也.” <伍胥>知<公子光>有內志, 欲殺王而自立, 未可說以外事, 乃進<專諸>於<公子光>, 退而與<太子建>之子<勝>耕於野. 오랜 후에 초 평왕이 변방 지역 종리와 오의 변방 지역 비량씨가 함께 누에치다가, 양측의 여자가 뽕나무를 가지고 다투어 서로 침공한 일로, 이에 대노하여, 양국이 군사를 일으켜 서로 침공하기에 이르렀다. 오는 공자 광으로 하여금 초를 치게 하여, 초의 종리, 거소 지역을 빼앗고 돌아왔다. 오자서(오서, 오원)는 오왕 료에게 ‘초는 깨뜨릴 수 있습니다. 원하건데 다시 공자 광을 보내소서.’라고 설파했다. 공자 광이 오왕에게 ‘저 오서는 자기 아버지와 형이 초에 죽음을 당하여, 왕께서 초를 치도록 권유하는 것은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초를 쳐서 아직 깨뜨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오서는 공자 광이 사적인 뜻이 있어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니 바깥일로는 뜻을 구할 수 없음을 알고, 전제(전저)를 공자 광에게 바치고,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초야에서 농사를 지었다.
五年而<楚><平王>卒. 初, <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 急<平王>卒, <軫>竟立爲後, 是爲<昭王>. <吳王僚>因<楚>喪, 使二公子將兵往襲<楚>. <楚>發兵絶<吳>兵之後, 不得歸. <吳國>內空, 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 是爲<吳王闔廬>. <闔廬>旣立, 得志, 乃召<伍員>以爲行人, 而與謀國事. 5년이 흐르니, 초 평왕이 죽었다. 전에 평왕이 빼앗은 태자 건의 진녀가 아들 진(軫)을 낳았는데, 급작스럽게 평왕이 죽으니, 진이 마침내 뒤의 왕이 되니 이가 소왕이다. 오왕 료가 초가 국상을 당한 것을 기회삼아 두 공자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초를 습격하게 했다. 초가 군사를 출동시켜 오나라 군사의 뒷길을 끊어, 오나라 군사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오나라가 안이 비니, 공자 광이 전제로 하여금 오왕 료를 엄습하여 찌러 죽이게 하고 스스로 왕이 되니, 이 사람이 오왕 합려이다. 합려가 곧 즉위하여 뜻을 이루니, 이에 오원을 불러 행인으로 삼고 같이 국사를 의논했다.
楚誅其大臣郤宛·伯州犁, <伯州犁>之孫<伯嚭>亡奔<吳>, <吳>亦以<嚭>爲大夫. 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伐<楚>者, 道絶不得歸. 後聞<闔廬>弑<王僚>自立, 遂以其兵降<楚>, <楚>封之於<舒>. <闔廬>立三年, 乃興師與<伍胥>·<伯嚭>伐<楚>, 拔<舒>, 遂禽故<吳>反二將軍. 因欲至<郢>, 將軍<孫武>曰 : “民勞, 未可, 且待之.” 乃歸. 초가 그 대신인 극완과 백주리를 주살하니, 백주리의 손자 백비가 오(吳)로 달아났는데, 오도 또한 백비를 대부로 삼았다. 전에 왕 료가 보낸 두 공자(왕자 쯤에 해당)가 병사를 거느리고 초를 치다가 길이 끊기어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후에 합려(공자 광)가 왕 료를 시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그 병사를 가지고 초에 투항하니, 초가 그들을 서(舒) 지역에 봉했다. 합려가 즉위한 지 3년이 되니, 군사를 일으켜 오서, 백비와 함께 초를 쳐서 서 지역을 빼앗고, 마침내 옛 오의 배반한 두 장군(옛 공자)을 사로잡고, 이리하여 영(초의 수도)까지 가려고 했으나, 장군 손무가 ‘백성이 지쳐서 아직 아니 됩니다. 조그만 기다리소서.’라고 말하니, 이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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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年, <吳>伐<楚>, 取<六>與<灊>. 五年, 伐<越>, 敗之. 六年, <楚><昭王>使公子<囊瓦>將兵伐<吳>. <吳>使<伍員>迎擊, 大破<楚>軍於豫章, 取<楚>之<居巢>. 즉위한 지 4년째에 오가 초를 쳐서, 육(六)과 첨을 취했다. 5년째에 월(越)을 쳐서 월을 패배시켰다. 6년째에 초 소왕이 공자 낭와로 하여금 병사를 거느리고 오를 치게 하였다. 오는 오원에게 이를 받아치도록 하니, 초나라 군사를 예장에서 대파하고, 초의 거소 지역을 취했다.
