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불교)

[스크랩] 포항 오어사(吾魚寺) ... 원효대사의 향기가

장안봉(微山) 2013. 5. 14. 12:17

 

 

 

                                           오어사                吾魚寺

 

 

 

 

 

 

 

 

 

 

 

 

오어사(吾魚寺)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恒沙里)에 위치하고 있다. 오어사는 '삼국유사'에도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1)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10대 사찰 중 하나이며,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따서 항사사(恒沙寺)라고 하였다.그리고 창건 이후 혜공(蕙空), 원효(元曉), 자장(慈藏), 의상(義湘) 등이 주석하여 신라의 사성(四聖)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 후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1995년 오어지(吾魚池)에서 발견된 동종(銅鐘)이 명문(銘文)을 통하여 고려 말인 1216년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 , 이 기간에 이 같은 우수한 동종(銅鐘)을 조성할 정도로 사세(寺勢)가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고려시대의 연혁에 관한 다른 문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오어지 . 운제산                 吾魚池 . 雲梯山

 

 

 

 

 

 

 

 

 

 

 

 

오어사 주변에는 1964년에 완공된 만수(滿水) 면적 12만평에 저수량(貯水量)도 500만 톤에 이르는 넓은 오어지(吾魚池)가 있다. 용(龍)이 감싸고 있는 듯한 호수와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을 가진 운제산(雲梯山)의 산세가 함께 어우러져 승경을 빚는 곳이다. 운제산(雲梯山)은 원효대사가 '원효암'과 '자장암'을 세우고, 수도 포교할 때 기암절벽인 계곡 사이에 두 암자를 두고 내왕(來往)이 어려우므로 구름을 다리를 놓아 오고 갔다고 하여 구름 '운(雲)'과 사다리 '제(梯)'자를 써서 운제산(雲梯山)이라 이름을 붙였다.

 

 

다른 이야기로는 신라 제2대 남해왕비 운제부인의 성모단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즉, 신라 제1대 박혁거세왕의 아들 남해왕의 부인 운제부인(雲梯婦人)의 성모단(聖母壇) 혹은 성모당(聖母堂)이 있어 가뭄이 극심해지면 근처 농민들이 이곳에서 하늘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데 영험하다고 전하며 고려시대까지는 사단제실이 있었다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고 있으며, 이때부터 운제산(雲梯山)이라고 불렀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오어사사적기              吾魚寺事蹟記

 

 

 

 

 

 

 

 

 

 

 

 

 

 

 

 

                                            오어사(吾魚寺), 창건 전설

 

 

 

 

 

오어사는 뒤로는 자장봉(慈藏)을 등지고,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동쪽에는 마치 용(龍)의 날개 같은 오어지(吾魚池)가 자리잡고 있다. 오어사는 처음에 지명(地名)을 본 따 항사사(恒沙寺)라고 하였는데, 오어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원효대사'와 그의 법우(法友) '혜공대사'가 이곳에서 불법을 펴기 위해 고기를 살리는 이적(異蹟)을 보인 것에서 연유된다.

 

 

원효와 혜공이 어느 화창한 봄날 신도들에게 붑법을 설하였으나 그들이 잘 깨우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에게 불법의 신묘함을 보여주기 위해 원효(元曉)가 혜공(蕙空)에게 ' 혜공, 불가(佛家)에서 살생은 금물이지만, 그들에게 불력의 신비함을 보여 주기 위해 고기를 잡아먹어 보이면 어떻겠소 '하고 제의를 하였다.그러더니 두 고승은 냇가로 내려가 물속의 고기를 잡아 거침없이 씹어먹었다.

 

 

설법을 듣던 무리들은 두 승려의 돌연한 행동에 어안이 없었다. 불가에서 가장 금기로 여기는 살생을 마구 행하는 스님들을 보고 군중들의 실망이 절정에 달했을 때, 혜공이 원효에게 말했다. ' 자 이제 고기를 살려 저들에게 불력(佛力)을 보일 때가 되었나 봅니다 '하고 두 승려가 강을 향해 엉덩이를 내밀어 대변을 보는데 변 속에서 고기가 살아나와 물속으로 헤엄쳐 갔다.  

 

 

그런데 원효의 변 속에서 나온 고기는 원기왕성하게 물줄기를 거슬러 청석골로 헤엄쳐 오르는데, 혜공의 변 속에서 나온 고기는 힘없이 물줄기를 따라 항사(恒寺)로 떠내려 가는 것 아닌가. 이를 본 신도들이 두 스님들의 불법에 탄복하고 있을 때, 두 고승은 서로 농(弄)하며 생기있게 상류로 헤엄쳐 가는 고기를 향해 서로 내(吾) 고기(魚)라 했다고 하여 오어사(吾魚寺)로 부르게 되었고, 문제의 물고기를 놓아 준 곳을 오어지(吾魚池)라 부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일연(一然)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일연스님은 1264년에 오어사에 머물렀던 기록이 있어 당시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채록한 것이라고 한다.      

