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스크랩] 小學 嘉言第五 1~50

장안봉(微山) 2013. 4. 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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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學 外篇

 

嘉言第五

 

가언(嘉言)은 훌륭한 말, 선한 말이란 뜻으로 한대(漢代) 이후 현인들의 훌륭한 말을 수록해 놓았다. 광입교(廣立敎), 광명륜(廣明倫), 광경신(廣敬身) 세편으로 나누어 내편에서 말한 입교(立敎), 명륜(明倫), 경신(敬身)의 내용을 확충하고 있다. 모두 91장이다.

 

 

嘉言,000

詩曰, 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孔子曰, 爲此詩者, 其知道乎. 故有物必有則. 民之秉彝也. 故好詩懿德. 歷傳記, 接見聞, 述嘉言, 紀善行, 爲小學外篇.

 

<시경(詩經)> 대아(大雅) 증민(蒸民)의 시에 " 하늘이 만백성을 내시니, 사물이 반드시 법칙이 있도다. 백성은 타고난 착한 성품이 있으니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네."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 이 시를 지은 이는 도(道)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는 것이니, 백성이 타고난 착한 성품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전대(前代)의 전기(傳記)를 차례로 상고하고, 근대(近代)의 보고 들은 것을 모아서, 가언을 서술(敍述)하고 선행을 기록하여 <소학>의 외편을 만들었다.

 

*秉彛 병이: 이는 일정한 법칙을 뜻하니,즉 일정한 법칙에 좇는 것.일정한 법칙이란 사람이 타고난 착한 성품, 변치 않는 상도(常道)를 일컬음. *懿德 의덕: 아름다운 덕을 말함

 

 

嘉言,001

橫渠張先生曰, 敎小兒, 先要安詳恭敬. 今世學不講, 男女從幼便驕惰壞了, 到長益凶狠.

只爲未嘗爲子弟之事. 則於其親, 已有物我, 不肯屈下, 病根常在, 又隨所居而長, 至死只依舊.

爲子弟則不能安灑掃應對, 接朋友則不能下朋友, 有官長則不能下官長, 爲宰相則不能下天下之賢.

甚則至於徇私意, 義理都喪也. 只爲病根不去, 隨所居所接而長.

 

횡거(橫渠) 장 선생이 말하기를 "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먼저 안정(安靜)하고, 자상하고, 공손하고, 공경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지금 세상에는 학문을 강구(講究)하지 않아서 , 남녀가 어릴 때부터 교만하고 태만하여 행실이 나쁘고, 장성하면 더욱 흉악하고 사나워진다.

다만 일찍이 자제(子弟)로서의 할 일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모에 대해서도 벌써 남과 나의 관념(觀念)이 있어서 몸을 굽혀서 낮추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교만하고 태만한 병의 뿌리가 항상 남아 있고 또 환경에 따라 자라나니, 죽기에 이르기까지도 예전과 다름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제가 되어서는 쇄소. 응대(灑掃應對)하는 일을 편안히 여기지 못하고, 벗을 사귐에는 벗에게 몸을 낮추지 못하며, 상관(上官)이 있으면 상관에게 복종하지 못하며, 재상(宰相)이 되면 천하의 어진 이에게 몸을 낮추지 못한다.

심하면 사의(私意)에 좇아 행동하게 되어 의리(義理)를 상실(喪失)하고 만다. 이것은 오직 교만하고 태만한 병의 뿌리가 제거되지 못하여 그 환경과 접촉하는 것에 따라 자라나기 때문이다." 하였다.

-장자전서(張子全書)-

 

*橫渠張先生횡거장선생 : 북송(北宋)의 도학자 장재(張載)를 말함. *壞了괴료 : 행동이 나쁜것.못쓰게 되다.

 

 

嘉言,002

楊文公家訓曰, 童穉之學, 不止記誦. 養其良知良能. 當以先之言爲主.

日記故事, 不拘今古, 必先以孝弟忠信禮義廉恥等事. 如黃香扇枕, 陸積懷橘, 叔敖陰德, 子路負米之類, 只如俗說, 便曉此道理. 久久成熟, 德性若自然矣.

 

양문공(楊文公) 가훈(家訓)에 말하기를 " 어린이의 배움은 암기(暗記)하고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양지(良知). 양능(良能)을 길러주어야 하니, 먼저 들려주는 말을 위주(爲主)해야 한다.

날마다 고사(故事)를 기억하게 하되, 옛 시대와 지금 시대에 구애받지 말고 반드시 먼저 효제(孝悌), 충신(忠信), 예의(禮義). 염치(廉恥) 등의 일을 들려주고, 황향(黃香)이 침석(枕席)에 부채질한 일과 육적(陸績)이 귤을 품은 일과 손숙오(孫叔敖)의 음덕(陰德)과 자로(子路)가 쌀을 등에 지고 나른 일 같은 것들을 세속(世俗)의 이야기처럼 해서 들려준다면, 곧 그 도리를 깨닫게 되며, 이것이 오래되어 마음에 젖으면 덕성(德性)이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것 같은 것이다 ." 하였다. -양문공가훈(陽文公家訓)-

 

*陽文公 : 이름은 억(億), 자는 대년(大年), 문공은 시호(諡號) *童稚 동치: 어린이. *良知 : 타고난 지혜.

*黃香扇枕황향선침 : 황향이 여름 밤에는 그부모의 이부자리에 부채질을 하고, 겨울밤 에는 체온으로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했다는 이야기.

*陸績懷橘육적회귤 : 육적은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인데 여섯 살때 원술을 찾아가니 원술이 귤을 주었다 육적이 귤 3개를 가슴에 품고 절하여 하직하다가 땅에 떨어뜨렸다. 원술이 '육군은 남의 집에 손으로 와서 귤을 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 돌아가 어머님께 드리려는 것입니다.' 하였다는 고사.

*叔敖陰德숙오음덕 : 손숙오가 어릴 때 밖에 나가 놀다가 머리가 둘 있는 뱀을 보고 죽여서 땅에 묻고 집으로 돌아와 울었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 머리가 둘 있는 뱀을 보면 죽는다고 들었는데, 아까 그것을 보았으니 어머니를 버리고 죽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그 어머니가 '뱀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하니, 대답하기를 ' 다른 사람이 또 볼까 두려워 죽여서 묻었습니다.'하였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내 들으니 음덕(陰德)이 있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 갚는다고 했다. 너는 죽지 않는다.' 하였다. 후에 숙오는 초나라에 재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子路負米자로부미 :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일찍이 어버이를 섬기기 위해 100리 밖에서 쌀을 지고 왔다는 고사다.

 

 

 

嘉言,003

明道程先生曰, 憂子弟之輕俊者, 只敎以經學念書. 不得令作文字. 子弟凡百玩好, 皆奪志.

至於書札, 於儒者事最近, 然, 一向好著, 亦自喪志.

 

명도(明道) 정 선생(程先生)이 말하기를 " 자제가 준수(俊秀)하나 경박한 것을 근심하는 자는 다만 경서(經書)를 배워서 소리내어 읽는 것을 가르칠 뿐, 글 짓는 일은 시키지 말아야 한다. 자제가 온갖 완상(玩賞)하고 애호하는 물건들은 모두 그 바른 도리를 구하는 뜻을 해치는 것이다.

글씨 익히고 편지 쓰는 것은 선비의 일에 가장 가까운 것이지만 줄곧 그것만을 좋아하여 집착하면 또한 저절로 뜻을 잃게 된다." 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明道程先生 : 북송의 유학자, 이름은 호(顥), 자는 백순(伯淳)임. *완호(玩好): 즐겨 완상하고 애호하는 물건.

 

 

嘉言,004

伊川程先生曰, 敎人, 未見意趣, 必不樂學. 且敎之歌舞. 如古詩三百篇, 皆古人作之. 如關雎之類, 正家之始.

故用之鄕人, 用之邦國, 日使人聞之. 此等詩, 其言簡奧, 今人未易曉. 別欲作詩, 略言敎童子灑掃應對事長之節, 今朝夕歌之. 似當有助.

 

이천(伊川) 정선생(程先生)이 말하기를 " 사람을 가르치되, 뜻과 취지를 알지 못한다면 반드시 배우기를 즐겨하지 않을 것이니, 노래와 춤을 가르칠 것이다. 옛 시(詩) 300편은 모두 옛사람이 지은 것으로, 관저(關雎) 같은 것은 집안을 바로 잡는 시초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 사람에게도 쓰고 나라에도 써서 날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 노래를 듣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는 그말이 간략하면서도 뜻이 시를 짓고자 하거든 어린이들에게 물뿌려 소제하고, 남에게 응대(應對)하며, 어른 섬기는 예절을 대략 가르쳐서 아침 저녁으로 노래하게 한다면 도움됨이 있을 것 같다." 하였다.

 

*伊川程先生이천 정선생 : 이름은 颐(頤臣+頁=턱 이.늙은이 이), 자는 정숙(正叔). 형인 명도선생과 함께 북속의 대 유학자임. 용문위 이수(伊水)가에 살았다.

*關雎 관저 : <시경>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첫 편. 군자가 어진 아내를 구하는 뜻의 시임.

*政家之始 : 집을 바로 잡는 시초, 어진 아내를 맞이함은 가정의 출발이 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註-장횡거(橫渠張 1020~1077) : 중국 송대(宋代)의 현실주의 철학자. 본명은 장재(張載). 성리학의 형이상학적·인식론적인 기초를 세웠다.

註 : 정호(程顥, 1032-1085) 북송의 사상가. 낙양(洛陽) 출신으로 호는 명도(明道), 자는 백순(佰淳)이다. 그의 학문은 노장과 불교 등 여러 학파들을 두루 섭렵했지만, 유학으로 귀착했다. 성품이 온후하고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으며, 인(仁)을 사상의 핵심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명도선생(明道先生)으로 불렀으며, 제자들이 그의 어록을 모아 만든 이정유서(二程遺書)가 있다.(윤호창의 소학)

註 : 정이(程頤, 1033-1107) 북송의 유학자. 정호의 동생으로 호는 이천(伊川), 자는 정숙(正叔)이다. 형인 정호(程顥)와 함께 주렴계 문하에서 배웠으며, 북송 이학을 창시했다. 그의 학문은 궁리(窮理)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사서(四書)를 중시했다. 저서에 역전(易傳), 춘추전(春秋傳) 등이 있다.(윤호창의 소학)

 

 

 

嘉言,005

陳忠肅公曰, 幼學之士, 先要分別人品之上下. 何者是聖賢所爲之事, 何者是下愚所爲之事. 向善背惡, 去彼取此, 此幼學所當先也.

顔子孟子亞聖也. 學之雖未至. 亦可爲賢人. 今學者, 若能知此, 則顔孟之事, 我亦可學.

言溫而氣和, 則顔子之不遷, 漸可學矣. 過而能悔, 又不憚改, 則顔子之不貳, 漸可學矣.

知埋鬻之戱, 不如俎豆, 今慈母之愛, 至於三遷, 自幼至老, 不厭不改, 終始一意, 則我之不動心, 亦可以如孟子矣.

若夫立志不高, 則其學, 皆常人之事. 語及顔孟, 則不敢當也. 其心必曰, 我爲孩童. 豈敢學顔孟哉. 此人不可以語上矣.

先生長者, 見其卑下, 豈肯與之語哉. 先生長者, 不肯與之語, 則其所與語, 皆下等人也.

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過而不知悔, 下等人也. 悔而不知改, 下等人也. 聞下等之語, 爲下等之事, 譬如坐於房舍之中, 四面皆墻壁也. 雖欲開明, 不可得矣.

 

진충숙공(陳忠肅公)이 말하기를 " 어려서 배우는 자는 먼저 인품(人品)의 상하를 분별해야 한다. 어떤 것이 성현(聖賢)이 하는 일이고, 어떤 것이 하우(下愚)가 하는 일인지를 알아서 선(善)을 지향하고 악(惡)을 등져서 저것을 버리고 이것(선한것)을 취하는것, 이것이 어려서 배우는 자가 마당히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안자(顔子). 맹자(孟子)는 아성(亞聖)이다. 이를 배워서 비록 그와 같은 경지(境地)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또한 현인(賢人)은 될 수 있다. 오늘의 배우는 자가 만약 능히 이러한 도리를 안다면 안자. 맹자의 일을 누구도 또한 배울 수 있다.

말이 온순하고 기운이 화평하면 안자의 " 성냄을 옮기지 않는 것"을 점차로 배울 수 있을 것이며, 허물이 있으면 능히 뉘우치고, 또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면 안자의 "허물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 을 점차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파묻고 물건을 파는 놀이가 제사지내는 놀이만 같지 못함을 알고, 자애(慈愛)스런 어머니의 사랑이 세 번 집을 옮기기에 이른 것을 생각하며, 어릴 때부터 늙기에 이르기까지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뜻을 고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이 한결같다면 나의 부동심(不動心)도 또한 맹자와 같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뜻을 세움이 높지 않으면 그 배우는 것이 모두 범상(凡常)한 사람의 일이니, 말이 안자나 맹자에 이르면 감히 감당하지 못하며, 그 마음속으로 반드시 말하기를 " 나는 어린아이다. 어찌 감히 안자 맹자를 배우랴." 한다 . 이런 사람에게는 상등(上等)의 인물을 말할 수 없다.

