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연구논문및사례

[스크랩] 이몽일의 신풍수기행 . 25] 장묘문화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52
이몽일의 신풍수기행 . 25] 장묘문화

전통 매장(埋葬)문화에 대한 각성과 국토자연을 보호하려는 각종 장묘문 화 개선운동이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 일각에서 폭넓게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매장률은 여전히 화장률(火葬率)을 압도하고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 정부당국이 이 땅에 매장문화가 형성된 요 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제때에 적절한 새로운 장례문화정책을 수립한 후, 그것을 국민들에게 꾸준히 계몽.교육해 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의 매장문화가 유교주의의 효(孝)사상과 풍수지리설에 그 바탕을 두고 사 회적으로 저변화되었다면, 그런 장묘문화의 개선 방안도 분명 그 두 인자 (因子)에 함축돼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전통 매장문화의 근원적인 힘이 돼온, 명당에 묻힌 조상의 뼈 를 통해 후손에게 길기(吉氣)가 전달된다고 하는, 음택풍수(陰宅風水) 동 기감응론(同氣感應論 혹은 親子感應論)의 실체와 발복론(發福論)의 허상을 밝히고, 또한 매장만이 진정한 효의 길이 아님을 널리 인식시키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다.

전통 음택 풍수론에 따르자면, 사람이 죽으면 하늘과 땅으로부터 잠시 빌렸던 형체인 육체가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어진다. 정신작용을 했던 양(陽)의 혼인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체의 생명을 다스렸던 음(陰)의 혼인 백은 땅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인체의 뼈는 음양생기의 정기가 응결된 것이며, 근육과 피부는 이 정기로부터 발전된 것이니, 뼈가 진(眞)이라면 근육과 피부는 가(假)이다. 만약 땅으로 되돌아간 살과 뼈가 생기(生氣)를 타면 자신은 쓸 곳이 없 으므로 자연히 자신의 후손에게 기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것을 동기감응 또는 친자감응이라 한다.

또한 풍수에서 말하는 혈처(穴處)란 시신의 살을 빨리 부패시키고 뼈를 오랫동안 저장하고 보존하기에 알맞은 온도(주변보다 높음), 습도(40%를 .5-7도)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은 주변 의 온.습.산도가 제아무리 변화한다 할지라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 벌레 나 세균 등이 침입할 수 없으므로 해골 보전에는 그저 그만이다.

장소에 따라 불과 몇십년 만에 소골(消骨)되는 곳이 있는 반면, 몇백년 동안 황골(黃骨)로 남아있는 곳도 있고 보면 혈처의 역량은 모두 다른 셈 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육신이 부패되기 어려운 곳이나 또는 뼈 자체가 속히 썩어 오염될 자리는 흉지(凶地)라 하여 금기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뼈가 황골로 변할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있다는 것은 물론 옳은 말이다. 문제는 바로 그런 곳이 곧 좋은 기를 후손에게 전달하여, 그 후손 이 현관영달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는 발복론적인 사고이다.

이에 대해 일찍이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은 그의 '담헌서'에서 이르 기를, "중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옥에 갇혀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밖에 있 는 그 자식들의 몸에 무슨 탈이 났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거늘, 어찌 죽 은 자의 혼백이 후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그야 말로 형이상학적인 동기감응론에 대한 매우 적절한 형이상학적인 반론이었 던 셈이다.

더구나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그런 철학적인 차원이 아닌 구체적인 실증 자료를 제시하면서 동기감응론을 비판하였다. '성호사설(星湖僿說)' 에 쓰여있는 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화복(禍福)이 조상묘에 달 려있다고 믿고, 심한 사람은 두세번씩 분묘를 파헤쳐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근자에 전주 부윤이 조정의 허락을 받아 경기전(慶基殿) 부근의 사방 산에 보기 흉하게 난립해 있던 무덤들을 옮겨가도록 하면서 부하 장 졸로 하여금 일일이 광중(壙中)의 상태와 그 자손들의 잘되고 못됨을 살펴 보게 하였던바, 부호한 자의 선대묘라 해서 반드시 좋지도 않고 또한 못사 는 사람의 선대묘라 해서 반드시 흉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동기감응론의 그런 허상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조상의 시신을 화 장하고도 소위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에게 발뺌을 할 여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현대의 많은 풍수사들은 화장에 대해 '무해무득론 (無害無得論)'을 내세운다. 말그대로 화장을 하면 후손들에게는 해도 없고, 득도 없다는 것이다.

망자의 시신처리 방법과 후손들을 어떻게든 연계시키면서 후손들의 이해 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지만, 그런 몰지각한 면은 일단 제쳐 두고서라도,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배경부터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풍수에 광중의 시신 상태를 설명하는 오행렴(五行廉)이라는 것이 있다. 관 속에 물이 차는 수렴(水廉), 나무뿌리가 침입하는 목렴(木廉), 뱀이나 쥐, 기타 온갖 벌레가 우글거리는 충렴(蟲廉), 유골의 일부 혹은 전체가 불에 탄 듯이 까맣게 변하는 화렴(火廉), 유골이 바람을 맞아 전체적으로 검으면서도 푸석한 풍렴(風廉)등이 바로 그것이다.

