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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學 善行第六 善行,041 近世故家惟晁氏, 因以道申戒子弟, 皆有法度. 群居相呼, 外姓尊長, 必曰, 某姓第幾叔若兄. 諸姑尊姑之夫, 必曰, 某姓姑夫某姓尊姑夫. 未嘗敢呼字也, 其言父黨交游必曰, 某姓幾丈. 亦未嘗敢呼字也. 當時故家舊族, 皆不能若是. 근세의 고가(故家) 중에 조(晁)씨만이 이도(爾 : 以道)의 자제들에 대한 훈계함에 힘입어서 모두 법도(法度)가 있다. 여러 집이 모여 살면서 서로 부를 때 외성(外姓)의 존장(尊長)이면 반드시 무슨 성(姓) 몇째 아저씨 또는 몇째 형님이라 하고 모든 고모(姑母), 대고모의 남편은 반드시 무슨 성 고모부(姑母夫), 무슨 성 대고모부라고 하여 일찍이 감히 자(字)를 부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친구를 부를때도 반드시 무슨 성 몇째 어른이라고 하여 또한 감히 자를 부르지 못하니, 당시의 고가구족(故家舊族)이 모두 이와 같이 하지 못했다. -童蒙訓- *故家 : 예로부터 이름있는 집안. *이도(爾): 조설지(晁說之)를 말함. 이도는 자이면 전연(전淵)사람이다. *外姓尊長 : 외성은 타성의 친척이고 존장은 손윗 사람이다, *尊姑 : 대고모를 말함. 善行,042 包孝肅公尹京時, 民有自言, 以白金百兩, 寄我者死矣, 予其子. 不肯受. 願召其子, 予之.
尹召其子, 辭曰, 亡父未嘗以白金委人也. 兩人相讓久之.
呂滎公聞之曰, 世人喜言無好人三字者, 可謂自賊者矣. 古人言, 人皆可以爲堯舜. 蓋觀於此而知之. 포효숙공(包孝肅公)이 경조윤(京兆尹)으로 있을 때 백성이 스스로 말하기를 " 백금(白金) 100냥(兩)을 내게 맡긴 자가 죽기에, 그 아들에게 주었더니 그 아들이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원컨대 그 아들을 불러서 주십시오." 했다. 윤이 그 아들을 불러서 주니, 사양하여 말하기를 " 죽은 아버지가 일찍이 백금을 남에게 맡긴 일이 없읍니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기를 오래도록 했다. 여형공이 듣고 말하기를 " 세상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없다(無好人)는 석 자를 말하기 좋아하는데, 스스로 마음을 해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가 있다.' 했는데 이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하였다. -童蒙訓-
善行,043 萬石君石奮歸老于家. 過宮門關, 必下車趨, 見路馬, 必軾焉.
子孫爲小吏來歸謁, 萬石君必朝服見之, 不名. 子孫有過失, 不誚讓, 爲便坐, 對案不食,
然後諸子相責, 因長老, 肉袒, 固謝罪改之, 乃許.
子孫勝冠者在側, 雖燕必冠, 申申如也, 僮僕訢訢如也, 唯謹.
上時賜食於家, 必稽首俯伏而食, 如在上前, 其執喪哀戚甚. 子孫遵敎, 亦如之. 萬石君家以孝謹, 聞乎郡國.
雖齊魯諸儒, 質行皆自以爲不及也.
長子建爲郞中令, 少子慶爲內史. 建老白首, 萬石君尙無恙.
每五日洗沐歸謁, 親入子舍, 竊問侍者, 取親中裙厠牏, 身自浣滌, 每與侍者言, 不敢令萬石君知之以爲常.
內史慶醉歸, 入外門, 不下車, 萬石君聞之, 不食, 慶恐, 肉袒謝罪, 不許,
擧宗及兄建肉袒, 萬石君讓曰, 內史貴人. 入閭里. 里中長老皆走匿, 而內史坐車中自如. 固當. 乃謝罷慶, 慶及諸子入里門, 趨至家. 자손이 작은 벼슬아치가 되어 돌아와 뵈면 만석군은 반드시 조복(朝服)을 입고 만나보았으며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자손이 허물이 있으면 말로 꾸짖지 않고, 방의 한편 가에 앉아서 밥상을 대하여도 먹지 않았다.
그러면 여러 사람이 서로 나무라며 족친(族親) 중의 나이 많은 어른을 통해서 육단(肉袒)하여 몇 번씩 사죄(謝罪)하고 허물을 고쳐야만 비로소 허용(許容)했다.
자손으로서 관(冠) 쓸 나이가 된 자가 곁에 있으면 비록 일 없이 한가하게 있는 때라도 반드시 관을 쓰고 화순(和順)한 모양으로 있었으며, 하인에게는 온화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대하면서도 오직 삼갔다.
임금이 때때로 먹을 것을 집에 내려주시면 반드시 절하고 엎드려 먹어서 임금 앞에 있는 것같이 했다. 그가 집상(執喪)할 때에는 매우 슬퍼했으니, 자손이 그 가르침에 따라서 또한 그와 같이 하여 만석군의 집안은 효도하고 근신(謹愼)하기로 이름이 군국(郡國)에 알려 졌다.
비록 제노(齊魯)의 선비라 하드라도 질박(質朴)한 행실은 모두 스스로 따를 수 없다고 했다.
맏아들 건(建)은 낭중령(郎中令)이 되고 작은 아들 경(慶)은 내사(內史)가 되었다.건이 나이 늙어 백발이 되었는데도 만석군이 아직도 몸에 탈이 없었다.
닷새마다 목욕하고 돌아와 뵈었으며, 친히 침실(寢室)곁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 뫼시는 자에게 가만히 물어서 아버지 아버지의 속옷과 요강을 가져다가 몸소 세탁하고는 매양 뫼시는 자에게 말하여 감히 만석군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고 이것을 상례(常例)로 했다.
내사 경이 술취하여 돌아와 바깥 문을 들어올 때 수레에서 내리지 않으니, 만석군이 이 말을 듣고 밥을 먹지 않았다. 경이 두려워하여 육단하여 사죄했으나 허용치 않았다.
온 문중(門中)과 형 건이 육단하니 만석군이 꾸짖어 말하기를 " 내사는 존귀한 사람이니 마을에 들어오면 마을안의 어른과 노인이 모두 달아나 숨는다. 내사가 수레 안에 앉아서 태연한 것이 진실로 마땅하다." 하고, 경을 돌아가게 했다. 이때부터 경과 여러 아들들이 마을의 문에 들어서면 수레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漢書, 萬石君列傳-
*萬石君 : 석분과 그의 네 아들 建, 甲, 乙, 경(慶)이 모두 벼슬이 2000석에 이르럿기 때문에 세상에서 만석군으로 불렀음. *로마(路馬): 임금이 타는 노거(路車)를 끄는 말. *軾식 : 수레 앞의 가로막이 나무를 손으로 잡고 몸을 굽혀서 경의를 표함. *必朝服見之不名 : 반드시 조복을 입고 만나보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비록 자손이라 하더라도 임금의 벼슬아치임을 소중히 여기는것임. *誚讓 말로 꾸짖음. 誚초 꾸짖을 초. *因長老 :족친중에 나이 많은이를 통하여. *肉袒 육단: 사죄의 표시로 윗옷을 벗어서 윗몸을 드러내는 것. *申申如也 : 온화하고 순한 모습.申申 거듭하다.반복하다. *訢訢如也 은은여야:온화하고 즐거운 모습.訢은 :기뻐할 흔. 화평할 은.공손할 은. 찔 희. *僮동 : 아이 동. 굽실거릴 동. 아이종 동.어리석을 동. *稽首계수 :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함. *俯伏 부복: 몸을 굽혀서 엎드림. *質行 : 질박(質朴)한 행실. *無恙 무양: 몸에 이상이 없는 것. 恙 병 양. 근심할 양. *子舍 : 침실곁에 시중드는 사람이 거처하는 작은 방. 아들. 각 읍에 원의 아들이 거처하는 곳. *中裙중군 : 속옷. 裙군 치마 군.속옷. *厠牏치투: 요강. 牏투 요강 투.담틀 투.변기. 땀받이. *浣滌완척 : 세탁. *擧宗 : 온 문중. *固當 : 질실로 마땅하다. 여기서는 비꼬는말. *謝罷 : 가라고 하는 것. 善行,044 疏廣爲太子太傳. 上疏乞骸骨, 加賜黃金二十斤, 太子贈五十斤,
歸鄕里, 日令家供具設酒食, 請族人故舊賓客, 相與娛樂, 數問其家, 金餘尙有幾斤. 趣賣以供具.
居歲餘廣子孫竊謂其昆弟老人廣所信愛者, 曰, 子孫冀及君時, 頗立産業基址. 今日飮食費且盡. 宜從丈人所, 勸說君, 置田宅.
老人卽以閒暇時爲廣言此計, 廣曰, 吾豈老悖, 不念子孫哉. 顧自有舊田廬. 令子孫勤力其中, 足以共衣食, 與凡人齊. 今復增益之, 以爲嬴餘, 但敎子孫怠惰耳.
