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연구논문및사례

[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29] 경북도청사터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53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29] 경북도청사터

광활한 대구분지 안의 수많은 건물터들 중에 풍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터가 한 군데 있다. 북구 산격동(山格洞)의 연암산(燕岩 山) 자락에 있는 경북도청사(廳舍)터가 바로 그 곳이다. 이 땅위에 세워진 건물치고 양택(陽宅)풍수론적인 해석을 부여할 수 없는 건축물이 어디 있 으랴마는 경북도청사는 그래도 여느 건물들과는 색다른 구석이 있다.

중구 포정동의 옛 경상감영터에 있던 구(舊)청사를 옮길 마땅한 자리로 1958년에 지금의 터를 선정하고, 또한 건물 몸채를 앉힐 좌향(坐向)을 결 정하는 것과 같은, 그 모든 일련의 행위가 풍수논리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 문에 더욱 그렇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록 지금은 주변의 토지이용 변화로 그 명당성이 많 이 퇴색되었지만 필자는 여전히 경북도청사터를 대구분지내의 둘도 없는 명당으로 꼽는다. 거대도시로 변한 대구에서 그 정도로나마 원래의 풍수성 이 살아있는 터도 극히 드물 뿐더러 무엇보다도 분지 전체의 지세를 합리 적으로 고려한 그 빼어난 입지성이 현재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도청사 터가 그토록 풍수와 밀접하게 연 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손(孫)모 술사가 '터'라는 책에 남긴 한쪽 분량 정도의 내용이 고작이다. 그나마 손씨가 정말로 터 선정과정에 관여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그 책 에는 영 시답잖은 내용들만 적혀있다.

당시에 도청사 이전지 선정과 관련하여 여러 풍수사들이 동원되었는데, 앞산 밑의 대명동 과수원에 도청사 터를 잡아 건물을 북향으로 앉히자는 주장과 산격동의 연암산 밑에 터를 잡아 청사를 남향으로 건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팽팽히 맞섰다는 것은 물론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유독 손씨 혼자서만 산격동 이전을 주장했으며, 특히 그때 손씨 가 경북도지사와 정부 고위 당국자에게 "그곳에 묘를 쓴다면 반드시 경상 감사가 배출될 명당이니, 만약 그런 자리에 도청사를 신축한다면 날마다 경북도지사가 출근하여 앉아 있을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이며, 더구나 그 곳에 도청사가 들어서면 대구지방의 지기(地氣)가 돋우어져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어 국가경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도청사가 그곳으 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얘기는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

도청사 이전과 같은 막중한 도 행정업무가 어찌 그같은 황당한 발복론에 근거하여 결정될 리 있었겠는가. 몇해 전부터 경북도청 이전문제가 도내 전역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이 시점에 굳이 필자가 현재의 도청사터에 내재된 풍수성을 밝히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발복 위주의 왜곡된 풍수론을 걷어내고 참된 풍수론을 세우고자 함이지 그 밖의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 혹여 이 글이 도청 이전문제와 혼돈되어 그 어떤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 봐 노파심에서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경북도청사터의 주산(主山)은 연암산이다. 대구 분지의 남쪽에 위치한 비슬산의 한 지맥이 팔조령을 지난 후 줄곧 북쪽으로 수십리를 거슬러 달 려와 신천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우뚝 멈추어 섰으니 그 산이 바로 연암산이다. 무릇 풍수명산이란 그 높이나 크기에 상관없이 그 내맥이 장 원(長遠)하고, 감싸고 흐르는 강줄기와 다른 들판을 끼고 있어야 제격인즉, 연암산은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금호강변 쪽으로 넓은 평야 를 끼고있는 이 연암산의 남쪽과 동쪽 완경사 지대에서 일찍이 선사(先史) 시대 유물들이 대거 발굴된 사실만 봐도 연암산의 명산됨은 충분히 입증 된다.

