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93) 상주 낙동 용산정사(龍山精舍)

장안봉(微山) 2019. 7. 25. 18:45
번호96작성일2016.09.13조회수556
작성자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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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주 낙동 용산정사(龍山精舍)
    소 재 지: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17-40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제438호(2003. 4.14)


    상주의 진산(鎭山)인 갑장산 최고봉에서 동으로 한 줄기가 힘차게 뻗어 내려가니 530m峰이다.
    이곳에서 북으로 자세를 급히 낮추어 통사동(通士洞)에 이른다. 다시 북으로 더 낮은 자세로 내려가다가 동으로 내려앉으니 언가방(言可坊)이다.
    지방도903호선을 따라 상주에서 선산으로 향하다보면 승곡리 신기(새터)에서 ‘양진당400m’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양진당 쪽으로 조금 들어서면 작은 실개천을 만나는데, 이 천을 따라 올라가면 나지막한 야산이 삼면을 포근하게 감싸는 곳에 토석 담장으로 둘러싸고, 문간채와 정사를 남서향으로 한 용산정사를 만난다.

    정사(精舍)는 조선시대 경제력이 있는 양반들이 공부하던 곳이나, 주로 정자(亭子)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하는데, 당호(堂號)는 와연당(臥淵堂)으로 걸었다. ‘용산(龍山)’이란 뜻은, 갑장산 구룡(九龍)의 한 줄기가 동으로 십여 리를 달려와 결지된 장소에서 연유하였다 하며, 와연당으로 한 것은 대청마루에 누워서 집 앞의 연못을 한가로이 감상할 수 있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위재(危齋) 조상덕(趙相悳)이 1849년(헌종9년) 이곳에 선조의 업을 잇고, 독서와 은거자적 하려는 뜻에서 건립하였다. 선조가 살던 집이 홍수로 살기 어렵게 되자 건물을 철거하며, 그 곳의 재목을 사용하여 정사를 짓고, 거처하였던 당을 와룡당(臥龍堂)이라 불렀다.

    문간채 앞에 직사각형의 연못은 금년의 심한 가뭄 속에도 물이 가득하다. 정사의 출입문은 전면 3칸의 맞배 기와지붕으로, 맨 오른쪽이 출입문이며, 왼쪽으로 2칸은 온돌방이 시설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전면 4칸과 측면 1.5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반중층 누각형식이다. 주두와 주간(柱間)사이에는 소로가 설치되어 있으며 민도리 양식이다. 정면 빈칸은 툇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계자난간대가 형성되어 있는 양반집의 구조로 19세기 이후의 섬세한 건축형식이 잘 나타나 있다.

    경사지를 이용한 관계로 전면의 기둥이 2 단으로 구성되었다. 얕은 기단 위에 돌기둥으로 마루 아래를 받히고, 마루 위로는 둥근 나무기둥을 세웠다. 가운데 2칸이 온돌방이며, 양쪽에 1칸씩 마루방이 시설되어 있어 영남 지방 여타의 정사의 구조와는 다르다 하겠다.
    좌측 마루방 뒷면에는 반침이 있고, 전면을 제외한 3면에는 쪽마루를 시설하여 이동을 편하게 하였다. 왼쪽 기단위에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마당에서 툇마루로 오르내리도록 하였다.

    조상덕(1808∼1870)의 자는 비만(庇萬)이며, 호는 위재(危齋)이다. 술언(述彦)의 아들이다. 삼종조(三從祖) 가은(可隱) 조학수(趙學洙)에게 수학하고 과거에 실패한 후 출사의 뜻을 끊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으며, 대순(大舜)의 인심유위(人心惟危)와 도심유징(道心惟徵)의 훈계(訓戒)에 깊은 뜻이 있다하여 위재(危齋)라 호를 짓고, 잠(箴)을 지어 스스로 성찰하기에 힘썼다. 입지가 확고하여 궁행실천(躬行實踐)으로 유행(儒行)을 찾았으며 빈한으로 구차하였으나 항상 충후(忠厚)로 일관한 인물이라 전한다.

    위재는 「용산정사와용당기(龍山精舍臥龍堂記)」에서 “9대 조(祖) 검간(黔澗)의 양진당 뒤쪽 선고 묘(先考墓) 밑에 와룡당을 짓는다.”하였으니, 선업(先業)을 잇고 은거자적(隱居自適)하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그의 ‘우음(偶吟)’이란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몸가짐은 처자 같고(持身處子是), 수행은 꼭 승려 같네(修行定僧如). 평생에 아는 것이라고는(平生自知我), 성현의 글을 즐기는 일 뿐이네(所樂聖賢:1:2 書). “라고 읊어, 평소 위재의 생활상을 엿보게 하였다.

    『위재공고(危齋公稿)』 6권3책 목판본이 전하는데, 1921년 후손들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필영(柳必永)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중철(李中轍)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만사 78수, 권2에 서(書) 48편, 권3에 잡저 14편, 서(序) 5편, 기(記) 3편, 발(跋) 1편, 잠(箴) 3편, 고유문 4편, 묘지명 1편, 행기(行記) 1편, 권4에 부록으로 묘갈명·발 각 1편, 권5·6에 유례편해(儒禮編解)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