九年, 吳王闔廬謂子胥·孫武曰 : “始子言郢未可入, 今果何如?” 二子對曰 : “<楚>將<囊瓦>貪, 而<唐>·<蔡>皆怨之. 王必欲大伐之, 必先得<唐>·<蔡>乃可.” <闔廬>聽之, 悉興師與<唐>·<蔡>伐<楚>, 與<楚>夾<漢水>而陳. <吳王>之弟<夫槪>將兵請從, 王不聽, 遂以其屬五千人擊<楚>將<子常>. <子常>敗走, 奔<鄭>. 於是<吳>乘勝而前, 五戰, 遂至<郢>. 己卯, <楚><昭王>出奔. 庚辰, <吳王>入<郢>. 9 년째에 오왕 합려가 자서와 손무에게 ‘전에 자네들이 영은 아직 쳐들어갈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과연 어떠한고.’라고 물으니, 두 사람이 ‘초의 장수 낭와는 탐욕스러워, 당(唐)과 채(蔡)가 모두 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반드시 초를 크게 치려거든 반드시 먼저 당과 채를 한편으로 얻은 후에 가능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합려가 그 말을 들어, 모조리 군사를 일으켜 당, 채와 같이 초를 치니, 초와 한수(강 이름)를 사이에 두고 진을 치게 되었다. 오의 왕 동생 부개가 병사를 거느리고 따르기를 청했으나, 왕(합려)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개가 끝내 그 무리 5천명으로 초의 장수 자상 군대를 치니, 자상은 패배하여 달아나 정으로 도주했다. 이에 오는 승세를 타서 전진하여 다섯 번 싸워 마침내 영에 이르렀다. 기묘일에 초의 소왕은 내빼고, 경진일에 오의 왕이 영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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昭王出亡, 入雲夢 ; 盜擊王, 王走<鄖>. <鄖公>弟懷曰 : “<平王>殺我父, 我殺其子, 不亦可乎!” <鄖公>恐其弟殺王, 與王奔<隨>. <吳>兵圍<隨>, 謂<隨>人曰 : “<周>之子孫在<漢川>者, <楚>盡滅之.” <隨>人欲殺王, <王子綦>匿王, 己自爲王以當之. <隨>人卜與王於<吳>, 不吉, 乃謝<吳>不與王. 소왕이 도망 나와 운몽(지명)으로 가니, 비적들이 왕을 공격하니, 왕이 운(국명)으로 달아났다. 운공(운나라의 공작)의 아우 회가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그 아들을 죽이는 것이 옳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운공이 그 아우가 소왕을 죽일까 두려워, 소왕과 함께 수(지명)로 달아났다. 오나라 병사가 수를 둘러싸고, 수 사람들에게 ‘주나라 자손 중에서 한천(漢川)에 있는 자는 초가 다 섬멸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수 사람들이 소왕을 죽이려고 하니, 왕자 기(綦)가 소왕을 숨기고, 자기가 왕인 체하고 그들을 상대했다. 수 사람들이 소왕을 오에 줄 것인가 점을 쳐보니 불길하여, 이에 오에게 용서를 빌고 소왕을 오에게 주지 않았다.
