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암사 碑巖寺
비암사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백제의 북혈사(北穴寺)라고도 하며, 백제 멸망 후 그 유민(流民)들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현재에도 양력 4월15일에 괘불을 걸고 백제대제(百濟大祭)를 거행하는데, 이 행사는 약 1,300년간 지속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비암사(碑巖寺)가 백제의 부흥을 위하여 백제의 역대 임금과 대신(大臣)들의 영혼을 위한 천도사찰(薦度寺刹)로서 지어진 백제의 마지막 사찰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천도(薦度)란 특정한 사람이 죽은 후 일정한 시기에 행하는의식과, 모든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언하는 불교의 의식이다.
비암사는 절 안에 있는 삼층석탑의 정상부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무렵에 조성된 3개의 비상(碑像)이 발견됨으로써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최근까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 1기와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극락보전(極樂寶殿) 그리고 조선시대 후기의 부도 몇 개만이 남아 있던 조그마한 절이었다. 그러나 1988년 이후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요사와 선방, 산신각 등을 중창함으로써 절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극락보전 極樂寶殿
서방극락정토를 주관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존으로 봉안하고 있는 극락보전은 현재 비암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다포계(多包系) 불전으로 충남유형문화재 제 79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이용한 막돌허튼층쌓기로 되어있다. 기단 윗면은 강화다짐으로 마감하였으며, 초석은 막돌초석을 사용하였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원기둥은 약간의 배흘림을 둔 것으로 보이며, 네 모서리의 귓기둥을 평주(平柱)에 비해 굵은 것을 사용하였다. 건물의 윤곽을 뚜렷하게 보이도록 함과 동시에 시각적으로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극락보전 내부 아름다운 조각이 장식된 닫집을 설치하고 있는 불단(佛壇)에는 아미타불좌상과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여래는 수명장수(壽命長壽)하고 극락왕생을 보장하며 자비를 베푸는 보살이다. 상체에 비하여 빈약하게 결가부좌한 이 불좌상은 기다란 장방형의 얼굴로 사색하는 반개(半開)한 눈, 늘어진 귀, 둥글게 솟아있는 육계에 계주가 장식되어 있다. 법의(法衣)는 편단(偏袒)을 걸치고, 통통한 손의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을 결하고 있다. 뒤에는 아미타후불탱이 걸려 있다.
극락보전 내부에는 어간 양측에 2개의 대들보를 걸었다. 대들보는 전면의 공포대 상부에서 고주(高柱)까지 걸쳐 있으며, 후면 공포대에서 고주로는 퇴보를 걸었다. 대들보는 휜 부재를 사용하고 있다. 양측면 평주 상부의 주심포 위에서는 대들보로 충량을 걸었다. 그런데 이 가구(架構)에서 특징적인 점으로는 주심포 상부의 충량 외에 2개의 충량을 더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천장은 격자형의 우물천장으로 중도리와 외기도리를 경계로 그 안쪽의 천장을 바깥쪽에 비하여 한단 높게 구성하였다. 건물 내외는 모로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특히 대들보 위에는 용(龍)을 그려 넣음으로써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삼층석탑 三層石塔
비암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은 높이 4.05m의 크기로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 1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석탑은 1982년 없어진 기단부 부재 일부를 보완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각 면석에 탱주(撑柱 .. 받침 기둥)와 함께 우주(隅柱 .. 모서리 기둥)가 새겨져 있는 기단부는 탑신에 비하여 높아진 1층 기단에 탱주의 숫자가 하나로 감소하여 통일신라 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석탑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초층 탑신보다 2,3층 탑신의 높이와 폭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세장(細長)한 모습을 하고 있는 탑신부 역시 각 층 면석에 모서리 기둥을 세웠다. 탑신과 함께 별도의 돌로 만들어진 옥개석(屋蓋石 .. 지붕돌)은 층급받침이 4단으로 감소되어 옥개석의 두께가 다소 얇아졌으며, 낙수면(落水面)의 경사가 완만하고 네 모서리가 날카롭게 위로 치켜 올라가 매우 날렵하고 경쾌한 느낌이다.