선생이나 어른이 그 비열(卑劣)하고 낮은 인품을 보고 어찌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겨하랴. 선생이나 어른이 그와 말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면 그가 더불어 말할 사람은 모두 하등(下等)의 사람 뿐이다.

말이 성실하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것이 하등 사랍이고, 허물이 있어도 뉘우칠줄 모르는 것이 하등 사람이고, 뉘우쳐도 고칠 줄 모르는 것이 하등 사람이다. 하등 사람의 말을 듣고, 하등 사람의 일을 한다면 비유컨데 방안에 앉은 것과 같아 사면이 모두 담이고 벽이다. 비록 열어서 밝게 하나 얻지 못할 것이다.-요옹집(了翁集)-

 

*陳忠肅公 : 이름은 관(瓘),자는 영중(瑩中), 호는 요옹(了翁).충숙(忠肅)은 시호(諡號)이며 송나라 사람이다.

*不遷 : 不遷怒의 약칭이니 노여움을 옮기지 않는것. *不貳 : 不貳過의 약칭,허물을 고치고 두변 다시 하지 않음. *埋鬻之戱 매육지희: 사람을 파묻고 물건을 파는 놀이. *鬻 죽 죽. 기를 국. 어릴 육. 팔 육.

註1 : 진관(陳瓘, 1057-1122) 북송의 유학자. 자는 영중(瑩中), 호는 요옹(了翁), 시호(諡號)가 충숙공(忠肅公)이다. 장돈에게 천거돼 태학박사(太學博士)가 됐지만 직언으로 자주 관직에 파면당했다. 사람들이 요재(了齋)선생이라 불렀으며, 저서에 요옹역설(了翁易說) 등이 있다.

 

 

 

嘉言,006

馬援兄子嚴敦, 並喜譏議而通輕俠客. 援在交趾, 還書誡之曰, 吾欲汝曹, 聞人過失, 如聞父母之名, 耳可得聞, 口不可得言也. 好議論人長短, 妄是非政法, 此吾所大惡也. 寧死, 不願聞子孫, 有此行也.

龍伯高敦厚周愼, 口無擇言, 謙約節儉, 廉公有威. 吾愛之重之, 願汝曹效之.

杜季良豪俠好義, 憂人之憂, 樂人之樂, 淸濁無所失, 父喪致客, 數郡畢至. 吾愛之重之, 不願汝曹效也.

效伯高不得, 猶爲謹敕之士. 所謂刻鵠不成, 尙類鶩者也, 效季良不得, 陷爲天下輕薄者. 所謂畵虎不成, 反類狗子也.

 

마원(馬援)의 형의 아들 엄(嚴)과 돈(敦)이 모두 남을 비방하고, 정치를 의논하기를 좋아했으며, 경박하고 호협(豪俠)한 자들과 왕래(往來)했다. 원이 교지(交趾)에 있으면서 글을 보내어 경계하기를 " 나는 너희들이 남의 과실을 듣거든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처럼 귀로 들을 수 있어도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같이 하기를 바란다. 남의 장점과 단점을 의논하기를 좋아하고, 망령되이 정치와 법률을 옳으니 그르니 평론하는 것은 내가 크게 싫어 하는 것이다. 차라리 죽을 지언정 자손이 이런 행실이 있는 것을 듣기를 원치 않는다.

용백고(龍伯高)는 독실(篤實), 중후(重厚)하고, 주밀(周密), 근신(謹愼)하여 입에 실수하는 말이 없으며, 겸손,간략하고, 절도 있고, 검소하며, 청렴하고, 공정(公正)하여 위엄이 있으니 내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 너희들이 본 받기를 바란다.

두계량(杜季良)은 호협(豪俠)하고, 의기(義氣)를 좋아하며, 남의 근심을 내 일처럼 근심하고, 남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며,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대하여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 그 아버지의 상(喪)에 몇 고을 사람이 모두 조문(弔問)을 왔다. 내 비록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지만 너희들이 본 받기를 원치 않는다.

백고(伯高)를 본 받다가 그와 같이 되지 못하드라도 오히려 근신하고 신칙(申飭)하는 선비는 될 수 있을 것이니, 이른바 '고니를 새겨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따오기와 비슷하게 된다.' 는 것이지만, 계량(季良)을 본 받다가 그와 같이 되지 못하면 천하의 경박한 인간으로 떨어질 것이니, 이른바 '범을 그려서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와 비슷하게 된다.' 는 것이다." 하였다.

 

*馬援 : 후한 사람으로 자는 분연(文淵)으로 많은 전공(戰功)을 세워서 복파장군(伏波將軍)에 봉해졌으며 교지(交趾)를 평정했음. *汝曹 : 너희 무리. 너희들. *如聞父母之名 :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같이 한다. 지난날에는 부모의 이름을 귀로는 들었어도 입으로는 말하지 못했다.

*龍伯高 : 이름은 술(述). 백고는 자임.

*口無擇言 : 가려서 버릴 말이 없는 것. 말이 모두 이치에 맞음.다 좋은 말

*杜季良 두계량: 이름은 보(保), 자는 계량(季良),

*刻鵠不成尙類鶩각곡불성상류목 : 고니를 새기다가 따오기를 닮게 할 수 있다는 것.

*鵠고니 곡. 鶩 집오리 목.

*畵虎不成反類狗 화호불성 반류구 : 범을 그리다가 개를 닮게 한다는 것.

 

註1-마원(馬援 B.C14 ~A.D49). 자는 문(文淵)이고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중국 산시성[陝西省] 싱핑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유푸펑[右扶風] 마오링[茂陵] 출생. 왕망(王莽)이 전한(前漢:BC 206~AD 25)을 멸망시킨 후 후한(後漢 25~220)의 건국을 도운 장군. 처음에는 왕망이 세운 신(新)나라에서 벼슬을 했으나 왕망의 정책에 반대하는 반란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자 왕망의 정적(政敵)들과 손잡았고 결국에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25~57/58 재위)의 신하가 되었다.

註2 : 용백고(龍伯高), 두계량(杜季良) 두 사람 모두 후한시대의 경조(京兆) 출신이다. 용백고는 자신의 돈후하고 신중한 성품 때문에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 영릉채수(零陵太守 )에 발탁됐지만, 두계량은 광무제 때 월기교위(越騎校尉)에 있다가 그의 경박한 성품에 대한 상소 때문에 면직됐다.(윤호창의 소학)

 

 

 

嘉言,007

漢昭烈將終, 勅後主曰, 勿以惡小而爲之. 勿以善小而不爲.

 

한 나라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죽을 때 후주(後主)를 경계하여 말하기를 " 악한 일은 작은 것이라도 하지 말아야 하고, 선한 일은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하였다. -삼국지, 촉지(三國志, 蜀志)-

 

*漢昭烈 :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황제 유비(劉備), 자는 현덕(玄德), 소열(昭烈)은 시호(諡號),

*後主: 소열황제의 아들, 이름은 선(禪). 유비 아들. 

註1 : 昭烈帝의 姓(성)은 劉(유)요 이름은 備(비), 자는 玄德(현덕)이다. 유비(劉備, 161~223)는 관우 ·장비와 결의형제하였으며, 삼고지례로 제갈량을 맞아들였다. 220년 조비가 한나라 헌제의 양위를 받아 위의 황제가 되자, 221년 유비도 제위에 올라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촉한(蜀漢)의 제1대 황제(재위 221∼223)의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 형주의 탈환과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이릉(夷陵)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백제성(白帝城)에서 후사를 제갈량에게 위탁하고 병사하였다. 위의 내용은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나라와 아들을 부탁하면서 아들 유선에게 한 유언.

 

 

 

嘉言,008

諸葛武侯戒子書曰, 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非澹泊, 無以明志. 非寧靜, 無以致遠.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非學, 無以廣才. 非靜, 無以成學. 慆慢, 則不能硏精. 險躁, 則不能理性.

年如時馳, 意與歲去, 遂成枯落, 悲歎窮廬, 將復何及也.

 

제갈무후(諸葛 武侯)가 아들을 훈계(訓戒)한 글에 말하기를 " 군자의 행동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몸을 닦고, 생활을 검박(儉朴)하게 하여 덕을 길러야 한다. 담박(澹泊)이 아니면 뜻을 밝게 하지 못하고, 편안하고 고요함이 아니면 생각이 먼데 이르지 못한다.

대저 배움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요해야 하고,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하니, 배움이 아니면 재능을 넓히지 못하고, 고요함이 아니면 배움을 이루지 못한다. 태만하면 이치(理致)의 정미(精微)한 것을 연구할 수 없고, 조급하고 경망(輕妄)하면 성품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는 시절(時節)과 함께 달리고, 의지(意志)는 세월과 함께 가버려서 드디어 가을 초목처럼 시들게 되면 곤궁한 오두막집 속에서 슬퍼 탄식한들 다시 어찌할 수 있으랴." 하였다. -무후전서(武侯全書)-

 

*諸葛武侯 : 성은 제갈,이름은 양(亮), 자는 공명(孔明),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유명하다.

*慆慢 도만: 게으름을 말함.慆기쁠 도, 거만할 도.

 

 

 

嘉言,009

柳玭嘗著書, 戒其子弟曰, 壞名災己, 辱先喪家, 其失尤大者五. 宜深誌之.

其一, 自求安逸, 靡甘澹泊, 苟利於己, 不恤人言.

其二, 不知儒術, 不悅古道, 懵前經而不恥, 論當世而解頤, 身旣寡知, 惡人有學.

其三, 勝己者厭之, 佞己者悅之, 唯樂戱談, 莫思古道, 聞人之善嫉之, 聞人之惡揚之, 浸漬頗僻, 銷刻德義, 簪裾徒在, 廝養何殊.

其四, 崇好優游, 耽嗜麯蘖, 以啣盃爲高致, 以勤事爲俗流. 習之易荒. 覺已難悔.

其五, 急於名宦, 匿近權要, 一資半級, 雖或得之, 衆怒群猜, 鮮有存者.

余見名門右族, 莫不由祖先忠孝勤儉, 以成立之, 莫不由子孫頑率奢傲, 以覆墜之. 成立之難如升天, 覆墜之易如燎毛. 言之痛心. 爾宜刻骨.

 

유변(柳玭)이 일찍이 글을 지어 그 자제를 경계하여 말하기를 " 명예를 손상하고, 몸을 재앙에 걸리게 하며, 조상을 욕되게 하고, 가문(家門)을 망치는 과실(過失)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다섯 가지 있으니, 마땅히 깊이 마음에 새길 것이다.

첫째 스스로 안일(安逸)을 구하며, 담박한 생활을 달게 여기지 못하여 내 몸에 이로우면 남의 비방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유교의 학문을 알지 못하고 옛날의 도덕을 좋아하지 않아서 옛 경서(經書)에 몽매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당세(當世)의 일을 함부로 논쟁하여 남의 웃음거리가 되며, 아는 것이 적으면서도 남의 학식(學識)있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셋째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고, 내게 아첨하는 자를 좋아하며, 오직 희롱하는 말만을 좋아하고, 옛날의 도덕을 생각지 않으면 선전하여 편파(偏頗)하고 사벽(邪僻)한 행동에 젖어서 덕성(德性)과 의리를 깍아버린다면 의관을 갖추고 있은들 노복(奴僕)과 무엇이 다르랴.

넷째, 한가하고 편안하게 노는 것을 숭상하고, 술을 즐겨하여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고아(高雅)한 운치(韻致)로 보고, 일에 부지런한 것을 속류(俗流)로 여겨 습관이되면 마음이 거칠기 쉬워서 깨닫는 다 해도 이미 뉘우치기 어럽다.

다섯째 좋은 벼슬을 구하기에 마음이 급하여 남몰래 권문요로(權門要路)에 접근(接近)해서 조그만 벼슬 자리를 혹 얻는다하더라도 뭇사람이 성내고 시기하게 되니, 이것을 보전하는 자가 드물다.

내 명문우족(名門右族)을 보면, 조상의 충효. 근검으로 말미암아 성립되지 않음이 없고, 자손의 완악(頑惡). 경솔. 사치. 오만으로 말미암아 실추(失墜)되지 않음이 없다. 성립의 어려움은 마치 하늘에 오르는 것 같고, 실추의 쉬움은 마치 털을 불태우는것 같으니 말을 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너는 마땅히 새길 것이다." 하였다. -유씨가훈(柳氏家訓)-

 

*柳玭 유빈: 당나라 사람으로 자는 직청(直淸). *玭 구슬 이름 빈. 진주 빈.

*靡甘澹泊미감담박 : 맑고도 깨끗한 생활을 달갑게 여기지 않음.

*不恤人言 : 남의 말을 근심하지 않는것.

*解頤 해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 입만 깨었다. 말만 잘하는 것.