賢而多財, 則損其志, 愚而多財, 則益其過. 且夫富者, 衆之怨也. 吾旣無以敎化子孫. 不欲益其過而生怨.
又此金者, 聖主所以惠養老臣也. 故樂與鄕黨宗族, 共享其賜, 以盡吾餘日. 不亦可乎. 광이 시골로 돌아와 날마다 집사람을 시켜 공궤(供)하는 준비를 갖추어 술과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친족과 친구와 손을 청하여 서로 즐겼다. 자주 집 사람에게 금이 아직 몇 근이 남았느냐고 물으며 찾아서 준비하기를 재촉했다.
한해가 넘으니 광의 자손이 은밀히 광과 형제되는 노인 중에 광이 믿고 사랑하는 이를 찾아가 말하기를 " 자손들은 가군(家君)이 계실 적에 산업(産業)의 터전을 확고히 만들기를 바라는데 오늘에 와서 음식의 비용도 다 떨어져 가고있습니다. 어른께서 가군께 권고하여 전택을 마련케 해 주십시오." 하였다.
노인이 한가한 시간에 광에게 이같은 계획을 말하니, 광이 말하기를 " 내 어찌 늙고 망령들어서 자손을 생각지 않으랴. 생각컨데 내 집에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지(田地)와 농막(農幕)이 있어서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 부지런히 힘쓰게 한다면 의식을 공급하여 일반 사람과 가지런히 힘쓰게 한다면 의식(衣食)을 공급하여 일반 사람과 가지런히 살기에 족하다. 이제 더 준비하여 여유 있게 한다면 그것은 다만 자손에게 게으름을 가르칠 뿐이다.
현명하면서 재물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損傷)하고 어리석으면서 재물이 많으면 그 허물을 더 하게 된다. 거기에다 부(富)라는 것은 뭇사람이 미워하는 것이다. 내 이미 자손을 교화(敎化)함이 없는데, 그 허물을 더하여 원망을 사게 하고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황금은 성주(聖主)께서 늙은 신하를 은혜롭게 기르시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즐거이 향당(鄕黨). 종족(宗族)과 함께 그 내려 주신 은혜를 누리면서 나의 여생을 마치는 것이 또한 좋지 않으랴." 하였다. -漢書, 疏廣列傳-
*乞骸骨 걸해골: 나이 늙음을 이유로 벼슬을 그만두고 몸을 쉬게하기 바람. *加賜 : 일반 하사금 이외에 특별히 더 주는 것. *供具 : 연회하는 기구를 갖춤. *趣 뜻 취. 재촉할 촉.풍취 취. 促과 같으니 재촉하는것. 추창할 취.추마벼슬 추. *足以共衣食 : 의식을 공급하기에 족함. 共은 供과 통함. *嬴餘): 여유 있는 것. 嬴영 :찰 영. 풀 영 가득할 영. 남을 영. 供具 부처나 보살(菩薩)에게 공양(供養)하는 향(香)ㆍ화(華)ㆍ번개(幡蓋)ㆍ음식(飮食) 따위, 또는 그런 것을 공양(供養)하는 데 쓰는 그릇 善行,045 龐公未嘗入城府, 夫妻相敬如賓. 劉表候之. 龐公釋耕於壟上, 而妻子耘於前,
表指而問曰, 先生若居畎畝而不肯官祿. 後世何以遺子孫乎.
龐公曰, 世人皆遺之以危, 今獨遺之以安. 雖所遺不同, 未爲無所遺也. 表嘆息而去. 표가 방공을 가리키며 묻기를 " 선생이 고생스럽게 전리(田里)에 살면서 관록(官祿)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다음날 무엇을 자손에게 물려 주시렵니까?" 하니 ,
방공이 말하기를 " 세상 사람은 모두 위태로운 것을 자손에게 물려주지만 , 이제 나는 홀로 편안한 것을 물려 주려고 합니다. 비록 물려주는 것같지는 않지만 물려줄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표가 탄식하고 가버렸다. -後漢書, 逸民列傳- .
*畎畝견무:논밭. 들. 경작지. 畝무 .밭이랑 무. 畎견 : 밭도랑 견.산골도랑 견. *遺之以危 : 위태한 것을 물려 줌. 벼슬살이는 경쟁의 대상으로 봄. 善行,046 陶淵明爲彭澤令, 不以家累自隨. 送一力, 給其子, 書曰, 汝旦夕之費, 自給爲難, 今遺此力, 助汝薪水之勞. 此亦人子也. 可善遇之. *薪水之勞 :땔나무를 주워 모으고, 먹을 물을 긷는 수고, 곧 밥을 짓는 노고(勞苦)라는 뜻으로, 일상(日常)의 일에 몸을 아끼지 않고 노력(努力)하여 남을 섬김을 이르는 말 善行,047 崔孝芬兄弟, 孝義慈厚. 弟孝暐等奉孝芬, 盡恭順之禮, 坐食進退, 孝芬不命則不敢也,
鷄鳴而起, 且溫顔色, 一錢尺帛, 不入私房, 吉凶有須, 聚對分給. 諸婦亦相親愛, 有無共之.
孝芬叔振旣亡後, 孝芬等承奉叔母李氏, 若事所生, 旦夕溫凊, 出入啓覲, 家事巨細一以咨決,
每兄弟出行, 有獲則尺寸以上皆入李之庫, 四時分賚李氏自裁之. 如此二十餘歲. 닭이 울면 일어나서 얼굴 빛을 온화하게 하며 한 푼의 돈과 한 자의 비단도 개인의 방에 들이지 않고 길. 흉사에 쓸 물건이 있으면 모여 앉아서 나누어 주었다. 부인(婦人)들은 또한 서로 친애하여 있고 없는 것을 함께 했다.
효분의 숙부 진(振)이 죽은 뒤에 효분 등이 숙모 이씨(李氏)를 받들어 봉양하기를 마치 나를 낳아준 어머니 섬기듯 하여 아침 저녁으로 문안 드리고, 나가고 들어옴에 반드시 여쭙고 뵈며, 집안일의 크고 작은 것을 한결같이 물어서 결정했다.
형제가 나가 다닐 때 마다 얻는 것이 있으면 한자. 한 치 이상의 것은 모두 이씨의 곳간에 넣었으며, 사시(四時)로 나누어줌을 이씨가 스스로 요량하더니, 이과 같이 하기를 20여 년이었다. -北史, 최연列傳-
*吉凶有須: 길사나 흉사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이 뜻. 須 필요하다. ~할 필요가 있다. *承奉 : 뜻을 받들어 봉양함. *出入啓覲 출입계근: 나갈 때 나간다고 아뢰고 들어오면 가서 뵙는것. 覲 뵐 근. *尺寸以上 : 한자 한치를 말하니, 극히 작은 것을 말함. *四時分賚 사시분뢰: 사계절을 통하여 나누어 주는 것.賚 줄 뇌(뢰). 줄 래. 善行,048 王凝常居慄如也. 子弟非公服, 不見, 閨門之內若朝廷焉. 御家以四敎. 勤儉恭恕. 正家以四禮. 冠婚喪祭. 聖人之書及公服禮器不假, 垣屋什物必堅朴, 曰, 無苟費也. 門巷果木必方列曰, 無苟亂也. 왕응(王凝)은 평상시에 거처(居處)할 때에도 몸가짐을 엄숙하게 하고 삼갔다. 그 자세들이 공복(公服)차림이 아니고는 뵙지 못하여 규문(閨門) 안이 조정(朝廷)처럼 엄숙했다. 네 가지 가르침으로 집을 다스리니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공손하고, 남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며, 네 가지 예법으로 집안의 법도를 바로 잡으니 관(冠). 혼(婚). 상(喪). 제(祭)다. 성인(聖人)의 글과 기물을 반드시 견고하고 검박하게 하며 말하기를 " 쓸데없는 비용을 지출함이 없게 하라." 하고, 문으로 들어오는 길에 심은 살구나무는 반드시 방정(方正)하게 심게 하며 말하기를 " 어지럽게 함이 없게 하라." 하였다. -文中子- *慄如也 : 엄숙하고 삼가는 모습. 慄 떨릴 율(률). 두려워하다. 떨다. *垣屋什物 원옥집물 : 垣원 담 원. 울타리. 什物집물. 살림살이에 쓰는 기물을 말함. *苟費 : 쓸데없는 비용. 善行,049 張公藝九世同居. 北齊隋唐, 皆旌表其門.
麟德中, 高宗封泰山, 幸其宅, 召見公藝, 問其所以能睦族之道, 公藝請紙筆以對, 乃書忍字百餘以進.
其意以爲宗族所以不協, 由尊長衣食, 或有不均, 卑幼禮節, 或有不備, 更相責望, 遂爲乖爭. 苟能相與忍之, 則家道雍睦矣. 인덕(隣德) 연간에 고종(高宗)이 태산(泰山)에 봉선(封禪)하고 그 집에 행차하여 공예를 불러 보고 능히 목족(睦族)하는 도리를 물었다. 공예가 종이와 붓으로 대답하기를 청하여 " 참을 인(忍)" 자 100여자를 써서 올렸다.
