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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31] 해인사 터 (상) | ||||||||||
이 땅에서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가 갖는 명소(名所)적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가람 길목을 따라 펼쳐지는 홍류동(紅流洞) 십리계곡의 풍 광도 무척 아름답거니와 예로부터 해인사는 불(佛).법(法).승(僧)의 3보사 찰 가운데 법보종찰(法寶宗刹)로서, 또한 해동제일 도량으로서 이 나라 안 의 그 어떤 가람보다도 위명(威名)을 떨쳐왔다. 그렇다면 해인사가 그런 명성을 얻게 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풍수지리 때문이다.
그것은 해인사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명당에 터잡았기 때문에 그 발복으로 그만큼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해인사는 결코 판에 박은 듯한 명당 지세에 터잡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절터에는 필자가 가히 이 땅의 풍수답사 일번지로 꼽을 정도의 심오한 풍 수성이 함축돼 있다. 대저 풍수답사 일번지라면 적어도 그 터를 통하여 이 나라 풍수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할 수 있되, 거기에다 미래의 풍수좌표를 예측,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장소라야 제격이다. 이를테면 그 일번지 를 통하여 전통 풍수의 허와 실을 제대로 진단하고, 또한 작금의 과학 대(對) 미신 풍수논쟁을 비교 검증할 수 있으며, 앞으 로 지향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풍수행태(行態)까지도 미리 엿볼 수 있어 야 한다는 것이다. 해인사터가 바로 그런 장소다. 그 터는 한마디로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살아숨쉬고 있는 풍수 박물관이다. 그 터에는 초보적 인 풍수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범인(凡人)은 쉽게 깨달을 수 없는 명당 넘 어의 풍수세계까지 담겨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닌 줄 알지만, 요컨대 풍수술법에만 얽매여 터를 판별 해 나가는 것을 점오(漸悟)라 할 때, 그런 단계를 뛰어넘어 단번에 풍수 돈오(頓悟)의 세계를 깨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해인사터인 것이다. 해인사터는 가람이 들어앉은 위치에서부터 벌써 합리성이 느껴진다. 가 야산의 주봉인 상왕봉을 중심으로 두리봉, 깃대봉, 단지봉, 남산제일봉과 같은 1천m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C자형의 주릉을 이루면서 그 안쪽으로 여 러 갈래의 좁고 긴 골짜기들을 형성해 놓았는데, 대가람이 들어설만한 터 로는 사실 그곳 외에는 눈을 닦고 살펴봐도 없다. 모름지기 시내가깊고 골짝이 좁은 산간지대에서는 계곡 바닥으로부터 일 정한 높이로 올라선 지점만이 터다운 터라 할 수 있는 즉, 그것은 그런 곳 만이 가까이 솟은 산의 능압(凌壓)을 피하는 동시에 시계(視界)를 확보할 수 있고, 또한 갑작스레 불어난 계곡물이 가져올 수재(水災)도 면하고, 시 끄러운 물소리, 즉 풍수비수(悲愁)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다. 해 인사터는 산간지대의 그같은 모든 입지요건을 훌륭히 충족시키고 있다.사 찰 경내에서 앞쪽(남서쪽)을 한번 바라보라. 주산(主山) 주맥(主脈)의 자 연 지세향(地勢向)을 십분 반영하려 들다보니 안산(案山)을 이루는 비봉산 이 바로 코앞에 위치하게 되었지만 안대(案對)를 그 산 사면의 6-7부 높이 에 맞추어서 크게 갑갑하지가 않다. 오히려 비봉산과 그 뒤쪽 너머 골짜기로 아득히 중첩되어 펼쳐지는 둥근 봉우리들이 한없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문제는 정남쪽으로 겹쳐 보이는 오봉산과 남산제일봉, 그리고 매화산이다. 그 산들은 높아도 역시 너무 높다. 저절로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다. 그러나 어찌하랴. 해인사의 옛 현인들은 바로 그런 산의 모습을 통하여 "도(道)는 어제보다 깊으나 오 늘보는 앞산은 더욱 첩첩할 따름이다"라고 되뇌이곤 했다 하니 그것은 분 명 명당 넘어의 풍수세계가 다름아니다. 아! 