*浸漬 침지 : 젖음.*파벽(頗僻): 편파적이고 치우치다. 중정(中正)의 도리를 잃는 것

*簪裾徒在잠거도재 : 것치레만 하고 속이 비어있음. 의관만 갖추고 있는것.

*麯蘖국얼 : 누룩. 누룩 술. *名宦 : 좋은 벼슬.

*匿近權要 : 권세있는 사람에게 남몰래 접근 하는것. *燎毛: 털을 불태움.燎 횃불 요. 

註 유변 柳玭(변-玭은 소리나는 진주빈, 여기서는 구슬 변) ; 유변(柳玭)은 당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변(玭), 자는 직청(直淸)이다. 이부사랑으로 역사서를 편찬하였으며 이사대부를 지냈다. 소종(昭宗)이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환관들의 참소로 등용되지 못했다. 가훈을 지어 후손들을 경계한 유씨가훈(柳氏家訓)이 있다.(윤호창의 소학)

 

 

嘉言,010

范魯公質爲宰相. 從子杲嘗求奏遷秩, 質作詩曉之. 其略曰,

戒爾學立身, 莫若先孝悌. 怡怡奉親長, 不敢生驕易. 戰戰復兢兢, 造次必於是.

戒爾學干祿, 莫若勤道藝. 嘗聞諸格言, 學而優則仕. 不患人不知, 惟患學不至.

戒爾遠恥辱, 恭則近乎禮. 自卑而尊人, 先彼而後己. 相鼠與茅鴟, 宜鑑詩人刺.

戒爾勿放曠, 放曠非端士. 周孔垂名敎, 齊梁尙淸議. 南朝稱八達, 千載穢靑史.

戒爾勿嗜酒, 狂藥非佳味. 能移謹厚性, 化爲凶險類. 古今傾敗者, 歷歷皆可記.

戒爾勿多言, 多言衆所忌. 苟不愼樞機, 灾厄從此始. 是非毁譽間, 適足爲身累.

 

擧世重交游, 擬結金蘭契. 忿怨容易生, 風波當時起. 所以君子心, 汪汪淡如水.

擧世好承奉, 昻昻增意氣. 不知承奉者, 以爾爲玩戱. 所以古人疾, 蘧篨與戚施.

擧世重游俠, 俗呼爲氣義. 爲人赴急難, 往往陷囚繫. 所以馬援書, 殷勤戒諸子.

擧世賤淸素, 奉身好華侈. 肥馬衣輕裘, 揚揚過閭里. 雖得市童憐, 還爲識者鄙.

我本羇旅臣, 遭逢堯舜理, 位重才不充. 戚戚懷憂畏, 深淵與薄冰, 蹈之唯恐墜.

爾曹當憫我, 勿使增罪戾. 閉門斂蹤跡, 縮首避名勢. 勢位難久居, 畢竟何足恃.

物盛則必衰, 有隆還有替. 速成不堅牢, 亟走多顚躓. 灼灼園中花, 早發還先萎. 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

賦命有疾徐, 靑雲難力致.

寄語謝諸郞, 躁進徒爲耳.

 

범노공(范魯公) 질(質)이 재상(宰相)이 되니, 종자(從子) 고가 일찍이 아뢰어 자신의 벼슬 품계(品階)를 올려주기를 구 했다. 질이 시(詩)를 지어 깨우치게 하니 그 대략은 이러하다.

" 네게 훈계하노니, 입신(立身)하는 방법을 배움은 효제(孝悌)를 먼저함만 같음이 없다. 온화(溫和)한 기색(氣色)으로 어버이와 어른을 받들며 감히 교만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두지 말라. 두려워하고 또 조심하여 창황하고 구차한 때라도 반드시 이같이 하라.

네게 훈계하노니 관록(官祿)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거든 사람이 행할 도리와 육예(六禮)를 힘씀만 같음이 없다. 일찌기 격언(格言)을 들으니, 배워서 학식(學識)이 넉넉하면 벼슬한다고 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오직 내 학문이 부족함을 근심하라.

네게 훈계하노니, 치욕(恥辱)을 멀리하라. 공손하면 예(禮)에 가깝다. 내 몸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남을 먼저하고 나를 나중에하라. 상서(相鼠)와 모치(茅鴟)의 시인(詩人)의 풍자(諷刺)를 거울 삼을 지어다.

네게 훈계하노니, 방광(放曠)하지 말라. 방광은 단정한 선비가 아니다. 주공(周公). 공자가 명교(名敎)를 세상에 남겼는데 제, 양나라의 청의(淸議)를 숭상했도다. 남조(南朝)에서 팔달(八達)을 일컬어서 길이 청사(靑史)를 더럽혔다 한다.

네게 훈계하노니, 술을 즐기지 말라. 사람을 미치게 하는 약이지 아름다운 맛은 아니다. 능히 근신(謹愼)하고 순후(淳厚)한 성격을 변하게 하여 흉험(凶險)한 무리로 만드니, 예와 지금에 술로 패망(敗亡)한 자를 역력히 모두 기억할 수 있다.

네게 훈계하노니,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 많음은 사람이 싫허 하는것, 진실로 추기(樞機)를 삼가지 않으면 재액(災厄)이 이로부터 시작된다. 옳으니 그르니 하며 헐뜻고 가리는 것은 몸에 허물이 되기에 알맞는 것이다.

 

온 세상 사람이 사귀어 놀기를 중히 여겨 금란(金蘭)의 계(契)를 맺는다지만 분노와 원한이 쉽게 생겨서 풍파(風波)가 당장에 일어난다. 이런 까닭에 군자의 마음은 깊고도 넓으며 당담하기가 물과 같은 것이다.

온 세상 사람은 남이 내 뜻을 받들어 섬김을 좋아하여 뽐내어서 의기(意氣)를 더하며, 뜻을 받드는 자가 자기를 놀림감으로 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옛 사람은 거저(거저)와 척시(戚施)를 미워했느니라. 온 세상 사람은 유협(游俠)을 중히 여겨 시속(時俗)이 의기(義氣)를 행한다고 말하지만, 남을 위하여 위급하고 어려운 일에 달려가 왕왕 죄수의 신세로 떨어지네, 이런 까닭에 마원(馬援)이 글을 보내어 여러 아들을 훈계했도다.

온 세상 사람은 청한(淸寒)하고 검소(儉素)한 것을 천히 여기고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좋아 한다. 살찐 말 타고 가벼운 갖옷 입고서 의기 양양하여 마을을 지나가면 비록 시정배(市井輩)나 아이들이 환영을 받지만 식자(識者)는 도리어 비루(鄙陋)하게 여긴다.

내 본시 나그네 신하로 요. 순(堯舜)의 세상을 만나 지위(地位)는 무겁고 재주가 부족하여 늘 근심하고 두려운 마음을 품어, 깊은 못에 임(臨)한듯 엷은 얼음을 밟은 듯 오직 떨어질까 겁난다.

너희들은 나를 불쌍히 여겨 허물을 더하게 하지 말지어다. 문을 닫아 종적을 감추고 머리를 움추려 명성(名聲)과 권세를 피하라. 권세와 지위는 오래가기 어려운것, 필경(畢竟) 어찌 족히 믿으랴.

물건이 성하면 반드시 쇠하고 흥함이 있으면 망함이 있으며, 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굳지 못하고, 급히 달리면 엎어짐이 많다. 곱디 고운 정원(庭園)의 꽃은 일찍 피어서 먼저 시들고, 더디고 더딘 시냇가의 소나무는 무성하여 늦게까지 푸르르다.

운명을 타고남에는 빠르고 더딤이 있고, 청운(靑雲)은 사람의 힘으로 이루기 어렵다.

제군(諸君)에게 한 말을 일러 보내노니, 승진(昇進)을 조급히 서두름은 부질없는 것일 뿐이니라." 하였다.

-宋史, 범질열전(范質列傳)-

 

*范魯公 : 후주의 평장사(平章事)로 이름은 질(質), 자는 문소(文素).송나라를 섬겨 노국공(魯國公)에 봉해졌음. *종자(從子)는 조카 杲고. 형의 아들임. *驕易 : 교만하여 남을 없신 여김. *干祿 : 관록(官祿)을 구함. *예(藝):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육례를 말함.

*相鼠 상서 : <시경> 용풍의 편명.

*茅鴟모치 : 일시(逸詩).즉 시경에 누락된 시. 무례한것을 풍자한 뜻이 있다. 古佚詩.古逸詩.『시경(詩經)』에 실려 있지 않은 것. 좌전(左傳)의 모치(茅鴟), 논어(論語)의 당체지화(唐棣之華) 따위

*放曠 : 자유 분방한 행동.언행에 거리낌이 없음. 

*淸議 : 노장사상인 청정무위(淸淨無爲)를 숭상하는 의론. 높고 깨끗한 말. 

*八達 : 여덟사람의 세상을 달관한 선비들. 모든 일에 정통함.*歷歷 분명히 또렸하게 

*樞機 : 樞는 지도리 추, 여기서는 말을 꺼냄을 뜻함.천하의 중요한 일 

*汪汪 : 깊고도 넓은 모양. 

*蘧篨거저 :밑을 굽어 불 수 없는 병. 새 가슴. 고대의 거친 대자리. 

*戚施 척이 : 아래만 보고 위를 보지 못하는 병. 곱사등이.

*遽篨戚施 거저척이 : 엎드릴 수도 없고, 위를 쳐다볼 수도 없는 병이란 뜻으로, 오만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 거저(遽篨)는 새가슴, 척이(戚施)는 곱사등이

*游俠 : 돌아다니며 원통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남의 위급함과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

*囚繫 수계: 죄수의 몸이되어 옥(獄)에 같임. *裘구: 갓옷 구. 대물림 구.

*馬援 후한의 장수.정치가.字는 文演(문연) 伏波將軍(복파장군).'바르지 않은 일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 고 말했다

*羈旅臣 : 나그네 신하. 범노공 질은 처음 후주에서 벼슬하다가 후에 송나라로 돌아 왔기 때문이다.

*斂蹤跡염종적 : 종적을 감추는것. *亟 빠를 극. 급할 극. 자주 기. *躓지 : 쓰러질 지. 밟을 지.

*灼작 : 사를 작. 지질 작. 밝을 작. 여기서는 꽃 활짝 필 작.灼灼 환하다. 밝다. 여유롭다. 아름답다. 

*躁進 : 승진을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

註1 - 범노공(范魯公) : 북송의 유학자로 이름은 질(質), 자는 문소(文素).종성(宗城) 출신으로 북송의 태조 때 노국공(魯國公)에 봉해졌으며 성품이 강직한 것으로 유명했다. 저서에 오대통록(五代通錄)이 있다.(윤호창의 소학)

註2 - 청담(淸談) :중국의 위(魏) ·진(晉) ·육조(六朝) 시대에 유행한 철학적 담론(談論). 후한(後漢) 때 당고(黨錮)의 화(禍)로 많은 고절(高節)의 선비가 횡사한 이래 귀족적 지식인들은 난세에 생명을 부지하고자 세속(世俗)에서 도피, 예절의 속박을 버리고 정치적 비판, 인물 평론을 중심으로 한 청의(淸議)를 일삼았다. 위(魏)나라에 들어와 정치적 언론탄압(言論彈壓)과 유학(儒學)의 쇠퇴를 계기로 노장(老莊)의 공리(空理)에 바탕한 철학적 담의(談議)로 발전, 청언(淸言)이라고도 하였다

 

범노공(范魯公) 질(質)이 송나라의 재상이 되자 그형의 아들인 고(杲)가 임금께 아뢰어 높은 벼슬자리로 올려 주기를 청하니 질이 시를 지어서 훈계한 글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행할 도리와 육예에 힘써 풍부한 학식을 쌓고,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예의를 지키고,술로 인해서 패망하는 수가 있으니 술을 조심하고, 입은 재앙의 문이니 말을 조심하고, 남과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 같아야 하고, 맑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하고, 출세하는 것은 모두 정해진 운명이 있는것이니 부질없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훈계했다.

 

 

 

嘉言,011

康節邵先生誡子孫曰, 上品之人, 不敎而善. 中品之人, 敎而後善. 下品之人, 敎亦不善. 不敎而善, 非聖而何. 敎而後善, 非賢而何. 敎亦不善, 非愚而何.

是知善也者, 吉之謂也. 不善也者, 凶之謂也. 吉也者, 目不觀非禮之色, 耳不聽非禮之聲, 口不道非禮之言, 足不踐非禮之地, 人非善不交, 物非義不取, 親賢如就芝蘭, 避惡如畏蛇蠍. 或曰, 不謂之吉人, 則吾不信也.

凶也者語言詭譎, 動止陰險, 好利飾非, 貪淫樂禍, 疾良善如讐隙, 犯刑憲如飮食, 小則隕身滅性, 大則覆宗絶嗣. 或曰, 不謂之凶人, 則吾不信也.

傳有之. 曰, 吉人爲善, 惟日不足, 凶人爲不善, 亦惟日不足. 汝等欲爲吉人乎. 欲爲凶人乎.

