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연구논문및사례

[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22] 성주 흠실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51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22] 성주 흠실

성주 고을에서 가장 좋은 삶터 명당은 과연 어디일까. 예로부터 경상도 의 성주와 진주, 전라도의 남원과 구례 등이 이 나라 안에서 기름진 땅을 가진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왔으니, 아마도 큰 들(野)을 끼고 있는 그 어 떤 마을이 최고의 명당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하에서는 비닐하우스를 하든 어떻든 경제적인 수익을 많이 올리는 부촌(富村)일수록 좋은 삶터로 여겨지기 십상인즉, 그 런 생각이 드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성주 고을에서는 일찍부터 전혀 예상밖의 명당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정유재란 때 이 나라에 귀화한 명나라 풍수사 두사충(杜師忠)이 일찍이 성주 고을을 둘러보고 5명당을 지목한 바 있는데, 그 으뜸으로 친 홈실이 토지의 비옥함과는 전혀 무관한 산골짜기 마을인 것이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모름지기 좋은 마을터란 산세가 끝나고 넓은 들이 열려 있는 곳, 즉 해와 달과 별이 항상 환하게 비치고, 바람과 비가 알맞으며, 차고 더운 기후가 고른곳을 이를진대, 어찌하여 바로 코앞에 있는 초전(草田)들의 그 런 좋은터를 다 놔두고 굳이 골짝 안 깊숙한 곳에 터잡은 홈실을 으뜸 명 당으로 손꼽았다는 말이던가.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풍수 명당관념의 새로 운 면모를 궁구해 볼 수 있다.

"지리학적으로 볼 때 한 나라에서 중요하지 않은 땅은 없다.우리 선조들 은 척박한 땅 한 조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풍수에서는 오직 명 당에만 관심을 두었다"라고 하면서 풍수를 맹비난한 학자도 있고 보면, 홈 실의 진정한 명당성(明堂性)을 밝히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성주군 초전면 월곡(月谷)1리, 속칭 홈실은 마을의 서북쪽에 웅좌(雄座) 해 있는 백양산(白羊山 혹은 鳳陽山)이 양쪽으로 팔을 벌린 가운데, 그 지맥인 동쪽의 봉악산(鳳岳山)줄기와 서쪽의 곡성산(穀城山)줄기가 나란히 달리면서 형성해 놓은 좁고 긴 골짜기 안에 들어앉아 있다. 현재 안골(內 谷), 담뒤(濟南), 뒷미(陶山), 새뜸(新溪), 배나무골(梨洞) 등의 다섯개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는 홈실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 땅의 여느 산곡(山谷) 마을과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판국(版局)이 좁아 경작지도 부족할 뿐더러 간수(澗水)이자 명당수인 제천(濟川)의 유량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햐기야 홈실, 즉 명곡(椧谷)이라는 지명의 유래만 살펴봐도 홈실 마을터 의 불완전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곳 출신 벽진(碧珍)이씨 11세손 산화 (山花) 이견간(李堅幹)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선생의 문장과 풍채에 탄복한 원나라 순제(順帝)가 선생이 살고있는 곳을 묻기에 호음실(好音谷) 이라 답하고 지세도를 그려 보여준 결과, 순제가 마을에 물이 모자라겠다 고 하면서 백양산 북쪽에 있는 걸수산(乞水山:별뫼(星山 혹은 白馬山)의 물을 나무로 홈통을 만들어 당긴다는 뜻으로 명(椧)자를 넣은 마을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홈실의 입향조인 벽진 이씨 7세손 이방화(李芳華)는 어떤 까닭 으로 지금으로부터 800여년 전에 삶터로서는 그다지 훌륭하다 할 수 없는 이 명곡에다 마을 터를 닦게 되었을까. 물론 관향(貫鄕)인 벽진과 명곡이 서로 이웃해 있다는 점도 감안됐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아무래도 정화 (政禍)나 병화(兵禍)로부터 가문을 지키고, 또한 가세(家勢)를 일으킬 만 한 힘을 기를 은둔지로서 명곡을 선택했을 성싶다.