 

 

 

 

 

 

 

 

 

 

 

 

 

 

                                                  오어사의 가람배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물가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오어사의 일주문이 호수(湖水)와 마주 보고 있다. 최근에 건립된 일주문과 일직선상에 대웅전(大雄殿)이 있는데, 이 대웅전은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무엇보다도 문살이 특이하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봉오리에서 꽃이 활짝 피는 모습을 새겨 놓았다. 대웅전 왼편으로 요사와 오른편으로 범종각이 있다. 요사와 대웅전 사이에 오래된 배롱나무 한그루가 천년의 향기를 담고 늘 반갑게 맞이해 준다. 대웅전 뒷편으로 삼성각, 산령각, 응진전이 있다. 그리고 마당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요사 두 채와 불교용품점이 있고, 오른편으로 요사와 유물전시관이 있다.  

 

 

 

 

 

 

 

 

 

 

 

 

 

 

 

                                            오어지                  吾魚池

 

 

 

 

 

 

 

 

 

 

 

 

 

 

 

 

                                            대웅전                 大雄殿

 

 

 

 

 

 

 

 

 

 

 

 

 

 

오어사 대웅전은 조선 영조 17년인 1741년에 중건하였다. 자연석을 다듬은 5단의 석축 위에 화강석 주초(柱礎)를 한 겹처마 다포집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에는 칸마다 3짝씩의 백련, 청련 꽃살 분합문을 달았다. 아래쪽에는 나무판에 보상화문을 그려 넣었다. 공포를 3출목으로 장식하고 연꽃무늬의 특이한 단청을 보이는가 하면 천장으로는 섬세한 양각 아래 두마리의 학(鶴)이 있어 천상세계(天上世界)를 짐작케 한다. 경사가 낮은 처마선에 약간의 반전(反轉)을 두어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천상천하무여불          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          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          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          一切無有如佛子

 

 

 

 

 

천상천하 어느 곳에도 부처님 같으신 분 없나니  /  시방세계에도 비교할 분 없네  /  세상천지 내가 다 보아도  /  부처님같이 귀하신 분 다시 없도다       

 

 

 

 

 

 

 

 

 

 

                                                    대웅전 꽃창살

 

 

 

 

 

 

 

 

 

 

 

 

 

 

 

 

                                                심우도             尋牛圖

 

 

 

 

 

 

 

 

 

 

 

 

 

 

 

 

심우도(尋牛圖)란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禪畵)이다. 선의 수행단계를 소와 동자(童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으로, 수행 단계를 10단계로 하고 있어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주로 사찰의 법당 벽화로 많이 묘사되고 있다.   

 

 

 

                                             응진전              應眞殿

 

 

 

 

 

 

 

 

 

 

 

 

 

 

 

                                              삼성각              三星閣

 

 

 

 

 

 

 

 

 

 

 

 

 

 

 

                                            보리수               菩提樹

   

 

 

 

 

 

 

 

 

 

 

                                            자장암               慈藏庵

 

 

 

 

 

 

 

 

 

 

 

오어사에서 바라보는 자장암(慈藏庵)은 운제산 꼭대기 암봉 위에 사뿐히 앉아 있다. 가파른 산정의 아슬아슬한 풍경은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고,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아예 그 모습을 감춰버리지만, 보기보다는 오르는 길은 수월하다. 자장암에서 내려다보는 오어사는 계곡의 경치에 첩첩이 둘려 싸여 산마루와 굽이 돌아 흘러드는 계곡물은 전설처럼 아름답다.   

 

 

 

 

 

 

 

 

 

 

 

자장암은 어오사 산내 암자로서,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신라 진평왕 즉위 때인 578년 경 자장율사와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수도할 때 오어사와 함께 창건된 암자로서, 운제산 해발 600m 정상에서 그 기운을 받아 동남방 간으로 급히 굽이치듯 내려오며, 용(龍)이 흡사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하늘로 등천(登天)하듯 우측으로 휘감기며 오르내리드니, 수 천 척(尺)의 절벽을 이루는 바위로서 봉우리가 생겼는데, 이 봉우리는 일명 천자봉(天子峰)이라 부른다. 