 

강절소선생(康節邵先生)이 자손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 상품(上品)의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선하고, 중품(中品)의 사람은 가르친 뒤에야 선해지며, 하품(下品)의 사람은 가르쳐도 또한 선하지 못하다. 가르치지 않아도 선한 것이 성인(聖人)이 아니고 무엇이며, 가르친 뒤에 선해지는 것이 현인(賢人)이 아니고 무엇이며, 가르쳐도 또한 선하지 못한 것이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것으로 선하다는 것은 길함을 말 할 것이고, 선하지 못하다는 것은 흉함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길한 사람은 눈으로 예(禮)에 어긋나는 빛을 보지 않고, 귀로 예에 어긋나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입으로 예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고, 발로 예에 어긋나는 땅을 밟지 않고, 사람이 선함이 아니면 사귀지 않고, 물건이 의(義)가 아니면 취(取)하지 않으며, 어진 사람 친함을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에 나아가듯이하고, 악한 사람 피하기를 뱀과 전갈을 두려워하듯이 한다. 누가 그를 길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흉(凶)한 사람은 말이 궤휼(詭譎)하고 행동이 음험(陰險)하며, 재리(財利)를 좋아하고, 그른 것을 바른 것처럼 꾸미며, 음탕한 일을 탐내고 재앙을 부를 일를 즐겨하며, 어질고 착한 사람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하고, 나라의 법을 범하기를 법먹듯이 하여 작으면 몸을 몰락시키고 생명을 잃으며, 크면 종족(宗族)을 뒤엎고 후사(後嗣)를 끊어지게 한다. 누가 그를 흉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전(傳)에 있기를 '길한 사람이 선을 행하되 종일토록 해도 부족함을 느끼고, 흉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일을 행하되 종일토록 해도 또한 부족하게 여긴다.' 하였다. 너희들은 길한 사람이 되려하느냐, 흉한 사람이 되려하느냐." 하였다. -소자전서(邵子全書)-

 

*康節邵先生 : 송나라 때의 유학자로 이름은 옹(雍), 자는 요부(堯夫), 강절(康節)은 시호(諡號)이다.

*詭譎괘휼 : 간사한 속임수.*樂禍 : 재앙을 부를 만한 일을 즐겨하는것. *隕身 : 몸을 함정에 떨어지게함. 몰락시킴. *傳 : 서경(書經)의 태서(泰誓)를 가리킴.

*惟日不足 : 종일 토록해도 부족함.

 

강절소 선생이 자손을 경계한 글로 사람을 상,중,하의 등급으로 나누어서 성인(聖人), 현인(賢人), 우자(愚者)로 구별했고, 선한 사람이 행하는 일과 악한 사람이 행하는 일을 각각 열거(列擧)하고, 악한 행동이 부르는 무서운 재앙을 논하여 자손들에게 선한 길을 택할 것을 강조한 글이다.

註 -소강절(邵康節) 선생은 북송의 유학자(儒學者)로 범양(范陽) 출신. 이름은 옹(雍), 자는 요부(堯夫), 강절(康節)은 시호(諡號)이다.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켜 특이한 수리철학(數理哲學)을 만들었다. 그는 음(陰) ·양(陽) ·강(剛) ·유(柔)의 4원(四元)을 근본으로 하고, 4의 배수(倍數)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였다. 저서(著書)로는 관물편(觀物編),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격양집(擊壤集) 등이 있다

 

 

 

嘉言,012

節孝徐先生訓學者曰,

諸君欲爲君子而使勞己之力, 費己之財, 如此而不爲君子猶可也. 不勞己之力, 不費己之財, 諸君何不爲君子.

鄕人賤之, 父母惡之, 如此而不爲君子猶可也. 父母欲之, 鄕人榮之, 諸君何不爲君子.

又曰, 言其所善, 行其所善, 思其所善, 如此而不爲君子未之有也.

言其所不善, 行其所不善, 思其所不善, 如此而不爲小人未之有也.

 

절효(節孝) 서선생(徐先生)이 배우는 자들을 훈계하여 말하기를

" 제군(諸君)이 군자가 되고저 하는데 있어 내 몸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조비해야만 된다면, 그러한 이유로 군자가 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 내 힘을 수고롭게 하지도 않고 재물을 소비하지 않는데도 제군은 어찌하여 군자가 되지 않는가,

마을 사람들이 천히 여기고 부모가 미워한다면 그러한 이유로 군자가 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부모가 원하고 마을 사람들이 영광으로 여기는데도 제군은 어찌하여 군자가 되지 않는가?" 하였다.

또 말하기를" 선을 말하고 선을 행하며 선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하고도 군자가 되지 않는 자는 아직 없었다.

그 선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선하지 않은 일을 행하며 선하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하고도 소인이 되지 않은 자는 없었다." 하였다. -동몽훈(童蒙訓)-

 

*節孝徐先生절효서선생 :이름은 적(積), 자는 중거(仲車). 절효는 시호임.

*勞己之力 : 내 힘을 수고롭게 하는 것. *榮之 : 영광으로 여김.

註 -서절효(徐節孝) 선생은 북송시대 유학자이다. 산양인 출신으로 이름은 적(積), 자는 중거(仲車)이다. 시호는 절효처사(節孝處士)이다. 효자로 세간에 널리 알려졌으며, 관직은 초주교수(楚州敎授)에 이르렀다. 저서에 절효어록(節孝語錄), 절효집(節孝集) 등이 있다.(윤호창의 소학)

 

 

 

嘉言,013

胡文定公與子書曰,

立志以明道希文, 自期待.

立心以忠信不欺, 爲主本.

行己以端莊淸愼, 見操執.

臨事以明敏果斷, 辨是非.

又謹三尺, 考求立法之意而操縱之, 斯可爲政, 不在人後矣.

汝勉之哉. 治心修身, 以飮食男女, 爲切要.

從古聖賢, 自這裏做工夫. 其可忽乎.

 

호문정공(胡文定公)이 아들에 준 글에 말하기를

뜻을 세울 때는 명도(明道)나 희문(希文)처럼 되기를 스스로 기원하라.

마음가짐은 성실과 믿음 그리고 속이지 않는 것을 주된 근본으로 하라.

몸가짐은 단정하고 장중하며, 청렴하고, 근신하는 자세를 지켜라.

일에 임해서는 명민하고 과단성 있는 태도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라.

 

또 법률의 집행을 삼가서 입법이 본뜻을 살려 조종(操縱)한다면 정치를 행함이 남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힘쓸지어다. 마음은 바로잡고 몸을 닦음은 음식과 남녀의 관계를 절실하고도 요긴한 것으로 한다.

예로부터 성현(聖賢)도 이 일에서 수양(修養)을 쌓았으니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 하였다.

-호씨전가훈(胡氏傳家訓)-

 

*胡文定公 : 송나라 사람으로이름은 안국(安國), 자는 강후(康侯), 문정(文定)은 시호임.

*希文희문 : 송나라의 재상 범중엄(范仲俺)의 자, 소년 시절에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한다.

 

 

 

嘉言,014

古靈陳先生爲仙居令, 敎其民曰,

爲吾民者, 父義母慈, 兄友弟恭, 子孝, 夫婦有恩, 男女有別,

子弟有學, 鄕閭有禮, 貧窮患難, 親戚相救, 婚姻死喪, 隣保相助,

無墮農業, 無作盜賤, 無學賭博, 無好爭訟, 無以惡陵善, 無以富呑貧,

行者讓路, 耕者讓畔, 斑白者不負戴於道路, 則爲禮義之俗矣.

右, 廣立敎.

 

고령(古靈) 진선생(陳先生)이 선거(仙居) 고을의 영(令)이 되었을 때 그 고을의 백성을 가르쳐서 말하기를 " 우리 고을의 백성된 자는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자애(慈愛)하며, 형은 우애(友愛)하고, 아우는 공손하며, 아들은 효도하고, 부부 사이에는 은정(恩情)이 있으며, 남녀의 분별이 있어야 한다.

자제는 배움이 있고, 마을에 예의 있으며, 빈궁(貧窮). 환난(患難)에 친척이 서로 구제하고, 혼인과 초상에 이웃이 서로 도와야 한다.

농업을 게을리하지 말며, 도적이 되지 말며, 도박을 배우지 말며, 쟁송(爭訟)을 좋아하지 말며, 악(惡)으로써 선(善)을 업신여기지 말며, 부력(富力)을 가지고 가난한 자를 병탄(倂呑)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밭가는 사람은 밭 경계를 양보하며, 머리털이 반백인 자가 길에서 물건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지 않는다면 예의의 풍속이 될 것이다." 하였다. -진선생행장(陳先生行狀)-

 

*古靈陳先生 : 고령은 땅 이름으로 복주(福州)에 있고,이름은 양(襄), 자는 술고(述古)이다.

*以富呑貧 이부탄빈: 부력(富力)을 가지고 가난한 자의 재산을 모두 차지하여 생업을 잃게 하는것.

*不負戴於道路불부대어도로 : 노인들이 짐을 지거나 이고 길을 다니지 않음을 말합. 

註 - 진고령(陳古靈) 선생은 북송의 사상가로, 후관(侯官)출신이다. 이름은 양(襄), 자는 술고(述古), 호는 고령(古靈)이다. 왕인식의 개혁정책을 반대하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며, 임지마다 학교를 세우고 질병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북송 황제 신종(神宗)에게 신임을 받아 사마광(司馬光), 한유(韓愈), 소식(蘇軾-호:東坡), 등을 천거하기도 했다.(윤호창의 소학)

 

 

 

嘉言,015

司馬溫公曰, 凡諸卑幼, 事無大小, 毋得專行, 必咨稟於家長.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 모든 가정 안의 아랫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은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하지 못한다. 반드시 집안 어른에게 묻고 여쭈어서 행해야 한다," 하였다. -온공가의, 溫公家儀-

 

*司馬溫公 : 송 나라 사람으로 성은 사마, 이름은 광(光), 자는 군실(君實)이며 온국공(溫國公)에 추증(追贈)되엇으므로 온공으로 불리어졌다. *咨稟 자품: 자는 묻는 것이고 품은 여쭙는 것.

 

 

嘉言,016

凡子愛父母之命, 必籍記而佩之, 時省而速行之, 事畢則返命焉.

或所命有不可行者, 則和色柔聲, 具是非利害而白之, 待父母之許, 然後改之,

若不許, 苟於事無大害者, 亦當曲從.

若以父母之命, 爲非而直行己志, 雖所執皆是, 猶爲不順之子. 況未必是乎.

 

무릇 자식이 부모의 명령을 받으면 반드시 책자(冊子)에 기록하여 몸에 지니고 때때로 살펴보아서 속히 실행하며, 일을 마치면 복명(復命)해야 한다.

혹시 명령하신 일에 실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말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일의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여쭈어서 부모의 허락을 얻은 뒤에 고쳐야 한다.

만약 허락치 않으시더라도 진실로 사리(事理)에 크게 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내 뜻을 굽혀서 부모의 명령에 좇아야 한다.

만약 부모의 명령이 그르다고 하여 곧장 내 뜻대로 행한다면 비록 내 생각이 모두 옳다 하드라도 오히려 순종치 않는 자식이 됨을 면치 못하거늘 하물며 반드시 옳다고 볼 수 없는것이다. -온공가의, 溫公家儀-

 

 

嘉言,017

橫渠先生曰, 舜之事親, 有不悅者, 爲父頑母嚚, 不近人情.

若中人之性, 其愛惡若無害理, 必姑順之.

若親之故舊所喜當極力招致, 賓客之奉當極力營辨, 務以悅親爲事, 不可計家之有無.

然, 又須使之不知其勉强勞苦. 苟使見其爲而不易, 則亦不安矣.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하기를 " 순(舜)이 어버이를 섬겨도 어버이가 기뻐하지 않음이 있었던 것은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모질어서 인정에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가 중등 사람의 성품이 되어서 그 사랑하고 미워함에 도리를 해침이 없다면 반드시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만약 어버이의 옛 친구 중에서 특히 좋아하시는 분이 있으면 극력 초청(招請)하고 , 대접하는 음식도 힘껏 마련하여 어버이를 즐겁게 하기에 힘쓸 것이며, 가계(家計)의 유무를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또 반드시 그 일에 무리하게 애쓰는 것을 어버이가 모르게 해야 한다.

진실로 어버이로 하여금 그 아들이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한다면 또한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하였다. -장자전서(莊子全書)-

 

*嚚은 어리석을 은. 불칙하게 할 말 은.모질다. 간사하다 

 

 

 

嘉言,018

羅仲素, 論瞽瞍底豫而天下之爲父子者定, 云, 只爲天下無不是底父母.

了翁聞而善之曰, 唯如此而後天下之爲父子者定,

彼臣弑其君, 子弑其父, 常始於見其有不是處耳.

 

나중소(羅仲素)는 " 고수(瞽瞍)가 기뻐하기에 이르러 천하의 아버지되고 아들된 자가 각각 그 마땅한 도리에 안정하게 되었다." 는 맹자의 말을 논평(論評)하여 말하기를 " 다만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요옹(了翁)이 이 말을 듣고 옳게 여겨 말하기를 " 오직 이와같이 생각한 뒤에야 천하의 아버지되고 아들된 자의 마땅한 도리가 정해진다.

