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연구논문및사례

[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12] 달성 우록마을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46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12] 달성 우록마을

요즘 우리나라 풍수의 흐름을 살펴보면 심히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21세기를 지향하는 새로운 풍수이론 창출과 가치 계발에는 태만하고 여전 히 풍수가 마치 인간사를 좌우하는 만능 잣대인 양 혹세무민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풍수를 완벽하게 땅을 판단하는 학문이라 여기지도 않을 뿐더러, 더구나 사람들에게 좋은 터를 잡아주는 일이 풍수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가치라 생각지도 않는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명당이라는 개념 하나만놓 고 봐도 그렇다.

청담 이중환은 일찍이 이 땅위에 사람들이 살만한 마을터를 지리, 생리 (生利), 인심, 산수(山水)라는 네가지 주요 변수를 사용하여 구별한 바 있 지만, 지금의 우리 풍수는 그 중에서도 단지 지리라는 변수 하나에만 속하 는 여러 풍수적인 인자(因子)들을 가지고 명당을 고집하는 구태의연함을 보이고 있다.

알고 보면 공해에 찌든 도시에서 경제적인 요건에 해당하는 생리에 치중 하면서 살아가도 한 삶이요, 그와 반대로 경제성과는 무관하게 인심과 산 수가 좋은 시골에서 살아가도 어차피 한 삶이다. 제각기 인생의 목적에 부 합하는 삶터를 찾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진대 어찌 풍수를 가지고 조금이 라도 그런 삶에 기여하려 들지는 않고, 감히 명당이니 아니니 하면서 숭고 한 삶 자체를 욕되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객관적으로 명당처럼 보이지 않는 삶터에 감춰져 있는 우리 선조 들의 바람직한 각종 풍수 행태(行態)를 발굴해 내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로부터 명당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더 나아가서는 삶터 명당화 (明堂化)를 위한 아낌없는 노력을 유도해 내는 것이 바로 풍수의 지고한 가치일는지도 모른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友鹿里)는 그런 점에서 우리들에게 상당히 의미심장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우록은 대구 남쪽 에 위치한 비슬산의 한 지맥이 줄곧 동쪽으로 달리다가 통점령(通店領) 부 근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면서 일궈놓은 계곡들 가운데, 동남쪽 골짜기 안에 들어앉아 있는 마을이다.

마치 병목처럼 관쇄(關銷)돼 있는 동쪽의 마을 입구를 제외하고는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골짜기가 매우 깊어 밖에서는 마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골짜기 서쪽의 우미산(牛尾山)을 거쳐 남으 로 내리치닫던 지맥 일부가 북동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팔조령을 지나 북으로 방향을 틀어 상원산(上院山) 줄기를 일으켜 놓음으로써 마을 안에 서 내다볼때는 동쪽의 시야도 거의 차단돼 있는 상태다.

신천(新川)의 최상류를 이루는 계류는 우미산 좌우측에서 흘러나와 골짜 기 안에서 동류(東流)하다가 마을 밖에서 대구쪽을 향해 북류(北流)하는데, 비록 흐르는 양은 적지만 개울물이 매우 맑고 차갑다.

무릇 그런 지세의 골짜기는 풍수에서 흔히 얘기되는 십승지(十勝地)처럼 피난, 은둔, 보신(保身)의 땅으로 제격인 바, 우록마을도 결코 예외는 아 니었던 것 같다.

1556년쯤에 고려말 우탁(禹倬)의 후손인 단양우씨(丹陽禹氏)들이 지금의 우록2리, 즉 백록(白鹿)마을에서 먼저 은거하기 시작하고, 또 임진왜란때 들어와서 1602년에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金忠善, 일본명 沙也可) 장군이 은둔생활을 하기 위해 우록1리에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니, 우록동 골짜기는 애초부터 타고난 지리적 특성에 걸맞게 제대로 활용되었던 셈이다.

더구나 단양우씨 입향조 백록당(白鹿堂) 우성범(禹成范)과 모하당(慕夏 堂) 김충선은 좌주(座主)와 문생(門生)의 인연을 맺고 일찍부터 함께 도학 (道學)에 심취했다고 전해지는데, 바로 그 도학적인 자연관이 우록동을 신 선이 사는 곳과 같은 더없는 복지(福地)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된 듯하다.

우록동 복지산수도(卜地山水圖)를 참고하면서 모하당이 남긴 녹촌지(鹿 村誌)의 글을 한번 음미해 보도록 하자.