상륜(相輪)은 현재 노반(露盤)만 남아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은 결실되어 그 자취를 알 수 없다. 전반적으로 보아 기단부는 높아지고 커진 반면에 탑신부(塔身部)를 좁고 길게 만들어 안정감(安定感)이 다소 결여되었지만, 비교적 통일신라 후반의 석탑 조성수법을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탑으로 고려시대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삼층석탑이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1960년 이 석탑의 꼭대기에서 사면군상(四面群像)이 발견되었는데,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 (癸酉銘全氏阿彌陀三尊石像)이 국보 제106호로 지정되었으며,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 (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이 보룰 제367호로 지정되었고, 미륵보살반가석상(彌勒菩薩半跏石像)이 보물 제368호로 지정되었으며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아미타삼존불비상 阿彌陀三尊佛碑像
국보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43cm, 너비 26.7cm, 옆면 너비 17cm이 크기이다. 직사각형의 4면석 각 면에 불상(佛像)과 명문(銘文)을 조각한 비상(碑像) 형식으로, 1960년 비암사 삼층석탑의 꼭대기에서 발견되었다.
앞면 하단에서 측면, 뒷면에 이르기까지 비상(碑像)을 조성한 연대를 비롯하여 발원자(發願者) 등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불상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앞면은 윗부분에 비하여 아랫부분의 너비가 약간 넓은데, 가장자리를 따라서 감실형(龕室形)의 테두리를 새겼다. 그리고 그 안을 한 단 낮게 하여 상부에는 커다란 이중의 주형광배(舟形光背)를 조각하였다. 광배 좌우에는 각각 주악천(奏樂天)을 배치하였으며, 가운데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과 그 권속들을 조각하였다.
측면은 주악천(奏樂天)과 용(龍)을 새겨 앞면의 아미타세계를 장엄(莊嚴)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주악상(奏樂像)은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이 사실적이며 자연스럽게 표현되었고, 용(龍)은 비록 상체만 남아 있으나 용솟음치는 세부 동작이 충실하게 묘사되었다. 뒷면은 4단으로 구획하여 각 단마다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불상은 5구씩 병렬하여 조각하였는데, 각 불상 사이사이에 이 비상(碑像)을 바뤈한 인명(人名)과 관등(官等)을 새겼다.
명문에 의하면, 이 비상(碑像)은 계유년 전씨(全氏) 일가의 발원(發願)에 의하여 조성된것으로, 계유년(癸酉年)은 조각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직후인 673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상(碑像)이 조성된 곳이 옛 백제의 지역이며, 발원자인 전씨(全氏)의 관등(官等) 중에 달솔(達率)과 같은 백제의 관등명(官等名)이 보이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의 유민(流民)들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추정하고 있다.
본존(本尊)은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한 연꽃)의 수미좌(須彌座) 위에 결가부좌한 불상이며, 얼굴은 모두 파손되었고, 옷자락은 대좌의 반을 덮고 있으며, 의습(衣褶 .. 옷주름)은 좌우대칭으로 표현하였다. 머리에는 연꽃과 구슬로 장식된 원형(圓形)의 두광(頭光)이 있으며, 어깨에 걸친 법의(法衣)와 옷주름 사이에 구슬이 이어져 있다. 반면 신체는 건장하며 안정된 자세를 이루고 있으며,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을 빗고 있는 두 손은 비교적 크게 표현되어 삼국시대 이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본존의 대좌 좌우에는 안쪽을 향한 사자(獅子)를 배치하고, 본존 옆의 연꽃 위에 협시보살(脇侍菩薩)을 배치하였다.
정면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 자세의 협시보살상(脇侍菩薩像) 역시 얼굴은 모두 파손되었고, 홑입연꽃이 있는 원광(圓光)이 있으며, 목에는 가슴까지 늘어진 짧은 목걸이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영락(瓔珞)이 걸쳐 있다. 협시보살상은 본존 쪽으로 몸을 약간 튼 자세로 연화좌 위에 서 있는데, 삼국시대의 엄격한 직립(直立)의 자세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통일신라시대의 삼곡(三曲)자세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형태이다.