저 신하가 임금을 시해(弑害)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시해하는 것은 항상 그 임금과 아버지에게 옳지 않은 점이 있다고 보는 데서 비롯된다." 하였다. -이락연원록(伊落淵源錄)-

 

瞽 소경 고.瞍 소경 수.

 

*孟子 제7편 이루장구(상)

舜盡事親之道 而瞽瞍底豫. 瞽瞍底豫而天下化. 瞽瞍厎豫而天下之爲父子者定, 此之謂大孝.」

○瞽瞍, 舜父名. 厎, 致也. 豫, 悅樂也. 瞽瞍至頑, 嘗欲殺舜, 至是而厎豫焉.

 

*底豫(지예)에서 底는 厎와 같다. 致也, 至也. ‘이르다.’이고 豫는 悅也, 悅樂이다. 따라서 底豫는 厎豫이고 뜻은 ‘기뻐하는 데에까지 이르는 것’을 말한다.

*瞽瞍(고수) 舜의 아비.

舜임금은 어버이를 섬기는 道理를 다하여, 아버지 瞽瞍가 기뻐하기에 이르렀다. 瞽瞍가 기뻐하기에 이르러서 온 天下도 이에 感化되었던 것이다. 瞽瞍가 기뻐하였기로 (그리하여) 온 天下에 父子間의 道理가 定해진 것이다. 世上에서 이런 것을 일러 大孝라고 하는 것이다.

 

註-나중소(羅仲素) : 중국 북송(北宋) 말기, 남송 초기의 유학자. 이름은 종언(從彦), 자는 중소(仲素), 시호는 문질(文質)이다. 푸젠성(福建省), 난젠(南劍) 출생으로 예장선생(豫章先生)이라고 불렸다. 동향(同鄕)의 선배 양시(楊時)의 가르침을 받았고 두 정자(程子:程明道 ·程伊川 형제)의 학문을 동향의 후배 이연평(李延平)에게 전하여 주자에 이르렀으므로, 난젠의 3선생이라 불렸다. 1130년 광둥(廣東) 보뤄(博羅)의 주부(主簿)로 임명되었으나, 관직에서 퇴직한 후에는 뤄푸산(羅浮山)에 들어가 온종일 단정히 앉아 학문에 정진, 마침내 구산문하(龜山門下)의 제1인자가 되었다. 문집에 《예장문집(豫章文集)》(16권), 저서에 《준요록(遵堯錄)》 등이 있다.

 

 

 

嘉言,019

伊川先生曰, 病臥於床, 委之庸醫比之不慈不孝. 事親者亦不可不知醫.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하기를 " 병들어서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을 용열(庸劣)한 의원에게 맡기는 것을 불자(不慈), 불효(不孝)에 비교하니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또한 의술(醫術)을 알아야 한다." 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嘉言,020

橫渠先生嘗曰, 事親奉祭, 豈可使人爲之.

 

횡거선생이 일찍이 말하기를" 어버이를 섬기고, 제사 받드는일을 어찌 남을 시켜서 할 수 있으랴." 하였다. -장자전서(張子全書)-

 

 

嘉言,021

伊川先生曰, 冠昏喪祭, 禮之大者, 今人都不理會. 豺獺皆知報本, 今士大夫家, 多忽此, 厚於奉養而薄於先祖. 甚不可也.

某嘗修六禮大略, 家必有廟, 廟必有主, 月朔必薦新, 時祭用仲月, 冬至祭始祖, 立春祭先祖, 季秋祭禰, 忌日遷主, 祭於正寢.

凡事死之禮, 當厚於奉生者. 人家能存得此等事數件, 雖幼者, 可使漸知禮義.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는 예절의 큰 것인데도 지금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승냥이와 수달도 모두 근본에 보답할 줄 알거늘, 오늘의 사대부(士大夫) 집에서 흔히 이를 소홀히 하여 부모 봉양은 후(厚)하게 하면서도 선조(先祖)에게는 박(薄)하게 하니 매우 옳지 않다.

내 일찍이 육례(六禮)를 대략 정리 편수 했다. 집에는 반드시 사당(祠堂)이 있고 사당에는 반드시 신주(神主)가 있다. 달마다 초하루에 반드시 새로 나온 제물(祭物)을 드린다. 시제(時祭)는 계절(季節)마다 중간 달에 지내고, 동지(冬至)에는 시조(始祖)에 제사지내고, 입춘에는 선조에 제사지내고, 계추(季秋)에는 아버지 사당에 제사지내며, 기일(忌日)에는 신주를 옮겨다가 정침(正寢)에서 제사지낸다.

무릇 죽은 이 섬기는 예법은 산 사람 받드는 것보다도 후하게 해야 한다. 사람의 집에서 이런 일 몇 가지만이라도 존속(存續)하여 행한다면 비록 어린아이라도 점차로 예의를 알게 할 수 있다." 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豺獺皆知報本 시달개지보본 : 승냥이와 수달같은 미물도 근본에 보답할 줄 안다는 뜻이다. 승냥이는 포획한 짐승을 먹을 때 먼저 좌우에 늘어 놓아서 제사하고 수달도 포획한 물고기를 먹으려 할 때 좌우에 늘어 놓고 제사한다고 한다. *豺시 승량이 시. 늑대 시. *獺은 수달 달.

*祭禰제이 :아버지 사당에 제사지냄. 禰 아비사당 이.

 

 

嘉言,022

司馬溫公曰, 冠者成人之道也. 成人者, 將責爲人子, 爲人弟, 爲人臣, 爲人少者之行也. 將責四者之行於人. 其禮可不重與.

冠禮之廢久矣. 近世以來, 人情尤爲輕薄, 生子猶飮乳, 已加巾帽, 有官者或爲之製公服而弄之. 過十歲猶總角者, 蓋鮮矣. 彼責以四者之行, 豈能知之.

故往往自幼至長, 愚騃如一. 有不知成人之道故也.

古禮雖稱二十而冠, 然, 世俗之弊, 不可猝變. 若敦厚好古之君子, 俟其子年十五以上, 能通孝經論語, 粗知禮義之方, 然後冠之, 斯其美矣.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기를 " 관례(冠禮)라는 것은 성인이 되는 길이다. 성인이란 것은 사람의 아들되고, 사람의 아우되고, 사람의 신하되고, 어른에 대한 젊은이된 자의 행실을 책임지는 것이다. 네 가지 책임지는 일인 그 예법을 어찌 소중히 하지 않으랴.

관례가 폐지된 지 오래다. 근세 이래로 인정이 더욱 경박하여, 아들을 낳아서 아직 젖을 먹는데 벌써 건(巾)과 모(帽)를 머리에 씌우고, 벼슬이 있는 자는 혹 공복(公服)을 만들어 입혀서 희롱하며, 열 살이 넘어도 머리 땋는 자가 드물다. 그런 아이들에게 네가지 행실을 요구한들 어찌 능히 알랴.

그렇기 때문에 왕왕 어릴때 부터 장성하기에 이르기 까지 어리석고 미련함이 한결같으니, 이는 성인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고례(古禮)에는 비록 나이 스무살이 되어야만 관례를 한다고 했지만, 세속(世俗)의 폐습(弊習)은 졸지에 변할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돈독인후(敦篤仁厚)하고 옛날의 도리를 좋아하는 군자가 있어서, 그 아들이 나이 열 다섯 살 이상이 되기를 기다려 능히 <효경(孝經)>. <논어(論語)>에 통달하여 대강이나마 예의의 방향을 알게 된 뒤에 관례를 행한다면 좋을 것이다." 하였다.-온공서의(溫公書儀)-

 

*總角총각 : 사내아이가 머리털을 좌우 두 쪽으로 나누어 묶는 것. 관례하기 전의 머리 모양.

*愚騃우애 : 어리석고 미련 함.

 

 

嘉言,023

古者父母之喪, 旣殯, 食粥. 齋衰, 疏食水飮, 不食菜果.

父母之喪旣虞卒哭, 疏食水飮, 不食菜果.

期而小祥, 食菜果. 又期而大祥, 食醯醬. 中月而禫, 禫而飮醴酒.

始飮酒者, 先飮醴酒. 始食肉者, 先食乾肉. 古人居喪, 無敢公然食肉飮酒者.

漢昌邑王奔昭帝之喪. 居道上, 不素食, 霍光數其罪而廢之.

晉阮籍負才放誕, 居喪無禮, 何曾面質籍於文帝坐曰, 卿敗俗之人. 不可長也. 因言於帝曰, 公方以孝治天下而聽阮籍以重哀飮酒食肉於公座. 宜擯四裔, 無令汚染華夏.

宋廬陵王義眞居武帝憂, 使左右賈魚肉珍羞, 於齋內, 別立廚帳. 會長史劉湛入, 因命臑酒炙車螯, 湛正色曰, 公當今不宜有此設. 義眞曰, 旦甚寒. 長史事同一家. 望不爲異. 酒至, 湛起曰, 旣不能以禮自處, 又不能以禮處人.

隋煬帝爲太子, 居文獻皇后喪. 每朝令進二溢米, 而令外取肥肉脯鮓, 置竹筒中, 以蠟閉口, 衣襆裹而納之.

湖南楚王馬希聲, 葬其父武穆王之日, 猶食雞臛, 其官屬潘起譏之曰, 昔阮籍喪居, 食蒸肫. 何代無賢.

然則五代之時居喪食肉者, 人猶以爲異事. 是流俗之弊, 其來甚近也.

今之士大夫, 居喪食肉飮酒, 無異平日, 又相從宴集, 靦然無愧, 人亦恬不爲怪. 禮俗之壞, 習以爲常. 悲夫.

乃至鄙野之人, 或初未斂, 親賓則齎酒饌往勞之, 主人亦自備酒饌, 相與飮啜, 醉飽連日, 及葬, 亦如之,

甚者初喪作樂以娛尸, 及殯葬, 則以樂導輀車而號泣隨之, 亦有乘喪卽嫁娶者. 噫, 習俗之難變, 愚夫之難曉, 乃至此乎.

凡居父母之喪者, 大祥之前, 皆未可飮酒食肉.

若有疾, 暫須食飮. 疾止, 亦當復初. 必若素食, 不能下咽, 久而羸憊, 恐成疾者, 可以肉汁及脯醢或肉少許, 助其滋味, 不可恣食珍羞盛饌及與人燕樂. 是則雖被衰麻, 其實不行喪也.

唯五十以上, 血氣旣衰, 必資酒肉扶養者, 則不必然耳. 其居喪聽樂及嫁娶者, 國有正法. 此不復論.

 

옛날에 부모의 상(喪)에는 빈소(殯所)를 모신뒤에 죽을 먹었다. 재최(齋衰)의 상에는 빈소를 모신뒤에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채소와 실과는 먹지 않았다.

부모의 상에는 우제(虞祭)와 졸곡(卒哭)을 마치면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채소와 실과는 먹지 않았다.

기년(期年)이 되어 소상(小祥)을 지내면 채소와 과실을 먹고, 또 기년이 되어 소상을 지내면 채소와 과실을 먹고, 또 기년이 되어 대상(大祥)을 지내면 초와 장(醬)을 먹었다.

대상뒤 한 달을 사이에 두고 담제(담祭)를 지냈으니 담제를 지내면 단술을 마셨다.

처음 술을 마시는 사람은 먼저 단술을 마시고, 처음 고기를 먹는 사람은 먼저 마른 고기를 먹었다. 옛 사람은 상중(喪中)에 있으면서 감히 드러내놓고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자가 없었다.

한(漢)나라의 창읍왕(昌邑王)이 소제(昭帝)의 상(喪)에 가면서 길위에서 고기 반찬을 먹으니, 곽광(곽光)이 그 죄를 낱낱이 들어서 폐했다.

진(晉)나라의 완적(阮籍)이 재주를 믿고 방종(放縱)하여 거상(居喪)이 무례(無禮)하니, 하증(何曾)이 문제(文帝)가 보는 자리에서 완적을 면대(面對)하여 도리를 밝혀서 말하기를 " 그대는 풍속을 파괴한 사람이니 윗 자리에 있을 수 없다." 하고, 이어서 문제에게 말하기를" 공(公)께서는 바야흐로 효도로 천하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완적이 상중(喪中)에 있는 몸으로 공식(公式)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고 하니, 마땅히 오랑캐 땅으로 내치시어 중국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셔야 합니다." 하였다.

송나라 노릉왕(盧陵王) 의진(義眞)이 무제(武帝)의 상중에 있으면서 좌우의 사람을 시켜 물고기나 육류(肉類)와 진귀(珍貴)한 식품을 사들이게 하며 재(齋) 안에 따로 주방을 설치했다. 때마침 장사(長史) 유침(劉침)이 들어오니, 술을 데우고 바닷 조개를 구워오라고 명했다. 침이 정색하고 말하기를 " 공께서 오늘에 당하여 이런 설비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의진이 말하기를 " 아침 날씨가 매우 차다. 장사는 모든 일이 한 집안 같으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기 바란다." 하였다. 술이 나오니 침이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능히 예로서 스스로 처신하지 못하고 또 능히 예로써 사람을 대접하지 못하십니다," 하였다.