예전에는 장례를 치른 지 3-4년이 되면 대부분의 후손들이 조상의 분묘 를 개장하여 시신의 육탈과정과 오행렴을 확인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때 만약 황골이 아닌 다른 상태로 유골이 보전돼 있으면 거의 이장(移葬) 하는 것이 관례였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의 토질구조상 분 묘에 수렴이 들 확률이 전체분묘의 과반수에 달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 하수가아닌 지상의 물, 즉 양수(陽水)가 무덤에 들어가게 되면 육탈은 물 론 뼈까지 1-2년 내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풍수사들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있겠는가.

수많은 분묘를 통해서 수많은 오행렴의 사례를 목격했을 터이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어쩌면 화장하는 것이 매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청 결한 장례방식이라고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화장의 '무해무득론'이 나오게 된 배경은 결코 그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 다. 부모의 시신을 매장해 드리는 것이 자식으로서 효도를 다하는 것이라 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이 풍수 오행렴의 폐해를 유념해 둘 일 이다.

우리 사회 화장문화가 직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큰 골칫거리는 바로 화 장과 영혼의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기본 인식이다. "사체를 화장하면 영혼 이 소멸되기 때문에 자손이 번영하지 않는다"고 하는 반(半)풍수론적인 사 고 뿐만 아니라 "화장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라는 민간신앙적인 영혼관에다 "부활과 영생을 믿기에 화장은 안된다"는 종교적인 이유까지 덧붙여져 그야말로 화장문화의 보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조상의 뼈를 통한 묘터 지기(地氣) 뿐만 아니라 조상의 영혼도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 면 순수한 풍수논리적 사고도 아니요, 그렇다고 순수한 조상숭배나 무속 신앙인 것도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묘지풍수는 조상령을 모시는 제사와 무속신앙 같은것을 함께 아우르는 잡술(雜術),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차원으로 타락해 있 다. 더구나 죽은 자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머무르고 있는 장소로 인식돼온 유택(幽宅) 명당에다 조상의 시신을 매장한 후에도, 절에 가서 사십구일재 (四十九日齋)를 올려 다음 생(生)을 부여받도록 기원하는 작태는 또 뭔가.

그렇게해놓고도 또한 해마다 기일(忌日)이 되면 제사까지 지내고 있으니, 조상 한 사람의 영혼이 도대체 몇 개나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 를 일이다. 일관성을 전혀 보이지 않는 그같은 매장풍습과 신앙이 바로 오 늘날 우리 장례문화의 현주소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대자연의 이 법이다. 조상의 골육 자체가 좀 더 빨리 흙으로 화해 버린다고 해서 불효 하는 것도 아니요, 조상의 뼈를 황골로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효도인 것도 아니다.

어떤 조사에서 40대 이상의 사람들 중에 "자식의 불편함을 덜어주면서도 나중에 산소(山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을까봐 두렵기 때문에 화장을 선호 한다"고 대답한 사람들도 많이 있고, 더구나 이 땅 위에 수많은 폐묘들이 있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오히려 조상의 유골들을 한 곳에 모아 안장하는 한국식 가족형 납골분묘야말로 대대손손 조상의 은덕을 잊지 않게 하는 장 례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외국의 빌딩식 납골당 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면서 그것을 도 심(都心)이나 주거지 주변에막무가내로 입지시키려 하는 것은 우리 국민 들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문화 충격임이 분명하다. 그런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곧 우리 사회에 화장문화를 빨리 정착시킬 수 있는 길이라면 기존의 공원묘들을 서서히 분묘형납골묘로 개조해 나가는 방안도 한 번 고려해 봄 직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지금도 반풍수들은 대개 후손들에게 어떤 불미스런 일이 일어 나면 그 원인을 모두 조상묘터 탓으로 돌린다. 어디 그뿐인가. 소위 왕비 가 날 명당이니, 국회의원이나 장.차관이 날 명당이니 하면서 시대착오적 인 발상으로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알고보면 광중(壙 中)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디까지나 터 자체가 지닌 자연지리적인 속성의 부산물일 따름이고, 그것과 후손들의 길흉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를테면 개인의 사회적 출세나 부귀영화를 점치는 수단으로서 묘터명당을 입에 올릴 수 없다는 말이다.

한 인간의 길흉사가 조상묘터가 아닌 사회원리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은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후손들의 잘 되고 못됨이 조상묘 의 음덕 유무가 아닌 본인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인정 된다면, 이른바 '조상묘터 탓'이라는 전근대적인 한국적 사고방식을 근절 시키고, 또한 건전한 국민정서의 함양과 삶터 국토자연의 보전을 위해서 라도 우리 사회에 화장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지 않는가.

음택 발복논리는 자연을 해석하고, 사회를 운용하고, 인간행태를 결정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오로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역(易) 철학을 바탕으 로 하던, 과거 왕조시대의 농경사회가 낳은 지인무간(地人無間)의 한 고전 적인 모델일 따름이다. 따라서 작금의 과학기술사회에서, 살아생전에는 부 모를 잘 모시지 않던 사람이, 돌아가시고 난다음에 효도를 한답시고 묘터 명당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황당한 이기적인 발복심리에 서 비롯된 하나의 행태 오류로 간주되어도 무방하다. 혹자는 매장만이 효 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적합한 행동방식이라 애써 강조하지만,사 람의 마음은 반드시 그런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망자(亡者)에게 좋은 터는 극히 드물게 있되,후손들이 희구하는 그런 발복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풍수학자.지리학 박사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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