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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15] 청도 주구산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49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15] 청도 주구산

주구산(走狗山)은 청도(淸道)의 유서 깊은 명산이다.

말 그대로 개가 달리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산은 그 높이가 200m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주구산을 모르고서는 청도의 역사를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고대 이서국(伊西國)의 산성(山城)이 있을 뿐만 아니라, 1995년에는그 산에서 일제(日帝)시대의 쇠말뚝이 발견되어 또 한번 온 국민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리는 역사를 그리는 화판(畵板)이요, 역사는 지리를 반영하는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주구산의 지리성(地理性)만큼 오랜 세월동안 한 고을의 역사에 영향을 끼친 산도 보기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도읍 후면의 대포산 능선 위에 있는 용화사(龍華寺) 부근에서 북쪽을한번 내려다보라.

길고 넓은 큰 내라는 뜻의 한내천(혹은 淸道川)을 끼고있는 주구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용각산(龍角山)의 서쪽 지맥이 남성현(南省峴)을 지난 후, 그 한 줄기가 남동쪽으로 급선회해 내려오면서 주구산을 일궈 놓았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길게 내리뻗은 주구산 능선의 3면이 깎아지른 듯한절벽이고, 그 뒤쪽만 용각산 줄기에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북의 남성현 쪽에서 내려오는 다로천(茶路川)과 서의 각북면(角北面) 비슬산(琵瑟山)에서 발원하여 동류(東流)해 오는 청도천이 주구산의 양쪽을 감싸고 흐르면서 자연 해자(垓字 혹은 外濠)를 이루고 있다.

그러고 보면 주구산은 비록 그 공간이 협소하고 또 식수를 얻기 어렵다는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타고난 지세의 험고(險固)함으로 인해 일찍부터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지 역할을 해왔음 직하다.

아닌게 아니라 옛 청도 사람들이 이서국시대부터 주구산에 산성을 만들어 대(對)신라 뿐만 아니라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칠 때도 그곳에서 끝까지 항쟁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삼국유사' '보양이목(寶壤梨木)'조(條)에 나오는 견성(犬城)과 '신증동국여지승람' '청도군'조에 나오는 폐성(吠城)이 모두 주구산성을 일컫고있는 바, 동쪽을 정벌해 오던 왕건이 청도 땅 경계에 이르러서는 보양법사의 조언, 즉 "개란 짐승은 밤만 맡았고 낮은 맡지 않았으며, 또 앞만 지키고 그 뒤쪽은 잊고 있으니, 마땅히 대낮에 그 뒤쪽(북쪽)을 공격해야 할것입니다"라고 한 말을 그대로 좆은 결과, 주구산성을 힘겹게 함락할 수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산봉우리가 물을 굽어보고 뾰족하게 섰는데, 지금 민간에서 이것을 미워하여 이름을 견성으로 고쳤다"고 하였으니,주구산은 처음부터 그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개의 형상으로 비춰진 듯하다.

그런 주구산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남산(南山)쪽 어디에서든 주구산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사냥개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개의 머리쪽과 등줄기, 그리고뒷발 부분이 확연히 구별될 뿐만 아니라, 눈 부위에 석벽이 안성맞춤으로박혀 있어 한결 더 매서움을 느끼게 한다.

이 달리는 듯한 길격(吉格)의 지세를 붙들어 놓기 위해 옛 청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풍수 비보책(裨補策)을 총동원하였다.

범곡리(凡谷里) 송전(松田)들에서 송북리(松北里), 그리고 서북쪽의 합천리(合川里)로 이어지는 옛 영남대로(嶺南大路)상에 3개의 조산(造山)을 만들어 솔밭을 조성한 후, 그것을 달리는 개가 멈춰서서 먹을 떡(혹은 누룽지)으로 상징하였다.

현재는 그중의 두 군데가 각각 복숭아나무 밭과 밤나무 밭으로 변해버렸지만, 사람들이 그 나무밭을 누룽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주구산의 하단부, 즉 개의 머리 부위에 있는 떡절(餠寺 혹은 德寺) 또한주구산의 풍수형국과 무관하지 않다.

개가 달려가는 형국인지라 그것을 붙들고자 절이름을 떡절이라 짓게 된 것이다.

달리는 개를 서 있게 하기 위한 풍수비보 책략은 이른바 부동격(不動格)의 술법을 이용한 지명(地名)설정에서 그 극에 달한다.

