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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일의 신풍수기행 . 30] 안동 하회마을 | ||||
우리나라에는 명당이 유난히 많다. 사방을 둘러싼 산이 온기를 잘 갈무 리하는 장풍국(藏風局)의 명당이 있는가 하면, 큰 강이나 바다가 항상 생 기를 불어넣어 주는 득수국(得水局)의 명당도 있고, 산과 강이 한데 어우 러져 기묘한 태극(太極)모양을 이루는 산태극.수태극의 명당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선인(仙人)과 옥녀, 봉황과 제비, 호랑이와 소(牛), 배(舟)와 가야금, 연꽃과 매화, 제(帝)자와 야(也)자 등, 온갖 지세의 물형론(物形 論 혹은 형국론) 명당까지 동원하면 그야말로 이 땅에는 명당이 아닌 곳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같은 풍수 형국론적인 의무부여 자체는 물론 전혀 탓할 거리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로 인해 삶터 자연에 대해 친밀감과 자긍심을 가질 수도 있 을 뿐더러, 향토애를 가지고 삶터 자연을 지키고 가꾸게 하는데도 큰 도움 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바로 그런 형국론에 덧붙여지는 발복론(發福論)적인 해석이다. 발복론은 어찌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기대감을 잔뜩 불러 일으키 는 풍수의 매력적인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풍수는 바로 그 발복론 때문에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다. 풍수술사든 그 누구든 간에 일단 발복론에 빠져들게 되면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풍수의 힘이 곧 인생 만사의 모든 길흉화복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초래한 과정과 원인은 아예 차근차근 살펴보려 들지도 않는다. 그 결과 오만방자한 사이비 풍수만 횡행할 따름이고, 참된 풍수마저 제 설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사이비 과학으로 몰린다. 모름지기 풍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풍수의 힘을 만능적인 요 인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인걸은 지령(地靈)'이라는 옛말이 있기는 하지만 명당의 인물 배출에 대해서는 더더욱 겸손해 한다. 그 실상은 안동 하회마을의 풍수를 예로 들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하회의 산수지세는 실로 빼어나다. 산줄기와 강줄기가 서로 얼싸안고 들 면서 산은 산대로 강은 강대로 제각각 태극 모양을 이룬다. 태백산에서 일 월산을 거친 지맥이 하회에 이르러서는 두 갈래로 나뉘어 반원을 그리면서 명당팔을 감싸는데, 북에서 동으로 오는 줄기는 화산(花山)에서 서쪽으로 여맥을 뻗고, 남의 남산(南山)에서 서의 원지산(遠志山)을 거친 지맥은 북 의 부용대(芙蓉臺)에서 동을 향하니 그 두 줄기가 맞물리는 형상이 곧 산 태극이다. 산줄기가 그러하면 그 몸에 기대어 흐르는 강줄기의 형상도 으 레 태극을 이룰 것인즉 하회가 산태극.수태극의 더없는 길지라는 말도 바 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하회마을이 들어앉아 있는 터 자체에 의미부여된 물형론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운데가 봉곳하게 솟은 그 터를 연화부수형(蓮花浮 水形), 행주형(行舟形), 다리미형, 삿갓형에서부터 돌혈(突穴)의 혈상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물형에 비유하였으니, 하회 마을터에 대한 사람들 의 관심이 얼마만큼 지대했던가를 가히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하회터의 그런 물형론들은 마을 사람들의 환경행태(行態)에 과 연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산태극 수태극설이 주민들로 하여금 삶터에 대 해 대단한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 형이상학 적인 명당관념 형성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물형론이 보다 구체적 이면서도 실천적인 각종 환경행태를 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사 람들은 혹시 마을에 돌집이나 돌담을 얹을 것 같으면 연꽃잎이 상할 수도 있고, 배가 가라앉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흙집과 흙담으로 주거지 를 꾸몄으며, 또한 마을 내에 우물을 함부로 팔 것 같으면 배가 가라앉고, 다리미의 불이 꺼지고, 구멍난 삿갓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결국은 마을이 쇠락할 것으로 믿고 화천(花川)의 물을 길어다 각종 용수로 사용하 였다. 삶터에 의미부여된 물형론이 일종의 주거환경 관리지침으로 적용되 었던 셈인데, 내용상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아 그에 대해 굳이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회풍수의 부정적인 측면은 단연 터 발복설이다. 