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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33] 청송읍기 | ||||
청송읍(靑松邑)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의 여러 지맥들이 일궈놓은 수많은 골짜기들 가운데 용전천(龍纏川)변에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 山臨水) 지세의 산간 읍취락이다. 만산(萬山)을 겹겹이 두른 깊고 깊은 골 짜기에 터잡은 취락이다 보니, 청송이라 하면 사람들은 으레 그 불편하기 그지없는 교통을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하기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이 고을은 소헌왕후의 본향이므로 일찍이 현(縣)을 올려서 군(郡)으로 하 였으나, 땅이 구석지고 으슥하여 사신(使臣)이 오는 일이 드물다"고 전하 고 있을 정도이니, 예로부터 청송이 이 나라 땅의 외진 곳의 대명사처럼 인식돼 온 이유를 알 만하다. 그러나 그 어떤 유형의 삶터든 간에 무릇 사 람이 사는 곳을 제대로 알려면 그 터가 지닌 교통과 같은 상대적 입지 인 자(因子) 외에도 지형, 물, 결지 등과 같은 그 장소 고유의 절대적 입지 인자를 살펴봐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특히 예전의 자급자족 농경사회에 서는 교통보다는 오히려 절대적 입지인자에 근거하여 취락이 발달한 경우 도 허다했기 때문에 역사가 오랜 읍취락일수록 더욱 그러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청송읍기(邑基)의 주산(主山: 혈(穴)이 깃들어 있는 산)이자 진산(鎭山: 고을을 수호해 주는 산) 역할을 하는 산은 읍기 북쪽에 진좌(鎭座)해 있 는 방광산(放光山)이다. 낙동정맥이 주왕산에 도달하기 직전, 대돈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지맥이 태행산과 중대산을 일으킨 후, 남쪽으로 방 향을 틀면서 그 남은 여력을 다하여 솟구쳐 놓은 산이 바로 방광산이다. 방광산은 줄기마다 기복이있어 산 자체가 생동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그 맞은편 남쪽으로 나지막하고도 아름다운 보광산(普光山)이 안산(案山)으로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한층 더 높은 품위를 지닌다. 어디 그 뿐인가. 남쪽 에서 흘러 들어오는 용전천이 읍기의 동편에서 괴내천과 합류한 후, 명당 수인 남천(南川)을 이루며 서류(西流)하다가 북쪽으로 빠져나가니, 비록 읍기의 국(局)은 다소 비좁게 느껴질지언정 그 모양새는 말 그대로 배산임 수의 길격(吉格) 지세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용전천이 굽이치는 곳마다 용 전암(龍纏巖)과 현비암(懸碑巖) 같은, 하천 침식에 의해 생겨난 기암절벽 이 절경을 이루고 있어 읍기를 더욱 영이(靈異)하게 만든다. 일찍이 청담 이중환은 청송읍기의 그런 장소성을 보고, "큰 시내 두 줄기가 읍 앞에서 합쳐지고 들판도 제법 틔어 있다. 흰 모래와 푸른 물결이 논밭 사이에 띠 처럼 비치어 어울리고, 사방의 산에 우거진 잣나무가 사철 푸르니 그 시원 스럽고 아늑한 모습이 거의 속세의 풍경이 아닌 듯하다"고 묘사한 바 있다. 아닌게 아니라 청송읍기를 홍여방(洪汝方)처럼 선경(仙境)이라 하면 어 떻고, 또 김종직(金宗直)처럼 도원물색(桃源物色)이라 한들 그 무슨 문제 될 게 있었겠는가. 그 터에 살다간 청송의 옛 조상들이 그만큼 지세에 어 울리는 토지이용을 했을테니 말이다. 지금은 시가지화 되어 그 흔적이 뚜렷하지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청송읍 기의 중심공간은 방광산의 주맥(主脈)이 이른바 좌청룡, 우백호 식으로 팔 을 벌린, 그 내측 부분 터이다. 즉, 현재의 군청 건물에서 남쪽을 향해 내 려다 볼 때, 향교의 정문이었던 정아루(菁莪樓) 바로 왼쪽 둔덕진 곳에서 용전암 위의 망미정(望美亭)까지 이르는 지맥이 좌청룡이 되고, 옛 군청터 에서 연지(硯池)목을 지나 찬경루(讚慶樓)까지 이어진 지맥이 우백호가 되 는데, 그 사이의 공간이 또 다른 작은 규국(規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도 지금의 동서 간선도로 북쪽은 일조와 배수(排水) 등의 측면 뿐만 아니라 지세적 위상(位相) 면에서도 아래쪽보다 낫기 때문에 일찍부 터 그곳에는 관공서들이 많이 들어선 관지리(官旨里)와 향교를 중심으로 한 교동(校洞), 그리고 상류층 주택들이 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자연 적인 취석(翠石) 암반 위에 세워진 찬경루와 용전암 위의 망미정도 누각과 정자로서 제각각 최적의 자리를 점하고 있다. 용전천변을 따라 축조된 인 공제방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변의 그두 곳은 산과 물의 절묘한 어울림, 즉 풍수 미학(美學)을 마음껏 관조하기에 더없이 적 합한 장소였던 셈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청송읍기의 풍수 백미(白眉)는 결코 그런 사실에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보광산의 서쪽 기슭에 터잡고 있는 청송 심(沈)씨 시조 청기군(靑己君) 심홍부(沈洪孚)의 묘와 관련된 읍기의 풍수설이 더 흥미롭 다. 