그 의미는 종족(宗族)이 화목치 못한 까닭이란 존장(尊長)이 의복. 음식을 분배함이 고르지 못함에 있고, 항렬이 낮은 자와 젊은이들이 예절에 불비(不備)함이 있어서 서로 책망하고 의견이 대립되어 다투는 데 있으므로, 능히 참는다면 가도(家道)가 화목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舊唐書, 孝友列傳-
*旌表 정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함. 旌 기 정. 왕명을 받은 신하에게 신임의 표시로 주던 기 *隣德 인덕: 당나라 고종때의 연호. *封泰山 : 봉은 봉선이니 흙을 모아 단을 쌓고 제사 지내는것.封禪봉선: 임금이 흙으로 단을 모아 하늘에 제사(祭祀) 지내고, 땅을 깨끗이 쓸어 산천(山川)에 제사(祭祀) 지내던 일 봉사(封祀). 封 봉할 봉 ㉠봉하다 ㉡흙더미를 쌓다, 높이다 ㉢북돋우다, 배양하다 *乖爭 괴쟁: 뜻이 맛지않아서 다투는것. *雍睦옹목 : 화목.雍 화할 옹. 善行,050 韓文公作董生行曰, 淮水出桐栢山, 東馳遙遙, 千里不能休, 淝水出其側, 不能千里, 百里入淮流. 壽州屬縣有安豊. 唐貞元年時, 縣人董生召南, 隱居行義於其中. 刺史不能薦. 天子不聞名聲. 爵祿不及門. 門外惟有吏, 日來徵租更索錢.
嗟哉董生. 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息, 或山而樵, 或水而漁. 入廚具甘旨, 上堂問起居. 父母不慼慼, 妻子不咨咨.
嗟哉董生. 孝且慈人不識, 唯有天翁知, 生祥下瑞無時期. 家有狗乳出求食, 雞來哺其兒, 啄啄庭中拾蟲蟻, 哺之不食鳴聲悲, 彷徨躑躅久不去, 以翼來覆待狗歸.
嗟哉董生. 誰將與儔. 時之人夫妻相虐, 兄弟爲讎, 食君之祿, 而令父母愁. 亦獨何心.
嗟哉董生, 無與儔. 아아! 동생(董生)이여, 아침에 일어나 밭 갈고 밤에 돌아와 옛사람의 글을 읽어 날이 다하도록 쉬지 않네. 혹 산에 땔나무하고, 혹 물에 가서 고기를 낚아 부엌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 장만하고, 당(當)에 올라서 문안 드리니 부모님 근심하지 않으시고 처자는 원망하지 않누나.
아아! 동생이여, 효성스럽고 인자(仁慈)하건만 사람은 알지 못하고 오직 하늘이 알아서, 상서(祥瑞)를 내리심이 기약(期約)없네. 집에 개 있어, 새끼 낳고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가니, 닭이 와서 그 새끼를 먹이네, 뜰 안의 벌레와 개미를 쪼아서 먹이려 하나 먹지 않고 우는 소리가 애처러우니 방황하고 머뭇거리며 오래도록 떠나가지 못하다가 날개로 덮어주고 개가 오기를 기다리누나.
아아! 동생이여 뉘 있어 행실이 그와 짝할까. 시속(時俗)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 학대하고 형제가 원수되며, 임금의 녹(祿)을 먹으면서도 부모를 근심시키니 이 또한 무슨 심사(心思)인가.
아아! 동생이여, 행실이 그대와 짝할 사람 없네." 하였다. -昌黎集-
*韓文公 :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으로 이름은 유(愈), 자는 퇴지(退之), 문은 시호다. *董生行 : 동생을 두고 지은 노래. 동생의 이름은 소남이다. *淝水 : 합비현에 있는 강. 중국(中國) 안휘성(安徽省)의 서북부(西北部)에 있는 강. 이 성(省)의 합비현(合肥縣) 자봉산(紫逢山)에서 발원하여 서북으로 흘러 회수(淮水)로 들어감. 淝비 : 물이름 비. *貞元 : 당나라 덕종의 연호. *刺史 : 주의 장관(長官) *徵租 : 조세를 징수하는것. *入廚具甘旨입주구감지 :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 하는 것. 廚 부엌 주.甘旨 : ①좋은 맛 ②또 맛있는 음식(飮食) . *慼慼척척 근심하는것. 慼: 근심할 척. 슬플 척. *咨咨 : 원망하는것. 물을 자. *生祥下瑞無時期생상하서무시기 : 기약이 없이 수시로 상서를 내리는 것. 祥 상서 상. 瑞 상서 서.祥瑞 경사(慶事)롭고 길한 징조(徵兆). *啄啄탁탁 부리로 쪼는것. 쪼을 탁. *彷徨躑躅방황척촉 : 머뭇거리고 차마 가지 못하는것.躑躅 척촉: (아무런 목적 없이) 이리저리 거닐다. 배회(徘徊)하다. 躑척:머뭇거릴 척 *躅촉 : 자취 촉. 강동강동뛸 촉. *誰將與儔수장여주 : 누구와 장차 짝지을 수 있을까. *儔주. 짝주 .누구 주. 가릴 주. ■註 : 한문공(韓文公)은 당나라의 문인(768-824)이다. 등주 남양 출신으로 자는 이름은 유(愈),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 시호는 문(文)이다. 송 대 이후 성리학의 선구자였던 중국 당나라의 문학가 겸 사상가.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사륙변려문을 비판하고 고문(古文)을 주장하였다. 관직은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으며, 사후에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추존됐다. 그는 후대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쳐 ‘한문공’이라 불렀다. 시문집에 《창려선생집》 따위가 있다. 善行,051 唐河東節度使柳公綽在公卿間, 最名有家法. 中門東有小齋. 自非朝謁之日, 每平旦輒出至小齋, 諸子仲郢皆束帶, 晨省於中文之北.
公綽決私事, 接賓客, 與弟公權及群從弟再會食, 自朝至莫不離小齋, 燭至則命一人子弟, 執經史, 躬讀一過訖, 乃講議居官治家之法,
或論文, 或聽琴, 至人定鍾, 然後歸寢, 諸子復昏定於中門之北. 凡二十餘年, 未嘗一日變易.
其遇飢歲, 則諸子皆蔬食. 曰, 昔吾兄弟侍先君爲丹州刺史, 以學業未成不聽食肉. 吾不敢忘也.
姑姊妹姪有孤嫠者, 雖疎遠, 必爲擇壻嫁之, 皆用刻木粧奩, 纈文絹爲資裝. 常言, 必待資粧豐備, 何如嫁不失時.
及公綽卒, 仲郢一遵其法, 事公權如事公綽, 非甚病, 見公權未嘗不束帶. 爲京兆尹鹽鐵使, 出遇公權於通衢, 必下馬端笏立, 候公權過, 乃上馬,
公權莫歸, 必束帶迎候於馬首. 公權屢以爲言, 中郢終不以官達有小改.
公綽妻韓氏相國休之曾孫. 家法嚴肅儉約, 爲搢紳家楷範. 歸柳氏三年無少長未嘗見其啓齒, 常衣絹素, 不用綾羅錦繡,
每歸覲不乘金碧輿, 祗乘竹兜子, 二靑衣, 步屣以隨. 常命粉苦蔘黃連熊膽, 和爲丸, 賜諸子, 每永夜習學含之, 以資勤苦. 공작이 집안 일을 처결하고 빈객을 접대하며, 아우 공권(公權) 및 여러 종제(從弟)와 함께 두 번 모여서 식사(食事)하여 아침에서 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작은 집을 떠나지 않았다.. 촛불이 들어오면 자제 한 사람에게 명하여 경서(經書)나 사기(史記)를 손에 잡게 하며 친히 한번 읽고 나서 벼슬살이하고 집을 다스리는 법을 강론(講論)했다.
혹 글을 논하고 혹 거문고를 듣다가 인정(人定)의 종(鍾)이 울린 뒤에야 침실로 돌아가니, 여러 아들이 다시 중문 북쪽에서 밤 문안을 드렸다. 이렇게 하기를 무릇 20여 년에 일찍이 하루도 변경하지 않았다.
흉년을 만나면 여러 아들에게 모두 나물 음식을 먹게하고 말하기를 " 지난날 우리 형제가 선군(先君)을 모실 때 선군께서는 단주 자사(丹州刺史)로 계셨건만 우리의 학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고기 먹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는데, 내 감히 이것을 잊지 못한다." 하였다.
고모 자매 조카 항렬이 되는 자 중에 아버지를 여의였거나 과부가 된 자가 있으면 비록 소원(疏遠)한 자라도 반드시 신랑을 가려서 시집보내 주었으며, 모두 나무에 조각한 화장대(化粧臺)와 수놓아 물들인 무늬 있는 비단으로 자장(資裝)을 마련해 주었다. 항상 말하기를 " 반드시 자장이 풍부하게 갖추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찌 시집가는 때를 놓치지 않음만 같으랴." 하였다.