천의(天衣)는 길게 늘어져 연대(蓮帶)에 이르고, 앞면에서 'X'자로 교차되어 있다. 본존과 협시보살의 어깨 사이에는 얼굴만 내민 아라한상(阿羅漢像)이 있고, 협시보살 좌우에는 인왕상(仁王像)이 서 있는데, 이들 불상 밑에 홑입의 커다란 연꽃잎 9잎을 두드러지게 조각하였다. 한 손을 들어 올려 가슴근처에서 보주(寶珠)를 들고 있으며, 한 손은 내려 정병(淨甁)을 잡고 있다. 이 협시보살상 아래에는 걷고 있는 형태의 사자(獅子)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명문 銘文
윗부분은 2중의 보주형(寶珠形) 거신광(巨身光)이 삼존상을 싸고 있다. 구슬을 이어서 주위 불상을 돌린 가운데 불꽃무늬 속에 5구의 화불(化佛)이 있고, 밖에는 9구의 비천(飛天)이 있다. 상단 좌우 사이에는 인동문(忍冬紋)과 탑을 받치고 있는 비천(飛天)을 1구씩 배치하였다. 양 측면에는 상하 2단에 각각 2구씩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인좌상(奏樂天人坐像)이 있고, 하단에는 용(龍)의 머리와 바탕에 명문(銘文)이 조각되었다. 뒷면은 4단인데, 각 단에 5구씩 작은 불상이 안치되었고 사이에 인명(人名)이 새겨져 있다.
비암사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세 개의 비상(碑像) 가운데 가장 작은 것으로, 4면에 모두 조각이 있으나 전면(前面)이 위주임은 다른 석상과 같다. 이 석상(石像)은 그 생김새가 탑비(塔碑)와 닮았다고 하여 비상(碑像)이라 불리는데, 아래쪽의 대좌, 중앙의 사면석, 위쪽의 덮개돌이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이 비상(碑像)은 삼국시대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미륵신앙(彌勒信仰)을 배경으로 크게 발달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양식의 귀중한 유품이며, 만든 연대는 조각솜씨로 미루어 보아 763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그 영역에서 조성된 이 석상은 백제의 석조미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예이다.
보물 제 368호
이 석상은 보물 제36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면에 왼발을 내리고 오른발을 왼쪽 다리에 올린 반가상(半跏像)을 크게 새기고 있다. 오른손을 들어 뺨에 대고 생각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반가상(半跏像)은 머리에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목걸이와 구슬장식을 갖추고 있다. 양 측면에는 두 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정면을 향하고 있는 보살입상(菩薩立像)이 새겨져 있는데, 반가상을 본존(本尊)으로 삼아서 삼존(三尊) 형식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뒷면에는 보탑(寶塔)을 크게 생겼는데, 이 보탑(寶塔)으로 보아서 정면의 반가상이 미륵보살(彌勒菩薩)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비상(碑像)은 아래의 대좌 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윗부분은 용(龍)이 서로 얽혀져 옥개(屋蓋)를 형성하였다. 대체로 비(碑)의 전, 후면 모양은 'T'자형이고, 측면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모서리에는 둥근 기둥 모양을 새겨서 각 면이 마치 감실(龕室)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전면 중앙에 반가상(半跏像) 1구가 부조(浮彫)되어 있다. 이 불상은 방형(方形 .. 네모 반듯한 모습)의 대좌에 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반가좌(半跏坐)를 결하고 있다. 오른손은 들어서 턱에 대어 사유(思惟)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관을 쓰고 목걸이를 하였다. 천의(天衣)는 두 팔에 걸쳐서 길게 대좌에 이르게 하고 있다.
두광(頭光)은 내부를 다시 원형으로 구획한 뒤 연주문(蓮珠文)을 두르고, 안에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어리 위에는 천개(天蓋)가 있어 보주(寶珠)와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으로 장식하였다. 보살상 양 옆으로 장엄한 수식(垂飾 .. 드리개)이 늘어져있다. 보살이 앉아 있는 방형의 대좌 밑에는 내려뜨린 다리를 받치는 연화족좌(蓮花足座)의 연판이 높은 부조(高浮彫)로 표현되었다.
