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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18] 청송 감람묘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50

2004-02-09 입력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18] 청송 감람묘

어떤 사상이든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나라 풍수사상만 큼 그 역사에 비해 내용이 일신(一新)되지 못하고 있는 사상도 아마 드물 것이다. 부모의 시신을 명당에 모시게 되면 후손이 잘 된다고 하는 동기감 응론(同氣感應論)만 해도 그렇다. 조선조에 이미 많은 실학자들이 그 허상 을 지적하면서 참풍수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시사해주었건만, 한국 풍수는 오늘날도 여전히 발음(發蔭)이라는 미궁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묘터발음에 대한 믿음은 순전히 살아있는 후손의 이기적인 음덕(蔭德)욕 심에서 비롯된것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어떤 강연회에서 필자가 동기감응론을 강력히 부정하면서, 어차피 매장(埋葬)을 할 요량이면 가능 한 한 좋은 터에 조상을 모셔서 체백(體魄)을 편안케 해드리고 또한 후손 들도 봉분이 유실되는 것과 같은 시름을 덜 수 있으니 그것이 곧 음덕이나 진배없다고 얘기하자, 한 질문자가 대뜸 강변하는 말이, 그렇다면 풍수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의 죽은 사상이나 다름없다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너 무나 뜻밖이어서 기가 막힐 지경이었지만 그 의중을 짐작하고, 만약에 우 리나라 온 국민이 조상의 시신을 화장하여 그 뼛가루를 동해바다에 뿌린다 고 해도 대통령이 될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재벌이 될 사람은 재벌이 될 텐데, 그 때는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그 음덕을 논할 것인지 한 번 대답해 보라고 하자 그제서야 혼란스럽던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이었다.

그런 잘못된 음택(陰宅) 발복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 이 되는 묘터가 하나 있다. 바로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新基里) 기곡산(岐 谷山) 기슭에 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시조묘다. 감람묘(甘藍墓), 감란묘 (甘蘭墓), 호장공묘(戶長公墓) 등으로 불려지는 이 묘는 퇴계(退溪) 이황 (李滉) 선생의 6대조 묘로서 예부터 전형적인 금계포란혈(金鷄抱卵穴)에 터잡은 훌륭한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신기천(新基川) 제 방에서 기곡(岐谷)쪽을 바라보면 좌우로 기곡산 지맥이 수구(水口)를 관쇄 하고, 그 한가운데로 둥우리 같이 생긴 둥그런 봉우리가 아름답게 솟아있 는 것이 보인다. 게다가 감람묘의 후맥상(後脈上)에 닭의 볏과 흡사한 바 위가 박혀 있어 형국으로 본다면 지형 자체는 영락없이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분묘에서 앞쪽을 바라보면 기곡산의 오른쪽 줄기가 서 남간으로 크게 돌아내려오면서 마치 여러 개의 구슬을 꿰어서 이어놓은 듯 한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적당한 높이로 연이어 솟구쳐 놓았는데,그것은 충 실한 내맥(來脈)과 더불어 감람묘터를 더없는 명당으로 승화시켜 주고 있 다. 골짝안에서 일차 합수되어 내려오는 맑은 명당수는 기곡재사(齋舍)를 돌아 흐르면서 묘가 위치한 봉우리 앞을 빠져나가 신기천에 합류되는데, 그 신기천이 다시 서쪽으로 흘러 용전천(龍纏川)과 합류하는 모습을 안산 이 가려주고 있으니 수세(水勢) 또한 길격인 셈이다.

묘터의 객관적인 명당 특성이 그같이 뚜렷할진대, 역시 문제가 되는 것 은 그 터에 얽힌 전설같은 얘기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풍수연구 가들과 일반 대중들이 아무런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는 그런 전설들은, 알 고 보면 모순투성이의 이율배반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 대략적인 내용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옛날 퇴계 선생의 5대조가 진보현 아전으로 있을 때, 풍수에 밝은 원님이 고을을 둘러보다가 감람골의 지세를 눈여겨 보고 돌아와 아전에게 말하기를 "달걀을 가지고 가서 봉우리 위에 파묻고 자시(子時)까지 기다려 닭이 우는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고 오라"고 하였다.

