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불교)

[스크랩] 흥륜사지 ... 신라 최초의 가람

장안봉(微山) 2013. 5. 14. 12:16

 

 

 

                                    흥륜사터                  興輪寺址

 

 

 

 

 

 

흥륜사(興輪寺)는 신라 최초(最初)의 불교 사찰이다. 일제시대에 지금의 경주시 사정동 281-1번지 일대가 흥륜사(興輪寺)의 유지(遺址)로 추정되어 국가사적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경주의 향토사가(鄕土史家)들에 의하여 사적 제15호인 '흥륜사지(興輪寺址)'는 '영묘사지(靈廟寺址)'이며, 흥륜사지는 지금의 '경주공업고등학교 부지 일대'라는 견해가 제시되어 왔고, 지금은 대다수의 관계학자들도 이를 수긍하는 입장에 서 있다.

 

 

 

 

 

 

 

 

 

 

 

 

 

 

 

                                                  신라 최초의 가람

 

 

 

 

 

삼국유사(三國遺事) 아도본비(阿道本碑)에는 신라(新羅)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高句麗)의 승려 아도(阿道 또는 我道)의 아버지는 정시년간(正始年間)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曺魏人) 아굴마(我堀摩)이며, 어머니는 고구려인 고도령(高道寧)이라고 하는데,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서축(西丑) 사람이라고도 하고, 오(吳)나라엣 온 사람이라고도 한다.

 

 

아도(阿道)는 5세 때 출가하였고, 16세 때 위(謂)나라에 가서 아굴마(我堀摩)를 만나고 현창화상(玄彰和尙)에게 배운 뒤 19세 때 고구려로 돌아왔다. 고구려에 돌아온 아도(阿道)는 어머니의 명으로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263년(미추 이사금. 味鄒 尼師今 2)에 신라에 왔다가 박해(迫害)를 피하기 위하여 일선현(一善縣 .. 경북 선산)에 있던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지냈다.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딸 성국공주(成國公州)의 병(病)을 고칠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아도(阿道)는 궁궐에 들어가서 공주의 병을 고쳐주고 불교의 전파를 허락받아 흥륜사(興輪寺)를 짓고 불법을강연하였다. 이때의 흥륜사(興輪寺)는 작은 절이었을 것이다.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 죽자 불교를 믿지 않는 신라 사람들의 박해를 받아 다시 모례(毛禮)의 집으로 피신을 하고 무덤을 파고 들어가 문을 닫고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않았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아도(阿道)가 묵호자(墨胡子)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으며, 일선군(一善郡) 모례(毛禮)의 집에 머무르다 죽었으며, 시자(侍者) 3명이 불경을 강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차돈의 순교

 

 

 

 

미추왕(味鄒王)이 죽자 절은 곧 폐허가 되었고, 그 후 법흥왕(法興王) 14년인 527년에 이차돈(異次頓)의 순교(殉敎)로 다시 짓기 시작하여 진흥왕(進興王) 5년인 544년에 완성되었다. 진흥왕(進興王)은 이 절을 '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 하고, 백성들이 중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진흥왕 자신도 왕위에서 물러난 뒤 출가하여 스스로 삭발(削髮)하고 이곳에서 거처하였고, 절이 완공된 후 그의 만년에  법운(法雲)이라는 법명을 받고 이 절의 주지(住持)가 되었다. 

 

 

이후 흥륜사는 대법회를 열고 왕실과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라의 큰 절이 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을 창건한 김대성(金大성)이 전생에 밭을 보시(布施)한 절이 흥륜사이고,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었다는 절도 이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 흥륜사지(興輪寺址)에는 경주공업고등학교가 들어 서 있다. 운동장 배수시설 공사를 하던 중에 문화재가 출토되어 국릭경주박물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 신라 및 통일신라시대의 건물 기둥의 아랫부분인 '적심(積心)'과 배수로(排水路) 등 신라 건축물의 흔적과 특히 '興'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을 흥륜사(興輪寺)로 추정하게 되었다.

 

 

 

 

 

 

 

 

 

 

 

 

 

 

위 사진은 바로 '興'자가 새겨져 있는 수키와 조각이다. '興'자의 위 아래에 쓰여진 글자는 극히 일부분만 남아 있어 정확한 판독은 어려우나 윗글자의 경우 아래부분이 ' '형태로 남아 있어 ' '자로 추정되고 있다. '王'자가 맞다면 '왕흥'으로 읽을 수 있으며, 진흥왕이 '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 '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으로 보아 '興輪寺'를 가리키는 명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아래 사진과 같이 '寺'자가 새겨진 수키와('寺'銘 平瓦)가 같이 출토되어 이곳이 절터이었음을 분명히 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 '寺'자 위에 새겨진 글자의 일부는 '八'자 모양이어서 '興輪寺'의 '輪'자와는 획(劃)에서 거리가 멀어 의아해진다.  