명곡과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는 달밭(月田)과 소야(韶野)의 진밭이 저 김천 남면(南面)의 선밭과 함께 3밭(三田)이라 하여 이른바 삼재 (三 災)가 들지 않는 피병지(避兵地)로 널리 알려져 오고 있기도 하거니와,더 구나 입향조 자신이 "누대에 다섯형제가 태어나 모두 높은 벼슬 자리에 오 르면 그때 마을을 떠나라"는 유언을 남긴 것만 봐도 그같은 사실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어쨌든 농경의 결실이 풍요로운 곳에서는 예술과 풍류정신이 싹트고, 경 제적인 풍요는 없지만 맑고 건강한 자연 속에서는 문학과 선비정신이 길러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입향조의 8세손인 경상병마도원사 희경공 대에 이르러 그의 다섯 아들이 다같이 높은 벼슬에 오른 것은 물론, 숙질간에 모두 8판서가 배출되어 벽진 이씨가문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명문대가로 번창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가문의 성운(盛運)이 곧 마을터의 쇠운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이다. 1400년대 초에 백양산과 곡성산 계곡의 물이 넘쳐 온 마을과 농 경지가 쑥밭이 돼버리고 다섯 형제들은 칠곡, 선산, 창녕, 밀양 등지로 제 각기 식솔을 거느리고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당시에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는 불탄등은 사실상 산곡취락이 입지할 만 한 장소가 아니다. 백양산과 곡성산 사이의 좁고도 깊은 골짜기의 곡구에 위치한 불탄등은 계곡과 거리가 너무 가까울 뿐만 아니라 하상(河床)과도 그 높이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아마도 물이 귀한 계곡이라서 별 생각없 이 그곳에다 마을터를 정한 것 같은데, 인구가 늘어 마을이 커지면서 주변 산림이 점점 황폐해지고 거기에다 폭우까지 내려 토사가 쓸려 내려와 하상 을 꽉 메우면서 종래는 계곡 전체가 범람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비좁은 골짜기일 망정 그 삶터를 문학의 요람으로 승화시켜 중국에 서조차 '천지(天地)와 공존하는'서정을 지난 사람으로 극찬한 산화 선생과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흠실이었건만 마을터를 잘못 잡고, 또한 그 주 변의 토지를 잘못 이용함으로써 결국은 폐촌이 되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된 것이다.

그런 쓰라린 경험 탓인지 1600년대에 칠곡에 살던 후손들이 재입향하여 새로이 터를 닦은 지금의 안골, 담뒤, 뒷미 같은 마을들은 하나같이 예전 의 불탄등보다는 훨씬 더 나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흠실의 중심을 이루는 안골은 백양산의 주맥(主脈)이 좌우로 힘차게 요동치며 내려오다가 그 끝 맺음을 하면서 아담하게 솟구쳐 놓은 남산(南山)자락에 기대어 입지해 있 는데, 대부분의 집들이 곡성산 줄기를 바라보면서 남향하고 있다.

그런 반면 담뒤와 뒷미는 풍수형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터잡은 마을인 듯하다. 곡성산 자락에 있는 완정고택(浣亭古宅)에서 그 집의 좌향이 돼 동쪽인 봉악산 쪽을 향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지금은 도로가 나면 서 그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남산의 지맥이 제천을 따라 골짝 한가운 데로 길게 뻗어 내려오면서 마치 장군이 쓸 검(劍)이 눈앞에 가로놓여 있 는 듯하니 이른바 담뒤는 장군대좌형(將軍大座形)의 길지에 다름아니다.

흠실의 북쪽에 위치한 뒷미의 경우는 그 지세가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데, 마치 오목한 질그릇 같기도 하고 또한 소쿠리 모양 같기도 하다. 그 안에 들어앉아 있는 문곡서원(汶谷書院)에서 앞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다섯 봉우 리가 눈에 들어온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그 좁은 터 안에 너무 많은 집들 이 꽉 들어차 있어 보기에도 답답할 뿐만 아니라 대기순환에도 큰 어려움 이 따를 듯하다는 것이다. 발복을 희구하는 인간의 심리가 그같은 경관(景 觀)을 만들었음이 분명할진대 불탄등의 풍수진실만 제대로 알고 있다 해도 결코 그런 행태(行態)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남산 위에 올라 동남쪽으로 유일하게 트인 명곡의 바깥쪽을 내다보는데, 멀리 장산(長山) 줄기와 아름답게 솟은 월항(月恒)의 영취산(靈鷲山)이 이중으로 그 허결함을 메워주고 있다. 아마도 옛 홈실 사람들은 그 두 산 의 덕택으로 삶터를 훨씬 더 안락한 장소로 느꼈을 것이다. 혹자는 봉악산 줄기와 곡성산 줄기가 수구를 관쇄하고 있는 곳에 만들어져 있는 월곡지 (月谷池혹은 椧谷池)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는지도 모른다. 이를 테면 홈 실의 전체 지세를 옥병저수형(玉甁貯水形)의 길지로 일컫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어디까지나 홈실풍수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두사충 이 어떤 기준에서 홈실을 성주고을의 으뜸 명당으로 손꼽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가 홈실에서 고관대작이 많이 배출된 것에 착안하여 발 복론적인 관점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면 그것은 곧 그 과정은 무시한 채 그 결과만 논한 것이 되므로 명백히 잘못된 판단임이 틀림없다. 홈실의 진정 한 명당성은 객관적인 판단이 될 수 있는 그 터의 자연적인 풍수요소에 있 는 것도 아니요, 그곳에서 일어난 인문적인 길흉사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곳을 삶터로 삼아 살다간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돼 있는 지인교 감(地人交感) 상태의 그 어떤 내용이 곧 홈실의 참된 명당성인 것이다.

풍수학자.지리학 박사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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