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文 四十八章 .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之,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矣.
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지,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故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고취천하, 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배움을 위하는 날이 많아지면 도를 위하는 날은 점점 덜어지리라 덜리고 또 덜리게 하여선 하염없음 소이 한정 없음에 이르르면 하염없음을 하지 아니함에 없지 않게 된다
그런 원인으로 천하를 취하대 늘 상 無事(무사) 함으로써 有事(유사)한데 그 영향이 미치게끔 하여선 천하를 부족함으로써 취하게된다 그 만큼 여유 있어선 남아돈다는 말이리라 무위한 자연의 흐름 길의 진행하는 가르침이....그런 논리전개가 된다할 것이다
배움이라 하는 덩어리가 커질수록 本然(본연)에 길이라 하는 덩어리가 그만큼 반비례적으로 파여 나가선 배움에 同化(동화)되어선 道(도) 天下(천하)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그 무슨 認識(인식) 知識(지식)이 늘어남으로서 본연에 질박한 길이 줄어든다 이렇게만 풀을 것이 아니라 道(도)가 덜려선 파이는 것이 나무를 파내어선 수레 굴대 축이 들어 가게끔하여선 굴르는 수레 바퀴 통을 삼듯이 그렇게 길이라 하는 것이 파여 나가선 有用(유용)한 사용을 점점 할 수 있게끔 된다는 것, 말하자면 道(도)가 수레 바퀴 통이 되어선 굴러 갈려면 그 속심을 파내 치워서만이 그릇이 되어선 그렇게 사용하게 된다는 그런 말로도 풀 수가 있다할 것이다 그래야만 뒷 따라 오는 문장 구절과 文脈(문맥)이 통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하염없음 所以(소이) 자연이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러한 자연의 무궁한 흐름이 바로 표현을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라는 것이리라 所以(소이) 하염없이 하는 것이 쉬지 않는다, 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으로 된다는 것이이라 所以(소이) 모든 것이 자연에 원리로 돌아가선 그 자연이 하지 않는 것이 없게된다는 것을 지금 力說(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이런 원인에 의해서 그 천하를 의지하게 하는데 천하를 도우려 하는 것이 되는데 늘 상 무사 일없는 태평함으로서 그 일이 있는 것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데 所以(소이) 安逸無事(안일무사)한 方案(방안)을 채택하여선 그 일이 혹여 생기면 거기도 그러한 방법을 적응 應用(응용)한다는 것이리라 그렇게되면 아무리 천하가 넓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러한 원리의 道(도)를 다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천하가 작아만 보인다 所以(소이) 천하를 도우려 하는데, 천하를 취득, 하려하는데 그 天下(천하)로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리라 의지하려드는 천하가 작은 좁쌀 정도로만 보일 정도로 그 道(도)라 하는 것의 안목이 매우 드넓어져선 그 虛心坦懷(허심탄회) 位相(위상)을 보여준다고 한다는 것이리라 그만큼 無爲自然(무위자연)의 작용 흐름이 위대하다는 것을 여기서는 말하여주는 것 대목이 아닌가 하여 보는 것이다
소이 무위자연의 흐름의 법칙을 배우라 거기 순종하여선 그 된바 돌아가는 대로 추종 同化(동화)되어라 이런 말씀인 것이다 커다란 무위자연의도 덩어리가 무한정이지만 그무한정의 덩어리가 다 파여질 정도로 그렇게 사용하려 들으라는 것이리라 所以(소이) 道(도)에 一路(일로)邁進(매진) 하여선 오히려 그 커다란 大路(대로)가 작다할 정도로 가득 길을 메워 나가는 群衆(군중)들의 모습을 보여줘라 이런 意味(의미)도 포함된다 할 것이다 그렇게되면 그 길을 번창함을 알 것인지라 이차선 사차선 팔차선 점점 道(도)의 폭이 확대되 어선 거기 다니는 운행하는 수레도 그만큼 비례하여선 많이 늘어 난다는 것이리라