공작이 죽은 뒤에 중영이 한결같이 그 법도에 따랐으니, 공권 섬기기를 공작을 섬기는 것같이 했다. 심한 병이 있는 때가 아니면 공권을 뵐 때 일찍이 의관을 정제하지 않은 일이 없었으며, 경조윤(京兆尹)으로 염철사(鹽鐵使)로 있을 때 밖에 나갔다가 길에서 공권을 만나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홀(笏)을 단정히 손에 잡고 서서 공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비로소 말에 올랐다.
공권이 날이 저물어 돌아오면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말머리 앞에서 맞아 문후(問候)하니, 공권이 여러 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건만 중영은 벼슬이 현달(顯達)했다고 하여 끝내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다.
공작의 아내 한씨(韓氏)는 상국(相國)을 지낸 휴지(休之)의 증손녀다. 가법(家法)이 엄숙하고 검소하여 사대부 집의 본이 되었다. 유씨의 집에 시집온지 3년에 어린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일찍이 그가 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늘 무늬 없는 비단을 입고 화려한 비단, 수놓은 비단을 사용하지 않았다.
매양 친정에 근친갈 때에는 금벽여(金碧輿)를 타지 않고 대로 꾸민 교자(轎子)를 탔으며, 푸른 옷 입은 계집종 두 사람이 걸어서 따랐다. 항상 고삼(苦蔘),황련(黃連), 웅담(熊膽)을 가루로 하여 섞어서 환약(丸藥)을 만들고 여러 아들에게 주어서 긴긴 밤 학업을 익힐 때마다 머금어서 근고(勤苦)를 견디게 했다. -溫公家範-
*仲郢중영 : 유공작의 아들로 자는 유몽(諭蒙)이다. *郢영 : 땅이름 영. *人定鍾 : 통행금지 시간을 알리는 종. 해시(亥時), 10시에 해당함. *昏定 : 밤 문안.*蔬食 소사: 채식을 하는것. *孤嫠고리 : 孤고는 아버지를 여의는것이고, 嫠리 과부가 되는 것. 홀어미 리. 과부 리. *刻木粧奩렴각목장렴 : 나무에 조각한 화장대. 奩렴 : 향합 렴. 경대 렴. *纈文絹 힐문견 : 수놓고 물들여서 만든 비단, *纈힐 : 무늬얽힐 혈. 맺을 힐. *屢以爲言 : 여러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金碧輿 금벽여: 당 나라때 명부(命婦)가 타던 가마. *竹兜子죽두자 : 대나무로 엮음 가마. *步屣以隨보사이수 : 걸어서 따르는 것. 屣사 : 삼신 사. ■註1-중영(仲郢) : 유공작의 아들로 자는 유몽(諭蒙). ■註2-인정(人定) : 종을 쳐서 밤에 통행을 금지한 제도. 해시(亥時) 정각에 해당하는 밤 10시 경을 말한다 善行,052 江州陳氏, 宗族七百口. 每食設廣席, 長幼以次坐, 而共食之. 有畜犬百餘, 共一牢食. 一犬不志, 諸犬爲之不食. 善行,053 溫公曰, 國朝公卿能守先法, 久而不衰者, 唯故李相家. 子孫數世至二百餘口, 猶同居共爨,
田園邸舍所收及有官者俸祿, 皆聚之一庫, 計口日給餉, 婚姻喪葬所費, 皆有常數,
分命子弟, 掌其事. 其規模大抵出於翰林學士宗諤所制也.
右, 實明倫. 전지와 집세의 수입과 벼슬살이하는 자의 녹봉(祿俸)을 모두 한 곳간에 모아두고, 식구를 계산하여 날마다 식량을 지급하며, 혼인상장(婚姻喪葬)에 쓰이는 비용이 모두 일정한 액수(額數)였다.
그 일을 자제들에게 나누어 맡겨서 맡아보게 한다. 그러한 법은 대개가 한림학사(翰林學士) 종악(宗악)이 만든 것이다." 하였다.
-溫公集-
*給餉급향 : 식량을 주는 것. *宗諤종악 : 이상국의 아들.자는 창무. 諤악: 곧은 말 악, *共爨공촌: 같은 솥에서 생활함. 爨촌 부뚜막 찬.부뚜막 촌.부엌 촌. 부글부글 끌으려할 촌. ■註 : 이방(李昉)은 송대의 사상가이다. 자는 망원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상국(相國)은 관직으로 백관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저서에 태평어람(太平御覽), 태평광기(太平廣記), 문원영화(文苑英華) 등이 있다.(윤호창의 소학) 善行,054 或問第五倫曰, 公有私乎. 對曰, 昔人有與吾千里馬者, 吾雖不受, 每三公有所選擧, 必不能忘, 而亦終不用也, 吾兄子嘗病, 一夜十往, 退而安寢, 吾子有疾, 雖不省視, 而竟夕不眠. 若是者, 豈可謂無私乎. *第五倫: 제오는 성이고 이름은 륜이며 자는 백어(伯魚)로 後漢사람이다.벼슬이 사공(司空)에 이르러삼공의 하나로 되었으며 한 나라때에는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을 삼공으로 일컬었다. ■註 : 제오(第五)는 성, 이름은 륜(倫). 자는 백어(伯魚)로 후한(後漢)사람. 벼슬이 사공(司空)에 이르러 삼공(三公)의 반열에 올랐다. 한 나라때에는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을 삼공으로 일컬었다.(이기석의 소학). 후한(後漢) 경조(京兆) 장릉(長陵)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성격이 분명해 의행(義行)이 있었고, 광무(光武) 건무(建武) 29년(53)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나중에 회계태수(會稽太守)가 되었다. 재직하면서 무축(巫祝)을 검사해 금지하고 밭갈이 하는 소를 도살하는 것을 막아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장제(章帝)가 즉위하자 사공(司空)에 발탁되었는데, 상소하여 외척들의 발호를 억제할 것을 건의했다. 공무를 받들고 절조를 지켜 관료로서 정백(貞白)하다는 칭송을 들었다. 나중에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귀향했다.(중국역대인명대사전) 善行,055 劉寬雖居倉卒, 未嘗疾言遽色.
夫人欲試寬令恚, 伺當朝會, 裝嚴已訖, 使侍婢奉肉羹, 翻汚朝服,
婢遽收之. 寬神色不異, 乃徐言曰, 羹爛汝手乎. 其性度如此. 부인이 관을 시험하여 성내게 하고자, 조회(朝會)에 나갈 떼기 되어 정장(正裝)을 마치기를 기다려서 시비(侍婢)로 하여금 고기국을 올리는 체하고 엎질러 조복(朝服)을 더럽히게 했다.
시비가 황급하게 엎질러진것을 거두니 관이 신색(神色)을 변함없이 천천히 말하기를 " 국이 네 손을 데지 않았느냐.? " 하니 그 성품과 도량이 이와 같았다. -後漢書, 劉寬列傳-
*倉卒 : 뜻밖에 급한 일이 생긴것. *疾言遽色질언거색 : 당황하여 말을 빨리하고 얼굴 빛이 변하는 것. *恚에 : 성낼 에. 원망할 에. *飜汚번오 : 엎질러서 더럽힘. *性度 : 성품과 도량. 善行,056 張湛矜嚴好禮, 動止有則, 居處幽室, 必自修整, 雖遇妻子, 若嚴君焉. 及在鄕黨, 祥言正色. 三輔以爲儀表.
建武初爲左馮翊. 告歸平陵, 望寺門而步, 主薄進曰, 明府位尊德重. 不宜自輕.
湛曰, 禮下公門, 軾路馬, 孔子於鄕黨恂恂如也. 父母之國, 所宜盡禮. 何爲輕哉. 건무(建武) 초에 좌풍익(左馮翊)이 되어서 말미를 받아 평릉(平陵)으로 돌아갔다. 관부(官府)의 문을 바라보고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니, 주부(主簿)가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 사또께서는 지위가 높고 덕망(德望)이 무거우니 스스로 몸을 가벼이해서는 안됩니다." 하니
담이 말하기를 " 예(禮)에 공문(公門) 앞에서는 수레에서 내리고, 노마(路馬)를 보면 식(軾)한다고 했으며, 공자께서도 향당에 있어서는 근신(謹愼)하고 겸손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부모의 고을에서는 마땅히 예절을 다해야 하는 것이니 어찌 가벼이한다고 하랴." 하였다. -後漢書, 張湛列傳-
*張湛장담 : 평능사람으로 자는 자효(子孝)다. *幽室 : 남이 보지 않는 그윽한 방. *三輔 : 서울을 함께 다스리는 관청으로 경조윤, 좌풍익, 우부풍을 말함. *建武: 후한 광무제때의 연호. *告 : 벼슬아치가 휴가 받는 것. *下公門 : 관부의 문 앞에서 수레에서 내리는 것. *恂恂 : 근신하고 공손한 모습. ■註1 : 장담(張湛)은 후한의 평릉 사람으로 자는 자효(子孝). 관직은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이르렀으며 성품이 올곧고 강직하기로 유명하다.(윤호창의 소학) ■註2 : 삼보(三輔)는 중국 한(漢)나라 때의 수도 장안(長安:西安 북서쪽) 주변의 행정구역 또는 그곳의 장관(長官)을 말한다. 장안 및 그 동부를 경조윤(京兆尹), 북부를 좌풍익(左馮翊), 서부를 우부풍(右扶風)이라 하고, 장관은 모두 장안의 성(城) 안에 있었다. 진(秦)나라 때까지는 내사(內史)라고 불린 것을, 한나라 때 계승하여 우내사(右內史)·좌내사(左內史)로 나누었다. BC 104년 이후 경조윤·좌풍익·우부풍의 삼보가 되었다. 善行,057 楊震所擧荊州茂才王密爲昌邑令. 謁見, 懷金十斤, 以遺震, 震曰, 故人知君, 君不知故人何也.
