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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3] 칠곡 석우리 음양지맥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43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 3] 칠곡 석우리 음양지맥

우리나라 풍수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형국론(形局論)이다. 그것 은 지세(地勢)를 어떤 동식물이나 물형(物形)에 비유하여 그 길흉을 형이 상학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조선조에 한때 평안도 강계(江界) 고을이 크게 번창하는 것을 두고, 그런 유(類)의 재미있는 풍수해석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당시에 강계 읍기(邑基)는 옥녀개화형(玉女開花形)의 남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독로강(禿魯江) 건너 서남쪽으로 멀리 우뚝 솟은 독산(獨 山)이 그 남산을 지켜보고 있었다. 옥녀개화형이란 곧 그 지세가 여자의 성기(性器)를 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런 남산을 지켜보고 있 었던 독산은 과연 무슨 형국에 비유되었을까. 다름아닌 수직으로 꼿꼿하게 발기한 남근(男根)이었다.

그 옛날 남산의 매력에 이끌려 이웃 위원(渭原) 땅에서 하룻밤에 달려왔 던 독산은 그만 독로강이 가로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했던 가. 음(陰)과 양(陽)을 이루는 그 두 산이 서로 바라보고 있는 한, 왕성한 생기(生氣)가 끊임없이 용출될 것이므로 강계의 번창은 그야말로 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그럴듯한 길흉해석마저 덧붙여졌다.

그것까지는 물론 좋았다. 고을 사람들의 사기(士氣)를 진작시키고 또 향 토애를 함양시키는 데는 그저 그만인 방편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문제는 이따금 관내에서 불미스런 음사(淫事)라도 발생하게 되면 그 원인을 모두 여근(女根)의 여기(女氣)가 성한 까닭으로 음탕한 여자가 많이 생겨 음풍(淫風)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억지춘향이라도 그 정도면 가히 혀를 내두를 지경이 아닌가. 차라리 남 자는 여근 형상을 한 남산의 영향을 받고, 여자는 남근 형상을 한 독산의 영향을 받아 그 어느 고을 보다도 강계 땅은 음탕한 기운이 클 수밖에 없 다고 해석했더라면 훨씬 더 논리적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불미스런 인간사를 몽땅 삶터 지세의 탓으로 뒤집어 씌우는 데도 어딘지 모르게 께름칙한 구석이 있다. 설령 지세의 영향이 다소 있었다한 들 그 당시 서북방의 주요 군사기지(鎭)였던 강계땅에 남정네들이 득실거 린 사실은 전혀 고려치 않고 어찌하여 애꿎은 아낙네들만 닦달했다는 것인 지 영 탐탁지 않다. 그러고 보면 그것은 남성 본위의 유교적 가부장제 하 에서 나온 일종의 성차별적 지리 감응론(感應論),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 었던 셈이다.

경북 칠곡군 가산면 석우리에 바로 그 강계땅보다 더 판에 박은 듯한 모 습을 하고 있는 음양지맥(陰陽地脈)이 하나 있다. 구안(邱安)국도, 천평 삼거리에서 구미로 가는 길로 꺾으면 오른편으로 희한한 지세가 눈에 들어 온다. 들판 저쪽에 영락없는 여자 음문(陰門) 모양을 한 산이 턱 버티고 서 있는 가운데, 길다란 남근과도 같은 또 다른 지맥 하나가 들판을 가로 질러 그 음문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모두 음양조화라는 대자연의 섭리를 바탕으로 그 생장과 소 멸을 반복하고 있을진대, 하물며 한 장소의 지세가 그토록 절묘하게 음양 성(陰陽性)을 갖춘 형국을 하고 있다면 옛 사람들이 그것을그냥 지나쳤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예상했던 대로 여근 지맥의 그럴듯한 자리와 남근 지 맥의 요도(尿道) 깊숙한 곳에 이미 여러 기(基)의 분묘가 터잡고 있다.

여근 지맥은 가장자리 몇 군데에 보기 흉한 바위가 밖으로 드러나 그리 썩 좋은 인상은 아니다. 그런 반면 남근 지맥은 좌우로 하천을 끼고 있어 서 양기(陽氣)가 새나갈 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여근을 향해 모든 힘을 모은 형상이다. 한천을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이 두 지세는 그야말로 교접(交接)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낸 듯하다.

그런데 남근의 귀두 부분에 해당하는 밭 한가운데에 서있는 비석 하나가 아무래도 심상찮게 느껴진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니 신도비(神道碑)이다. 하지만 그 위치가 너무도 기이해 비석 뒤쪽으로 가서 여근 지맥쪽을 바라 보니 완벽하게 그 정중앙을 겨냥하고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 석물은 단 순한 신도비가 아니라 풍수 비보물(裨補物) 내지 압승물(壓勝物)이 틀림없 다는 생각이 든다.

풍수에서 말하는 비보는 예컨대 60점짜리 지리(地理)에 어떤 시설을 함 으로써 80점 이상으로 만드는 것이며, 압승은 해(害)가 되는 요소에 대항 하기 위하여 어떤 시설을 함으로써 그 해가 되는 기운을 없애거나 아니면 훨씬 감(減)하는 효과를 거두는 술법(術法)이다.

그러니까 음경(陰莖)의 출구를 상징적으로 막기 위해 그 신도비를 세울 때, 순전히 남근 지맥의 양기 누설을 막아보자는 기도였다면 그 비석은 남 근 자체의 비보물이 되지만, 만약 맞은편의 음기(陰氣)를 차단해 보겠다는 의도였다면 여근 지세에 대한 일종의 압승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비석 자 체가 서있는 장소만 따진다면 앞의 해석이 더 합당하다. 그러나 음양지세 가 함축하고 있는 기능으로 볼때는 어쨌든 그 비석이 음양의 교류를 막고 있으므로 후자(後者)의 의도도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신도비가 그 자리에 세워지게 된 연유는 역시 음양지맥과 관련이 있었다. 조선조에 이 기묘한 지세를 선영(先塋)으로 삼은 가문에서 어쩌다 상피(相 避)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어떤 고명한 스님이 그 원인을 선영의 지세 때문이라고 밝히고,그 처방책으로 현재의 위치에 비석을 세우도록 했 다는 것이다. 그 결과야 지금 알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 비석만은 후손들 에게 생생한 환경심리적인 교훈을 전해주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어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같은 각별한 사연이 담겨있던 음양지맥은 불과 몇년 전에 중앙고속도로와 구안국도 확장공사를 하면서 그 맥이 완전히 끊겨버 렸다.

그 지맥에 조상을 모신 후손들의 아픔이야 더 말할 나위 없겠지만, 그곳 을 여러번 답사했던 필자로서도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예전에 석 우리 마을앞을 나지막이 아름답게 두르고 있었던 바로 그 남근 지맥이 지 금은 그 뿌리 부분이 뭉텅 잘려나간 채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 잘린 부분이 마을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루빨리 적당한 장소 에 숲이라도 조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곧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 깨달을 것인가.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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