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스크랩] 도덕경 50

장안봉(微山) 2013. 5. 19. 20:28

 本文 五十章 .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人之生, 動之死地者, 亦十有三.
출생입사. 생지도십유삼, 사지도십유삼.인지생, 동지사지자, 역십유삼.

夫何故, 以其生生之厚.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 虎, 入軍不被甲兵, 無所
부하고, 이기생생지후.개문선섭생자, 육행불우시호, 입군불피갑병,시무소

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투기각, 호무소조기조, 병무소용기인. 부하고, 이기무사지.

 

출생하고 죽음에 들어가는 무리[방법 이나 思想(사상) 등]가 열 서너 가지가 된다 할 것인데  사는 방법도 열 서너 가지 여러 방법이고 죽음으로 향하는 방안 또한 그러하다 할 것인데  사람의 삶은 활동하려는 것이고 죽음의 땅이라 하는 것도 역시 그렇게 활동 하려하는 것이라 할 것인데 대체 그 열 서너 가지 방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 삶과 삶을 후덕 스럽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대저 잘 攝生(섭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선 삶을 윤택 기름지게 하는 것 ,살아가는 방식이 좋은 건전한 방향으로 기틀을 잡는 것 )하는 것을 듣는 것을 말함이리라 

 


들판에 행하면서도 사나운 짐승을 만나지 않고 군대 주둔지에 들어간다 하여도 兵仗器(병장기)의 侵害(침해)를 받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일 것인데 그 사나운 코뿔소 짐승이 들여 받는 일이 없고   사나운 범이 그 앙칼진 발톱을 드러낼 일이 없고 군대들이 병장기를 쓸 일이 없게 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死地(사지)인들 있겠느냐 이다 다  

 


生死(생사)中(중)에서 삶을 推究(추구)하는 말이라 할 것이다  사납게 나대는 원인을 除去(제거)한다면 그런 험악한 꼴을 몸소 당하겠느냐 해로움을 입겠느냐 이런 말씀이리라 그러므로 그렇게 사납게 움직이는 것을 제거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사납게 하지 않으려면 그 心狀(심상)들을 柔順(유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고 그 유순하게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안이 動員(동원)된다는 것인데 우선 심리적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리라 차분하게 가라 앉게 하는 방법을 택한다면 우에 그렇게 어지럽게 요동을 치겠느냐 이다 다

 


그러므로 그 열정을 일으키는 것을 아예 이목으로부터 멀리 사라지게끔 만든다는 것이리라  그 소이 조용하게 修道(수도)생활 하는 것처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그 마음을 들뜨게 하고 탐욕을 일으키는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또 지도자가 그런 利慾(이욕)에 걸탐을 내지 않음으로서 백성들이 그를 본받아서는 따라 오게 된다는 것을 여기서는 말하여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지도자가 덕목을 기르는 것을 행하기를 즐긴다면 그 추종하는 자들도 그런 것을 본 받으려한다는 것이고 지도자가 그 탐욕을 낸다면 그 추종하는 자들도 그렇게 탐욕을 즐긴다는 그 교과서적인 말씀이리라
사람들의 심상이 유순하면 그 질박하게 살 내기지 그렇게 요란스럽게 소동을 하여선  어지러운 삶을 추구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리라

 


이것은 전부다 지금 老聃(노담)이 역설인 것을 갖고선 가르치고 있다봐야  할 것인데 침체된 분위기를 만든다면 그러한 집단사회는 淘汰(도태) 소멸로 갈 내기이지 진전된 발전은 없다할 것이다

 

그러니 당시 상황의 병든 사회를 보고 이러한 思想(사상)을 갖게 되었다 할 것인데 당시 시대상황이 얼마나 세상이 그 適者生存(적자생존)논리에 弱肉强食(약육강식)이 심하였는지 백성이 도탄에 허덕이는 것인 줄 잘 말하여주는 모습 이기도 하다 할 것이다   所以(소이) 그런데서 염증을 느끼어선 이런 無爲自然(무위자연)이라 하는 자기 주장을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소이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평소 먹는 음식이라면 늘 상 먹는  음식이 맛이 없음에 어떻게 조리법을 다른 방법으로 바꾸어 볼 순 없을 가 하는 발상에서 그 道(도)라 하는 主長(주장)을 들고 나왔다고도 볼 수 있다할 것이다

 