密曰, 莫夜. 無知者. 震曰, 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 密愧而去. 밀이 말하기를 " 어두운 밤이니 아는 자가 없습니다." 하니 진이 말하기를 "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 자가 없다고 하랴." 하였다. 밀이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後漢書, 郭泰傳-
*楊震: 후한사람으로자는 백기(伯起)이며 형주 자사를 지냈음. *모야(莫夜): 어두운 밤. ■註 : 무재(茂才)는 수재(秀才)와 같은 의미로 재주가 뛰어난 삼을 지칭한다. 후한 광무제 유수(劉秀)의 이름을 피해 무재라고 불렀다. 후대에 와서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에게 수재란 명칭을 부여하기도 했다.(윤호창의 소학) 善行,058 茅容與等輩避雨樹下. 衆皆夷踞相對, 容獨危坐愈恭,
郭林宗行見之而奇其異, 遂與共言, 因請寓宿.
旦日容殺鷄爲饌, 林宗謂, 爲己設. 旣而以供其母, 自以草蔬與客同飯,
林宗起, 拜之曰, 卿賢乎哉. 因勸令學, 卒以成德. 곽임종(郭林宗)이 지나다가 보고 그 남다른 것을 기특하게 여겨 그와 함께 이야기하고 이로 인하여 청해서 그의 집에서 유숙(留宿)하게 되었다.
아침에 용이 닭을 잡아 음식을 만드니 임종은 자기를 위하여 마련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닭으로 만든 음식은 그의 어머니께 드리고 자신은 나물 반찬으로 손과 함께 밥을 먹었다.
임종이 일어나 절하며 말하기를 " 그대는 참으로 착하다." 하고, 배우기를 권하여 마침내 덕망(德望) 높은 인물이 되었다. -後漢書, 郭泰傳-
善行,059 陶侃爲廣州刺史, 在州無事, 輒朝運百甓於齋外, 莫運於齋內.
入問其故. 答曰, 吾方致力中原. 過爾優逸, 恐不堪事. 其勵志勤力, 皆此類也.
後爲荊州刺史. 侃性聰敏, 勤於吏職, 恭而近禮, 愛好人倫. 終日斂膝危坐, 閫外多事, 千諸萬端, 罔有遺漏,
遠近書疏, 莫不手答, 筆翰如流, 未嘗壅滯, 引接疏遠, 門無停客.
常語人曰, 大禹聖人, 乃惜寸陰. 至於衆人, 當惜分陰. 豈可逸遊荒醉, 生無益於時, 死無聞於後. 是自棄也.
諸參佐或以談戱廢事者, 乃命取其酒器蒱博之具, 悉投之于江, 吏將則加鞭扑, 樗蒱者, 牧猪奴戱耳. 老莊浮華, 非先王之法言. 不可行也.
君子當正其衣冠, 攝其威儀. 何有亂頭養望, 自謂弘達耶.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 " 내 바야흐로 중원을 회복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나치게 편안하면 마음이 해이(懈弛)해져서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했으니. 그 뜻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힘쓰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뒤에 형주자사가 되었다. 간(侃)이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직무에 부리런했으며, 태도가 공손하여 행동이 절로 예절에 맞고 인륜의 도리를 좋아했다. 종일 무릎을 모아 꿇어앉아 있었으나 천 가지 만 가지로 복잡한 장수의 일을 처리하여 빈틈이 없었다.
멀고 가까운 데서 온 글들을 모두 손수 답장을 썼건만 문장이 물흐르듯 하여 일찍이 막힘이 없었으며, 소원(疏遠)한 사람도 모두 인견(引見)하여 문에 정체(停滯)되어 있는 손(賓)이 없었다.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 대우(大禹)는 성인(聖人)이었는데도 촌음(寸陰)을 아꼈으니 뭇사람은 분음(分陰)을 아껴야 한다. 어찌 편안하게 놀고 술취하여 세월을 헛되이 보내랴. 살아서 시대에 이익됨이 없고, 죽어서 후세에 이름이 알려짐이 없다면 이는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하였다.
막료(幕僚)들 중에 잡담과 유희(遊戱)로 일을 폐(廢)하는 자가 있으면, 그 술 그릇과 저포(樗포) 장기. 바둑 등의 도구를 빼앗아 서 모두 강에 버리고, 이를 범한 자가 벼슬아치나 장교(將校)이면 매를 치고 말하기를 " 놀음은 돼지 먹이는 천인들이 하는 짓이고, 노,장(老莊)의 실지에 맞지 않는 공론(空論)은 선왕(先王)의 법도 있는 말이 아니니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을 바르게 하여 위의(威儀)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찌 봉두난발(蓬頭亂髮)을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기르면서 스스로 도에 통달했다고 하랴." 하였다. -後漢書, 陶侃列傳-
*致力中原 : 당시 양자강 이북이 오랑캐 땅이 었기 때문에 중원을 회복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것. *斂膝危坐. 斂膝端坐염슬단좌. 무릎을 거두고 옷자락을 바로 하여 단정히 앉음. 危坐: 정좌(正坐) . *閫外곤외 : 임금이 있는 도성 밖을 말하니 장수가 지방을 맡아 지킴을 말함.①문지방의 밖 ②왕성(王城)의 밖 閫곤 : 문지방 곤. *千緖萬端: 일의 단서가 천만가지가 되는 것. *罔有: 없는 것. *手答: 손수 답장을 쓰는 것. *壅滯옹체 : 막힘.막혀서 걸림. 막히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함 *參佐 : 막좌. 막료. *蒱博포박 : 도박, 노름.蒱 도박 포. *鞭扑편복 : 매를 치는 것.편달(鞭撻) 扑칠 복. 종아리채 복. *牧猪奴목저노 : 돼지를 잡는 천인. 善行,060 王勃楊炯盧照鄰駱賓王, 皆有文名. 謂之四傑. 裵行儉曰, 士之致遠, 先器識, 而後文藝.
勃等雖有文才, 而浮躁淺露. 豈享爵祿之器耶. 楊子沈靜, 應得令長, 餘得令終爲幸.
其後, 勃溺南海, 照鄰投潁水, 賓王被誅, 炯終盈川令. 皆如儉之言. 발(勃) 등이 비록 글 재주는 있지만 부박(浮薄) 경조(輕躁)하여 생각이 얕고 드러나니 어찌 작록(爵祿)을 누릴 그릇이 되랴. 양자(楊子)는 침착하고 고요하니 영장(令長)을 얻어 하겠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잘 죽으면 다행한 일이다." 하였다.
그 뒤 발은 남해(南海)에 빠져 죽고, 조린은 몸을 영수(潁水)에 던졌으며, 빈왕은 사형을 당하고 형은 영천령(盈川令)으로 생애를 마쳤다. 모두 검의 말과 같았다. -資治通鑑-
*王勃 : 당대의시인으로 자는 子安으로 初唐四傑의 한 사람으로 14세때 등왕각서(騰王閣序)를 지어 文名을 떨쳤으나 29세에 남해에 빠져 죽음. *楊炯 : 영천영을 지냈음. *盧照隣 : 자는 승지이고 신병을 비관하여 영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駱賓王 : 측천무후때 불만을 품고 서경업과 반란을 일으켰다가 잡혀서 사형당함. *裵行儉 : 자는 수약(守約), 돌궐을 평정했음. *令終 : 天命에 죽는 것. 善行,061 孔戡於爲義, 若嗜慾, 不顧前後, 於利與祿, 則畏避退怯, 如懦夫然. *孔戡 : 공자의 38대손으로 자는 군승(君勝)이다. ■註 : 공감(孔戡)은 당나라때 사람으로 자는 군승(君勝), 공자의 38대손. 善行,062 柳公綽居外藩. 其子每入境, 都邑未嘗知, 旣至, 每出入, 常於戟門外下馬, 呼幕賓爲丈, 皆許納拜, 未嘗笑語款洽. *外藩: 당시에는 나라의 변경에 절도사를 두어서 수비케 했는데 나라의 울타리가 된다하여 얼컫는 말이다. *款洽관흡 : 극히 친밀하여 무간하게 지내는 것. 善行,063 柳仲郢以禮律身, 居家無事, 亦端坐拱手, 出內齋未嘗不束帶.
