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사터 淨蕙寺址
국보 제40호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13층 석탑이다. 높이 590cm의 크기로, 토축(土築) 기단 위의 1층 옥신(屋身)은 매우 크게 만들고 나머지 12층은 일정한 비율로 체감(遞減)시켜 만든 특이한 형태의 유일한 이형석탑(異形石塔)이다. 이 석탑은 13층이라고는 하지만 지붕돌만 있고 몸통은 없이 앙증스럽게 잘 비례된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지금도 13층과 12층의 논란은 학계에서 계속되고 있으나 13층이라고 하는 학설이 더 우세하다고 한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으로 본다면 불국사의 다보탑(多寶塔)과 이곳 정헤사지 13층석탑은 아주 기이한 형태의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초층 옥신은 특히 큰데, 네 모서리에 굵은 사각형 석주(石柱)를 세우고 그 안에 양측으로 우주(隅柱 .. 모서리 기둥)를 붙여 소주(小柱)를 세웠으며 그 위에 인방(引枋), 아래에 하방(下枋)을 걸쳤다. 이러한 시설은 4면에 모두 설치되었다.
초층 옥개석(屋蓋石)은 옥석(屋石)과 받침이 별석으로 옥석은 8석, 받침은 4석으로 되었으며 받침수는 3단이다. 옥개받침은 각층 3단으로 초층에서와 같고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석탑은 보기드문 13층이며, 초층에 비하여 2층 이상이 일반적인 체감(遞減)의 비례를 무시하고 줄어든 점 등 특수한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층 옥신 4면의 감형(龕形) 개설과 아울러 기단(基壇)도 통식에서 벗어난 특수 형태로 축조되었다.
정혜사 淨蕙寺
정혜사(淨蕙寺)는 신라시대의 고찰(古刹)이라고는 하지만 그 어떤 문헌이나 유물도 발견된것이 없어 지금은 국보 제40호로 지정된 이 13층석탑만이 존재할 뿐이다. 정혜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하지 않으나 '동경통지(東京通志)'의 기록에 ' 신라 선덕왕 원년(元年)인 780년, 중국 당나라의 백우경(白宇經)이 신라에 망명(亡命)을 와서 이곳에 머무르면서 집을 지었는데,
후에 이를 고쳐 절로 삼고 이름을 정혜사(淨蕙寺)라 하였다 '라는 내용이 있어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사찰임을 알 수 있으며,최근 분황사(芬皇寺) 보광전(普光殿)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는 보광전의 중수를 위해 시주를 한 경주 인근 6개 사찰 가운데에 정혜사도 포함되어 있어 적어도 조선 중기까지는 정혜사가 그 사세(寺勢)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 당시의 모습
위 사진은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기단에 속하는 토층(土層)을 절개해 놓은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보면 기단(基壇)이 토층으로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침하되지 않고 버티어온 이유를 알 수 있다. 큰 돌을 쌓고 그 위에 다시 흙을 쌓은다음 다시 작은 돌들을 쌓아서 결코 침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이리하여 천년이 넘는 세월, 수많은 눈과 비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이 유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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