 

 

 

 

 

 

 

 

 

 

 

 

 

 

 

흥륜사(興輪寺)의 위치는 경주 오릉(五陵)의 북쪽 논밭과 민가(民家)를 포함한 지역이다.  이 절터는 1910년경에 우연히 금당지(金堂址)로 보이는 토단(土壇)과 석조(石槽), 석불(石佛) 등이 발견되고, 당시 이곳의 속명(俗名) 등을 참작하여 흥륜사(興輪寺)의 터로 추정하였다. 금당지는 민가(民家) 뒤뜰의 감나무밭이 되어 있었으나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흥륜사(興輪寺)와 관련하여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을 창건한 김대성(金大星)의 어머니가 밭을 시주(施主)하고 김대성이 재상(宰相)의 아들로 다시 태어낫다는 설화와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었다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또  흥륜사 금당(金堂) 안에는 선덕여왕 때 김양도(金良圖)가 조성하여 봉안한 미륵삼존상(彌勒三尊像)이 있었고, 금당(금당)의 동쪽 벽에는 아도(阿道), 이차돈(異次頓), 혜숙(慧宿), 안함(安含)의 상(像)이, 서쪽 벽에는 표훈(表訓), 원효(元曉), 혜공(惠空), 자장(慈藏), 사파(蛇巴) 등 10명의 고승(高僧)을 진흙으로 조성하여 봉안하였다고 한다.

 

 

신라 말, 반란군이 불을 질러 전소(全燒)된 것을 경명왕 5년인 921년에 중수(重修)하였는데, 제석천(帝釋天)이 수리를 도와주었는데 그 모습을 그리려하자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원력이 자신의 도움보다 크다 하여 보현보살(普賢菩薩)을 그리게 하였다는 설화도 있다. 고려시대에도 왕실의 도움을 받아 번창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화재(火災)로 전소된 것을 복구하지 못하고 폐사가 되었다.   

 

 

                                     

 

 

                                    신라의 미소                    新羅의 微笑

 

 

 

 

이 기와 조각을 보면 매우 낯이 익다는 느낌을 많이 주고 있다.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의 문양(紋樣)으로도 사용되었던 수막새라서 그러한 느낌이 더 할 수 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미소를 많이 닮았다는 것에서 오는 포근한 감정에서 오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이 기와 조각은 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이곳 흥륜사터에서 출토된것이라고 한다. 그 후 어느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우리나라의 어느 사학자가 그 아름다운 '신라의 미소(新羅의 微笑)'를 잊지 못하여 일본까지 날아가 그 일본인을 설득하고 기증을 받았다고 한다. 본디 수막새 기와는 연꽃무늬로 되어 잇ㄴ느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처럼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것은 매우 희귀하다고 한다. 수줍은 듯 하면서도 살짝 미소를 짓는 모습은 진정 '신라의 미소' 그리고 '우리의 미소'라 불릴 정도로 투박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다.  

 

 

 

 

 

 

                                              석조                  석조  

 

 

 

 

 

국립경주박물관의 미술관 남쪽에는 큰 석조(石槽)가 하나 놓여 있다.  경주시 동부동 옛 군수관사(郡守館舍)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석조는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길이 392cm, 너비 177cm, 높이 90cm의 규모로서, 일반 석조가 대략 200cm 정도인 것에 비하여 두 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이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조로는 가장 규모가 큰 석조이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쓴 시(詩)에 ' 흥륜사(興輪寺)는 보리밭이 되어 석조(石槽)만 외로이 남아 있고, 영묘사(靈妙寺)는 그래도 목조 부도(浮屠)가 남아 있다 '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 인조(仁祖) 16년인 1638년에 경주부윤(慶州府尹) 이필영(李必榮)이 흥륜사 폐사지에 있던 것을 경주읍성 안의 금학헌으로 옮겨 연꽃을 심었다는 내용( 주연부 후면 위)이 석조의 윗면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석조는 흥륜사의 석조(石槽)일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다음은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 개화여염유석조확독존 (蓋化閭閻唯石槽확獨存) ... 여염집으로 변한 터에 오직 석조만 남았다 ' 라는 시(詩)이다.

 

 

 

 

                                     맥수점점옹고허                           麥秀漸漸雍故墟

                                     사인공업경하거                           舍人功業竟何居

                                     지금계견훤재죽                           至今鷄犬喧齋粥

                                     편시당시송불서                           便是當詩誦佛書

                                     석조우곤확사염                           石槽遇困廓辭炎

                                     전각여허화리여                           殿閣餘墟化里閭

                                     속고시승승시속                           俗古施僧僧施俗

                                     윤회보덕역무혐                           輪回報德亦無嫌

 

 

 

보리 이삭 패어 옛터를 덮었는데  / 사인(舍人  .. 순교 당시 이차돈(異次頓)의 직명)의 공적은 어디서 찾을꼬 ?  /  들리는 닭과 개의 시끄러운 소리  /  문득 그 옛날 불경 외는 듯 하구나  /  석조(石槽)는 고달프고 가마는 불기를 잃었는데  /  허물어진 전각(殿閣) 터는 여염집으로 변하였구나  /  속인(俗人)은 스님에게 보시(布施)하고 스님은 속인(俗人)에 보시(布施)하듯  /  윤회의 보덕(報德) 또한 의심할 바 없구나

 

 

 

석조(石槽)의 용도는 수조용(水槽用)과 연지용(蓮池用)석조, 즉 조성 목적이 물을 저장하는 용도인지, 연꽃을 심어 부처를 공양하려는 것인지에 따라 나누어지는데, 이 석조는 경주부윤(慶州府尹)이 연꽃을 심었다는 명문(銘文)으로 보아 처음부터 연지용(蓮池用) 석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석조의 내외면에 특별한 장식은 없으나 ' 천광운영 (天光雲影) '이라는 글씨가 예서체(예서체)로 음각(陰刻)으로 새겨져 있다. 석조에 담긴 물에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으로 중국 '주자(朱子)'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싯귀에서 따온 표현이다.