수양제(隋煬帝)가 태자로 있을 때 문헌황후(文獻皇后)의 상중에 있으면서 아침마다 2일(溢)의 쌀을 올리게 하고, 남모르게 외부사람으로 하여금 기름진 고기와 포(脯)와 젖갈을 구하여 대나무 통 속에 넣어서 밀로 입구를 봉하고 옷보자기로 싸서 들여오게 했다.

호남(湖南)의 초왕(楚王) 마희성(馬希聲)이 그의 아버지 무목왕(武穆王)을 장사지내는 날에 오히려 닭국을 먹으니, 그 관속(官屬) 반기(潘起)가 빈정거려 말하기를 " 지난날에 완적이 부모의 상을 당하여 찐 돼지고기를 먹었다더니, 어느 시대인들 어진이가 없으랴." 하였다.

오대(五代)의 시대에는 상중에 있으면서 고기 먹는 것을 사람들이 아직은 괴이한 일로 여겼으니, 그렇다면 이같은 유속(流俗) 폐습(弊習)은 그 유래가 매우 가까운 것이다. 오늘날의 사대부는 상중에 있으면서 고기 먹고 술 마시는 것이 평일과 다름 없으며, 또 연회(宴會)에 상종(相從)하여 남을 대함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고. 남들도 또한 예사로 알아서 괴이히 여기지 않는다. 예속(禮俗)의 무너짐이 습관을 이루어서 아주 당연한 일로 되었으니 슬프도다.

비열(卑劣)한 사람에 이르러서는 혹 처음 상(喪)을 당하여 아직 염(斂)도 하기 전에 친척과 손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가서 위로하고, 주인도 또한 스스로 술과 안주를 갖추어 서로 함께 마시고 먹어서 연일(連日) 취하고 배부르게 지낸다. 장사지낼 때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심한 것은 처음 상을 당했을때 음악을 연주하여 시체를 즐겁게 하고 빈소를 모시고 장사지낼 때에 는 음악으로 이거(이車)를 인도하고 소리내어 울면서 따라 한다. 또 상중에 있음을 틈타 시집가고 장가드는 자도 있다. 아아!! 습속(習俗)을 변경하기 어려움과 어리석은 자를 깨우치기 어려움이 이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무릇 부모의 상중에 있는 자는 대상(大祥) 전에는 누구나 다 술 마시고 고기를 먹을 수 없다.

만약 병이 있으면 잠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실 수 있지만 병이 나으면 또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약 소식(素食)이 능히 목구명을 넘어가지 않으며 오래되어서 몸이 파리하고 피곤하여 병들까 두려운 자는 고기 국물과 육포와 젖갈 또는 소량(少量)의 고기로 그 자양(滋養)과 입맛을 도울 수 있으나 제 마음대로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먹고 남과 잔치하여 즐겨서는 안된다. 이와 같이 한다면 비록 최마(衰麻)의 복을 입었더라도 실지에 있어 복상(服喪)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50세 이상 된 사람으로서 혈기(血氣)가 이미 쇠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힘입어 부양(扶養)되는 자라면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상중에 있으면서 음악을 듣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자는 나라에서 바로 잡는 법이 있으니 그것은 여기에서 다시 논하지 않는다.-온공서의(溫公書儀)-

 

*殯 빈:염을 마치뒤 관(棺)에 넣어 발인(發靷)할 때까지 집안에 모셔 두는것.

*齋衰재최 : 거친베로 짓고 아랫단을 꿰맨 상복 .衰는 쇠할 쇠. 상복 최.

*疏食소사 : 거친 쌀로 지은 밥.

*虞 우: 장례를 모신 뒤에 초우(初虞), 그 뒤 유일(柔日에 재우(再虞).강일(剛日)에 삼우(三虞)를 지냄.

*期而小祥 : 죽은 뒤 일년만에 지내는 제사를 소상(小喪)이라 함

*中月而禫중월이담 : 대상을 지낸뒤 석달만에 담제를 지내고. 상복을 완전히 벗음. 禫담 담제 담.

*醴酒 : 단 술. 醴 단술 례. *醯.식혜 혜. 초 혜. 단것 혜.

*昌邑王 : 이름은 하(賀),한무제의 손자로 소제가 죽고 후사가 없어서그 뒤를 이었으나 무도(無道)하여 곽광이 폐하여 해혼후(海昏侯)를 삼았다.

*霍光 곽광 :자는 자맹(子孟)으로 벼슬이 대사마 대장군(大司馬大將軍)에 이르고 박릉후(博陵侯)에 봉해짐. 霍 빠를 곽. 남악 곽.

*重哀 : 부모상(父母喪) *擯빈 물리칠 빈. 버릴 빈. *湛: 즐거울 담. 빠질 침. 밝을 잠.

*炙車螯적차오 : 바닷가재를 굽는 것. 螯오: 가재 오.

*隋煬帝 수양제: 수문제 양견(楊堅)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광(廣).

*文獻皇后문헌황후 : 수문제의 황후 독고(獨孤)씨.

*溢일 : 한되의 24분의 1. *鮓자: 물고기 식혜자. 젓갈 자.

*衣襆의복 : 옷 보자기. *肫돌(月+盾): 살필 돈. 여기서는 돼지 살찔 돌. *鷄臛계학 : 닭 국. 臛 곰국 학.

*五代 : 당나라 말년에 일어난 다섯나라임,後唐,後晉,後漢,後周,

*靦然 전연 : 낯을 들어 남을 보는 모습. *靦전무안할 전.부끄러울 전.

*恬 : 편안 념. 고요할 념. *鄙野 : 교양이 없는 것.

*飮啜 음철: 마시고 먹음. 啜철.수다할 철. 훌적거릴 철.

*輀車 이거: 관(棺)을 실은 수레. 

*羸憊리비 : 리는 몸이 파리한 것, 비는 피곤한 것. 羸는 여윌 리. 파리할 리.

*脯醢포해 : 육포와 젓갈. 醢해는 젓갈 해.육장 해. 

註1-재최(齋衰) : 거친 베로 짓고 아랫단을 꿰맨 상복, 소사(疏食) : 거친 쌀로 지은 밥.

註2 : 우제(虞祭)는 매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영혼이 편안히 머물도록 지내는 제사이다. 첫날에 지내는 것을 초우제(初虞祭), 그 다음날에 지내는 것을 재우제(再虞祭), 삼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것을 삼우제(三虞祭)라고 한다.

註3 : 졸곡제(卒哭祭)는 삼우제를 지낸 다음에 지내는 제사. 죽은 지 석 달이 지난 뒤에 지내는 제사로 이때부터 곡을 하지 않는다.

註4-기이소상(期而小祥) : 죽은 뒤 일년 만에 지내는 제사를 소상(小喪)이라 함

註5-창읍왕(昌邑王) : 중국 한(漢) 나라 유하(劉賀)의 봉호(封號). 무제(武帝)의 손자. 소제(昭帝)의 뒤를 이어 즉위(기원전 74년)했으나, 향연과 음란을 일삼다가 곽광(霍光)에 의하여 즉위한 지 27일 만에 폐위되었음.

註6-완적(阮籍) :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사상가·문학자·시인(210~263). 자는 사종(嗣宗).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노장(老莊)의 학문을 연구하였으나 정계에서 물러난 후, 술과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다. 註7-양제(煬帝): 중국 수(隋)나라의 제2대 황제(569~618). 문제(文帝)의 둘째 아들로 성은 양(楊), 이름은 광(廣). 만리장성을 수축하고 대운하(大運河)를 비롯한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켰고, 3차례 고구려를 침입하였으나 을지문덕에게 대패하였고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 수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

註8 : 마희성(馬希聲)은 오대(五代)시대의 초나라 왕으로 자는 약납(約納)이다. 930년 마은이 죽자, 그의 20명 이상의 아들 사이에서 계승권 다툼이 일어났다. 결국 차남 마희성(馬希聲)이 즉위했으나 원래부터 암우(暗愚)하다는 말이 있었고, 그 평판대로 내정을 소홀히하고, 사치를 부리다 타국의 책략에 휘말려 신하를 죽이는 등의 악정을 펼쳤다. 932년 마희성이 죽고 마은의 5남 마희범(馬希範)이 뒤를 계승했다.

註9-오대(五代): 중국에서, 당나라가 망한 뒤부터 송나라가 건국되기 이전까지의 과도기에 중원(中原)에 흥망한 다섯 왕조.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를 이른다.

 

 

 

嘉言,024

父母之喪, 中門外擇樸陋之室, 爲丈夫喪次,

斬衰寢苫, 枕塊, 不脫絰帶, 不與人坐焉.

婦人次於中門之內別室, 撤去帷帳衾褥華麗之物. 男子無故, 不入中門, 婦人不得輒室男子喪次.

晉陳壽遭父喪, 有疾使婢丸藥. 客往見, 鄕黨以爲貶議. 坐是沈滯, 坎坷終身. 嫌疑之際, 不可不愼.

 

부모의 상(喪)에는 중문(中門) 밖에 꾸미지 않은 누추한 방을 가려서 바깥 상주(喪主)의 상차(喪次)로 한다.

참최(斬衰)의 상에는 거적자리에서 자고, 흙덩이를 베게로 하여 수질(首질)과 띠를 벗지 않으며, 남과 함께 앉지 않는다.

부인은 중문 안의 별실에 거처하며 방장, 이불, 요,등 화려한 물건을 치워버린다. 남자는 이유없이 중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며 부인은 홀연히 남자의 상차에 오지 못한다.

진나라 사람 진수가 아버지의 상을 당했을 때 병이 있어서 계집종을 시켜 환약을 만들게 했는데, 손(賓)이 가서 보았다. 향당(鄕黨)이 나쁘게 평판하니 이일로 죄를 입고 침체되어서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다. 혐의를 받기 쉬운 때에는 일을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온공서의(溫公書儀)-

 

*樸陋박루 : 좁고 꾸임이 없는 것. 樸은 통나무 박. 떡갈나무 복.

*喪次 : 상주가 집상(執喪)하는 곳. *寢苫침점 : 거적자리에서 잠. 

*枕塊 침괘: 흙덜이 베게. *絰帶 질대 : 짚에 삼껍질을 감아서 만든 머리띠와 허리 띠. 絰질:요질질,

*帷帳 유장 : 휘장 장막. 帷유: 휘장 유. 장막 유.

*輒至 첩지 : 문득 나타남. 홀연히 나타남. *輒은 문득 첩.

*陳壽 : 진나라 사람으로 자는 승조(承祚).

*貶議폄의 : 깍아서 말함. 貶은 떨어뜨릴 폄.

*坐是沈滯좌시침체 : 허물이 되어 승진하지 못하는 것,

*坎坷: 불우한것. 坷 길 험할 가. 때에 맞지 않을 가.

 

 

嘉言,025

父母之喪, 不當出. 若爲喪事及有故, 不得已而出, 則乘樸馬, 布裹鞍轡.

 

부모의 상중에는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하니, 만약 상사(喪事)를 위하여 또는 일이 있어서 부득이 나가게 되면 장식하지 않은 말을 타고 베로 안장과 고삐를 싸야 한다. -온공서의(溫公書儀)-

 

*布裹鞍轡 포과안비 : 안장과 고삐를 베로싸는 것. 裹과 쌀과. 얽을 과.싸다. 꾸러미.包裹 물건(物件)을 꾸리어 싸는 일 *轡비 고삐 비. *鞍轡 안장(鞍裝)과 고삐 .

 

 

嘉言,026

世俗信浮屠誑誘, 凡有喪事, 無不供佛飯僧, 云, 爲死者, 滅罪資福, 使生天堂, 受諸快樂. 不爲者必入地獄, 剉燒舂磨, 受諸苦楚.

殊不知死者, 形旣朽滅, 神亦飄散. 雖有剉燒舂磨, 且無所施. 又況佛法, 未入中國之前, 人固有死而復生者. 何故都無一人誤入地獄, 見所謂十王者耶. 此其無有而不足信也, 明矣.

 

세속(世俗)에서는 중이 속이고 유혹(誘惑)하는 말을 믿어서 무릇 상사(喪事)가 있으면 부처에게 공양(供養)을 하고 중들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 자가 없다. 그리고 말하기를 " 죽은 자를 위하여 죄를 소멸(消滅)시키고 복을 받아 천당에 살게 되어서 모든 쾌락(快樂)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지옥(地獄)으로 들어가서 몸이 칼로 저며지고, 불로 태워지고, 공이로 찧어지고, 맷돌로 갈아져서 온갖 고통을 받게 된다." 하였다.

실로 죽은 자의 형체(形體)가 썩어 없어지고 신령(神靈)이 또한 흩어져서 비록 칼로 저미고 불태우고 찧고 갈려고 해도 베풀곳이 없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물며 불법(佛法)이 아직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자 있건만 무슨 까닭으로 한 사람도 잘 못 지옥에 들어가서 이른바 십왕(十王)이라는 것을 본 자가 없단 말인가. 이것은 그 실체가 없어서 족히 믿을 것이 없음이 분명한 것이다. -온공서의(溫公書儀)-

 

*浮屠부도 : 부처 또는 중을 달리 일컫는 말.*誑誘 광유 : 속여서 유혹하는 것. 