정녕 그같이 모든 사람들의 심상(心相)이 지상(地相)을 초월할 수만 있다면 해인사터의 종산(宗山)은 가야산 상왕봉이고, 그곳으로부터 돌불꽃을 이루며 남쪽으로 이어져 내려 온 석화성(石火星) 끝의 환적대(幻寂臺)는 주산(主山)이며, 또 거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던 지맥이 두 팔을 벌리니 그 가운데,향로봉에서 길상탑으로 이어지는 줄기는 좌청룡이 되고, 학사대에서 일주문쪽으로 굽 어내려오는 재맥은 우백호가 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풍수세계에 비하면 필자의 땅을 보는 능력은 아직 까지도 치졸하기 그지없으니 심히 안타깝고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각설하고 이제 그만 사람들이 해인사터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입에 올 리는 형국론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해인사터는 마치 커다란 배(舟)가 바 다로 나가고 있는 듯한, 이른바 행주형(行舟形)의 길지로 널리 알려져 있 다. 하기야 해인사 배치 도면만 봐도 일주문에서 봉황문, 그리고 해탈문까 지가 뾰족한 이물(뱃머리)을 이루고, 장경각 판고(板庫)쪽이 고물(船尾)을 이루어 가람 전체의 모양새가 배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더 구나 가야산 극락골 중턱에 있는 마애불이 이 해인사라는 배를 잘 가게 하 는 도사공(都沙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의미부여되고 있으니, 그것 은 '진리의 바다에 비친 삼라만상의 참모습'이라는 뜻의 해인(海印)과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어디 그뿐인가. 원래는 장경각 뒤쪽에 자연석의 돛대바위가 이십여척 높 이로 우뚝 솟아 있었으나 해인사에 자꾸 풍파가 이는 것을 그탓으로 돌려 어느 땐가 그것을 전부 잘라 대적광전의 석축을 쌓은데 사용해 버린 적이 있는데, 지금은 또 그 자리에 수미정상탑(須彌頂上塔)이라는 인공돛대를 재조성해 놓았으니 그야말로 해인사터는 행주형의 지세로서는 갖출 것은 모두 다 갖춘 셈이다. 해인사의 스님들이, 바야흐로 출발하려는 배에 사람 과 재화가 풍성히 모이는 격이라는 행주형 터의 소응(所應)을 염원하면서 그런 풍수 비보물(裨補物)을 설치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스님들 의 바로 그 행주형 절터 관념이 나락에 빠질 뻔했던 해인사를 구제한 사실 은 풍수의 진정한 덕목이 지인합일(地人合一)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 혀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197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은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을 영구히 보존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대책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새 장경판고를 지하1층, 지상1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짓는다는 것이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더구나 그 건 물을 지금의 장경각이 있는 자리 바로 위쪽에다 지으려드니 어찌 해인사 스님들이 강건너 불구경하듯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는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행주형의 터에 지하시설물을 만든다는 것은 곧 배 밑바닥이 뚫려 배가 침몰된다는 것을 의미하니 결사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뻔한 일이다. 스님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몸으로 건설 중장비를 막는 사태까지 일어 난 연후에야 비로소 새 건물을 지을 터가 확정되었는데, 그때 지어진 신 대장경판고가 곧 해인사 동남쪽 능선 너머에 있는, 현재 선원(禪院)으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혹자는 스님들의 그런 행태를 이 과학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 심히 부끄 러울 일로 여길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최 신 기술을 다 동원해서 지었다는 새 건물벽에 벌써부터 이슬이 맺히는 등 온갖 하자가 발생하고 있으니 만약 행주형 터를 지키려는 스님들의 고집이 없었던들 장경각 판고와 팔만대장경은 지금처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 는 영예를 누려보지도 못했을 지 모를 일이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장경각 판고는 사실 그 터 자체 하나만 해도 엄청 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행주형이라는 풍수형식이 장경각 터의 풍수내용을 살렸는가, 아니면 장경각 터의 풍수비밀이 행주형이라는 풍수전통을 살렸는가를 궁금해 하는 것은 실로 부질없는 짓이다. "하나가 곧 일체(一卽一切)이고, 일체가 곧 하나(一切卽一)"라는 화엄 (華嚴)정신을 깨닫지 않고서는 해인사 가람에 내재돼 있는 풍수성을 결코 제대로 읽어낼 수 없는 까닭이다. 풍수학자.지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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