풍수를 약간은 알았던 아전이 다른 생각을 품고 일부러 곪은 달걀을 묻 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아뢰고는, 후일 밤중에 남몰래 달걀을 파묻고 몇 시간을 기다리니 병아리가 되어 있은즉, 그곳이 명당이라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다가 부친상을 당하여 시신 을 그 산에 안장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깊이 파고 묻어도 자꾸만 시신이 땅 밖으로 튀어나왔다. 급기야 한양으로 옛 원님을 찾아가 사죄하니 헌 관 복 한 벌을 내주면서 "그 터는 큰 벼슬을 지낸 사람만이 묻힐 곳이니 시신 에 이 관복을 입혀서 묻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대로 따랐더니 과연 아무런 탈이 없는지라, 그일이 있은 후 6 대만에 퇴계 선생 같은 훌륭한 학자가 태어나게 되었다.'

이 얘기를 통하여 우리는 크게 세가지의 음택풍수 주제를 재검토해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달걀을 가지고 과연 명당을 판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물론 여기에서 달걀을 묻으니 병아리가 되어 나왔다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 지관들이 소위 전래돼 오는 풍수 속설 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답시고 달걀로 명당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한국풍수학계의 현주소가 그리 탐탁하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달걀 을 묻은 뒤 100여일이 지나도 썩거나 곪지 않으면 그곳이 곧 명당이라는 것인데, 실상은 그런 발상 자체부터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도대체 달 걀이 생생하게 보존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사람의 시신을 황골(黃骨)로 만든다는 연구결과도 없거니와 설사 그 단계가 입증된다 해도 또 그 상위 가설인 동기감응론이라는 철옹성을 어떻게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 지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둘째는, 천불태 지불수(天不胎 地不受)와 사회적 신분에 따른 명당 점거 의 차별화 논리이다. 그 내용은 풍수에서 흔히 말하는 적선지가필유여경 (積善之家必有餘慶),즉 평소에 선과 덕을 많이 쌓은 집안이 명당을 차지할 수 있고, 또한 땅을 쓰는 사람이 생전에 악행을 많이 저질렀으면 명당도 허혈(虛穴)에 불과하다고 하는, 이른바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과도 정배 치(正背馳)되는 논리이다. 소주길흉론은 그나마 다소의 사회적인 계도라도 할 수 있다지만, 벼슬에 따라 묻힐 터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야말 로 과거에 양반계층들이 자신들의 명당 점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의도적 으로 지어낸 아무런 쓸모없는 얼풍수 논리에 불과하다.

땅은 인간사회의 논리를 모를 뿐더러 사람을 위시한 만물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예부터 청산은 그 어떤 시신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다 너 그럽게 감싸 받아들인다(靑山不擇淸愚骨)고 했다. 세월이 바뀐 요즘에 와 서 양반들 대신에 소위 권력자나 돈 있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묘터를 잡 아주거나 이장(移葬)을 권하는 풍수사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 같아 사회 적 부작용이 염려되어 한번 해보는 말이다.

셋째는, 감람묘터의 음덕으로 퇴계 선생과 같은 대학자가 나올 수 있었 다고 해석하는 점이다. 물론 금계포란형의 지세는, 천계(天鷄)인 금계가 한밤중에 먼저 새벽을 알린 후에 지상의 닭들이 따라 울며, 더구나 닭이 한 번 알을 품으면 스무마리 정도의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때문에 그 소응 으로 후손 중에 무리를 이끄는 위대한 호걸이 나고 또한 대대로 많은 자손 들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금계포란형 묘터들의 경우, 그 발복양상 이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발복시기도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혹자 는 국(局)의 크기와 조.안산(朝.案山)과의 거리가 다르기 때문에 발복시기 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는지 모르지만, 대체로 명망있는 인물 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발복을 줬을 법한 조상묘를 귀납적으로 결부시키 는 경향(그것도 여러 묘가 있으면 발복을 줬다고 주장하는 묘가 서로 다르 다)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주장은 거의 설득력이 없다고 봐야 옳지 않겠는가.

발복론이 그동안 한국풍수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는 점 은 인정되지만, 그것이 미래의 한국풍수를 이끌어 나갈 이론분야가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더구나 그 발복론이라는 것이 터 자체를 직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한낱 입신출세나 부귀영화를 점치는 수단으로 서 계속 지속된다면 한국풍수의 과학화는 자꾸만 요원해질 수밖에 없는 것 이다.

감람묘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금계포란형 음택명당이다. 그러나 우리 가 그 명당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깨침은 분명 과거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물론 효(孝) 사상과 묘지풍수는 아직까지는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 퀴와 다름없어 한순간에 한국풍수의 체질이 개선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풍수는 언젠가는, 조선조에 대중화되었던 묘지풍수에서 벗어 나 오히려 고려조에 성행했던 국토나 삶터, 비보풍수 쪽으로 방향전환할 것이다. 삶터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감응 문제해결이 묘터의 동기감응보 다 훨씬 더 시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풍수학자.지리학 박사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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