*剉좌 : 꺽어질 좌. 토막질 좌. *舂용 방아찧을 용.

註:시왕(十王)은 불교 시왕경(十王經)에 저승에서 죽은 사람을 재판하는 열 명의 대왕을 말한다.

 

 

嘉言,027

顔氏家訓曰, 吾家巫覡符章, 絶於言議, 女曹所見. 勿爲妖妄.

 

안씨 가훈(顔氏家訓)에 말하기를 " 우리 집에서 무당, 박수, 부적 등을 말에 올리지 않는 것은 너희들이 보든 바다. 요괴스럽고 망령된 일을 하지 말라." 하였다. -안씨가훈(顔氏家訓)-

 

*巫覡 무격: 무당과 박수(남자무당)

 

 

嘉言,028

伊川先生曰, 人無父母, 生日當倍悲痛. 更安忍置酒張樂, 以爲樂. 若具慶者, 可矣.

 

이천선생이 말하기를 " 사람이 부모가 안 계시면, 생일에 슬픈 마음이 배나 더할 것이다. 어찌 술자리를 마련하고 음악을 연주하며 즐기랴. 만약 부모가 살아 계시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置酒將樂 : 술자리를 마련하고 음악을 연주하는것.

 

 

嘉言,029

呂氏童蒙訓曰, 事君如事親, 事官長如事兄, 與同僚如家人, 待群吏如奴僕, 愛百姓如妻子,

處官事如家事, 然後能盡吾之心. 如有毫末不至, 皆吾心有所未盡也.

 

여씨 동몽훈(呂氏童蒙訓)>에 말하기를 " 임금 섬김을 어버이 섬김같이 하며,관장(官長) 섬김을 형 섬김같이 하며, 동료(同僚)들과 함께 지내기를 한집안 사람같이 하며, 아전들을 대우하기를 자기 집 노복(奴僕)같이 하며, 백성 사랑하기를 처자(妻子)같이 하며,

관청 일 하기를 집안 일 같이 한 연후에야 내 마음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털끝만치라도 부족한 데가 있다면 그것은 내 마음이 모두 미진(未盡)함이 있는 것이다. -동몽훈(童蒙訓)-

 

 

*呂氏童蒙訓 : 여본중(呂本中)이 지었으며 어린이들을 훈계한 것임, 자는 거인(居人), 송나라 사람이다 .

 

 

嘉言,030

或問簿佐令者也. 簿所欲爲, 令或不終, 柰何. 伊川先生曰, 當以誠意動之. 今令與簿不和, 只是爭私意.

令是邑之長. 若能以事父兄之道事之, 過則歸己, 善則惟恐不歸於令, 積此誠意, 豈有不動得人.

 

어떤 사람이 묻기를 " 부(簿)는 영(令)을 보좌(輔佐)하는 자입니다. 부가 하고자 하는 것을 영이 혹 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이천선생이 말하기를 "마땅히 성의(誠意)로써 감동시켜야 한다. 오늘날 영과 부가 화합하지 못한 것은 단지 사견(私見)을 가지고 다투기 때문이다.

영은 고을의 어른이다. 만약 부형을 섬기는 도리를 가지고 섬기며, 허물은 내게로 돌리고 잘한 일은 오직 영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까 두려워하여, 이같은 성의를 쌓는다면 어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함이 있으랴." 하였다.-이정전서(二程全書)-

 

*簿는 현영을 보좌하는 벼슬아치.

 

 

嘉言,031

明道先生曰, 一命之士, 苟存心於愛物, 於人必有所濟.

 

명도선생이 말하기를 " 일명(一命)의 인사라도(낮은 벼슬을 맡은 선비라도 )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둔다면 사람에게 반드시 도움을 줌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嘉言,032

劉安禮問臨民. 明道先生曰, 使民各得輸其情. 問御吏曰, 正己以格物.

 

유안례(劉安禮)가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물으니 , 명도선생이 말하기를 " 백성으로 하여금 각기 그 뜻을 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였다 아전을 통솔하는 방법을 물으니, 말하기를 "내 몸을 바르게 하고 남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하였다.

 

유안례(劉安禮)가 백성을 대하는 도리를 묻자, 명도선생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윗사람들에게 모두 말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아전을 통솔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고 나서 사물을 바로 잡아야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劉安禮 : 명도의 제자로 자는 입지(立志).

註 : 유안례(劉安禮)는 북송시대의 사상가로 자는 원소(元素)이다. 형 유안절(劉安節)과 함께 정명도의 문하에서 비웠다.

 

 

 

嘉言,033

伊川先生曰, 居是邦, 不非其大夫, 此理最好.

 

이천선생이 말하기를 " 그 나라에 살면 그 나라의 대부(大夫)를 비난(非難)하지 않는 것이 도리에 가장 좋다." 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嘉言,034

童蒙訓曰, 當官之法唯有三事. 曰淸, 曰愼, 曰勤. 知此三者, 則知所以持身矣.

 

동몽훈에 말하기를 " 벼슬살이 하는 방법이 세 가지 있으니, 청렴(淸廉), 근신(謹愼), 근면(勤勉)이다. 이 세 가지를 알면 몸 가질 바를 알 것이다." 하였다. -동몽훈(童蒙訓)-

 

 

 

嘉言,035

當官者, 凡異色人, 皆不宜與之相接. 巫祝尼媼之類, 尤宜疎絶. 要以淸心省事爲本.

 

관원된 자는 무릇 색다른 사람과는 모두 서로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무(巫). 축(祝). 니(尼) 오(오)는 더욱 멀리하여 끊어야 한다. 요컨대 마음을 맑게하고 무익(無益)한 일을 덜어 버리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동몽훈(童蒙訓)-

 

*祝 : 무당과 같은 것으로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 *尼 여승을 말함. 중니.

*媼오 : 할미오. 어머니 오. 땅귀신 오. 뚜쟁이.

 

 

 

嘉言,036

後生少年乍到官守, 多爲猾吏所餌, 不自省察, 所得毫末, 而一任之間不復敢擧動. 大抵作官嗜利, 所得甚少而吏人所盜不貲矣. 以此被重譴. 良可惜也.

 

후에 젊은이는(경험이 적은 젊은 사람이) 지방관(地方官)으로 도임(到任)하자마자 흔히 교활(狡猾)한 아전의 미끼에 걸리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털끗만한 이득을 얻고는 한 임기 동안에 감히 다시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 대체로 관원이 되어 이득을 좋아하면 자신이 얻는 것은 얼마 안되고 아전이 훔치는 것은 적지 않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중벌(重罰)을 받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동몽훈(童蒙訓)-

 

*貲자: 재물 자. *사(乍)는 잠깐 사. 갑자기.

 

 

 

嘉言,037

當官者, 先以暴怒爲戒, 事有不可, 當詳處之. 必無不中. 若先暴怒, 只能自害. 豈能害人.

 

관직에 있는자는 먼저 폭노(暴怒)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일이 옳지 않음이 있으면 마땅히 자세히 살펴서 처리해야 한다. 그와 같이 하면 반드시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만약 먼저 폭노한다면 다만 자신을 해칠 뿐이다. 어찌 능히 남을 해치랴. -동몽훈(童蒙訓)-

 

*暴怒: 심하게 성냄. *詳處之 : 자세히 살펴서 처리하는것.

 

 

 

嘉言,038

當官處事, 但務著實. 如塗摖文字, 追改日月, 重易押字, 萬一敗露, 得罪反重. 亦非所以養誠心事君不欺之道也.

 

관원이 되어 일을 처리함에는 다만 성실함을 힘쓸 뿐이다. 만일 허물을 숨기기 위하여 공문서의 글자를 뭉게버리거나 긁어 없애거나, 월일을 추후에 고치거나 서명을 바꾸는것 같은 속임수를 했다가 탄로나면 죄를 얻음이 도리어 무겁게 되며, 성심으로 임금을 섬겨 속이지 않는 도리를 기르는 것이 아니다. -동몽훈(童蒙訓)-

 

*著實 착실: 거짓이 없는것 성실한것.

*塗摖 도체 : 도는 뭉개버림이고 摖체는 긁어냄을 말한다. 摖 긁을 체. 塗擦도찰  바르고 문지름. 刀擦도찰 :(잘못된 글자나 그림 따위를)칼로 긁어내어 고치는 일

 

 

 

嘉言,039

王吉上疏曰, 夫婦人倫大網. 夭壽之萌也. 世俗嫁娶太蚤, 未知爲人父母之道而有子. 是而敎化不明而民多夭.

 

왕길(王吉)의 상소(上疏)에 말하기를 " 부부는 인룬의 큰 도리이며, 요사(夭死)와 장수(長壽)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세상 풍속이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이 너무 일러서 아직 부모되는 도리도 알기 전에 자식을 두니, 이런 까닭에 교화(敎化)가 밝지 못하고, 백성이 요사(요절)하는 자가 많습니다." 하였다. -한서, 왕길전(漢書, 王吉傳)-

 

*王吉 : 한다라 사람으로 자는 자양(子陽). 맹(萌)은 싻 맹. 시초.

 

 

嘉言,040

文中子曰, 婚娶而論財, 夷虜之道也. 君子不入其鄕. 古者男女之族, 各擇德焉. 不以財爲禮.

 

문중자가 말하기를 " 혼인에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길이다 . 군자는 그와 같은 풍습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지 않는다.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의 족속(族屬)이 각각 덕성(德性)을 택(擇)했을 뿐, 재물을 보내는 것으로 예를 삼지 않았다." 하였다. -중설, 사군(中說, 事君)-

 

*文中子 : 자는 중엄(仲淹), 이름은통(通), 성은 왕(王)으로 수(隋)나라 시절의 큰선비이다.문중자라는 사시(私諡)를 문인들이 올린것이다.

*不以財爲禮 : 재물을 보내는 것으로 예를 삼지 않음.

註1-文中子 : 중국 수나라의 유학자(584~617). 성은 왕(王) 이름은 통(通), 자는 중엄(仲淹).

 

 

 

嘉言,041

早婚少聘, 敎人以偸. 妾媵無數, 敎人以亂. 且貴賤有等. 一夫一婦, 庶人之職也.

 

조혼(早婚)하여 어려서 장가드는 것은 사람에게 경박(輕薄)함을 가르치는 것이고, 첩과 잉(잉)이 수 없이 많은 것은 사람에게 문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등차(等差)가 있으니, 한 남편에 한 아내가 서인의 분수다. -중설, 사군(中說, 事君)-

 

*聘 : 부를 빙. 아내를 맞이하는것. 偸 : 훔칠 투. 경박한 것. *媵잉 : 아내가 시집올때 데리고온 몸종. 계집종 잉.

註 : 잉첩(媵妾)은 아내가 시집올 때 따라 온 여자를 말한다. 보통 조카딸이나 여동생이 따라 왔으며, 고대에서는 아내가 갑자기 죽을 때는 잉첩을 아내로 맞이하기도 하였다.(윤호창의 소학)

 

 

 

嘉言,042

司馬溫公曰, 凡議婚姻, 當先察其婿與婦之性行及家法何如. 勿苟慕其富貴.

壻苟賢矣, 今雖貧賤, 安知異時不富貴乎. 苟爲不肖, 今雖不盛, 安知異時不貧賤乎.

婦者家之所由盛衰也. 苟慕一時之富貴而娶之, 彼挾其富貴, 鮮有不輕其夫而傲其舅姑, 養成驕妬之性. 異日爲患, 庸有極乎.

借使因婦財以致富, 依婦勢以取貴, 苟有丈夫之志氣者, 能無愧乎.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무릇 혼인을 의논하는 것은 마땅히 먼저 그 사위될 사람과 며느리될 사람의 성품. 행실 그리고 그 집의 법도가 어떻한가를 살펴야 하고 구차하게 그 부유하고 영귀(榮貴)한 것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위될 사람이 진실로 현명하다면 지금은 비록 빈천(貧賤)하지만 훗날에 부귀하지 않는 다고 어찌 알랴. 진실로 착하지 못하다면 지금은 비록 부성(富盛)하지만 훗날에 빈천하지 않는다고 어찌 알랴.

며느리는 집안의 성(盛)하고 쇠(衰)함이 그에게 달려 있다. 구차하게 한때의 부귀를 부러워하여 며느리를 삼는다면 그녀가 그 부귀함을 자세(藉勢)하여 그 남편을 가볍게 보고, 그 시부모를 업신여기지 않는 자가 드무니, 교만하고 질투하는 습성(習性)을 기른다면 훗날 걱정거리됨이 어찌 끝이 있으랴.