三爲大鎭, 廐無良馬, 衣不薰香, 公退必讀書, 手不釋卷.
家法在官, 不奏祥瑞, 不度僧道, 不貸臟吏法,
凡理藩府, 急於濟貧卹孤, 有水旱, 必先期假貸,
廩軍食, 必精豐, 逋租必貰免,
舘傳必增飾, 宴賓犒軍必華盛,
而交代之際, 食儲帑藏, 必盈溢於始至,
境內有孤貧衣纓家女, 及笄者, 皆爲選壻, 出俸金爲資裝, 嫁之. 세 번 절도사를 지냈건만 마굿간에 좋은 말이 없고, 옷에 향내를 풍기게 하는 일이 없었으며, 공무(公務)를 마치고 물러나오면 반드시 글을 읽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가법에 " 관직(官職)에 있을 때에는 임금에 상서(祥瑞)가 있다고 아뢰지 않는다. 승려(僧侶), 도사(道士)를 인정하는 도첩(度牒)을 발행하지 않으며, 탐장죄(貪贓罪)를 범한 관리를 처벌하는 법을 늦추지 않는다.
무릇 번진(蕃鎭)에 나가 있을 때에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고아를 구휼(救恤)하는 일을 급히 하며, 수해(水害). 한재(旱災)가 있을 때에는 정해진 기한을 앞당겨 양곡을 대여(貸與)하며,
군인에게 주는 급료는 반드시 곡식을 정선(精選)하고 풍부하게 하며, 미납(未納)된 조세(租稅)는 반드시 면제하며,
관사(館舍)의 역(驛)을 증축하고 잘 꾸미며, 손님을 위하여 연회하고 군대를 호궤하는 것은 반드시 화려하고 셩대하며,
벼슬이 갈려 신임 절도사와 교대할 때에는 식량창고와 비단과 돈을 보관하는 곳간이 반드시 처음 부임해 왔을 대보다도 가득하고 넘치게 하며,
지경 안에 부모 없는 가난한 양반의 딸로서 시집갈 나이가 된 자가 있으면 모두 신랑감을 가리고, 자기 봉급 속에서 비용을 내어 혼수(婚需)를 마련해서 시집모내 준다." 하였다. -柳氏家訓-
*郢: 땅이름 영. *供手 : 공경하는 뜻을 표하기 위해 두 손을 마주 잡음. *內齋 : 안에 있는 서재. *不奏祥瑞 : 임금께 아첨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상서를 올리지 않는 것. *贓吏法장리법: 탐관오리를 다스리는 법.贓吏 장물죄(贓物罪)를 범(犯)한 관리(官吏) *廩軍食름군식 : 름식은 급료이니 군인에게 주는 급료. 廩:쌀광 름. 여기서는 줄 름. 廩食 름식정부(政府)에서 부조미(扶助米)를 받음, 또는 그 부조미 *逋租포조 : 미납된 조세. *犒軍호군 : 군사들을 위로하여 음식을 대접함. 犒; 호궤할 호. *帑藏탕장 : 돈과 비단을 보관하는 창고,내탕고(內帑庫)에 보관(保管)된 재물(財物) *急笄者급계자: 계는 비녀 꽂는 것이니 비녀 꽂을 나이가 된것. 笄는 비녀 계. 善行,064 柳玭曰, 王相國涯, 方居相位, 掌利權. 竇氏女歸, 請曰, 玉工貨一?. 奇巧. 須七十萬錢.
王曰, 七十萬錢我一月俸金耳. 豈於女惜. 但一?七十萬. 此妖物也. 必與禍相隨. 女子不復敢言.
數月女自婚姻會歸, 告王曰, 前時?爲馮外郞妻首飾矣. 乃馮球也.
王嘆曰, 馮爲郎吏, 妻之首飾有七十萬錢. 其可久乎. 馮爲賈相餗門人. 最密. 賈有蒼頭頗張威福, 馮召而勗之.
未浹旬馮晨謁賈, 有二靑衣捧地黃酒, 出飮之, 食頃而終. 賈爲出涕, 竟不知其由.
又明年王賈皆遘禍. 噫, 王以珍玩奇貨爲物之妖. 信知言矣. 徒知物之妖, 而不知恩權隆赫之妖, 甚於物耶.
馮以卑位貪寶貨, 已不能正其家, 盡忠所事, 而不能保其身. 斯亦不足言矣.
賈之臧獲, 害門客于牆廡之間, 而不知. 欲終始富貴, 其可得乎. 此雖一事, 戒臧數端. 왕애가 말하기를, '70만 전이면 내 한달 봉급이다. 어찌 네게 이것을 아끼랴. 다만 비녀 하나에 70만 전이라면 그것은 요물(妖物)이니 반드시 재앙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니 딸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했다.
몇 달 뒤에 딸이 어떤 집 혼인 모임에서 돌아와 왕애에게 알리기를 ' 전위 비녀는 풍외랑(馮外郞)의 아내의 수식(首飾)이 되었습니다.' 하였다. 풍외랑이란 바로 풍구(馮球)를 말한다.
왕애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풍이 낭리(郎吏)로 있으면서 아내의 수식에 70만전을 들였으니 어찌 오래갈 수 있으랴.' 하였다. 풍은 재상 가속의 하인 중에 매우 위세를 부리는 자가 있어서 풍이 불러다가 그와 같은 행동을 경계했다.
그 뒤 열흘도 채 안되어 풍이 이른 아침에 가속을 뵈러 갔는데, 하인 두 사람이 지황주(地黃酒)를 받들고 나와서 마시게 했다. 마신지 얼마 안되어 숨을 거뒀다. 가속이 눈물을 흘렸으나 마침내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또 이듬해에 왕애와 가속이 모두 화를 입었다. 아아!! 왕애가 진귀한 완호(玩好)와 기이한 보배를 요물로 여긴것은 진실로 사리(事理)를 아는 말이다. 그러나 한갖 물건의 요괴(妖怪)됨을 알 뿐, 임금의 은총이 두텁고 지위. 권력이 혁혁(赫赫)한 것의 요괴돔이 물건보다도 더 심한 것임을 알지 못했다.
풍은 낮은 벼슬아치로서 보화(寶貨)를 탐내어 그 집을 바로 잡지 못하고 또 남을 섬기기를 충성을 다하다가 그 몸을 보전하지 못했으니 이것 또한 족히 말할 것이 못된다.
가속은 그 종이 문객(門客)을 담과 행랑 사이에서 해쳤는데도 알지 못했으니, 부귀(富貴)를 온전히 하러 한들 얻을 수 있으랴. 이것이 비록 한 가지 일이지만 우리에게 경계를 주는 것은 여러 가지다. " 하였다. -柳氏家訓-
*王涯: 당나라 사람으로 자는 광진(廣津)이고 문종때 재상이됨. *賈餗 : 가는 자미이고 하남 사람이다. 餗: 곰 속. *勗之욱지: 권면한다는 뜻이니 여기서는 타이르는 것. 勗욱: 勖과同. 힘쓸 욱. *地黃酒: 지황으로 빚은 술. *遘禍구화 : 화를 당함. 화를 만남. 遘은 만날 구. *恩權隆赫之妖은권륭혁지요 : 은총과 권세가 높고 빛나는 것은 그속에 재앙의 기틀이 잠재하기 때문에 요괴가 된다는 말. *盡忠所事 : 남을 섬기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 *作戒數端작계수단 : 여러가지 훈계를 줌. 善行,065 王文正公發解南省廷試, 皆爲首冠. 或戱之曰, 狀元試三場. 一生喫著不盡. 公正色曰, 曾平生之志, 不在溫飽. *王文正公 : 이름은 증, 자는 봉선이며, 송나라 진종(眞宗) 때 향시, 성시. 정시에 장원으로 뽑혔든 사람이다. 문정은 시호. *發解 : 향시를 말하며 여기에서 합격된자가 성시에 응시할 자격을 줌. 과거(科擧)의 초시에 합격(合格)함 *南省 : 상서성을 일컫는 말로 남성시 또는 성시라고 했고 합격된자가 정시 응시자격을 줬다. 南省試 국자감시(國子監試). 고려(高麗) 때, 국자감(國子監)의 진사(進士)를 뽑던 시험(試驗). 과목(科目)은 시와 부 *廷試정시 : 성시에 합격된자를 모아 천자가 친히 보게하는 시험.중국(中國)의 과거(科擧) 제도(制度)에서 천자(天子)가 성시(省試) 급제자(及第者)를 궁정(宮庭)에 불러 친히 고시(考試)를 보이던 일 *喫著不盡끽착부진 :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한 것. ■註 : 원문에서는 향시(鄕試)를 발해(發解), 성시(省試)를 남성(南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발해라고 한 것은 향시에서 우등자가 있을 때, 지방관청에서 공문서인 해(解)를 중앙정부에 발송해서 시험을 보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남성은 상서성의 다른 이름으로, 향시에 합격한 사람을 남성에 모아 시험을 치르도록 했기 때문에 남성시 혹은 성시라고 한다.(윤호창의 소학) 善行,066 范文正公少有大節. 其於富貴貧賤, 毁譽歡戚, 不一動其心, 而慨然有志於天下.