이를테면 개는 범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범 글자가 들어가는 지명을 사용하게 되면 개가 그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송전들을 사이에 두고 북의주구산과 마주하는 남산의 북쪽 자락에 범실(凡谷 혹은 虎谷)과 범곡천(大同골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예전에는 흔히 범(虎)을발음나는 그대로범(凡)으로 표기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범곡이라 할 때의범(凡)은 범(虎)을 지칭했던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부동격의 술법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곳은 역시 청도읍 남쪽의 월곡리(月谷里)에 있는 범바위산이라 할 수 있다.

주구산과 정면으로바라보고 있는 이 산의 바위를 범바위(虎岩)로, 또 그 아래의 마을을 범바위마을(虎岩村)로 각각 명명함으로써 청도 사람들은 떡절산(주구산)의 지령(地靈)이 새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것이다.

바로 그런 역사지리성을 지닌 맑고 깨끗한 청도읍기(邑基)와 화양(華陽)읍기였기에 일제시대때의 그 땅의 수난사 역시 여느 지역과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일제가 원래는 경부선 철도를 화양읍을 지나 팔조령을 통과하여 대구로연결되는 노선을 계획했지만, 청도 유림들의 반대로 지금처럼 남성현을 넘어 경산을 지나는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제는 우리 한국인의 환전한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위해 그 반대 여론의 근원을 알아내는 데 애썼을 것이고, 그것이 곧 주구산과 그 먹이가 되는 솔밭으로 이어지는 명당판국의 온전한 보전에 있음을알아챘을 터이다.

일제가 여느 지방 고을에서처럼 읍기 후맥(後脈)을 이루는 주산(主山)중턱에다 신사(神社)를 앉히지 않고 평지에 가까운 인공 조산 솔밭에다 신사를 세우고, 또한 그것도 모자라 주구산의 급소에 해당하는 개의 콧등에다 쇠말뚝을 박은 것도 알고 보면 그같은 엄청난 비밀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남산을 내려와 범곡천을 따라 주구산을 향해 가는 도중에 갖가지 상념이오락가락한다.

그 모든 원인이, 주구산이라는 이름이 마땅찮다고 용산(龍山)으로 개명하자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고, 특히 최근에는이미 명성을 얻은 한 재야 사학자가 일제시대의 쇠말뚝에 대한 변변한 연구논문 한 편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일제가 한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풍수설은 근거가 없다"고 단언한 글을 접했던 까닭이리라.

지세의 형국은 결코 기(氣)의 크기나 풍수역량의 크고 작음을 나타내는것이 아니다.

예컨대 용이나 호랑이 형국이 개나 나비 형국보다 더 낫다는평가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형국이란 어디까지나 혈처(穴處)를 찾는데도움이 되는 하나의 방편일 따름이며, 그 어떤 형국이든 지세의 형태가 뚜렷이 드러나는 곳일수록 생기가 많이 집적돼 있다고 보는 것이 곧 풍수정설이다.

더군다나 형식적으로 산이름을 고치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주구산을 위해 인공솔밭을 만들었던 청도 조상들의 실질적이면서도 내용적인 환경감각에 대해 향토인으로서 오히려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일제시대의 쇠말뚝은 분명 방위측정을 위한 것도 있고, 또 단혈(斷穴)이나 단맥(斷脈)을 하기 위해서 박은 것도 있다.

그러니까 모든 쇠말뚝이 민족정기를 끊기 위한 단혈철주가 아닌 반면, 그렇다고 모든 쇠말뚝이 지도나 해도를 작성하기 위한 방위측정용 쇠말뚝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과학적인 관점에서만 쇠말뚝을 이해하려 들것이 아니라 당시의 암울했던 식민시대 상황에서 쇠말뚝으로 인해 우리 선조들이 느껴야만 했던 절망감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주구산에 오르니 쇠말뚝을 뽑은 자리에 세워놓은 푯돌이 녹음방초 속에서 더욱 흰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자연을 아끼고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백의민족의 정신을 표상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말이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이었을 따름이지 일제시대의 쇠말뚝들이 우리정부의 단순한 전시행정으로 인해 한 곳에 모일 기회조차 전혀 없었을 뿐더러, 더구나 수집된 쇠말뚝들마저 이미 독립기념관 수장고로 들어가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게된 데 비하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세워진 이 표석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산 아래 박월보(朴月洑)로 내려와 아이들의 물놀이 하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철교로 기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불현듯이 아이들만은 코앞에 있는 주구산이나 철교의 내력을 반드시 알아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긴다.

역사와 지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야말로미래의 우리 역사와 국토도 잘 가꾸어 나갈 것이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학자.지리학 박사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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