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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20] 대구시기 | ||||
앞으로 서울, 부산, 대구와 같은 거대도시의 풍수 논의는 과연 어떤 점 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까. 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같은 사신사론(四神 砂論)일까, 아니면 행주형(行舟形), 백경귀포형(白鯨歸浦形), 매화낙지형 (梅花落地形) 등과 같은 지세 형국론(形局論)일까. 아직까지 환경적으로 건강한 중.소도시나 촌락이라면 몰라도, 이미 환경문제가 심각한 거대도시 의 경우에는 그런 식의 풍수해석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 다. 물론 그같은 풍수론은 도시역(域) 내의 지맥을 보호하는 데 직접적으 로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또한 간접적으로는 시민들로 하여금 삶터에 대 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나라 거 대도시에 대한 그같은 전통적인 풍수해석론의 무분별한 적용은 알고보면 시민들로 하여금 기(氣) 개념을 정점으로 하는 풍수본질을 왜곡, 수용케 할 뿐만 아니라 삶터 풍수환경에 대한 판단력마저 흐리게 만들기에 충분하 다.
대구가 오늘날처럼 거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산(主山)인 팔 공산과 안산(案山)인 앞산(성불산.成佛山), 그리고 수구사(水口砂)인 와룡 산에다 명당수인 신천과 금호강, 외수(外水 혹은 客水)인 낙동강을 조화롭 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시기(市基)의 지세가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형국이거나 연꽃이 핀 형국과 같아 그 발복으로 발전이 가 능했던 것인가. 필자가 새삼스레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몇 해 전에 서울에서 있었던 풍수 난상토의(?)가 문득 생각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 서 토의였지 그것은 일종의 풍수 공박론장이나 다름없었다. 그 내용인즉, 서울이 우리나라에서는 둘도 없는 명당이어서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도 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옛날의 사대문 안 길지가 최근 에는 오히려 오존주의보가 빈번히 발령될 정도로 대기오염이 심하니 사신 사든 장풍득수(藏風得水)든 간에 풍수라는 것은 원래부터 말끔 헛게 아니 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질문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째, 도시는 커질수록 명당과 거리가 멀어지며, 그것은 풍수적으로는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걷는 것이다. 도시의 거대화를 지세의 발복으 로 해석하는 것은 얼풍수들이 하는 짓이며, 그것은 조선 세종조에 집현전 에서 심각하게 거론되었던 한양 도성의 명당수인 청계천 오염문제에 대한 논의를 생각해 볼때 실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둘째, 옛 한양 사대문 안 터 가 오염이 심해지게 된 것은 우리가 그곳을 과밀개발한 탓이지 처음부터 그 터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곳에 꽉 들어차 있는 고층건물들과 높은 지가(地價), 그리고 겨울철에 특히 대기오염이 심한 점을 감안하면, 차라 리 주산인 북악산과 백호인 인왕산을 잇는 요부(凹部)인 자하문 고갯길 지 맥을 끊어 차가운 북서풍을 많이 유입시킴으로써 대기의 질을 개선해 봄직 도 하다. 전통적인 풍수지세론에는 위배되지만 그런 것이 바로 요즘의 거 대도시에 적용할 수 있는 기(氣) 중심의 현대적인 신풍수론이 아니겠는가. 사실 기 풍수론으로 보자면 대구의 풍수환경은 서울에 못지 않게 나쁘다. 여느 대도시처럼 생기(生氣)를 낳는 녹지대도 부족할 뿐더러 설상가상 그 순환체계마저 엉망이다. 대구의 고지도에 나타나 있는 옛 산천지세는 결코 그렇지가 않다. 부기(府基)를 둘러싼 많은 지맥들이 그대로 살아 있 어서, 그 생김새는 흡사 활짝 핀 연꽃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 안 그런 지맥들을 시가지와 주택지로개발하면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 고, 수많은 실개천들도 대부분 복개해 버렸다. 예부터 천기(天氣)가 하강 하고 지기(地氣)가 상승하는 곳, 즉 음양이 부합하고 천지가 서로 통하는 곳에 풍수는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곧 우리 스스로가 삶 터의 생기 잉태공간을 파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무지의 소치는 이 제 시 외곽의 산자락으로까지 옮겨가 마구잡이로 산허리를 뚫거나 자르면 서 도로를 확장하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패기(敗氣)의 통로인 도로건설을 위해 생기의 통로인 지맥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람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마구잡이식 도시개발은 또한 어떠한가. 이 미 오래전에 계절풍이 불어들어오는 길목인 시의 서쪽과 서북쪽에다 공단 을 입지시킨 결과, 온 대구시내가 거의 매일 매연으로 뒤덮이며, 더구나 시 외곽의 산자락에 무분별하게 난립 개발돼 있는 고층아파트들은 산골짜 기로부터 밤새 불어내리는 산바람들을 차단해 도시내부 대기오염물질의 자 연스런 정화 순환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구분지에서는 서울 한강의 강 바람과 부산의 바닷바람처럼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바람이 생성되기 어렵다 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는 그런 산바람을 막는 외곽지 개발은 더욱 신중 을 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시가지화된 공간을 양(陽), 녹지대나 수(水)공간을 음(陰)이라 할 때, 대구시내는 이미 순양순화(純陽純火)의 폐기로 가득찬 병든 공간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옛 신라의 천도(遷都) 후보지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3 대도시로서의 그 위상과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시당국은 도로개설과 같은 도시하부시설의 양적인 팽창에서 대구라는 삶터 환경의 질을 개선시키는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경제적 이익만을 반영하는 도시개발을 추진하다보면 종래는 도시 전체가 회복불능 상태로 병들어 엄 청난 사회적 손실이 초래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여러 시민단체 들도 시민 각자 나무 한그루 심기운동과, 시멘트로 덮여있는 집마당을 맨 땅이나 잔디밭으로 바꾸는 운동을 벌여보면 어떨까. 모르긴해도 아마 시내 의 대기오염도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더 운 도시라는 불명예도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옛 연귀산(連龜山)이 있었던 자리인 제일여중 교정에 지금도 거북바위라 는 것이 있다. 그 옛날 대구 조상들은 달구벌 곳곳에 솟아 있었던 나지막 한 산들 중에서도 그 연귀산을 읍기(邑基)를 지켜주는 진산(鎭山)으로 설 정하고, 돌거북을 만들어 머리를 남쪽, 꼬리를 북쪽으로 두게 묻어서 비슬 산에서 뻗어오는 지맥을 통하게 한 후, 그 이름을 연귀산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거북이 산에서 기어내려오는 지세(山下靈龜形)에서는 그 머리부분이 혈 처(穴處)이고, 거북이 산으로 기어올라가는 지세(山上靈龜形)에서는 그 꼬 리부분이 혈처이다 보니, 아마도 꼬리 북쪽에 있는 대구읍기가 비슬산의 지령(地靈)이 와닿는 명당터임을 알리기 위해 그런 식으로 묻었으리라. 물 이라고 해서 다같은 물이 아니듯이, 산이라고 해서 다같은 산이 아니요, 땅이라고 해서 다같은 땅이 아니다. 산은 그 놓인 위치에 따라, 그리고 땅 은 그 건강함과 산수조화성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그 위상을 달리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꾸만 산을 도시로부터 멀리 추방해 내는 오늘날의 도시 문화 세태에 비춰보면, 가까이 있는 낮은 연귀산을 달구벌의 성산(聖山)으 로 설정한 대구 조상들의 슬기는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풍수학자.지리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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