道(도)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소신 있는 주장 인 것이고 그 행하는 것은 관철시키려는 노력인 것이라 무언가 목적을 세우고 추진하여 나간다면 그것이 곧 길인 것이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열심 뛰고 보라는 것이리라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이라고 자신이 할 도리를 다하고 난 다음에야 그것은 成事(성사) 不成(불성)사는 오직 하늘에 맡겨 버린다는 것이리라 그렇게 바라는 대로 대어라 하는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바라는 대로 성취될 것이라는 노력하는 자의 겸허한 자세라 할 것이다 勞謙君子(노겸군자)는 자신의 功勞(공로)를 자랑하지 않음으로서 더욱 그 位相(위상)이 돋보이고 빛을 낸다하고 감히 낮아여도 타넘지 못하고 높으면 欽慕(흠모)할 빛나는 位相(위상)이라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 으스대고 자랑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他(타)의 歸鑑(귀감)을 삼을 만 하다는 것이리라
* 本文 第 四十八章 = 배움 위하길 날로 더하면 길 위함은 날로 덜어진다 덜어지곤 또 덜어져선 하염없음에 다다르고 할게 없다해서 하지 않는 건 없는지라 그러므로 천하 떠떳함을 일없음에서 취하고 그 있음에 미쳐선 넉넉히 천하를 취하지 못한다
* 배움을 위하려 든다면 날마다 더해야 하지만, 길에 종사하려든다면 날마다 덜어내야만 한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것이 하염없음에 이르는 방법이다 인위적 하염없음이라야만 함이 아니 없게 된다, 소위 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를 취하려는 자는 늘 상 일없음에서 그 일 가진 것으로 에 미치는 것이라 족하지 못한 모습으로 천하를 취하는 방법 이 나니라 , 이상은 오류 해석이고,
배울려 한다면 날로 더하려만 든다 길을 한다면 날로 덜게된다 덜고 또 더는 것이 하염없는 자연원리 현상을 추종하는 것이 된다 함이 없음이라야만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인위적인 함이 없을 때 자연 저절로 하는 것이 되어선 일의 성사를 맛본다는 것이니,
'하고 않하고' 나를, 염두에 그리지 말라는 것이라 소이 그에서 생각을 떠나보내라는 것이, 개의치 말라는 것이라. 그러다 보면 저절로 이뤄진다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손 붙들어 메고 이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그 장구한 목적 의식을 갖고 봄에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가을의 수확을 바라듯이 그냥 그 일하는 자체를 자연에 맡겨 두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 때되면 그 노력한 공과 만큼의 성과를 보게된다는 그러한 말씀이다 소이 眼前事(안전사)에 얽메여선 마음과 행동을 옥죄일 필요는 없다는 그러한 가르침이리라
그러므로 천하를 취하려는 것은 여유작작한 늘 상한 일없음에서 그래되는 것이요 그 마음 동동거리는 일 가짐에서는 그 족히 천하를 취하려 들지 못한다 할 것이다 그러니까 眼前(안전) 事(사)에 얽메이다 보면 큰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말씀이리라
蘇註
소주
不知道而務學 聞見日多 而無以一之 未免爲累也 孔子曰 多聞擇其善者而
불지도이무학 문견일다 이무이일지 미면위루야 공자왈 다문택기선자이
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苟一日知道 顧視萬物無一非妄去妄以求復性
종지 다견이식지 지지차야 구일일지도 고시만물무일비망거망이구복성
是謂之損 孔子謂子貢曰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曰 然 非與 曰 非也
시위지손 공자위자공왈 여이여위다학이식지자여 왈 연 비여 왈 비야
予一以貫之 去妄以求復性 可謂損矣 而去妄之心猶存及其兼忘此心 純性
여일이관지 거망이구복성 가위손의 이거망지심유존급기겸망차심 순성
而無餘 然後無所不爲 而不失於無爲矣 人皆有欲取天下之心 故造事而求
이무여 연후무소불위 이불실어무위의 인개유욕취천하지심 고조사이구
之心見於外 而物惡之 故終不可得 聖人無爲故無事 其心見於外 而物安之
지심견어외 이물오지 고종불가득 성인무위고무사 기심견어외 이물안지
雖不取天下 而天下歸之矣.