일체 人爲的(인위적)인 것을 배제하는 理想(이상)세계가 평화롭지 않을가?... 하지만 그 세상은 더 걸탐이 들리면 들리었지 덜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리라  자연의 모든 악조건을 극복한 것이 오늘날의 문화번영이라 하는 것인데 老聃(노담)의 말처럼 흙이나 파먹다가 가는 굼벵이 지렁이 삶처럼 그렇게 질박하게 살려 치면 그 무슨 문화라 하는 것 있을 수가 없으며 그 未開(미개)한 모습은 단세포 동물의 작용과 같을 것이라는 것이리라  그런데 무슨 인간의 삶이 참되고 보람있고 가치 있다 할 것인가 이다

 


자연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유리한 방향의 한가지 방향만을 제공하여 주는 것은 아니다 그  극복하는 자세를 길러주는 挑戰(도전)精神(정신)을 가르치고 있다보아야 할 것이라  그 많은 시련을 딛고 올라선 것이 만물의 삶인 것이다 세찬 비바람을 맞지 않는 소나무는 오래도록 견디는 인내력을 가질수 없다 모진 매를 맞다 시피하는 생명체는 그 질겨 빠지게 오래가고 그것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게된다 이처럼 그 무언가 爲的(위적)으로 克服(극복)하려는 데서 발전이고 번영을 구가하게 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노력 추구하는 삶 속에 영원성도 보장된다 할 것이라 영원한 삶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道(도)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 우리 인간 및 생명체들의 種(종)의 保存(보존) 永遠性(영원성)을 갖기 위하여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인 것이다


* 本文 第 五十章 = 삶을 내보내고 죽음을 들어오게 한다  삶을 뜻하는 무리가 열중 세 가지가 있고  죽음을 뜻하는 무리가 열중 세가지가 있다   (*역자부언= 수리 학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갖고 있다 할 것이니  뭐가 뭣이다 의미부여해서  그렇게 해서 열중 셋이다 할 수 있는 문제이니  여기서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열가지중 셋이 있다한다   *또는 열세가지일수도.....)   사람은 살아 움직이는 것인데 죽음의 땅에 열중 셋이 있다는 것은 대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삶과 삶을 독실하게 하기 위함에서일 것이니  대저 착함을 듣고 삶을 지니려 하는 것은 땅에 행하면서도  외뿔소나 호랑이 같은 사나운 짐승을 만나지 않길 바람이요   전장터에 들었을 적에도  (*본문엔 避字로 되있는데  여씨 해석엔 被字로 되 있으니 어느 것이 맞는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서로 거의 가깝게 해석해보다)  창칼등 무기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함에서니 사나운 외뿔소 그뿔을 쓰지 못하게 하고  범에겐 그 사나운 발톱을 놀리지 못하게 하고 군사들에겐 창칼등 무기를 움직이지 못하게 함은 대체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다 할 것인가?  그 죽음의 땅을 없앴기 때문에 그렇다 할 것이다 

* 사는 데로 나오고 죽음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사는 방법이 열 서너 가지가 있고, 죽어지는 방법이 열 서너 가지가 있으며,  사람이 죽엄의 땅에서도 살아 활약 한다는 것이니 역시 열 서너 가지가 있다 ,  대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 삶과 삶을 두터웁게 하는 것은  대저 그 섭생[삶을 붙들어 잡는 방법]함을 잘 듣는데 있는 것이니  육지에 행하더라도 코뿔소와 범을 만나지 않고, 군대가 주둔한대 들어가더라도  그 군사들의 거친 행동의 폐해를 입지 않게 되는지라 ,  코뿔소가 그 뿔을 뜰바가 없고, 범이 그 발톱을 놀릴바가 없고, 군대들이 그 날카로운 병장기를 사용할 수가 없게되는 원인은 대저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그 죽엄의 땅을 없앴기 때문이다