 

 

그 이름과도 같이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서 누구라도 지극 정성으로 기도 정진하면 모두 성취할 수 있는 곳이다. 요즈음도 신라 천년의 관음기도 도량으로서 항상 불자들의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자장암에서 내려다 보는 오어사를 감싸 안은 오어지(吾魚池)의 큰 호수는 만수(滿水)가 되어 그야말로 도량의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자장암으로 가는 길은 영일만 온천 입구에서 약 3km만 자동차로 오르면 쉽게 갈 수 있으며, 오어사 큰절에서는 산 위로 200m만 오르면 된다.   

 

 

 

 

 

                                                      부도밭과 비석

 

 

 

 

 

 

 

 

 

 

 

오어사 경내에서 자장암 방면으로 나 있는 등산로 입구에 오어사에 주석(住錫)하였던 역대 고승(高僧)들의 부도와 탑비가 모아져 있다. 부도 7기와 비석 1기가 그것인데, 7기 중 5기에 명문(銘文)이 있어 부도의 주인공을 알 수 있다. 부도의 주인공은 용계성변(龍溪惺卞), 대오종해(大悟宗海), 운묘흡(雲妙洽),  해월경련(海月敬蓮), 허곡만(虛谷滿) 등이다. 또한비석은 1740년에 세운 것인데 글자가 잘 보이지 않지만, 사명대사의 제자 용암(龍岩)의 부도비로 추정하고 있다. 

 

 

 

 

 

 

 

 

 

 

 

 

 

                                        유물전시관              遺物展示館

 

 

 

 

 

대웅전 마당 오른편에 유물전시관이 있다. 오어사 유물전시관은 원효대사의 삿갓과 숟가락을 비롯하여 볍화경 4점, 오어사사적기 2점, 대웅전 상량문 등 모두 2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전시 유물 가은데 특히 지난 1995년 오어지(吾魚池) 준설공사 중 발굴되어 보물 제1280호로 지정된 고려의 동종(銅鐘)이 주목되고 있다.

 

 

오어사 사찰 경내에는 기암절벽이 있는데, 그 가운데 원효암, 혜공암, 자장암이 있으며 이 절은 신라 중기부터 고승들이 수도 및 기거하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사찰 앞 오어지(澳魚池)는 태고의 얼이 감도는 신비를 지니고 있는 못이기도 하며, 오어사에는 많은 문헌 및 사적지(事蹟誌)가 보관되어 있었으나 이승만대통령 당시 대처승과 비구승의 사찰 쟁취 분쟁사건으로 고귀한 문헌이 분실 또는 고의로 사라져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오어사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3가지 보물이 있었다고 하며, 이 세 가지 보물은 아주 옛날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숫가락과 긴 칼 그리고 머리에 쓰는 대관(大冠)이 있었다고 한다. 이 보물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기거하다가 왕명에 의하여 금성(金城 ..현재의 경주)로 떠날 때에 남아 있는 승려들에게 '영구히 오래도록 보존하면 절이 오래도록 영속하리라 '하고 일렀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그 보물들을 소홀히 보관하여,

 

 

현재 숫가락의 손잡이는 분실되고, 장검(長劍) 즉, 긴 칼은 해방 후에 도난당하였으며, 대관(大冠)은 소홀히 보관하여 태반이 마멸되어 그 형태조차 알아 볼 수 없다. 숫가락은 신라시대의 검은 구리로 만들어져 원효대사가 식사 시에 사용하던 것이라고 하며, 장검은 원효대사가 불전행사 시에 사용한 것이며 또한 대관은 원효대사가 외출 시에 사용하던 승모(僧帽)이었다고 한다.      

 

 

 

 

 

                                         중수, 운영을 위한 계(契) 조직

 

 

 

 

 

 

 

 

 

 

 

 

조선 영조 12년인 1736년에 오어사의 모든 당우(堂宇)가 소실(燒失)되었으나, 1741년 치철(致哲) 스님 등이 대중의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여러 계(契)를 조직해서 사찰의 중수(重修) 및 운영에 보탬이 되도록 한 것이 주목된다. 1811년 오어사 산내 암자인 의상암(義湘庵)에서 출발한 등촉계(燈燭契)를 비롯해서 1823년 염불계(念佛契)를 조직해서 사찰을 중수하였으며, 1864년에도 칠성계(七星契)를 만들어 오어사 사찰 중수에 힘을 모았다. 이 같은 계 조직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도 이어져 이 해에 나한전(羅漢殿)을 중수할 때 계(契)가 활용되었다.