始<伍員>與<申包胥>爲交, <員>之亡也, 謂<包胥>曰 : “我必覆<楚>.” <包胥>曰 : “我必存之.” 及<吳>兵入<郢>, <伍子胥>求<昭王>. 旣不得, 乃掘<楚><平王>墓, 出其尸, 鞭之三百, 然後已. <申包胥>亡於山中, 使人謂<子胥>曰 : “子之報讎, 其以甚乎! 吾聞之, 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 今子故<平王>之臣, 親北面而事之, 今至於僇死人, 此豈其無天道之極乎!” <伍子胥>曰 : “爲我謝<申包胥>曰, 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 於是<申包胥>走<秦>告急, 求救於<秦>. <秦>不許. <包胥>立於<秦>廷, 晝夜哭, 七日七夜不絶其聲. <秦><哀公>憐之, 曰 : “<楚>雖無道, 有臣若是, 可無存乎!” 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 六月, 敗<吳>兵於<稷>. 會<吳王>久留<楚>求<昭王>, 而<闔廬>弟<夫槪>乃亡歸, 自立爲王. <闔廬>聞之, 乃釋<楚>而歸, 擊其弟<夫槪>. <夫槪>敗走, 遂奔<楚>. <楚><昭王>見<吳>有內亂, 乃復入<郢>. 封<夫槪>於<堂谿>, 爲<堂谿氏>. <楚>復與<吳>戰, 敗<吳>, <吳王>乃歸. 전에 오원이 신포서와 교제했는데, 오원이 도망갈 때 신포서에게 ‘내가 기필코 초를 뒤집을 것이네.’라고 말하니, 신포서가 ‘나는 기필코 초를 살릴 것이네.’라고 말했다. 급기야 오나라 병사가 영(초나로 수도)에 들어가게 되니, 오자서(오원)가 소왕을 찾았는데, 소왕을 찾을 수 없자, 이에 오자서가 초 평왕의 묘를 파서 그 시체를 꺼내서 시체에 삼백 번 매질을 한 이후에 그쳤다. 신포서가 산속으로 달아났는데,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자네가 원수를 갚는 것이 어찌 그리 심한고. 흉포한 사람이 득세하면 한때 하늘을 이길 수도 있지만, 하늘은 반드시 또한 그런 사람을 파멸시키네. 지금 자네가 예전에 평왕의 신하로써 직접 대면을 하며 왕을 섬긴 적이 있었거늘, 지금 죽은 사람을 욕보이니, 어찌 천벌의 내림이 없겠는가.’라고 말하게 했다. 오자서가 ‘나를 위하여 신포서에게 이렇게 사과한다고 말해 주게. “내가 날은 저물고 길은 머니, 그래서 내가 일의 순서에는 맞지 않으나 거슬러 그것을 하게 됐네.”’라고 말했다. 이에 신포서가 진(秦)으로 급히 가서 초의 다급함을 알리고 구원을 진에게 요청했으나, 진은 불허했다. 신포가 진 조정에 선 채로 밤낮으로 울어대니, 일곱 낮 일곱 밤 동안 그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진 애공이 그를 가련히 여기며, ‘초가 비록 무도하나, 이런 신하가 있으니, 마땅히 살아남음이 없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병거(兵車) 500 수레를 보내 초를 구하고 오를 치게 했다. 6월에 오를 직(지명)에서 패배시켰다. 마침 오의 왕이 초에 오래 머물며 초의 소왕을 잡으려고 하니, 합려(오왕) 아우 부개가 달아나 돌아가서 스스로 왕이 되었다. 합려가 그것을 듣고 초를 놔두고 오에 돌아가 그 아우 부개를 쳤다. 부개가 패주하여 마침내 초로 도주했다. 초 소왕이 오가 내부적인 혼란이 있음을 보고, 이에 영으로 다시 들어갔다. 부개를 당개 지역에 봉하고 당개씨라고 했다. 초가 다시 오와 싸워 오를 패배시키니, 오의 왕이 이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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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二歲, 闔廬使太子夫差將兵伐楚, 取番. <楚>懼<吳>復大來, 乃去<郢>, 徙於<鄀>. 當是時, <吳>以<伍子胥>·<孫武>之謀, 西破彊<楚>, 北威<齊><晉>, 南服<越>人. 2 년 후 합려가 태자 부차로 하여금 병사를 거느리고 초를 치도록 하여, 번(지역)을 취했다. 초는 오가 다시 대거 침입할까 두려워서, 영을 떠나 약(지명)으로 옮겨갔다. 그 당시에 오는 오자서와 손무의 모략으로 서쪽으로 강한 초를 격파하고, 북쪽으로 제(齊)와 진(晉)을 위압하고, 남쪽으로 월나라 사람을 굴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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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後四年, 孔子相魯.
後五年, 伐<越>. <越王句踐>迎擊, 敗<吳>於<姑蘇>, 傷<闔廬>指, 軍卻. <闔廬>病創將死, 謂<太子夫差>曰 : “爾忘<句踐>殺爾父乎?” <夫差>對曰 : “不敢忘.” 是夕, <闔廬>死. <夫>差旣立爲王, 以<伯嚭>爲太宰, 習戰射. 二年後伐<越>, 敗<越>於<夫湫>. <越王句踐>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 使<大夫種>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 求委國爲臣妾. <吳王>將許之. <伍子胥>諫曰 : “<越王>爲人能辛苦. 今王不滅, 後必悔之.” <吳王>不聽, 用<太宰嚭>計, 與<越>平. 그 4년 후 공자가 노(魯)의 재상을 하게 됐다.