수불취천하 이천하귀지의.
* 소씨 주석하대. 길을 모르고 배우길 힘씀 듣고 봄이 날로 많아져서 한결같음을 쓸수(*유지할 수)없다면 얽메임 됨에서 면치 못하는지라 (*譯者附言=즉 지식의 서로간 갈등은 되려 심적인 행위에 제약을 강요 장애를 일으켜 지식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뜻) 공자 말씀하시길 많이 들어선 그 착한 것을 가려선 쫒고 많이 보아서 지식을 쌓는 것은 앎의 둘째가 된다 했다 진실로 하룻날의 길을 알아 만물을 돌아봄 한가지도 망령됨이 아니 함이 없다 망령됨을 버리고서 본성의 회복을 찾음 이를 일러 덜어낸다 함인 것이니 공자 그 제자 자공 다려 말하길 너- 내가 많이 배워서 지식이 있는 자라 하느냐? 말해보라 그런가 아닌가를? 말씀하시데 나 그렇치 아니 하나니라 내- 하나로 꿰뚫었을 뿐이 나니라 하셨다 망령됨을 버리고 본성의 회복을 찾음 바로 덜어낸다 이름이리라 망령됨을 버리는 마음 존재할 것 같음 그 겸하여 이런 마음조차도 망각함에 밋침 순수한 성품이 되어서 뭣이 남는 게 없다 할 것이다 그런 마음은 하지 못할게 없게 되고 하염없음을 버리지 않게 되리라 사람이 모두 천하를 취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는지라 그런 까닭에 일을 만들어서 찾는다 마음을 밖같에 내보여서 사물을 미워하게 되는지라 그런 까닭에 마침내 바로 얻지 못한다 성인은 하염이 없는지라 일이 없다 그 마음을 밖같에 내보이면서도 사물을 편안하게 하는지라 비록 천하를 취하려 들지 않을려 해도 천하가 돌아오게 되 있는 것이다
呂註
여주
爲學者未聞道者也 未聞道而求之 則不得博 故日益 爲道者已聞道者也 已
위학자미문도자야 미문도이구지 즉불득박 고일익 위도자이문도자야 이
聞道者而爲之 則期至於無爲而已 故日損 而損之者未免乎有爲也 幷其損
문도자이위지 즉기지어무위이이 고일손 이손지자미면호유위야 병기손
之者而損焉 而後至於無爲 無爲者無有而已 無不爲者乃所以無無也 此之
지자이손언 이후지어무위 무위자무유이이 무불위자내소이무무야 차지
謂絶學無憂 無憂之謂神 神也者物物而非物者也 則取於天下也何有 由此
위절학무우 무우지위신 신야자물물이비물자야 즉취어천하야하유 유차
觀之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不足以取天下 觀莊周之所以應帝王者 而
관지 취천하상이무사 급기유사부족이취천하 관장주지소이응제왕자 이
深求之則可知已.
심구지즉가지이.
