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연구논문및사례

[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14] 군위 옥녀봉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49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14] 군위 옥녀봉

어떤 지세의 생김새를 동물이나 물건의 형상, 혹은 사람의 모습 등에 비 유하는 것을 지리 형국론(形局論)이라 한다. 형국론은 풍수지리 이론체계 의 핵심분야는 아니다. 그런데도 풍수에서는 결코 없어서는 안될 약방 감 초와 같은 것이 곧 형국론이다.

제 아무리 이름난 풍수서를 두루 섭렵했다 할지라도 막상 이론의 실제 적용무대가 되는 산천지세를 접하게 되면 누구든지 눈앞이 캄캄해지게 마 련이다. 그래서 예부터 '산자산 서자서(山自山 書自書)'라고 했다. 산은 산대로 놀고, 책에서 본 내용은 내용대로 머릿속에서 따로 뱅뱅 돈다는 뜻 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그럴 때 가장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는 분야 가 형국론이라는 것이다.

풍수를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이론을 열심히 궁구(窮究)하는 것에 못지않게 명기(名基)나 명묘(名墓)를 답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다.

한번, 두번 자꾸 답사를 반복하면서 먼저 지세의 형국을 읽는 눈부터 뜨 기 시작하고, 종래는 땅의 온갖 형상과 책에 나오는 지리법칙을 자기 나름 대로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풍수 형국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찾아봄직한 곳이 한 군데 있다. 군위군(軍威郡) 의흥면(義興面)과 고로면(古老面)의 경계에 있는 옥 녀봉(玉女峰 혹은 각시산)이 바로 그 곳이다. 낙동정맥(洛東正脈)의 보현 산(일명 母子山)에서 서쪽으로 뻗어나온 지맥이 갈라져, 하나는 서북을 치 달아 선암산(船巖山)줄기를 이루고, 또 다른 하나는 서남으로 뻗어 화산( 華山)줄기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그 사이에 고로면의 깊은 골짜기가 형성 돼 있다.

옥녀봉은 선암산 줄기의 남서쪽 끝에 솟은 봉우리로 마주앉은 화산줄기 의 주걸산(走傑山)과 함께 고로면 협곡의 서쪽 관문(關門)을 이루고 있다 . 대저 옥녀나 선인(仙人)과 같은 사람의 모습에 비유되는 산은 대부분 풍 수 오성산형(五星山形)중에서 목성(木星)에 해당하는 바 목직(木直).화첨 (火尖).토방(土方).금원(金圓).수곡(水曲)이라 하였으니, 아름답게 솟은 모습으로는 단연 목성산형이 그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신녕쪽에서 갑령재(甲峴)를 넘어갈 때 조금씩 드러나거나, 아니면 골짜기 안의 인각사(麟角寺)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옥녀봉의 잘 생긴 모습은 가히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들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용모가 수려한 산일지라도 주변에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길한 사(砂)가 없으면 풍수에서는 그 품격을 좀처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지세가 마치 옥녀가 머리를 곱게 빗는 모습과 같은 옥녀산 발형(玉女散髮形)이거나 아니면 단정하게 화장하는 모습과 같은 옥녀단장 형(玉女丹粧形)이라고 가정해 보자. 산발형이든 단장형이든 간에 화장이 끝나면 곧 단정한 모습이 될 것이므로, 그런 지세의 소응은 일반적으로 뭇 사람들로부터 선망받는 재주있는 남자(才子)나 아름다운 여자(佳人)를 배 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예기(豫期)는 어디까지나 목성의 옥녀형 주산(主山) 주변에 거울이나 빗, 분갑 등과 같은 화장에 필요한 도구가 되는 '사'가 반드시 갖춰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사가 없이는 결코 그 소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곧 풍수정설인 것이다.

화수리(華水里)에서 쳐다본 옥녀봉은 영락없는 옥녀산발형이다. 혹시나 싶어 주변 지형을 살펴보니 서쪽 조림산(鳥林山) 아래의 위천(渭川 혹은 錦川)변에 경대(鏡臺)를 쏙 빼닮은 반달 모양의 지세가 있는 것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거울 모양의 둥근 봉우리가 그토록 신비스럽게 자연적으로 일궈져 있는 것도 놀랍거니와, 그것도 옥녀봉 쪽을 향해 거울면을 비추고 있으니 놀라서 벌어진 입이 한참동안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제 남은 문제 는 풀어헤친 머리를 손질할 빗 모양의 지형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마을의 한 촌로를 찾아 문의를 하니, 빗이 없어지게 된 참으로 안타까운 내막을 들려 준다. 그 사연인 즉, 예전에는 옥녀봉을 통과하는 28번 국도가 하천변을 따라 있었는데, 10여년 전에 새 도로를 내면서 옥녀의 다리에 해당하는 지 맥을 끊게 되고, 또 그 자리에 있었던 성긴 빗살 모양의 청석들을 모조리 깨부숴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일이 있은 직후, 40대도 안된 화수리의 건장한 남자 대여섯명 이 원인도 모르게 별안간 죽음을 맞이한동티(動土)가 발생하였다고 하면 서 노인네가 한숨을 푹 내쉰다.