蘇註
소주

性無生死 出則爲生 入則爲死 用物取精以自滋養者生之徒也 聲色臭味以
성무생사 출즉위생 입즉위사 용물취정이자자양자생지도야 성색취미이
自 賊者 死之徒也 二者旣分生死之道矣 吾又知作而不知休 知言而不知
자장적자 사지도야 이자기분생사지도의 오우지작이부지휴 지언이불지
默 知思而不知忘 以趣於盡則 所謂動而之死地者也 生死之道 以十言之
묵 지사이불지망 이취어진즉 소위동이지사지자야 생사지도 이십언지
三者各居其三矣 豈非生死之道九 而不生不死之道一而已矣 不生不死則易
삼자각거기삼의 기비생사지도구 이불생불사지도일이이의 불생불사즉이
所謂寂然不動者也 老子言其九 不言其一 使人自得之以寄無思無爲之妙也
소위적연부동자야 노자언기구불언기일사인자득지이의기무사무위지묘야
有生則有死 故生之徒卽死之徒也 人之所賴於生者 厚則死之道常十九 聖
유생즉유사 고생지도즉사지도야 인지소뢰어생자 후즉사지도상십구 성
人常在不生不死中生地且無焉 有死地哉.
인상재불생불사중생지차무언 유사지재.


* 소씨 주석하대.   본성은 죽고 삶이 없다  나가면 삶이 되는것이고 들어오면 죽음이 된다   사물의 정기를 취하여서 자신을 윤택하게 기르는 것을 갖다 삶의 무리라 하고  소리와 색깔 냄새 맛 따위로서 자신을 해적 시키는걸 갖다 죽음의 (*성향) 무리라 한다  두 가지가 이미 살고 죽음의 길을 나누었음이라   내 자신이 또한 성사등 뭐든 만들어 재킴은 알고  거둬 치울 줄 모르고  말씀할 준 알고  침묵을 지킬 준 모르고  생각할 준 알고 망각할 준 모름으로써  모든 것에 취향(*취미)을 갖고 성의를 다한다면  이른 바 죽음의 땅에서도 움직인 것(*살아있음)이라 할 것이다   살고 죽음의 길 열가지를 말하나 세가지가 각각 그 셋에 머물름이라  어찌 삶과 죽음의 길  아홉이라 아니라 할것이며  그렇다면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길   하나일 따름이라 하리라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면  곧 그것을 바꾸어 말한다면  이른바 고요한 모습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할 것이다   노자가 그 아홉을 말하고  그하나를 말하지 않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저마자 절로 얻게 하기 위함에서일 것이니   생각없고 하염없는 오묘함을 쓰는 것이라  삶이 있음 곧 죽음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삶의 무리인즉  곧 죽음의 무리이라  사람이 삶의 길을 충실(*좌뢰=삶을 자양시키고 도울려는것)하게 할려는 것을 독실하게 할려 한다면  곧 죽음의길  십 중  구는 떳떳해 진다 하리라   성인은 항상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가운데 있다  사는 땅이 또한 없는데 어찌 죽음의 땅인들 있다 할것인가?  


呂註
여주

生者死之徒 死者生之始 則生死相爲出入而已矣 生之徒十有三 則由生而
생자사지도 사자생지시 즉생사상위출입이이의 생지도십유삼 즉유생이
得生 非幸生者也 死之徒十有三 則由死而得死 非不幸而死者也 民之生動
득생 비행생자야 사지도십유삼 즉유사이득사 비불행이사자야 민지생동
之死地十有三 則豹養其內 而虎食其外 毅養其外 而病攻其內 非不以生爲
지사지십유삼 즉표양기내 이호식기외 의양기외 이병공기내 비불이생위
事 顧不得其道而動之死地者也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蓋由生得生 由死得
사 고부득기도이동지사지자야 부하고 이기생생지후 개유생득생 유사득
死者 固不必論 而以生爲事 而反之 死地其失爲在此也 蓋聞善攝生者 陸
사자 고부필론 이이생위사 이반지 사지기실위재차야 개문선섭생자 륙
行不遇 虎 入軍不被甲兵  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
행불우시호 입군불피갑병 시무소투기각 호무소조기조 병무소용기인 부
何故 以其無死地焉 老子之於此 固己體之 而言蓋以疑之 言聞以質之 何
하고 이기무사지언 노자지어차 고기체지 이언개이의지 언문이질지 하
也 此莊周所謂重言耶 嘗試論之 人之所以遇虎 被甲兵 而虎 甲兵之 所
야 차장주소위중언야 상시논지 인지소이우호시피갑병 이호시갑병지 소
以能傷人者 以吾有身故也 今我視吾心莫知其鄕 則吾心不可得 吾心不可
이능상인자 이오유신고야 금아시오심막지기향 즉오심불가득 오심불가
得 則吾身與物亦不可得 內不見有身 外不見有物 則孰爲死地 孰爲虎 甲
득 즉오신여물역불가득 내불견유신 외불견유물 즉숙위사지 숙위호시갑
兵 而投其角措其爪容其刃哉 然則善攝生者 夫何以加此.
병 이투기각조기조용기인재 연즉선섭생자 부하이가차.