5년 후 오가 월(越)을 치니, 월 왕 구천이 대전하여, 오를 고소에서 패배시키고, 합려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히니, 오의 군사가 물러갔다. 합려가 창독이 나서 곧 죽으려 함에, 태자 부차에게 ‘너는 구천(句踐, 월나라 왕)이 너의 아비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라고 말하니, 부차가 ‘감히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날 저녁에 합려가 죽었다. 부차가 왕이 되자, 백비를 태재로 삼고 전투에서 활쏘는 방법을 연마하게 했다. 2 년후 월을 쳐서 월을 부추에서 패배시켰다. 월 왕 구천이 이에 남은 병사 5 천명으로 회계산 위에 살면서 대부종에게 폐물을 후하게 하여 이를 오의 태재 백비에게 주고 화친을 청하고, 나라를 바치고 신하가 되기를 요청하게 했다. 오 왕이 이를 수락하려고 하니, 오자서가 ‘월 왕의 성격이 거뜬히 고초를 무릅쓰는 인물이니, 지금 왕께서 월을 멸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이를 후회할 것입니다.‘라고 간언했다. 오 왕이 이를 듣지 않고 태재 비의 의견을 따라, 월과 화친을 맺었다.
其後五年, 而吳王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 新君弱, 乃興師北伐<齊>. <伍子胥>諫曰 : “<句踐>食不重味, 弔死問疾, 且欲有所用之也. 此人不死, 必爲<吳>患. 今<吳>之有<越>, 猶人之有腹心疾也. 而王不先<越>而乃務<齊>, 不亦謬乎!” <吳王>不聽, 伐<齊>, 大敗<齊>師於<艾陵>, 遂威<鄒魯>之君以歸. 益疏<子胥>之謀. 그 후 5년 오 왕이 제 경공이 죽고 대신들이 총애를 다투어 새 임금은 유약하다는 것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북으로 가서 제를 치려고 했다. 오자서가 이에 ‘구천이 먹을 때 반찬을 두가지로 먹지 않고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든 이를 위문하니, 장차 그로 무언가를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오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오가 월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사람이 심복에 병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왕께서는 월을 먼저 처리하지 않고 제에 신경 쓰는 것은 대단히 그릇되지 않습니까.’라고 간언했다. 오 왕이 이를 듣지 않고, 제를 쳐서 제의 군사를 애릉에서 대패시키고, 추와 노의 왕에게 위세를 미치고 돌아왔다. 오 왕은 더욱 자서의 의견을 멀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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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後四年, 吳王將北伐齊, <越王句踐>用<子貢>之謀, 乃率其衆以助<吳>, 而重寶以獻遺<太宰嚭>. <太宰嚭>旣數受<越>賂, 其愛信<越>殊甚, 日夜爲言於<吳王>. <吳王>信用<嚭>之計. <伍子胥>諫曰 : “夫<越>, 腹心之病, 今信其浮辭詐僞而貪<齊>. 破<齊>, 譬猶石田, 無所用之. 且《盤庚之誥》曰 : 『有顚越不恭, 劓殄滅之, 俾無遺育, 無使易種于玆邑.』 此<商>之所以興. 願王釋<齊>而先<越> ; 若不然, 後將悔之無及.” 而<吳王>不聽, 使<子胥>於<齊>. <子胥>臨行, 謂其子曰 : “吾數諫王, 王不用, 吾今見<吳>之亡矣. 汝與<吳>俱亡, 無益也.” 乃屬其子於<齊><鮑牧>, 而還報<吳>. 그 후 4년 오 왕이 장차 북으로 제를 치려고 하니, 월 왕 구천이 자공의 계략을 써서 자기 무리를 이끌고 오를 도와 주는 척하고 귀중한 보물을 태재 백비에게 바쳐 보냈다. 태재 백비가 자주 월의 뇌물을 받자, 월을 매우 애끼고 믿게 되어, 밤낮으로 오 왕에게 월을 위하여 좋게 말을 하고, 오 왕은 백비의 계책을 믿고 따랐다. 오자서가 ‘월은 심복에 있는 병입니다. 지금 그 허황된 말과 속임수를 믿고 제를 탐내는데, 제를 격파하는 것은 비유하면 돌밭과 같아 쓸데가 없습니다. 또 서경의 반경의 모에 이르기를 “도리에 어긋나고 공손하지 않은 이가 있으면 베어 섬멸하여 후손을 남기지 못하게 하여 이 도읍에 무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상(은나라)이 흥성한 까닭입니다. 원하건데, 왕께서 제를 놔두고 월을 먼저 처리하소서. 만약 그렇지 않으면 후에 그것을 후회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오 왕이 듣지 않고, 자서를 제에 사신을 보냈다. 오자서가 사신으로 가기에 임하여 그 아들에게 ‘내가 자주 왕에게 간언을 했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나는 지금 오가 망하는 것이 내다보인다. 네가 오나라와 같이 망하는 것은 이로울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 아들을 제의 포목에게 맡기고, 오로 돌아와 오에 보고했다.