가령 며느리의 재물로 인하여 부자가 되고 며느리의 권세에 의지하여 몸이 귀히 됨을 믿는다 한들, 진실로 대장부의 뜻이 있고 기개(氣槪)가 있는 자라면 능히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랴." 하였다. -온공서의(溫公書儀)-

 

 

 

嘉言,043

安定胡先牲曰, 嫁女必須勝吾家者. 勝吾家, 則女之事人, 必欽必戒. 娶婦必須不若吾家者. 不若吾家, 則婦之事舅姑, 必執婦道.

 

안정(安定)의 호선생이 말하기를" 딸을 시집보낼 때에는 반드시 내 집보다 나은 집으로 보내야 한다. 내 집보다 나으면 딸이 그 집 사람을 섬김에 있어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삼갈 것이다. 며느리는 반드시 내 집만 못한 데서 데려와야 한다. 내집만 못하면 며느리가 시부모를 섬김에 있어 반드시 며느리되는 도리를 다할 것이다," 하였다.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嘉言,044

或問, 孀婦於理, 似不可取. 如何. 伊川先生曰, 然. 凡取以配身也. 若取失節者, 以配身, 是己失節也.

又問, 或有孤孀, 貧窮無託者, 可再嫁否. 曰, 只是後世, 怕寒餓死, 故有是說. 然, 餓死事極小, 失節事極大.

 

어떤이가 묻기를 " 과부(寡婦)를 아내로 삼는 것이 도리에 옳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하니, 이천선생이 말하기를 " 그렇다 대체로 장가든다는 것은 자신의 짝을 짓기 위한 것이다. 만약 절개를 잃은 자를 얻어서 내몸의 짝이 되게 한다면 그것은 자신도 절개를 잃는 것이 된다." 하였다.

또 묻기를 "혹시 외로운 과부로써 빈궁(貧窮)하고 위탁할 곳이 없는 자가 있다면 다시 시집갈 수 있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 이것은 다만 후세에 춥고 굶주려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이같은 말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굶어 죽는 것은 극히 작은 일이고, 절개를 잃는 것은 극히 큰 일이다." 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孀婦 상부 : 나이 젊은 과부.靑孀寡婦  *怕파 ; 두려울 파.

 

 

 

嘉言,045

顔氏家訓曰, 婦主中饋. 唯事酒食衣服之禮耳. 國不可使預政, 家不可使軒蠱. 如有聰明才智識達古今, 正當輔佐君子, 勸其不足. 必無牝鷄晨鳴, 以致禍也.

 

안씨 가훈에 말하기를 " 부인(婦人)은 중궤(中饋)를 맡아서 오직 술과 밥과 의복의 예절을 일삼을 뿐이니, 나라에서는 정치에 간여(干與)시키지 말아야 하고, 집에서는 집일을 주장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총명하고 재주와 지혜가 있어서 식견(識見)이 고금(古今)에 통달한다면 마땅히 군자(君子)를 보좌(輔佐)하여 그 부족함을 권면할 뿐, 반드시 암탉이 새벽에 울어서 재앙을 가져오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였다. -안씨가훈(顔氏家訓)-

 

*中饋중궤 : 집안에 있으면서 음식을 공궤함. *預政 : 정치에 간여하는것.

*幹蠱간고 : 간은 주장하는것이고 고는 일이니 집일을 주장하는것.

*勸其不足 : 그 부족함을 보충하는것.

*牝鷄晨鳴 : 암닭이 새벽에 우는 것이니 여자가 집일을 주장하는 비유.

 

 

 

嘉言,046

江東婦女, 略無交遊, 其婚姻之家, 或十數年間, 未相識者. 唯以信命贈遺, 致慇懃焉.

鄴下風俗, 專以婦持門戶, 爭訟曲直, 造請逢迎, 代子求官. 爲夫訴屈. 此乃恒代遺風乎.

 

강동(江東)의 부녀자는 거의 사귀어 노는 일이 없으니, 그 혼인한 집들 사이에도 혹은 십수 년 동안에 아직 서로 낯을 알지 못하고 오직 서신(書信)과 전언(傳言)과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은근한 뜻을 통하기도 한다.

업하(업下)의 풍속은 오로지 부녀자가 집을 부지(扶持)하며 , 다투어 소송(訴)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며, 밖에 나가서 남을 만나고 집에서 손을 맞으며, 자식을 대신하여 벼슬을 구(求)하며, 남편을 위하여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것이 바로 항대(恒代)의 유풍(遺風)일 것이다. -안씨가훈(顔氏家訓)-

 

*贈遺 : 선물을 보내는 것. *鄴下 : 鄴업 은 옛날의 상주(相州) 하는 지방이란 뜻이다.

 

註1 : 강동(江東)지역은 양(梁)나라의 도읍인 남경(南京)을 중심으로 한 양자강 하류의 남쪽 지방을 말한다.(윤호창의 소학)

註2 : 업하(鄴下)지역은 삼국 때 조조(曹操)의 도읍으로 지금 하남성 임장현(臨漳縣)을 말한다(한국고전번역원)

 

 

 

嘉言,047

夫有人民, 而後有夫婦, 有夫婦, 而後有父子, 有父子, 而後有兄弟. 一家之親, 此三者而已矣. 自玆以往, 至于九族, 皆本於三親焉. 故於人倫爲重也. 不可不篤.

兄弟者, 分形連氣之人也. 方其幼也, 父母左提右挈, 前襟後裾, 食則同案, 衣則傳服, 學則連業, 遊則共方. 雖有悖亂之人, 不能不相愛也.

及其壯也, 各妻其妻, 各子其子. 雖有篤厚之人, 不能不少衰也. 娣姒之比兄弟, 則疎薄矣.

今使疎薄之人, 而節量親厚之恩. 猶方底而圓蓋. 必不合矣. 唯友悌深至, 不爲傍人之所移者, 免夫.

 

대저 사람이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에 부자가 있으며, 부자가 있은 뒤에 형제가 있으니, 한 집의 친함은 이 세가지 뿐이다. 이로부터 나아가서 구족(九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세가지 친함에 바탕을 둔다.그렇기 때문에 인륜에 있어 소중히 여기는 것이니 도탑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형제는 형체(形體)를 나누고 기운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바야흐로 어릴 때에는 부모가 왼손으로 끌고 오는손으로 붙들며 앞으로 옷깃을 당기고 뒤로 옷자락을 이끌어서 데리고 다녔으며, 먹으면 밥상을 함께하고 옷은 돌려가며 입었으며, 배움은 업(業)을 같이하고 놀면 방향을 같이했다. 비록 도리에 어긋나는 난폭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장성하면 각자 자기 아내로 하고 자기 아들을 아들로 하게 되니 비록 독실(篤實)하고 후(厚)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은 정의(情誼)가 쇠(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자 동서 사이를 형제에 비한다면 소원(疏遠)하고도 정이 박(薄)한 것이다.

이제 소원하고도 박한 사람으로 하여금 친밀하고 두터운 은정(恩情)을 헤아려서 절도(節度)있게 한다는 것은 마치 모난 바닥에 둥근 뚜껑을 덮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맞지 않을 것이다. 오직 우애(友愛)하고 공경함이 깊고 지극하여 곁의 사람이 움직일 수 없는 자만이 정의가 소원해지는 것을 면할 것이다. -안씨가훈(顔氏家訓)-

 

*九族 : 고조. 증조. 조, 부, 자신. 아들, 손자. 증손, 고손의 9대 및 방계 친족을 말한다.

*三親 : 부부 부자 형제. *左提右挈 좌제우설: 제와 설은 모두 손으로 끄는것을 말함. 

*前襟後裾전금후거 : 襟은 옷의 앞섭. 裾는 옷의 뒷자락. 앞으로 옷깃을 당기고 뒤로 옷자락을 끄는것.

*傳服 : 옷을 차례로 돌려가며 입는것.*娣姒제사: 娣제 는 작은 동서이고 姒사 는 맏 동서를 말함.

*節量親厚之恩절량친후지은 : 동서사이에 친밀하게 지냄.

*方底而圓蓋 : 방저는 네모난 밑바닥. 원개는 둥근 뚜껑이니 네모난 밑바닥에 둥근 뚜껑을 덮는 것.

 

 

 

嘉言,048

柳開仲塗曰, 皇考治家, 孝且嚴. 朝望弟婦等, 拜堂下畢, 卽上手低面, 聽我皇考訓誡.

曰, 人家兄弟, 無不義者, 盡因娶婦入門, 異姓相聚, 爭長競短,

漸漬日聞, 偏愛私藏,

以致背戾, 分門割戶, 患若賊讎. 皆汝婦人所作.

男子剛腸者幾人, 能不爲婦人言所或. 吾見多矣. 若等寧有是耶.

退則惴惴, 不敢出一語爲不孝事. 開輩抵此賴之, 得全其家云.

 

유개중도가 말하기를 "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집을 다스리심에 있어 효도를 중히 여기시고 또 엄격하셨다. 초하루와 보름날에 내 제수(弟嫂)들이 마루 아래서 절을 마치고 나서 손을 올리고 얼굴을 나직이 하여 우리 아버님이 훈계를 들었다.

말씀하시기를 ' 사람의 집의 형제들이 본디 의리(義理)를 지키지 않는 자가 없건만, 각기 아내를 맞이하여 집에 들어오게 되면 다른 성이 서로 모여서 잘하고 못한 것을 다투게 된다.

참소하는 말은 물이 스며들 듯 날로 귀에 들리게 되니 처자를 편애(偏愛)하고 사사로이 재물을 저축하게 된다.

정리(情理)가 어그러져서 마침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며 미워하기를 도적이나 원수처럼 한다. 이것이 모두 너히들 여인이 만드는 것이다.

남자로서 뜻이 굳은 자가 몇 사람이나 되어 능히 부인의 말에 현혹되지 않으랴. 내 이런 실례를 본것이 많다. 너희들이야 어찌 이같은 일이 있으랴.' 하셨다

물러나와서는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감히 한마디도 불효가 되는 일을 말하지 못했으니, 우리 집안은 교훈에 힘입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을 보전함을 얻었다." 하였다. -유중도찬숙모목부인묘지-

 

*柳開仲塗 : 성은 유, 이름은 개. 자는 중도임.

*皇考 : 돌아가신 아버지. *爭長競短  길고 짧음을 다툼. 잘하고 잘못함을 다투는것.

*漸漬 : 물이 점점 스며드는것. 漬는 담글 지.

*讎수(새추변에誰)는 짝 수, 원수 수. 갚을 수. 讐와 같은 자임

*背戾 패려 : 정리가 어긋남. 背는 등배 여기서는 배반할 패.

*分門割戶 :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사는것.

*惴惴췌췌  두려워하는 모양.벌벌 떨다. 惴췌 두려워할 췌.

 

註-유개(柳開) : 중국 북송 때의 문인(?~?). 자는 중도(仲途). 8세기 무렵의 사람으로 전중시어사를 지냈으며, 사륙문(四六文)의 유행에 반대하여 고체(古體)로의 복귀를 제창한 고문(古文) 운동의 선구자이다. 저서로 ‘하동집(河東集)’이 있다

 

 

 

嘉言,049

伊川先生曰, 今人多不知兄弟之愛. 且如閭閻小人, 得一食, 必先以食父母. 夫何故.

以父母之口, 重於己之口也. 得一衣, 必先以衣父母. 夫何故.

以父母之體, 重於己之體也. 至於犬馬, 亦然. 待父母之犬馬, 必異乎己之犬馬也.

獨愛父母之子, 却輕於己之子, 甚者至若仇敵, 擧世皆如此. 惑之甚矣.

 

이천선생이 말하기를 " 지금 사람은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가 많다. 가령 마을의 무지(無知)한 백성도 한 가지 먹을 것을 얻으면 반드시 먼저 부모에게 먹게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부모의 입을 자기 입보다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옷을 얻으면 반드시 먼저 부모에게 입힌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부모의 몸을 자기 몸보다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개나 말에 이르기까지도 그와같이 하여 부모의 개나 말 대우하기를 반드시 자기의 개나 말과 달리한다.

그러면서도 유독 부모의 자식 사랑하기를 도리어 자기 자식보다 가벼이하며 심하면 원수같이 본다. 온 세상이 모두 이와 같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였다. -이정전서(二程全書)-

 

 

 

嘉言,050

橫渠先生曰, 斯于詩言, 兄及弟矣, 式相好矣. 無相猶矣. 言兄弟宜相好, 不要相學. 猶似也. 人情大抵, 患在施之不見報, 則輟. 故恩不能終. 不要相學, 己施之而已.

 

횡거선생이 말하기를 " 사간시(斯干詩)에 '형제는 서로 사랑할 뿐, 서로 같음이 없어야 한다.' 하였으니, 형제는 서로 사랑할 뿐이고, 상대방의 잘못을 배우지 말라는 말이다. 같다(猶)는 닮았다(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사람의 심정은 대체로 그 폐단이 남에게 은혜를 베풀다가도 그 보답을 받지 못하면 중지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온전히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잘못을 배우지 말고 나 자신이 베풀 따름이다." 하였다. -장자전서(張子全書)-

 

*斯干 :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이다

*無相猶矣 : 그 나쁜점을 서로 닮지 말아야 함.

*己施之而已 : 남이 어찌 되었든 내 자신이 도리를 다하는것.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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