 

 

 

 

 

 

                                           원효암                 元曉庵  

 

 

 

 

 

 

 

 

 

 

 

 

운효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내려오는 전설이나 1954년에 지은 '원효암중건기'에 따르면 오어사에 있던 원효가 암자에 거처하면서 운제산의 구름을 타고 자장암을 건너다니며 혜공(蕙空)과 교유하였다고 한다. 1937년에 산불로 전소(全燒)되었다가 이듬해 중건하였고, 1954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동종             銅鐘

 

 

 

 

 

1995년 오어지(吾魚池)의 바닥이 높아져 준설공사를 하는 도중에 발견되었다. 이 범종은 신라 범종의 양식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성연대가 분명하고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한 고려 범종으로서 각종 장식 문양과 더불어 주조 기술이 우수한 작품이다. 고려 고종 3년인 1216년에 제작되었는데,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에서 제작된 후 이곳 오어사(吾魚寺)로 옮겨 안치된 범종이다.   

 

 

 

 

 

 

 

 

 

                                                    보물 제1280호

 

 

 

 

 

종신의 위와 아래에는 상대, 하대의 횡선 띠 안에 섬세한 무늬를 새겨 넣었다. 종신의 1/3 되는 곳 위쪽으로는 사각형의 유곽(乳廓)을 만들고, 그 안에 9개의 돌출된 모양의 유두(乳頭)가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5개는 발견당시 이미 결실되어 있었다. 그러나 종신에 범자(梵字)가 새겨져 있고, 음통의 맨 윗부분에 구슬 같은 여의두문(如意頭紋)을 장식하였으며, 신라 범종에서는 뉘여져 있었던 상대(上帶)의 보상화문(寶相華紋) 장식이 조금씩 세워져 있는 것과 같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이것을 입화식(立華飾)이라고 하는데, 고려 범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종신에서 보면 서로 마주본 채 꽃방석에 앉아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하는 보살이 '성덕대왕신종'의 공양비천상(供養飛天像)처럼 밑으로 내려오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고, 다른 두 쪽 면에는 전부 여섯 글자로 된 범자(梵字)가 기록된 명문이 위패 형태 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연화문 당좌(撞座)를 볼 수 있다. 크기는 현재 길이 96cm, 가로 56.5cm로 고려시대에서는 보기 드문 대종(大鐘)이다. 발굴된 직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후 지난 1997년 오어사로 돌아와 지금은 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용뉴의 머리 쪽에 해당되는 종신부분의 왼쪽 아래쪽 면에는 7행(行) 82자(字)의 명문(銘文)이 음각(陰刻)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에 판독된 명문 가운데 6행의 '선종(善終)'은 보리(菩提)로 판독되며 보리수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5행의 주(主)는 앞 글자와 똑같은 뜻을 줄여 쓴 고려식 약자(略字)로 밝혀진 바 있다. 범종에 새겨진 명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桐華寺都監重大師淳誠與同寺, 重大師睛蓮道人僧英之與同發, 誠願洪標私貯兼集聚錫鑄成, 金鍾壹三百斤縣掛于吾魚寺以此成善普願法界生主供, 道善從者貞祐四年丙子五月十九日 大匠 順光造

 

 

 

 

이 명문을 풀어보면, 동화사 도감 중대사 순성(淳誠)과 오어사 중대사 정련(睛蓮)과 도인승 영지(英之)가 함께 지극 정성으로 발원하여 두루 시주를 받아 300근의 금종 일구를 이루어 오어사에 걸었으니 일체 중생들이 넓은 법계의 간절히 바라는 성불의 깨달음을 이루고저 이 공양 소리를 바치며, 부처님께서 인도하는 곳으로 따르겠나이다. 정우 4년 병자5월 19일 대장 순광(順光)이 주조하다...는 의미이다.

 

 

이 명문을 통하여 이 동종이 고려 1216년에 주조되었고, 동화사 순성대사를 도감으로 하여 새대부중의 힘을 모아 무게가 300근 되는 종을 대장(大匠) 순광(順光)이 만들어 오어사에 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감독과 주종자 및 무게와 안치 장소, 연대 등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적혀져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신라시대에서 변화를 보인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종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오어사 동종은 범종의 이미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용통이 세밀히고 힘찬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고 양각된 보상화문에 비천상 등의 표현이 매우 섬세하다. 비록 발견 당시에 이미 유두 5개가 없어져 있었고, 명문이 약간 긁혀 있었으나 대체로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외형이 완전하다. 이러한 조건은 고려시대의 공예 및 주조 기술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보물 제12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의 양식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우선 용뉴(龍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신 위의 용뉴에는 한 마리의 용(龍)이 휘날리는 수염이 돋보이고 있는 입으로 여의주를 물고 앞을 주시하고 있다. 몸에 성성한 비늘을 세우고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3개의 발의 모습이 또한 인상적이다. 이러한 모습은 '성덕대왕신종'의 용뉴와 비슷하다. 

 

 

 

 

 

출처 : 김규봉 ... 사는 이야기
글쓴이 : 非山非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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