비상의 좌우 측면은 표현이 동일하다. 위에는 보살상 1구가 보주(寶珠)를 들고 연화좌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아래에 끓어 앉은 공양자상(供養者像)을 하나씩 새겼다. 이 두 보살상은 모두 앞면을 향한 측면관(측면관 .. 옆에서 바라본 모습)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앞의 반가상을 주존(主尊)으로 한 삼존(三尊)의 형식을 의도한 것이다.
앞면 밑부분은 네모난 면을 만들어 중앙에는 둥근 향로(香爐)를 놓고 좌우에 무릎을 꿇어 앉은 인물상을 1구씩 배치하였다. 손에 들고 있는 지물(持物)과 머리 모양으로 미루어 오른쪽은 공양자상(供養者像)으로 보인다. 그리고 왼쪽은 승려로 추정된다. 뒷면은 앞면과 달리 약간 곡면(曲面)을 이루고 있다. 조각은 매우 간단하게 보탑(寶塔) 하나를 가득히 새겨 놓았다. 탑은 이중 기단 위에 타원형의 탑신(塔身)이 마련되고, 다시 그 위에 평판이 놓였으며, 크고 작은 3주의 상륜(相輪)이 꽂혀 있다. 사유형(思惟形)의 반가보살좌상은 흔히 미륵보살로 해석되고 있으며, 이로써 앞면과 뒷면의 표현이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 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
정식 명칭은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 (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 '이다. 689년에 조성되었으며, 높이가 56.9cm의 크기이다. 주형광배형(舟形光背形)의 이 석상은 앞면에만 조각이 있으며, 위로 갈수록 그 두께가 얇아져 곡면(曲面)을 이루고 있는 뒷면에는 4행(行)의 명문이 적혀 있다. 조각은 마치 '아미타경'에 보이는 극락세계의 장면을 그대로 도해(圖解)한 듯한 느낌이다.
보물 제367호
하단에는 단판(單瓣 .. 홑잎)의 연꽃을 돌려 석상 전체의 대석(臺石)으로 삼았으며, 그 위에는 '卍'자 무늬의 난간과 입체감을 살린 보계(步階)를 새겨 놓았다. 난간 위에는 파상문(波狀文)으로 물결을 표현하고 있는 연못이 있고, 난간 좌우에 불법을 지키는 사자(獅子)를 서로 마주보게 배치하였다. 보계(步階) 좌우에는 연꽃 위에 합장하고 있는 인물상을 대칭으로 배치하여 '아미타경'에 보이는 연화화생(蓮華化生)의 장면을 표현하였다. 연못 중앙에는 큼직한 연꽃이 솟아 있고, 여기사 피어오른 갈래진 꽃술 중앙에는 본존불(本尊佛)이 앉아 있으며, 그 좌우에는 직립(直立)하고 있는 여러 군상이 배치되었다. 여러 상(像)들은 엄격한 죄우대칭적인 배치법을 따르고 있으나, 자세는 자유롭고 율동적인 모습들이다.
불보살상의 윗면에는 연꽃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5구의 화불(化佛)을 새기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화불보다 큰 좌상 7구를 배치하였다. 이 소불상 사이에는 보주(寶珠)와 영락(瓔珞)이 뒤엎인 나뭇가지와 잎을 표현하여 극락세계의 장엄(匠嚴)을 더하고 있다.
본존불(本尊佛)은 유난히 큰 언형의 머리광배를 배경으로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이며 오른손은 분명하지 않으나 왼손은 가슴 아래에 들고 있어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의 통인(通印)으로 보인다. 본존상 좌우의 보살상은 긴 몸에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보관(寶冠)과 장엄구(莊嚴具)를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본존과 보살상 뒤에는 상체만을 내밀고 있는 나한상(羅漢像)을 표현하였다. 보살상의 옆에는 본존을 향해 천궁(天宮)을 받들고 있는 신상(神像)을 조각하였으며, 다시 그 옆에는 앞을 바라보고 있는 인왕상(仁王償)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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