 

 

 

                                         반무방당일감개                    半畝方塘一鑑開

                                         천광운영공배회                    天光雲影共徘徊

                                         문거나득청여허                    問渠那得淸如許

                                         위유원두활수래                    爲有源頭活水來

 

 

 

반 이랑만한 네모난 연못에 거울이 하나 깔려  /  하늘 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노니는구나  /  묻노니, 물이여 어쩌면 이리도 맑은가 ?  /  흐르는 물 그  근원에 맑은 샘이있어서라네

 

 

 

천광운영(天光雲影) ...  하늘 빛, 구름 그림자, 이 표현으로 인해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운영대(雲影臺), 화양구곡(華陽九谷)의 운영담(雲影潭), 상주의 천운재(天雲齋) 등의 누정 이름이 지어졌다.  그리고 위유원두활수래 (爲有源頭活水來)는 흐르는 물 그 근원에 맑은 샘이 있어서라네 ..라는 의미이다. 성리학의 견지에서 볼 때  근원이 맑은 물은 일말(一抹)의 사욕(私慾)과 사심(邪心)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마음의 경지를 나타내며 이로 인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此乃羅代興輪舊物寺廢抛在荊棘中者幾千餘載  崇禎戊寅冬運入植蓮以爲賞玩之具縣晦有數.因廣陵後人 晩悔識  ... 이것은 신라시대 흥륜사에 있던 유물로, 절이 황폐되어  가시덩굴 속에 버려진 지가 거이  천여 년이 지났다. 숭정 무인년(인조 16년. 1638) 겨울 옮겨 들여와 연꽃을 심어 완상하는 기구로 삼았으니, 쓰이고 버려지는 것에도 다 운수가 있는 것이다. 인광릉후인 만회가 기록하다.  여기서 만회(晩悔)는 경주부윤 이핑영(李必榮)의 호(號)이다.

 

 

 

                                                

 

 

 

 

 

 

석조 윗면 주연부(周緣部)에는 경주부윤(慶州府尹) 이교방(李敎方)의 7언시구(七言詩句)가 각명(刻銘)되어 있다. 인조 16년인 1638년에 경주부윤 이필영(李必榮)이 흥륜사 폐사지에 있던 이 석조(石槽)를 경주 읍성 안의 금학헌(琴鶴軒)으로 옮겨 연꽃을 심었다는 명문(銘文)이 있는데, 그 후 인조 28년인 1648년에 이교방(李敎方)이 다음과 같은 시를 다시 새겨 놓았다.

 

 

 

 

                                        이락당전쌍석분                          二樂堂前雙石盆      

                                        하년옥여세두분                          何年玉女洗頭盆      

                                        세두인거연화발                          洗頭人去蓮花發      

                                        공유여향만구분                          空有餘香滿舊盆

 

 

 

이락당(二樂堂) 앞의 쌍 석분  /  어느 옥녀(玉女)가 머리를 감았을까 ?  /  머리 감던 옥녀는 가고 연꽃만 피어  /  부질없이 옛 석분에 향기만 가득하네       

 

 

 

 쌍석분(雙石盆), 이로 보아 석조는 흥륜사 석조 외에 다른 하나가 더 있어 2개이었다고 추정된다. 두 개의 석조 중 큰 석조는 동부동 구박물관에, 나머지 출처가 불분명한 작은 석조는 석굴암 급수장으로 옮겼다고 한다. 물론 위의 석조는 흥륜사지에서 옮겨온 석조이다.

 

 

 

 

 

 

 

 

 

 

 

 

                                         발굴조사                   發掘調査

 

 

 

 

1972년부터 77년에 발굴조사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금당지(金堂址) 앞에서 8각탑(八角塔)이 있었던 자리와 동쪽에서 회랑지(回廊址)가 확인되었다. 가람배치는 분명하지 않으나 8각탑을 중심으로 금당(金堂)이 있고, 금당의 좌우에는 익랑(翼廊)이 있으며, 서쪽에 경루(經樓)가있었다. 흥륜사의 남문(南門)은 길달문(吉達門)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귀신(鬼神)인 길달(吉達)이 지었다고 하여 그같이 이름하였다고 한다.

 

 

 

 

 

 

 

 

 

 

 

 

 

 

 

 

 

 

 

 

 

 

 

 

 

출처 : 김규봉 ... 사는 이야기
글쓴이 : 非山非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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