더구나 연암산의 놓임새는 수도산,연귀산, 두류산, 달성산 등과 같은 여 타의 대구 분지내 고만고만한 산들에 전혀 견줄 바가 아니다. 연암산의 정 상에 올라 사방을 한번 조망해보라.북으로는 팔공산 능선이, 남으로는 용 지봉과 비슬산, 그리고 앞산 능선이 이중, 삼중으로 병풍을 두르고있는 가 운데, 동쪽의 아름다운 형제봉과 서쪽의 와룡산이 연암산을 좌우에서 위호 하고 있다. 연암산이 주위의 높은 산들에 위압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높은 산들이 연암산에 기운을 모아주고 있는 형상이다. 때문에 대구분지내의 그 어떤 터에서도 느껴볼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연암산의 놓임새가 그러하다면 그 앉음새는 더욱 출중하다. 이른바 회룡 고조형(回龍顧祖形)의 지세로서 얼굴을 남쪽으로 돌려 그 할아버지격인 비 슬산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비슬산이 조산(祖山)이라면 수성구의 형제봉은 부산(父山)이고, 또한 거기에서 계속 이어져 나온 연암 산은 자산(子山)이 되며, 그 남쪽앞 현무정(玄武頂) 바로 아래에 터잡고 있는 도청사터는 곧 혈처(穴處)에 해당한다. 예부터 연암산의 남쪽 골짜기, 즉 서당골에서 세거해 온 달성 서씨들이 그저 소박하게 골짝 터만을 소 쿠리형의 길지로 의미부여했다면 도청사터의 풍수판별기준과 해석은 훨씬 더 광범위한 공간규모로 새로이 적용되는 셈이다.

산격동 일대 지세의 그런 자연적인 앉음새를 인공건물에 적극 반영한 것 이 바로 도청사 본채와 구암서원 숭현사(崇賢祠)의 좌향이다. 이들은 한 결같이 지세향(地勢向)에 순응하여 주건물을 남향하도록 배치하였는데, 특 히 신천을 종합개발하기전까지만 해도 도청사에서 볼 때는 그 강줄기가 구곡수(九曲水)로 북류해왔을 것 같아 그 터의 품새가 한층 더 높았을 것 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혹자는 도청사터가 신천의 공격(혹은 침식)사면 쪽에 위치해 있어 그 터가 결코 명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혈판(穴坂) 전면부를 단단한 암석층이 받쳐주고 있음을 감안하면 하등 문제삼을 거리가 아닌 듯 하다.

그렇다고 도청사터가 과거와 같은 명미한 풍수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 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연암산에서 청사터 뒤의 현무정으로 이어지는 내룡 (來龍) 위로 이미 주택들이 꽉 들어차 맥세를 가늠키 어려워졌음은 물론 무엇보다도 고층아파트가 안대(案對)의 왼편을 가려 심리적으로 무척 답답 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돼 버렸다. 명당을 넘어다보는 듯한 그같은 산을 풍수에서는 규봉(窺峰)이라 일컫거니와 난개발(亂開發)로 생겨난 그 고층 아파트 역시 인공적인 규봉 그 자체에 다름아니다.

그런 규봉들은 알고 보면 하늘로부터 오는 생기를 차단시키고 바람길마 저 바꿔 버려 원래의 저층 양택 생태환경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상대방에게 환경심리적인 위압감이나 불안감을 심어주기 때문에 결 코 바람직한 개발방식이라 할 수 없다. 서로 엇비슷한 높이와 규모를 가진 주택이나 아파트들끼리모여있는 곳이라야 살아가는데 아무런 풍수적인 피 해를 입지 않는다고 보는 것도 모두 그런 까닭이다.

도청교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두 가지의 극명하게 대비되는 토지이용 양 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주산과 현무정을 배경으로 하여 그 지리적인 정체성(正體性)을 뚜렷이 부각시켜 주고 있는 도청사이고, 또다른 하나는 비슷한 구릉지 위에 제멋대로 그저 하늘 높이 솟아있는 듯한 고층아파트들이다. 뒤로는 연암산과 팔공산 능선이 받쳐주 고 있고 앞으로는 신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그같은 아름다운 터에 그 둘 중의 어느 토지이용이 보다 더 어울리는가 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판단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도청사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의탁하게 해 준 청사 터의 조종산(祖宗山)을 오늘도 묵묵히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그 리고 그 어떤 토지이용도 장소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곧 명당성을 확보하 는 지름길임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풍수학자.지리학박사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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