하회에 전해오는 "허 (許)씨 터전에 안(安)씨 문전(門前)에 유(柳)씨 배(杯)판"이라는 구전(口 傳)과 남산의 세 봉우리, 즉 규봉(圭峰 혹은 감투봉)의 형상이 마치 정자 관(程子冠) 같아 마을에서 정승이 계속 배출된다는 지리설을 예로 들어보 자. 허씨들이 마을터를 닦고, 안씨들이 문중을 일으킬 정도였으나 결국은 유씨들이 벌족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물론 하회의 입촌 역사와 각 가문의 흥망성쇠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씨 집안이 연 화부수형의 지세에서 연꽃이 수면 위에 떠있는 지점에 집터를 잡았기 때문 에 그 소응(所應)으로 번창할 수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연화부수형의 지세에서는 연꽃이 수면 위에 떠있을 때가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므로 그보다 너무 높거나 혹은 너무 낮은 곳에 집 터를 잡게 된다면 지세의 소응을 결코 받을 수 없다는 얘기인데, 그것은 서애 유성룡과 그 8대손에서 정승이 난 것을 감투봉에 억지로 끼워맞춰 그 봉우리의 발복으로 앞으로는 8대마다 정승이 날 것이라고 한 구전만큼이나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그 당시 양반고을 안동의 사회적 풍토성, 즉 가문에서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이 없거나 혹은 훌륭한 문집을 내지 못한 가문은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었으며 더구나 큰 인물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가문과 개인의 피나 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발복론은 오히려 후손 들로 하여금 삶터에 대해 이기적인 발복만 희구하게 할 뿐 삶터의 명당요 소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게 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 서애 유성룡이 영의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원래부터 훌륭 한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이 퇴계 문하에서 수학하고 또한 하회의 깨끗한 자연을 바탕으로 열심히 선비정신을 닦은 결과이지, 결코 감투봉의 발복으 로 저절로 정승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다. 하회의 서원과 정자들이 하나같이 마을과 떨어져 바위와 물과 숲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입지해 있는 것만 봐도 그같은 사실은 충분히 입 증된다. 그러고 보면 하회는 선비정신을 함양하는 명당이었지, 오늘날 우 리들이 휴식을 위해 찾아가는 그런 관광지로서의 명당은 결코 아니었던 셈 이다. 하회의 자연이 지닌 그같은 참된 풍수적 가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 어떤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가. 그저 단순히 발복론적인 시각으로 주 변지세를 바라보면서 그같은 지세에서는 저절로 영의정과 같은 훌륭한 인 물이 배출되겠거니 생각하고, 또한 서애 본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후 대에 지어진 충효당을 돌아보면서 그곳과 양진당, 그리고 삼신당(三神堂) 이라는 세 군데 터 중에 역시 하회마을의 혈처는 충효당이 틀림없다고 떠 벌리는 것이 고작이다. 바로 그런 얼풍수적 작태 때문에 하회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이 급변하고 있다. 예전의 삼신당 앞 샛마당에 고래등같은 새 기와집이 들어 서고 골목길이 하나 둘씩 시멘트로 포장되면서 공간생태적인 변이(變異)를 거치고 있음은 물론 술집과 음식점이 대거 늘어나면서 인문생태적으로는 그 품격이 엉망이 돼 버렸다. 선비정신은 고사하고 서북쪽의 낮은 지맥위로 산풍이 불어들어 오는 것 을 막기 위해 만송정 비보(裨補)숲을 조성하던 그런 대동적인 삶터정신마 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물질위주의 이기주의만 팽배해 있다. 하회마을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교훈을 전달해 주는 역사적 장소이어야지 물질적 상업 주의를 위한 현대적 장소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단순한 발복론적 명당 인물배출론을 확인하는 장소로서보다는 삶터 공간을 각종 용도에 부합되게 적소(適所)를 정해 잘 활용함으로써 종래는 그 삶터 전체가 아름다운 길지로 승화되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하회마을의 명당성은 겉으로 보이는 자연지세보다는 오히려 그 터에 살 다간 선조들의 각종 환경행태에서 그 진면목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풍수학자.지리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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