<吳><太宰嚭>旣與<子胥>有隙, 因讒曰 : “<子胥>爲人剛暴, 少恩, 猜賊, 其怨望恐爲深禍也. 前日王欲伐<齊>, <子胥>以爲不可, 王卒伐之而有大功. <子胥>恥其計謀不用, 乃反怨望. 而今王又復伐<齊>, <子胥>專愎彊諫, 沮毁用事, 徒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 今王自行, 悉國中武力以伐<齊>, 而<子胥>諫不用, 因輟謝, 詳病不行. 王不可不備, 此起禍不難. 且<嚭>使人微伺之, 其使於<齊>也, 乃屬其子於<齊>之<鮑氏>. 夫爲人臣, 內不得意, 外倚諸侯, 自以爲先王之謀臣, 今不見用, 常鞅鞅怨望. 願王早圖之.” <吳王>曰 : “微子之言, 吾亦疑之.” 乃使使賜<伍子胥>屬鏤之劍, 曰 : “子以此死.” <伍子胥>仰天歎曰 : “嗟乎! 讒臣嚭爲亂矣, 王乃反誅我. 我令若父霸. 自若未立時, 諸公子爭立, 我以死爭之於先王, 幾不得立. 若旣得立, 欲分<吳國>予我, 我顧不敢望也. 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 乃告其舍人曰 : “必樹吾墓上以梓, 令可以爲器 ; 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 以觀<越>寇之入滅<吳>也.” 乃自剄死. <吳王>聞之大怒, 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 浮之<江>中. <吳>人憐之, 爲立祠於<江>上, 因命曰<胥山>. 오나라 태재비가 오자서와 틈이 생기자, 오자서를 비방하여 ‘자서는 성격이 강포하여 인정은 적고 원망하고 해치려는 점은 많아, 그 원망이 깊은 화가 될까 두렵습니다. 앞전에 왕께서 제를 치려고 하니, 자서는 이것에 대해 불가하다고 했는데, 왕이 끝내 제를 쳐서 큰 성과가 있었습니다. 자서가 자신의 계모가 쓰이지 않음을 부끄러워해, 이에 거꾸러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왕께서 다시 제를 치려고 하니, 오로지 괴퍅한 고집을 부려 강하게 간언을 하여 일을 방해하니, 단지 오가 패하여 자기의 계모가 맞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왕께서 몸소 나서고 나라 안의 무력을 다하여 제를 치려고 하는 마당에 자서는 간하여 듣지 않으니, 멈추고 물러나 병을 핑계대고 싸움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서가 화를 일으킴이 어렵지 않습니다. 또 제가 사람을 시켜 몰래 그를 엿보게 하니, 그가 제에 사신을 갈 적에 그 아들을 제의 포씨에게 맡겼습니다. 자서가 신하된 처지로 안에서 뜻을 얻지 못하니 밖에서 제후에 의지하려 하면서, 스스로 선왕(합려)의 참모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받아들이지 않으니, 늘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빨리 그에 대해 대책을 세우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오 왕이 ‘그대의 말이 아니어도 나도 역시 그를 의심하고 있었네.’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사인(使人)을 시켜 오자서에게 촉루라는 칼을 주고, ‘그대는 이 칼로 죽으시오.’라고 말하게 했다.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며 ‘참소하는 신하 백비가 난을 꾸미니, 왕이 거꾸로 나를 주살하는구나. 내가 너(오왕 부차)의 아버지를 패자(覇者)가 되게 했고, 네가 아직 즉위하기 전에 여러 공자가 왕위를 다투니,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그것을 왕에게 간하였다. 안 그랬다면 하마터면 너는 왕이 되지 못할 뻔했지. 네가 왕에 즉위하고 오나라를 나누어 나에게 주려고 하니, 나는 오히려 감히 바라지도 않았네. 그러나 지금 네가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들어 어른을 죽이는구나.’라고 말했다. 