"우록동은 반곡(盤谷:唐나라 李愿이 살던 곳)이 아닌 반곡 같은 곳이요, 율리(栗里:晋나라 陶淵明이 살던 곳)가 아닌 율리 같은 마을이다. 산은 높 지 않으나 수려하고,물은 깊지 않으나 맑다. 동에는 봉암산(鳳岩山)이 있 고, 서에는 황학봉(黃鶴峰)이 솟아있으며, 남은 자양(紫陽)이요, 북은 백 록이다. 차가운 샘물(寒泉)은 오른편에서 솟아나고, 그 왼편 깊숙한 곳에 선유동(仙遊洞)이 있다. 봉으로 바위를 이름함은 문명(文明)할 징조를볼수 있음이요,학으로 산봉우리를 이름함은 선인이 깃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하 물며 자양과 백록은 그 옛날 주부자(朱夫子)가 도학을 강명(講明)하던 지 명이니, 혹 나의 자손중에서도 도학을 강명할 사람이 날 것인가. 산중에 은거하는 사람은 대개 사슴을 벗하며 한가로움을 탐하는 것인즉, 우록이라 는 마을이름 또한 평생토록 숨어 살고자 하는 나의 뜻과 꼭 들어 맞으니 차가운 샘물에 마음의 티끌을 씻고 선유의 동혈(洞穴)에서 흰구름을 비질 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띳집을 만들어 세워 자손에게 남기노니 이곳이 곧 내가 원하는 땅이다."

그야말로 구절구절마다 고고한 탈속의 기풍이 스며있는 말들이라 할 수 있다. 하기야 나라에서 내린 전공(戰功) 사패지(賜牌地)마저 끝내 사양하 고 그 토지들을 모두 둔전(屯田)으로 사용하게끔 한 모하당이고 보면, 이 미 그 자신은 오래전부터 우록골짜기 터를 범상찮은 눈으로 바라봤던 것이 틀림없다. 그가 후손들에게 학문을 닦으며 부귀를 탐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라는 유훈을 남긴 것만 봐도 처음부터 그가 우록동 삶터의 경제적인 여 건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확인된다. 만약에 모하당의 그같 은 삶터 지리관(地理觀)을 후일 이중환이 미리알았더라면 적어도 '택리지' 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 즉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

사람들이 이미 자라처럼 모래 속에서 살 수 없고, 지렁이처럼 흙을 먹지 못하는데, 한갓 산수만을 취해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름진 땅과 넓은 들, 그리고 지리가 아름다운 곳을 택하여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 옛날에 주부자가 무이산(武夷山)의 산수를 좋아하여 물굽이와 산봉우리를 글과 그림으로 빛내고 꾸미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그곳에다 살 집은 두지 않았다. 후세 사람으로서 산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으로 본을 삼을 일 이다'라고 쓴 내용 중에서 아마도 상당 부분이 다르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우록마을은 보편적인 풍수 판단 기준으로는 결코 삶터 명당으로 볼 수 없는 곳이다. 아니, 그같은 골짜기는 아예 대다수 풍수연구자들의 눈에 들 어오지도 않을지 모른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필자도 지난날 우록동 을 찾았을 때 단지 산높이만을 고려하여 무작정 남지장사(南地藏寺)로 올 라간 후, 그 안대(案對)를 이루는 우미산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 일대에 서 터다운 터는 역시 남지장사 터밖에는 없는 것으로 속단하고 황망히 되 돌아 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보이는 것이 사뭇 다르다. 우록동 골짜기의 모든 자연지물(自然地物) 하나하나가 색다른 의미로 필자에게 다 가온다.

이를테면 삼정산(三頂山) 아래의 소위 여자 혈(穴)위에 있는 임좌(壬坐) 의 모하당 묘소 보다는 오히려 녹동서원(鹿洞書院)에서 바라보이는 자양 산과 황학봉에 훨씬 더 정감이 가는 것이다. 그 어떤 명풍수라 할지라도 좌우로 빨랫줄을 걸 수 있을 만큼 비좁은 골짜기를 그토록 아름답게 명당 화시켜 사람의 마음을 옴짝달싹 못하게 잡아맬 재주는 없다. 우록동은 여 느 골짜기와 다름없는 그런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도학과 풍수가 접목된 이른바 도학적인 명당이자, 이 나라에 귀화한 한 이방인의 실재적 인 이상향(理想鄕)이다. '자연을 알되 사람을 알지 못하면 속세에서 살아 가기 어렵고, 사람을 알되 자연을 알지 못하면 참 삶을 살기 어렵다' 는 옛말이 있지만, 바로 그 참삶의 또 다른 무대가 되고 있는 곳이 바로 우록 동인 것이다.

녹동서원이든 우록마을 어디든 간에 그 보기좋은 모하당 복지산수도가 대형 입간판으로 서 있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녹문(鹿門)을 나서 되돌아 오는 길에 또 하나의 풍수화두(話頭)가 뇌리를 스친다.

'명당은 정녕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인가.'

풍수학자.지리학박사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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