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연구논문및사례

[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28] 김천 봉계마을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53

2004-02-09 입력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28] 김천 봉계마을

흔히들 산과 물, 그리고 방위를 풍수의 3대 요소라 일컫는다. 그러나 알 고보면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사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집터나 묘터에 자신의 사주팔자를 대입시켜 각종 풍수행위를 진 행시키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땅, 즉 삶터에 대해 인간으로서 갖 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을 뜻한다.

한 개인이나 가문의 부귀영화를 희구하는 풍수 발복론은 다분히 이기적 인 구석이 있어서 언뜻 생각하기에는 경제적인 실리와 이윤을 추구하는 서 양의 토지관과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래 풍수의 다양한 내용중에는 인간과 자연, 더 나아 가서는 인간과 인간간에 대동(大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한 흔적도 많이 발견된다. 그것은 곧 풍수라는 학문분야도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 인 이상, 그에 대해 연구하는 풍수사와 그것을 수용하는 일반 대중의 의식 구조에 따라 그 운용상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발복위주의 이기적인 측면만 챙기려든다면 풍수는 사회발전에 역기능으로 작용할 것인 반면, 상생(相生)위주의 긍정적인 측면을 추구할 것 같으면 풍수도 그만큼 대동의 이상적인 사회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김천시 봉산면 봉계(鳳溪)는 풍수의 그런 양면성이 잘 함축돼 있는 마을 이다. 역사가 오래된 삶터치고 온갖 풍수설을 간직하지 않은 마을이 어디 있으랴마는 봉계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그 옛날의 풍수 전설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내용인 반면, 일제시대 이후의 풍수는 오히려 여러 성씨들이 모 여사는 촌락공동체의 융화와 단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제아무리 산수지세가 빼어난 삶터라 할지라도 인화(人和)가 수반되지 않 는다면 그 격(格)도 자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인즉, 21세기 한국풍수 가 지향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지평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필자의 판단으로는 봉계 풍수의 그런 긍정적인내용들이 매우 큰 의의를 지 니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영남의 북, 서쪽 울타리를 이루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추풍령 고개 바 로 동쪽 옆 골짜기 안에 터잡은 봉계의 지세는 참으로 훌륭하다. 북에는 난함산(卵含山)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남쪽의 동과 서로는 문암봉(門岩峰 혹은 牡丹峰)과 극락산(極樂山)이 비스듬히 마주보며 자리잡고 앉았으며, 그 두 산의 지맥들이 마치 양팔을 든 듯 남쪽으로 나란히 길게 뻗어있다.

그 두 동산(東山)줄기와 서산(西山)줄기 바깥쪽으로도 또다른 산줄기들 이 이중, 삼중으로 포진하여 봉계곡의 좌, 우를 우호하고 있는 가운데 특 히 추풍령에서 가성산(柯城山), 황악산(黃岳山)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최외 곽 줄기는 그 한 지맥을 동으로 달리게 하면서 봉계곡의 남쪽 맞은편에 안 산(案山)이 되는 덕대산(德大山)을 일궈놓았다.

명당수인 봉계천은 깊은 골짝을 타고 남쪽으로 흘러내려 동네 어귀의 장 사례(長砂禮)들을 지난 후 금릉평야를 동류(東流)하는 직지천(直指川)에 합류하니 그 산수취합 또한 빼어나다.

봉산교 부근에서 북쪽의 극락산 줄기를 한번 쳐다보라. 그것은 마치 봉 황 한 마리가 물에서 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른바 봉황부유형(鳳凰浮 遊形)의 산수지세이니 봉계라는 마을 이름도 아마 거기에서 따왔을 성싶다.

남쪽으로 기름진 넓은 들을 끼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삶터가 길격의 풍수 지세를 갖춘 탓인지는 몰라도 이미 신라때부터 봉계는 여러 성씨들이 거주 했던 것으로 전해온다. 하기야 '택리지'에도 봉계는 들이 큰데다 영(嶺)과 가까워서 평시나 난시(亂時) 가릴 것 없이 여러 대를 이어 살만한 곳이라 고 적혀 있을 정도이니, 일찍부터 경향 각지의 사람들이 그곳을 세거지로 정해 모여 들었음직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봉계를 비롯한 그 인근 일대 의 여러 가문에서 파생돼 전해오는 풍수전설이다.