* 여씨 주석하대.   삶이란 것은 장차 죽음의 무리요  죽음이란 것은 장차 삶의 시작이라 할 것 같으면 살고 죽음의 모양이 한갓 나고 듦의 모양일 따름이리라   삶의 무리중 열가지중 셋이 있다면  곧 삶으로 말미암아서 삶을 얻음을 다행치못한 삶이라 할것이고   죽음의 가지중 열가지중 세가지 존재가 곧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얻음 불행치 아니함으로써 죽은 것이라 할 것이다  백성이 살아 움직임이 죽음의 땅중 열가지중 세가지속에 있다함은 곧 승냥이를 그안에 기르고  범은 그밖같에서 먹을려 하고  늠늠함(*毅= 혹 짐승 이름 이아닌가 한다)은 그밖을 기르고  병은 그안을 공략해서 삶의 일을 삼지아니함이 없다   고찰컨대  그 길을 얻지 않고서 움직이면 죽음의 땅이란 것은 대체로 어떤 이유에서 그렇다 하는 것인가?  그 삶과 삶을 독실하게 함을 위함을 씀으로서니  대저 삶으로 말미암아 삶을 얻음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얻는 것은  고답하게 논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고   삶을 일을 삼아서  반대되는 게 죽음의 땅이라  그 됨됨이를 잃어 버리는 게  이렇게 존재한다 할 것이다  (*즉 삶의 모습이 변해 죽음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인지.....)   대저 착함을 듣고 삶을 붙들려는 것은  땅에 행하면서 사나운 짐승을 만나지 않길 바람이며  전장 터에서도 甲兵 즉 창칼등 무기의  난무 속에서도 폐해를 입지 않으려 함에서다   외뿔소가  그 뿔을 쓰지 못하게 하고 범이 발톱을 펴지 못하게 하고  군사들이 무기를 거동치 못하게 함은  대체로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는 죽음의 땅을 없앴기 때문이다   노자는 이쯤에 와서 자기가 뜻하는 글 속으로 표현 할려는 의중을 굳게 하여선  대저 의심내는 의향으로써 말하여 간다   말씀과 들음의 질박함을 씀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는 莊周=(*장자= 춘추 전국시대 활약한 제자백가사상의  한사람) 이른바 말씀을 무겁게 한다함은  일찍이 시험해서 의론함을 가리킨다 할 것이니   사람이 소이 사나운 짐승을 만나고 무기의 폐해를 입는다 함에 있어서  사나운 짐승과 무기가 잘 상하게 되는 것은 사람 자신의 몸통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자신이 내 마음을 관찰해 보건대  그 고향이 어딘 줄 모른다면  내 자신에 마음이란 걸 바르게 얻지 못할 것이고  내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얻을 수 없다면  내 자신 및 사물인들  또한 바르게 얻을 수 있다 할 것인가?  안으로 몸의 존재를 보지 못하고   밖으로 사물의 존재를 보지 못하면  어디가 죽음의 땅이 되며  어느 게 사나운 짐승과  창칼 무기가 되어서 그 뿔 들여받는 게 되며  그 발톱이 할퀴는 게 되며  그 창칼의 무기가 거동하는 게 된다 할 것인가?  그렇다면 착한 것 중의 삶을 붙드는 게  대체 어느 게  이보다 더 더한 게 있다 할 것인가?  이런 뜻임 . 