이어 집사람들에게 ‘반드시 내 묘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그릇을 만들 수 있게 하고, 내 눈알을 도려내어 오의 동문 위에 매달아 월 구적이 오에 침입하여 오를 멸하는 것을 보게 하라.’라고 말하고,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오 왕이 그것을 듣고 대노하여, 자서의 시신을 취하여 말가죽 술부대에 담아 그것을 강(양자강) 가운데 띄웠다. 오나라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를 위하여 강 위에 사당을 세우고, 서산(胥山(오자서의 산))이라고 이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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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王>旣誅<伍子胥>, 遂伐<齊>. <齊><鮑氏>殺其君<悼公>而立<陽生>. <吳王>欲討其賊, 不勝而去. 其後二年, <吳王>召<魯><衛>之君會之<橐皐>. 其明年, 因北大會諸侯於<黃池>, 以令<周室>. <越王句踐>襲殺<吳>太子, 破<吳>兵. <吳王>聞之, 乃歸, 使使厚幣與<越>平. 後九年, <越王句踐>遂滅<吳>, 殺王<夫差> ; 而誅<太宰嚭>, 以不忠於其君, 而外受重賂, 與己比周也.
<伍子胥>初所與俱亡故<楚><太子建>之子<勝>者. 在於<吳>. <吳王夫差>之時, <楚><惠王>欲召<勝>歸<楚>. <葉公>諫曰 : “<勝>好勇而陰求死士, 殆有私乎!” <惠王>不聽. 遂召<勝>, 使居<楚>之邊邑<鄢>, 號爲<白公>. <白公>歸<楚>三年而<吳>誅<子胥>. 오 왕이 오자서를 죽이자 드디어 제를 치게 됐다. 제의 포씨는 그 임금 탁공을 죽이고 양생을 즉위시켰다. 오 왕이 그 잔악함을 토벌하려고 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2 년후 오 왕이 노, 위의 임금을 불러 탁고에서 그들과 회합을 했다. 그 다음해 북으로 황지에서 제후들을 크게 규합하고, 주나라 왕실을 따르게 했다. 월 왕 구천이 습격하여 오의 태자를 죽이고 오 병사를 격파했다. 오 왕이 그것을 듣고 돌아와 사신으로 하여금 폐물을 후하게 하여 월에 주고 화친을 맺게 했다. 9년 후 월 왕 구천이 드디어 오를 멸하고, 왕 부차를 죽이고, 태재 백비를 주살하니, 그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고 밖으로 많은 뇌물을 받으며 자기네와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066/2182
<白公勝>旣歸<楚>, 怨<鄭>之殺其父, 乃陰養死士求報<鄭>. 歸<楚>五年, 請伐<鄭>, <楚><令尹子西>許之. 兵未發而<晉>伐<鄭>, <鄭>請救於<楚>. <楚>使<子西>往救, 與盟而還. <白公勝>怒曰 : “非<鄭>之仇, 乃<子西>也.” <勝>自礪劍, 人問曰 : “何以爲?” <勝>曰 : “欲以殺<子西>.” <子西>聞之, 笑曰 : “<勝>如卵耳, 何能爲也.”
其後四歲, <白公勝>與<石乞>襲殺<楚><令尹子西>·<司馬子綦>於朝. <石乞>曰 : “不殺王, 不可.” 乃劫(之)王如<高府>. <石乞>從者<屈固>負<楚><惠王>亡走<昭夫人>之宮. <葉公>聞<白公>爲亂, 率其國人攻<白公>. <白公>之徒敗, 亡走山中, 自殺. 而虜<石乞>, 而問<白公>尸處, 不言將亨. <石乞>曰 : “事成爲卿, 不成而亨, 固其職也.” 終不肯告其尸處. 遂亨<石乞>, 而求<惠王>復立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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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史公>曰 : 怨毒之於人甚矣哉! 王者尙不能行之於臣下, 況同列乎! 向令<伍子胥>從<奢>俱死, 何異螻蟻. 弃小義, 雪大恥, 名垂於後世, 悲夫! 方<子胥>窘於<江>上, 道乞食, 志豈嘗須臾忘<郢>邪? 故隱忍就功名, 非烈丈夫孰能致此哉? <白公>如不自立爲君者, 其功謀亦不可勝道者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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