이 묘는 조선 세종조에 심씨가문에서 소헌왕후를 배출하면서 청송사람 들 사이에서는 예부터 속칭 심 능묘로 불려오고 있는 명묘(名墓)다. 세종 조에 읍기내에 세워진 찬경루의 누각 이름이 '보광산에 있는 소헌왕후의 시조묘를 바라보며 우러러 찬미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지어졌다는 사실은 제쳐두고서라도, 마치 비석을 세워 놓은 듯한 형상의 현비암(懸碑巖)이 현 비암(賢妃巖)으로도 불리게 된 연유는 분명 풍수 발복론(發福論)과 연관돼 있다. 그 내용인 즉 보광산에서 북쪽으로 돌출해 나와 있는 현비암이 용의 머 리라면, 현재 충혼탑이 들어서 있는 자리가 그 허리이고, 시조 묘가 있는 곳은 그 꼬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쨌든 이 바위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소헌왕후가 너무나 어질어 현비암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여 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인걸지령(人傑地靈)론적인 발복론이 결 코 아니다. 방광산(주산)-찬경루-현비암-보광산(안산)의 청송심씨 시조묘 로 이어지는 축(軸)에 한 번 주목해보라.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청송사람 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온 읍기의 정신적인 풍수축이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같은 상징성은 그 공간의 실제적인 구조와 존재양태 의 상관성을 표현해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의 터전을 의미심장 한 하나의 장소로 승화시켜 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재구조와 우 주구조와의 근원적인 관련성, 즉 무질서 속의 질서를 생각케 해준다. 그러나 근년에 급격히 변화한 청송읍기의 모습을 보면 그런 고유한 삶터 공간 관념이 크게 퇴색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어린이집 이 들어서 있는 예전의 군청사터만 해도 그렇다. 행정업무를 보기에 불편 할 정도로 옛 청사가 비좁았다면 그 자리에 증.개축하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터도 터같잖은 곳에 함부로 새 청사를 지었다는 말이던가.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청송읍기 내에서 가장 좋은 터로 군청, 교육청, 향교 터가 손꼽혔는데, 그 중에서도 군청사 터가 단연 으뜸이었다. 주산 에서 내려오는 기맥(氣脈)이 자연 암반을 끼고 옹골차게 뭉쳐진 것은 물론 시계(視界)도 매우 훌륭한 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새 군청사터 는 주산의 맥이 내려오는 급사면을 절개한 후, 보토(補土)하여 만들어진 터로서 결코 결혈처(結穴處)가 될 수 없는 곳이다. 그 뿐만 아니다. 읍기 후맥을 가로질러 만들어 놓은 순환도로(?)는 한마디로 고즈넉한 읍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지한 토지이용의 극치에 다름 아니다. 삶터의 주산 을 가꾸고 보호해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거꾸로 명미한 주산을 훼손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니 그 어찌 올바른 일이라 할 수 있으랴. 근자에 현비암에 인공 쌍폭포가 만들어져, 여름에는 30m 높이에서 쏟아 져 내리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빙벽을 등반하는 것 이 청송의 새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것 또한 예사 문제가 아닌 듯하다. 그 정상에 읍민들의 안녕을 비는 당집이 있고, 그곳이 예전에는 읍기의 중요 한 풍수 명소이었다는 사실은 백번 접어두더라도, 그런 개발방식이 대자연 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죽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일종의 명백한 환 경범죄다. 더구나 그런 수직적인 인공미보다는 절경을 이루는 현비암에 수 평적으로 와닿는 용전천의 푸른 물이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은가. 자연은 있 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더욱 발한다. 청송읍기는 원래는 자연과 신화가 살아숨쉬는 이상적인 삶터이었다. 21 세기에는 그런 삶터가 더욱 각광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제부터라 도 모든 읍민들이 합심하여 개성있는 읍기를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풍수학자.지리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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