嘗自誦曰,
士當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也.
其事上, 遇人, 一以自信, 不擇利害爲趨捨.
其有所爲, 必盡其方, 曰, 爲之自我者, 當如是. 其成與否, 有不在我者.
雖聖賢不能必. 吾豈苟哉. 일찍이 스스로 외우기를
" 선비는 마땅히 "천하 사람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 할 것이다." 하였다.
그의 윗사람을 섬기고 남을 대우하는 것은 한결같이 자기 신념(信念)에 따라서 하고, 이롭고 해로움을 가려서 붙들고 버리고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방법을 다하고 말하기를 " 일에 있어 내가 할것은 마땅히 이같이 해야 한다. 그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내게 있지 않다.
비록 성현(聖賢)이라도 능히 기필(期必) 할 수 없거늘 내 어찌 구차하게 하랴." 하였다. -歐陽文忠公集-
*毁譽훼예 : 훼는 비방하는 것이고 예는 칭찬 하는 것.남을 비방(誹謗)함과 칭찬(稱讚)함. 毁譽褒貶 훼예포폄 : 칭찬(稱讚)하고 비방(誹謗)하는 말과 행동(行動) *歡戚환척 : 환은 기쁜 것이고 척은 슬픈 것. *有志於天下 : 천하를 바로잡으려는 뜻이 있는것. ■註 : 범중엄(范仲淹)은 중국 북송 때의 정치가·학자(989~1052). 자는 희문(希文), 시호는 문정(文正). 인종 때에 참정(參政) 지사(知事)가 되어 개혁하여야 할 정치상의 10개 조를 상소하였으나 반대파 때문에 실패하였다. 저서에 《악양루기(岳陽樓記)》, 문집 《범문정공집(范文正公集)》이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善行,067 司馬溫公嘗言, 吾無過人者. 但平生所爲, 未嘗有不可對人言者耳. 善行,068 管寧嘗坐一木榻. 積五十餘年, 未嘗箕股. 其榻上當膝處皆穿. *箕股 : 다리를 키 모양으로 뻗는 것. 箕 키 기. 다리를 뻗고 앉다. *榻 평상 탑. 善行,069 呂正獻公自少謹學, 卽以治心養性, 爲本, 寡嗜慾, 薄滋味, 無疾言遽色, 無窘步, 無惰容, 凡嬉笑俚近之語, 未嘗出諸口, 於世利紛華聲伎游宴, 以至於博奕奇玩, 淡然無所好. 여정헌공(呂正獻公)은 소시(少時)로 부터 학문을 강구(講究)하되 마음을 다스리고 본성을 지르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다. 기호(嗜好)와 욕심을 적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적게 먹고, 말을 빠르게 하거나 당황하여 급히 서두르는 빛이 없고, 급한 걸음걸이를 하지 않았으며, 게으른 얼굴빛을 가지는 일이 없었다. 희롱하는 웃음이나 저속(低俗)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며, 세상의 이득과 분잡(紛雜)하고 화려한 일, 음악. 유연(遊宴)에서부터 장기. 바둑. 진기(珍技)한 구경거리에 이르기까지도 담박(淡泊)하여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呂氏家傳- 善行,070 明道先生終日端坐, 如泥塑人. 及至接人, 則渾是一團和氣. 善行,071 明道先生作字時, 甚敬. 嘗謂人曰, 非欲字好. 卽此是學. 善行,072 劉忠定公見溫公, 問盡心行己之要, 可以終身行之者. 公曰, 其誠乎. 劉公問, 行之何先. 公曰, 自不忘語始.
劉公初甚易之. 及退而自檃栝日之所行與凡所言. 自相掣肘矛盾者多矣. 力行七年以後成. 自此言行一致. 表裏相應, 遇事坦然, 常有餘裕. 유공이 처음에는 매우 쉽게 여겼다. 물러나와서 날마다 행한 일과 말한 것을 비교 검토하고 반성(反省)해 보니 서로 견제(牽制)되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다. 힘써 행한 지 7년 뒤에야 성취(成就)되었다. 이때부터 말과 행동이 일치되고 겉과 속이 서로 호응(呼應)하여 일을 당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고 항상 여유가 있었다. -宋名臣言行錄-
* 檃栝은괄 . 檃도지개 은.바로잡다. 栝 노송나무 괄. 전나무 괄. 檃栝 잘못을 바로 잡는 것. 목재(木材)의 휨을 교정(敎正)하는 기구(器具). *掣肘철주: 팔꿈치를 잡아당긴다는 뜻이니 견제되어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것. 팔굽을 당긴다는 뜻으로, 간섭(干涉)하여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함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掣철 : 끌 체. 당길 철. 肘: 팔꿈치 주. *坦然탄연: 마음이 편안한 것. (마음이) 평온하고 걱정이 없다. 善行,073 劉公見賓客, 談論踰時, 體無攲側, 肩背竦直, 身不少動, 至手足, 亦不移. *攲側 의측 : 옆으로 기울임. 攲의: 기울 의. *竦直 : 곧은 것. 竦송: 공경할 송. 두려울 송. 높일 송. 善行,074 徐積仲車初從安定胡先生學. 潛心力行, 不復仕進, 其學以至誠爲本, 事母至孝. 自言, 初見安定先生, 退頭容少偏. 安定忽厲聲云, 頭容直, 某因自思, 不獨頭容直. 心亦要直也. 自此不敢有邪心. 卒諡節孝先生. *潛心 : 학문에 마음을 기울임.마음을 가라앉힘 *仕進 : 벼슬아치가 규정(規定)한 시각(時刻)에 출근(出勤)함 벼슬길에 나아감. *厲聲 : 성난 목소리. (성이 나서)언성을 높여 큰 소리를 지름, 또는 그 소리 厲: 사나울 려. 위태할 려. 병들 려. 善行,075 文中子之服儉以絜, 無長物焉. 綺羅錦繡不入于室, 曰, 君子非黃白不御. 婦人則有靑碧. *絜결 : 잴 혈, 깨끗할 결 *綺羅錦繡 기라금수: 綺羅기라는 무늬 있는 화려한 비단, 錦繡금수는 수놓은 비단. 綺羅 :곱고 아름다운 비단(緋緞). 곱고 아름다운 비단옷(緋緞-). 錦繡 :①수를 놓은 비단(緋緞) ②또는, 화려(華麗)한 옷이나 직물(織物) 善行,076 柳玭曰, 高侍郞兄弟三人, 俱居淸列, 非速客, 不二羹胾, 夕食齕蔔匏而已. *高侍郞兄弟三人 : 맏이 월(鉞)은 한림학사(翰林學士) 이부시랑(吏部侍郞), 둘째 수(銖)는 급사중(給事中), 셋째 鍇는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냈으며 당 나라 사람이다. *不二羹胾 불이갱자 : 고깃국과 고기 산적을 겸하여 쓰지 않는 것. 胾: 산적점 자. *齕蔔匏흘복포 : 무와 박나물을 먹는 것, 齕: 물 흘, 씹을 흘. 齕무 복. 匏 박 포. ■註-고시랑 형제 삼인(高侍郞兄弟三人) : 맏이 고익(高釴)으로, 자는 교지(翹之)이며, 이부시랑(吏部侍郞)을 거쳐 동주지사를 역임했다. 둘째는 고수(高銖)로 자는 권중(權仲)이며 예부상서, 태상경이 됐다. 셋째 고개(高鍇)는 자가 약금(弱金)이며 예부시랑(禮部侍郞)을 거쳐 안악솬찰사를 역임했다. 모두 시랑을 거쳤으므로 고시랑 삼형제라고 불렀다(윤호창의 소학) 善行,077 李文靖公治居第於封丘門外, 廳事前僅容旋馬. 或言, 其太隘, 公笑曰, 居第當傳子孫. 此爲宰輔廳事誠隘, 爲太祝奉禮廳事, 則已寬矣. *李文靖公: 송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항(沆) 자는 太初 벼슬이 재상에 이르렀으며 문정은 시호임. *封丘門 송나라 도성의 문 이름임. 善行,078 張文節公爲相, 自奉如河陽掌書記時. 所親故規之曰, 今公受俸不少, 而自奉若此. 雖自信淸約, 外人頗有公孫布被之譏. 公宜少從衆. 公嘆曰, 吾今日之俸, 雖擧家錦衣玉食, 何患不能. 顧人之常情, 由儉入奢易, 由奢入儉難. 吾今日之俸, 豈能常有, 身豈能常存. 一旦異於今日, 家人習奢已久. 不能頓儉, 必至失所. 豈若吾居位去位身存身亡如一日乎. *張文節公 : 이름은 知白, 자는 용회(用晦) 문절은 시호임. *公孫布被之譏 : 한 나라 때의 정승 공손홍이 베이불을 만드니 급암이 말하기를" 공손홍이 봉급이 많은데도 베 이불을 덮는 것은 이름을 낚는 속임수다." 라고 한 고사에서 나온 말. *宜少從衆 : 조금은 여러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 *去位 : 벼슬 자리에서 떠남. ■註-공손포피지기(公孫布被之譏) : 한 나라 때의 정승 공손홍이 베 이불을 만드니 급암이 말하기를 "공손홍이 봉급이 많은데도 베 이불을 덮는 것은 이름을 낚는 속임수다." 라고 한 고사에서 나온 말.(창옥 김근중의 소학강좌) 善行,079 溫公曰, 先公爲群牧判官, 客至, 未嘗不置酒. 或三行, 或五行, 不過七行,
酒沽於市, 果止梨栗棗柿. 肴止脯醢菜羹. 器用甆(*자)漆. 當時士大夫皆然. 人不相非也. 會數而禮勤, 物薄而情厚.
