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94) 상주 화남 관음사지 사적비(觀音寺址

장안봉(微山) 2019. 7. 25. 18:46
(94) 상주 화남 관음사지 사적비(觀音寺址
번호97작성일2016.09.20조회수523
작성자김광희
첨부파일파일받기 크기변환_20160913.동관음사지10.jpg
  • 상주 화남 관음사지 사적비(觀音寺址 事蹟碑)
    소재지:상주시 화남면 동관2리 산178-1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제518호(2007. 4.30)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을 솟구치고, 이어 몸을 낮추어 형제봉을 빗는다. 이곳에서 東으로 갈령으로 내려 앉아 청계산을 들어 올려 ‘갈령작약지맥’을 이루고, 南으로는 봉황산으로 백두대간을 이어 달리고, 西쪽에 구병산을 이루고자 내리 달린다. 南과 西의 사이에 큰 골을 이루니 이름 하여 절골(寺洞)이라 하는데 동관2리이다.
    이골의 지형이 와우형(臥牛形)이라 우복동(牛腹洞)이라고도 한단다.

    옛날 1895년 이전에는 화령현 지역이었으나, 후에 상주군 화북면의 지역이었다. 동관음사(東觀音寺)라는 절이 있었으므로 동관음, 동관음리라고 했다. 1914년 갈동(葛洞). 동비령리(東飛嶺里). 평온리(坪溫里) 일부와 화서면 송천리(松川里) 일부를 합하여 동관리라고 했는데, 1989년 화남면이 승격됨에 따라 현재는 화남면에 속한다.

    동관 2리(절골) 회관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달마선원과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드문드문 인가가 몇 채 보인다. 집 앞을 급하게 우회전 하면 바로 길가에 가늠하기 어려운 낡은 표지(안내)판을 만난다. 이곳에서 계곡 쪽으로 내려서면 금방 달려들 것 같은 큰 개가 반기지요. 조그만 채소밭을 돌아 나무판자 다리를 건너면 동관음사 사적비입니다. 동관리 산202번지로 찾으면 더 쉽게 다가갈 수가 있네요.

    원래는 이곳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로 보아 이곳 일대가 동관음사의 구지(舊址)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에도 기와조각과 석탑부재, 부도와 주초(柱礎), 맷돌, 방아확 등이 남아 있어 그 크기로 보아 이곳이 매우 큰 사찰이었음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으며, 이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의 큰 사찰이었으나 소실되었다 전한다.
    자연암석에 세워진 사적비는 높이1.69m* 너비0.6m* 두께0.43m로 대좌(臺座)와 비수(碑首)는 없으며, 두전(頭篆)은 속리산관음사사적비명(俗離山觀音寺事蹟碑銘)으로 두르고, 오른쪽의 첫줄은 경상우도 상산서면 속리산 관음사 사적비명(慶尙右道 商山西面 俗離山 觀音寺 事跡碑銘)라 새겼네요.

    상주시사(尙州市史)에는 「당나라 정관(貞觀, 재위 627∼649) 초기에 도의선사(道義禪師. ?∼?)가 이곳을 두루 살펴보고 우거진 잡초를 베어 내고 초제(招提:불사의 다른 이름)를 세우고 관음사(觀音寺)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도의선사는 신라 후기의 스님으로, 호는 원적(元寂)・명적(明寂)이며, 성(姓)은 왕(王)씨로 북한군(北漢郡) 출신이다.
    그 후 임란 때에 모두 불에 타 중창하였으나, 강희(康熙) 무오년(1678)에 또 화재를 입어 민간태사(敏侃泰士)가 주축이 되어 다시 중창을 하자, 이의 공적을 기리고자 강희 46년 정해년(1707, 숙종 33) 5월에 세웠다고 한다.

    이외 구전(口傳)에 의하면, 이곳은 범찰(梵刹)로써 주위에는 구병산(九倂山. 876m) 하의 삼불봉과 형제봉을 중심으로 12암자가 있었으니, 세조암・명경대암・봉선암・염불암・낙수암・적수암・금선대암・동암・영산전 등(미상 3)이 있었다고 하며, 물레방아도 12개나 되었다고 하니 가히 큰 사찰임에 틀림없다 하겠다.
    이 비의 자리도 당초 경내에서 사찰의 화재로 인하여 일주문 밖으로 다시 세웠으나, 최근에 마을 주민들이 현 위치인 기장소 옆으로 옮겨 세웠다 한다.」라 적고 있다.

    이 비는 관음사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로 사면비(四面碑)에 찬자(撰者), 서자(書者), 전자(篆者)가 모두 승려라고 하는데, 이점이 특징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승려의 주도하에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원경제와 관련된 입전(入田)내역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고 한다.

    사적비 앞에는 방아확이 있으며, 뒤편에는 누구의 것인지를 알 수없는 부도(浮屠)가 있으며, 옛 번창 했던 절의 규모는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우나 현재는 달마선원이 있어, 그 명맥을 유지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관2리 마을회관 앞에 관음친목계유래비(觀音親睦契由來碑:1991년 세움)가 있어 마을전체가 관음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