"임진란때 원병을 이끌고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극락산 주변 산천의 비범함에 놀라 자기보다 뛰어난 장수가 많이 나서 제 나라에 후환이 있을 까봐 두려워 한 나머지 지금의 덕천동에서 태화동으로 넘어가는 낫고개(지 금의 낙고개:극락산 줄기의 남서쪽 끝부분)의 맥을 모조리 낫으로 끊었다" 고 하는 믿기지않는 얘기는 물론 그런대로 웃어넘겨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극락산 동쪽 자락의 명당에 묘를 쓴 서산정씨 가문이 날로 번창 하자 왕실이 파묘를 명하여 그 가문이 망하고 말았다든가, 혹은 내입석(內 入石)에 살던 경주이씨 집안이 동냥 온 스님에게 인색하게 굴자 그 스님이 집앞의 못(池)에 소금을 뿌리면 집안이 더욱 흥한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 는데, 이씨집안이 그것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했더니 못에서 학이 날아가버 려 결국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든가, 아니면 경주이씨와 영일정씨 집안간에 있었던 보다 구체적인 재궁(齋宮)골 명당 쟁탈전 같은 얘기들은 결코 그렇 게 단순히 좌시하고 넘어갈 내용이 아닌 듯하다.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오로지 터의 탓으로 돌리는 그같은 비정상적인 심 성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그런 얘기 들 때문에 한국풍수가 시대에 걸맞는 신풍수론을 창출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손실 또한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묘터 발복 무용론(無用論)에 반발하여 필자의 조상묘를 대상으로 한번 실험을 해보자고 대드는 발복맹신론자도 현실적으로 있는 실정이고 보면 필자가 왜 그런 풍수전설들을 우려하고 있는지를 독자 여러분들은 가 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풍수의 앞날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봉계 사람들의 마 음속에 들어있는 삶터에 대한 풍수적인 의식이 곧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봉계는 현대 한국에 들어와서 유난히 장군(혹은 將星)을 많이 배출한 마 을이다. 육군대장을 지낸 정 모 장군을 비롯해 이웃마을까지 통틀어 무려 예닐곱명이나 된다. 그런 경우 풍수연구가들은 대개 그 지역을 답사하여 과연 장군을 배출할 만한 지세를 갖추고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그리고 투구봉이나 장군대좌(大座 내지 對坐)형과 같은 산세가 발견되면 바로 그 지세의 발복으로 장군이 날 수 있었다고 단정짓는다.

아닌 게 아니라 봉계 일대에서 그런 유형의 지세를 찾아내기는 그리 어 렵지 않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곳에 살고 있는 현지 주민들의 삶터 풍수해석이 그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는 봉계 골짜기를 곡식을 까부르는 키의 형상에 비 유하고, 키는 반드시 아래, 위로 흔들기 때문에 그 안쪽(골짝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仁義里)과 중간(가운데에 위치한 禮智里), 그리고 바깥쪽(골짝 입구의 信里)에 해당하는 마을 모두가 번갈아 돌아가면서 발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봉계동이라는 지명을 이른바 인.의.예.지.신 의 오상(五常)이 들어가는 인의동, 예지동, 그리고 신동으로 개명하여 충 신과 절부(節婦), 그리고 효자가 많이 났던 유교적 반촌(班村)으로서의 옛 전통을 결코 잃지 않으려 했던 것도 무척 자랑스러운데, 거기에다 삶터 발 복까지 골짝안의 모든 마을들이 돌아가면서 공유하는 것으로 의식하고 있 으니 그것이 곧 모두 다 함께 번영하여 화평하게 될 수 있다는 대동의 풍 수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 대동의 정신은 불과 20여년전부터 포도를 비롯한 각종 과수농사로 봉계의 대부분 농가소득이 증대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가난 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오히려 이웃을 걱정하고 있었던 한 촌로의 마음을 통해서도 재삼 확인된다.

여름철에 동남풍이 추풍령을 위시한 이 일대 산줄기들의 복사열을 받아 크게 더운 바람이 되기 때문에 김천 고을이 이 나라에서 포도를 가장 빨리 출하하는 명산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는 것이 하나의 지리적 현상이라 면, 촌로의 그런 이웃 걱정은 곧 인화정신의 발로에 다름아니다.

이 둘의 상대적인 가치를 비교하기는 어렵겠으나 딱히 하나를 선택해야 만 한다면 필자는 후자를 더 높이 사고 싶다. 봉계 골짜기를 벗어나오는데 한모금 얻어마신 그 맛없던 물맛도, 얼굴을 매섭게 때리던 차가운 바람도 이제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에 녹아내려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필자의 머리 속에 가득 채워지고 있는 새로운 고뇌는 풍수를 어 떻게 활용하면 이 나라 이 땅에 대동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풍수학자.지리학 박사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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