필자가 풍수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흔하게 듣는 것이 그같은 동티에 관한 얘기이다. 때로는 엉터리 내용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현실적으로 일어난 불가사의한 일들에 대해 과학적인 이해가 안될 양이면 사실 필자로 서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그때마다 필자의 마음을 욱죄는 것이 바로 풍수의 과학화라는 거대한 장 벽이다. 있는 사실을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현재로서는 그런 사 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별 뾰족한 방법도 없으니 더욱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어쨌거나 서쪽의 위천 건너 금양리(錦陽里)에서 옥녀봉을 바라보면 그 모습이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옥녀봉의 뒷모습으로서 아름다움은 고사하 고 깨끗함마저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옥녀봉이 매일 아침 뜨는 해를 오래도록 가릴 것 같으니 마을 사람들이 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예부터 금양리 사람들은 옥녀봉이 동쪽 방면으로 마을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을에서 뛰어난 인물이 배출되지 않고 있 다고 믿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옥녀봉에 대한 그같은 인식도 1997년 5월에 금양교를 새로 놓으면서 완전히 역전된 모양이다.

그동안 비스듬히 굽어 들어왔던 마을 진입로가 이제는 옥녀봉과 일직선 을 이루게 되면서 마을이 옥녀봉의 기운을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인데, 가만히 있는 옥녀봉을 두고 사람들이 이랬다 저랬다 제멋대로 이기적인 말들만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필자의 마음마저 언짢아 진다.

물론 옥녀봉에 대한 그같은 환경인식적인 반전(反轉) 자체는 극히 바람 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을터가 옥녀봉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언제까지나 '잘나면 제 탓이요, 못나면 옥 녀봉 탓'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직선 진입로를 곡선보다 더 낫다고 하는 반(反)풍수론적인 발상일 망정, 그것을 계기로 삶터 환경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 어지기 때문이다.

옥녀봉은 인각사 쪽을 향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골짝 밖의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하다가 잠시 얼굴을 돌리고 인각사를 내 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사실 인각사는 규국상(規局上) 그렇게 좋은 터에 자리잡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옛 대웅전이 학소대(鶴巢臺) 쪽을 향한 북향 건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 면 좌우 용호(龍虎) 지맥의 위호가 없어 골짝 요풍(凹風)을 피할 길도 없 거니와, 비라도 많이 내리게 되면 계곡을 타고 시끄럽게 흘러내리는 물소 리, 즉 풍수비수(悲愁)를 감내해야만 하는 결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옥녀봉과 학소대, 그리고 주걸산의 필봉(筆峰)이 이루는 주변 형 국이 너무나 아름답다. 가인.영물(靈物).문구(文具)가 삼박자의 호흡을 맞 추니 아마도 일연(一然) 스님은 기꺼이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할 수 있었을 게다. 어차피 완전무결한 명당터는 없을진대, 터의 긍정적인 측면 만 보려했다면 어지간한 결점들은 쉬이 덮어둘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옥녀봉은 분명 그 자체 빗과 거울을 완비한 명형국지(名形局地)이다. 뿐 만 아니라 주걸산과 음양의 대대(對待)를 이루는 명산인 동시에, 때로는 화산과 더불어 성문을 이루면서 주걸산을 대마출성형(大馬出城形)의 길국 (吉局)으로 승화시키는 역할도 해주는 명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각사터 를 비롯한 그 일대의 모든 마을터가 옥녀봉과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맺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각사를 돌아나오는 길에 옥녀봉과 주걸산이 마주보면서 일궈놓은 계곡 을 바라보니 한량없이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움을 무시하고 그곳에다 댐을 건설하려다 인각사 터를 보호해야 한다는 반대여론에 부딪히자 이제는 훨 씬 더 상류쪽으로 댐 건설 예정지가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는 얘기가 들린 다.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차피 혈맥이 통하지 않는 계곡은 죽은 계 곡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화수리에 있는 하회(河回)이용소와 하회상회라는 간판을 바라보니, 그 옛날 옥녀봉 일대를 굽이치는 물줄기를 보고 그런 마 을 이름이 붙여졌겠건만 그것이 어느날 갑자기 의미없는 화수리로 퇴색된 것처럼, 혹여 조상들이 물려준 이 아름다운 골짜기를 우리 자신들이 의미 없는 공간으로 망쳐놓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풍수학자.지리학박사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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