朴註
박주

出生入死 出則爲生 入則爲死也 出者超然自脫 入者溺而不返徒類動輒之
출생입사 출즉위생 입즉위사야 출자초연자탈 입자이기불반도류동첩지
往也 夫何故者 設問之辭三言 十有三者言 今有十八其當生之類居其三 當
왕야 부하고자 설문지사삼언 십유삼자언 금유십팔기당생지류거기삼 당
死之類居其三 當生而動趨 死地者又居其三生之徒上也 超然自脫無可言者
사지류거기삼 당생이동추 사지자우거기삼생지도상야 초연자탈무가언자
死之徒下也 溺而不返不可救矣 生而之死者中也 尙有可救之道 故 設問而
사지도하야 익이불반불가구의 생이지사자중야 상유가구지도 고 설문이
告之曰 民之生而動之死地者夫何故耶 無他以其生生之厚故也 夫欲厚生生
고지왈 민지생이동지사지자부하고야 무타이기생생지후고야 부욕후생생
之樂而貪欲不厭必至於忘生而趨死豈不爲大迷而可哀耶 故善攝生者 物不
지락이탐욕불염필지어망생이추사기불위대미이가애야 고선섭생자 물불
能害人 不能傷我無寢皮食肉之心 則與物相忘 雖有惡獸無所施其爪角 我
능해인 불능상아무침피식육지심 즉여물상망 수유오수무소시기조각 아
無爭利求勝之心 則與人相忘 雖有惡人無所施其兵刃 如此者何也 我無可
무쟁이구승지심 즉여인상망 수유오인무소시기병인 여차자하야 아무가
死之道故也 死地猶言可死之道 謂生生之厚章內 凡言夫何故者 再前以言
사지도고야 사지유언가사지도 위생생지후장내 범언부하고자 재전이언
其蒙禍 命之由後 以言其遠害 全身之故 皆所以設問發端以致其 丁寧反
기몽화구명지유후 이언기원해 전신지고 개소이설문발단이치기 정녕반
覆之意也
복지의야


*박씨 주석하대.   출생 입사란 나가면 삶이되고 들어오면 죽음 됨을 뜻한다   나간다는 것은 그러히 뛰어넘어 자신을 벗어 치운 것이다  들어온다는 것은  빠젼서 돌아 나오지 못함을 뜻하니 갖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어 오로지 (문득 ) 지난다함을 뜻함이다   무릇 어떤 것이 물음을 펴는 말씀 세 가지라 할 것인가?   열증 세가지 둠을 말하는 것은  이제 열 사람이 있어  그 응당 사는 종류로써 그 세가지에 머물름 둔다하면 응당 죽음의 종류도 그 셋에에 머물르는 것이라서 응당 생활하면서  죽음의 땅을 움직여 쫓는 것이니  또 그 세가지는 삶의 무리의 윗이라 그러히 스스로를 벗어 치운 것이되고  바르게 말씀이 없음을 다하는 것은 죽음의 무리 아래인지라  빠져 돌아오지 아니하니  가히 구원치 못함이리라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것의 가운친 것은  오히려 바르게 구원하는 길이 존재하는지라   그런 까닭에 묻기를 베풀어서 고하여 말하길 백성이 살아 움직이는게 죽음의 땅인란 것은 무슨 이유 에서인가? 이는 다름없다   그 삶과 삶을 두터히 하는 연고서라 할 것이다   무릇 삶과 삶을 두터이 하고자 하는걸 즐거히 여겨서   탐욕을 싫어 하지 않음 필히 살기를 망각함에 이르러서   죽음으로 달리는 것이되니  어찌 큰 혼미함아 되어서 바르게 슬프다 아니할것인가?   그러므로 선하게 삶을 지니자는  사물 때문에 사람을 잘 해치지도 않고   자신도 잘 상하지 않게 한다  잠자는 짐승을 몰래 가죽 벗겨 잡아먹으려는 마음이 없다면 사물과 더불어 서로를 망각하여  비록 나쁜 짐승이 존재해도  그 발톱과 뿔따귀를 놀릴 바가 없고   내가 이속을 다퉈 이기길 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들과 더불어도 서로의 존재를 망각해서  설령 나쁘다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무기를 휘두를게 있을 건가? 할 것이니  왜 이 같다 할 것인가? 내 자신이 바르게 죽음의 길을 없앴기 때문에  그러하다 할 것이다  죽음의 땅이란 오히려  죽음의 길을 말하는 거와 같고   삶과 삶을 두터히 한다는 걸 문장 안에서 말함은 대저 어떤 이유를 말하는 것인가?  재벌 앞서 그어지러운 앙화 속에서  명을 구하는 말로써  말미암아  뒤로 그 해로움을 멀리하고  몸을 온전하게 하는 연고를 말함이라  모두 물음을 펴는 끝을 일으켜서  그 정녕코 반복하는 뜻을 이룸이라 할 것이다 


 

출처 : 역학살롱(實戰命理의 場)
글쓴이 : 삼베 중우 적삼 도롱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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