* 여씨 주석 하대. 배움을 위하는 자는 길을 깨침을 듣지 못하는 자이다 길을 듣지 못하고 구하면 얻지 못해 넓지 못하게 되는지라 그런 까닭에 날로 더욱 길을 위하려 든다 그런 모습이 됨 그것은 벌써 길을 들은 자가 된다 이미 길을 듣고서 길을 위한다면 기한을 하염없음에 다다름을 뒀을 따름이리라 그러므로 날로 덜어내어서도 덜어내는 것을 하염둠 에서 면치 못한다 아울러서 그 덜어낸다는 뜻을 덜어낸 다음이라야 하염없음(*즉 無爲)에 이른다 할 것이다 하염없음이라는 것은 존재가 없을 따름이라는 것이요(*없음과 있음일 따름이요) 하지 아니할게 없다는 것은 이는 곧 所以(*소이=쓰는 게) 없는게 없다는 뜻이다 (無無=는 긍정 有도 될 수있고 더욱 심화된 無를 뜻함 일수도 있다) 이를 일러서 배움을 끊어버림 근심이없다 함이고 근심이 없는걸 신성하다하고 신성한 것은 사물이니 사물이긴 하대 사물이 아닌 것이라 곧 천하를 취하는 게 무슨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천하 일없음으로써 항구하였고 그 일 있음에 미쳐서 넉넉히 천하를 취하지 못했다 할 것이니 莊周(*장주 =장자= 춘추전국시대 활약하던 제자백사상가 중의 한사람=장자란 著書가 있음)를 살펴 보건대 소이 제왕이 적응한 것을 깊이 궁구할 것 같으면 바로 자신을 알수 있다 할 것이다
朴註
박주
爲學者將求此道 故欲其日益爲道者 將行所學故欲其日損 老子之學復衆人
위학자장구차도 고욕기일익위도자 장행소학고욕기일손 노자지학부중인
之 所過輔萬物之 自然而不敢爲 則其道在於無爲無事 所以貴於日損然其
지 소과보만물지 자연이불감위 즉기도재어무위무사 소이귀어일손연기
能復衆人之所過以求此 自然之道者 若非有將就增益 則亦何以進於道 此
능부중인지소과이구차 자연지도자 약비유장취증익 즉역하이진어도 차
所以貴於日益也 有事不足以取天下亦猶二十九章 欲取天下而爲之者 吾見
소이귀어일익야 유사불족이취천하역유이십구장 욕취천하이위지자 오견
其不得已之意 或疑爲學日益 與二十章所云絶學無憂不合 恐此章之旨別有
기부득이지의 혹의위학일익 여이십장소운절학무우불합 공차장지지별유
所存此殊不然上所云 學者有爲之學 此所云學者無爲之學 卽學不學之謂其
소존차수불연상소운 학자유위지학 차소운학자무위지학 즉학불학지위기
所爲言之者異 老子豈果愚人也哉 眞欲昏然無知 自迷其性耶 不然五千言
소위언지자리 노자기과우인야재 진욕혼연무지 자미기성야 불연오천언
所說何事此其所謂學者非耶
소설하사차기소위학자비야
* 박씨 주석하대. 배움을 위하는 것은 장래에 길을 찾을려 하기 때문이다 그 날로 더욱 길을 위하고자 하는 것은 장래에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날로 노자의 학풍은 덜어지고 거듭 여러 사람의 허물만 보태고자 하는 꼴이 된다 만물은 자연에 맡김이라서 구태여 함이 없다 곧 그 길은 하염없음과 일을 없이함에 있다 所以 귀함은 날로 덜어지고 그러히 여러 사람의 허물만 되돌리기만 잘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그러함으로써 자연의 길을 찾으려는 것이니 만일 장래에 진취적으로 더하고자 아니할 것 같으면 역시 뭣하러 길에 나가서 소이 귀함을 날로 더할려 한다 할 것인가? 일을 가지고 천하를 넉넉히 취하지 못한다함 또한 앞서 이십구 문장의 뜻과 같고 천하를 취하고자 해서 위하여 가는자 내 그마지못해 함을 보았다는 뜻은 혹여 의심 내건대 배움을 위하길 날로 더한다함과 더불어 이십오 문장의 이른바 배움을 끊어버림 근심이 없다 함과 합치되지 않음이니 그러므로 이번 문장의 요지는 별도로서, 존재하는바가 자못 다르니 그렇치 않담 위에서 이르는바 배움이란 것이란 하염 두는 배움이고 이번에 이르는 배움이란 것은 하염없는 배움이란 뜻이니 곧 배움과 배우지 아니함은 그 말하는 것을 달리함에 있다하는 것이리라 노자 어찌 실로 사람을 어리석게끔 결단하게 했놨다 할 것인가? 참으로 혼미하고자 한담 앎이 없게 해 스스로 그본성을 아득하게 함이리라 하리라 그렇치 않담 오천 어구나 되는 말씀 무슨 일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란 말인가? 이는 그 이른바 배움이란 것이 그릇된 것이라 하실려고 했단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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