近日士大夫家, 酒非內法, 果非遠方珍異, 食非多品, 器皿非滿案, 不敢會賓友, 常數日營聚, 然後敢發書. 苟或不然, 人爭非之, 以爲鄙吝. 故不隨俗奢靡者鮮矣.
嗟乎, 風俗頹弊如是. 居位者, 雖不能禁, 忍助之乎. 술은 저자에서 사오고, 실과는 배. 밤. 대추. 감에 그치고, 안주는 마른 고기. 젓갈. 나물국에 그쳤으며, 그릇은 사기그릇과 옻칠한 나무그릇을 사용했다. 당시의 사대부가 모두 그렇게 하여 사람들이 서로 그르게 여기지 않았으니 모임이 자주 있어서 예절에 부지런했으며 물건은 박(薄)했지만 정은 두터웠다.
근일의 사대부 집에서는 술이 대궐 안에서 빚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 아니면, 실과가 먼 지방에서 온 진기하고도 색다른 것이 아니면, 음식이 여러가지가 아니면, 그릇이 상에 가득 차는 것이 아니면 감히 손과 벗을 모으지 못한다. 항상 며칠을 두고 경영하고 물건을 모은 뒤에야 감히 초청하는 글을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투어서 비방하여 더럽고 인색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풍속에 따라 사치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
아아! 풍속의 퇴폐됨이 이와 같으니, 벼슬 자리에 있는 자가 비록 이것을 금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차마 이것을 조장(助長)하랴 ." 하였다. -溫公家範-
*群牧判官 : 여러 주의 마정(馬政)을 순찰하는 벼슬아치. *자칠(甆漆): 자는 瓷와 통하니 사기그릇을 말하고 옻칠한 그릇을 말함.珁. 甆오지그릇 자. *醢 : 젓갈 해.젓담글 해.*營聚영취 : 계획을 세우고 물건을 모으는 것. *鄙吝비린 : 비루하고 인색한 것.몹시 다랍게 인색(吝嗇)함 善行,080 溫公曰, 吾家本寒族. 世以淸白相承, 吾性不喜華靡, 自爲乳兒時, 長者加以金銀華美之服, 輒羞赧棄去之. 年二十忝科名, 聞喜宴獨不戴花. 同年曰, 君賜. 不可違也. 乃簪一花. 平生衣取蔽寒, 食取充腹, 亦不敢服垢弊, 以矯俗干名. 但順吾性而已. *羞赧 수난: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짐. 赧 : 얼굴 붉힐 난. 무안할 난. *忝科名 : 과거에 이름을 욕되게 함. 즉 과거에 합격된것, 忝:더럽힐 첨. 욕될 첨. *聞喜宴 : 새로 과거에 뽑힌 사람을 모으고 나라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한 사람이 자기(自己)와 가까운 친구(親舊)와 친척(親戚)을 불러 베푸는 잔치 *垢弊 : 때 묻고 떨어진 것.때가 묻고 떨어짐, 또는 그런 옷 *矯俗干名교속간명 : 矯俗교속은 시속(時俗)을 어기는 것, 간명은 명예를 구하는 것이니 행동을 시속과 달리하여 좋은평판을 들으려는 것. 矯俗 : 못된 풍습(風習)을 바로잡음 善行,081 汪信民嘗言, 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 胡康侯聞之, 擊節嘆賞. 右, 實敬身. *咬 물 교. 깨물다.*做 지을 자. 지을 주. 이룰 주 作의 속자. *菜根 ①채소(菜蔬)의 뿌리 ②전(傳)하여, 나물 반찬(飯饌)의 밥 *汪信民 : 송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혁(革)이고 신민은 자임. *胡康侯 : 송 나라 사람으로 강후는 호안국의 자이며 시호는 문정. *擊節嘆賞격절탄상 무릎을 치면서 탄복(歎服)하고 칭찬(稱讚)함. 擊節稱賞. 擊節歎賞
■註 : 채근담의 채근(菜根)은 나물뿌리라는 뜻이며 담(譚)은 이야기를 뜻한다. 송나라 때의 왕신민(汪信民)은 "사람이 항상 나무뿌리를 씹어 먹고 사는 것처럼 삶을 견디어 나갈 수 있다면 곧 백가지 일을 가히 이루리라'고 하였다(인상교득채근 칙백사가주 |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 이는 나무뿌리와 같은 음식을 먹고 지내면서 삶의 어떠한 고난도 헤쳐나간다면 이 세상에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용운의 채근담)
○ 입태잉지교(立胎孕之敎) ○ 입보전지교(立保傳之敎) ○ 입학교군정 지교(立學校君政之敎) ○ 입사제수수지교(立師弟授受之敎) ○ 명부자지친(明父子之親) - 명사친지례(明事親之禮) - 명위인자지례(明爲人子之禮) - 명경친명지례(明敬親命之禮) - 명애경지례(明愛敬之禮) - 명간과지례(明諫過之禮) - 명대병지례(明待病之禮) - 명근신지례(明謹身之禮) - 명제향지례(明祭享之禮) - 명효불효지례(明孝不孝之禮) ○ 명군신지의(明君臣之義) ○ 명사군지례(明事君之禮) ○ 명위신지절(明 爲臣之節) ○ 명부부지별(明夫婦之別) ○ 명혼인지례(明婚姻之禮) ○ 명남녀지별(明 南女之別) ○ 명거취지의(明去取之義) ○ 명장유지서(明長幼之序) ○ 명경형지례(明敬兄之禮) ○ 명진퇴응대쇄 소음식연사지례(明進退應對灑掃飮食燕射之禮) ○ 명붕우지교(明朋友之交) ○ 명보인지례(明輔仁之禮) ○ 명책선지의(明 責善之義) ○ 명교우지도(明交友之道) ○ 명취우지의(明取友之義) ○ 주지의(明辭受賓主之義 ○ 명심술지요(明心術之要) ○ 명위의지칙(明威儀之則) ○ 명의복지제 (明衣服之制) ○ 명음식지절(明飮食之節) 입교(立敎) ○ 모지교자(母之敎子) ○ 부지교자(父之敎子) 명륜(明倫) ○명부자지친(明父子之親) ○ 명군신지의(明君臣之義) ○ 명부부지별 (明夫婦之別) ○명장유지서(明長幼之序) ○ 명붕우지교(明朋友之交) 경신(敬身) ○ 언심술(言心術) ○ 언위의(言威儀) ○ 언의복(言衣服) ○ 언음식(言飮食 통론(通論) ○ 논입교(論立敎) ○ 논명륜(論明倫) ○ 논경신(論敬身) 외편(外篇) 광입교(廣立敎) ○ 방교타지병근(防驕惰之病根) ○ 양양지량능지덕성(養良知良能之 德性) ○ 지쇄소진퇴이독기행(知灑掃進退以篤其行) ○ 입지행기지사(立志行己之事) 광명륜(廣明倫) ○ 광부자지친(廣父子之親) ○ 광군신지의(廣君臣之義) ○ 광부부지 별(廣夫婦之別) ○ 광장유지서(廣長幼之序) ○ 광붕우지교(廣朋友 之交) ○ 광통론명륜지의(廣通論論明之儀) 광경신(廣敬身) ○ 광심술지요(廣心術之要) ○ 광위의지칙(廣威儀之則) ○ 광의식지 제(廣衣食之制) ○ 광독서위학여이단지변(廣讀書爲學與異端之辨) 실입교(實立敎) ○ 실가정지교(實家庭之敎) ○ 실학교지교(實學敎之敎) ○ 실사제지 교(實師弟之敎) 실명륜(實明倫) ○ 실부자지친父子之親) ○ 실군신지의(實君臣之義) ○ 실부부지별 (實夫婦之別) ○ 실장유지서(實長幼之序) ○ 실붕우지교(實朋友之 交) ○ 실통론명륜지의(實通論論明之儀) 실경신(實敬身) ○ 실심술지요(實心術之要) ○ 실위의지칙(實威儀之則) ○ 실의식지 제(實衣食之制) ○ 실음식지절(實飮食之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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