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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몽일의 영남 신풍수기행 . 2] 영남의 지령과 인물

장안봉(微山) 2013. 11. 25. 22:43
[이몽일의 영남 신풍수기행 . 2] 영남의 지령과 인물

영남은 예부터 인재를 많이 배출한 고장이다. 옛 신라의 화랑도도 그렇 지만, 근세 조선조에는 나라 인재의 절반이 영남에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명현들을 배출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국난기에 의병장이 많이 나온 곳도 영남이며, 현대에 와서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 또한 영남이다.

우리 역사 무대에서 영남이 낳은 인재들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최초로 달성한 것도 신라의 화랑들이요, 근세에 이 땅의 유교문화를 주도해온 이들도 바로 영남선비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남지방을 화랑정신의 본향(本鄕)이자 선비정신의 '추로지향(鄒魯之鄕)' 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영남에서 그토록 많은 빼어난 인물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원동 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 실학자 이익(李瀷)은 그의 '성호사설(星湖僿 說)'에서, 경상도는 태백산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낙 동강이 좌우의 모든 지류, 하천 물줄기들을 하나로 취합하면서 김해와 동 래 사이에서 바다로 들어가니, 영남사람들의 덕망과 관습 또한 굳게 뭉쳐 져 흐트러짐이 없을 뿐더러, 옛 풍속이 그대로 지켜짐으로써 능히 나라 안 에서 첫째가는 명현 배출의 고장이 되었다고 하였다.

왕도(王都) 이외에는 감히 그 어떤 지역의 명당성(明堂性)도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왕정(王政)이 지엄했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그의 영남 땅에 대한 지인상관론(地人相關論)적 해석은 참으로 파격적이었던 것임에 틀림 없다. 게다가 고려조에서는 황산강(낙동강)이 저 호남의 용진강(영산강) 및 섬진강과 더불어 본주(本主)인 개경을 등지고 무정하게 반대방향으로 흘러 달아나는 3대 배류수(背流水)로 지목되어, 영남인들은 고려왕실로부 터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받은 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성호는 역시 실학(實學)의 거두(巨頭)다웠다. 그는 오래전부터 중앙조정에서 맹활약한 영남출신의 명현들과 목하 영남의 이곳 저곳에 자 리잡고 있는 수많은 서원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는 선비들, 또한 아름다운 옛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가고자 하는 영남사람들의 심성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많은 인물들을 낳은 영남의 풍토환경을 한 몸줄 기로 된 낙동강에 상징적으로 빗대어 그 무한한 힘을 강조하고자 했다.

앞뒤로 비슷한 시기에 여러 학자들이 내놓은 영남사람들의 기질에 대한 평가가 그런 사실을 잘 뒷받침해준다. 중국 출신 풍수사 나학천은 경상도 사람은 어리석을 정도로 순하고 질박한 믿음이 있다(愚順質信)고 했고, 지 리학자 이중환은 풍속이 꾸밈이 없고 성실하다(風俗質實)고 했으며, 규장 각 학자 윤행임은 그 기개와 뚝심이 실로 태산과도 같다(泰山喬嶽)고 했다.

그 심성이 곳곳에 우뚝 솟아있는 명산의 위용을 닮아 웅대하면서도 무던 하고, 그 풍속은 낙동강 큰 줄기를 닮아 결속력이 있으면서도 예절과 학문 을 숭상하는 옛 전통을 그대로 따르니, 어찌 그런 풍토에서 명현들이 배출 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사회적 풍토가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보 장은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중요한 점은 바로 인격을 만들어가는 장소의 지령(地靈)이다. 지령은 곧 산과 들, 숲과 계곡, 강가나 바닷가, 도시와 농촌 그 어디에든 나름대로 존재하는 일종의 자연적인 기운이다. 옛 신라 인들은 숲을 특별한 지령이 깃들인 성소(聖所)로 인식하고 나정(蘿井)숲을 건국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지로, 계림(鷄林)을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 생지로 각각 신화화 했다. 화랑들은 경주의 서천과 북천이 합류하는 금장 대나 울주의 대곡천변 같은 영남 일원의 산천 경개가 빼어난 곳 뿐만 아니 라 동해안의 총석정, 삼일포, 영랑호 등지에까지 가서 심신을 도야했다.

무(武)와용(勇),세속오계같은 화랑정신을 제대로 체득하는 데는 그만한 장소들 만큼 지령이 적합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인로의 '파한 집'에 기록돼 있는 바, '통천을 경계짓는 한송정 일대에 신라 사선(四仙) 인 영랑, 술랑, 남석행, 안상을 비롯한 삼천여명의 화랑들이 수련을 하면 서 소나무 한그루씩을 심은 것이 오늘날 이처럼 울창하게 되어 마치 구름 이 하늘을 가린 듯 해를 볼 수 없을 정도구나'라고 하였으니, 화랑들은 그 야말로 직접적으로 국토지령을 북돋우고 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을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영남의 선비정신인들 어찌 지령을 그 모태로 하지 않았으랴, 죽계천의 소수서원, 길안천의 묵계서원, 대가천의 희연서원, 자계천의 옥산서원, 그 리고 낙동강변의 도산서원, 병산서원, 금오서원, 동락서원, 도동서원 등이 들어서 있는 장소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들은 하나같이 맑은 계류나 강을 끼고 앉아 있다. 물의 본성은 맑고 깨끗함이다. 맑음은 천성적인 곧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물의 청정함은 곧 양지자(養志者)의 공명정대한 마음으 로 승화된다. 더구나 '논어'에 이르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즐긴다(知 者藥水)'고 했고, '채근담'에서는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생각을 멀리 원 대하게 가질 수 있다(臨流使人意遠)'고 했다. 낙동강의 지령이 곧 영남 선 비문화의 탯줄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금언(金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큰 강의 지령이든 명산의 지령이든 간에 사람이 그 지령과 상호교감하면 서 그것을 인격으로 내면화시킬 때 비로소 지령은 그 인물을 통하여 세상 에 드러난다. 그것은 시체말로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면 서기라도 할 수 있다'는 잡술어(雜術語)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 과 금오산의 관계가 그 좋은 예다. 남명 조식(曺植)이 지리산을 품었다면 박 전 대통령은 금오산을 품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두 사람은 명산이 지닌 어짐(仁)보다는 정의로움(義)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초에 이미 무학대사가 금오산을 보고서 제왕이 날 큰 기운을 지닌 명산이라 했다지만, 정작 그 명산 정기를 정신으로 내면화시킨 사람은 바로 현대의 고 박정희 대통령이다. 반풍수들은 주로 박 전 대통령의 생가터나 조부.조모 묘터중 그 어느 하나의 발복으로 박정희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떠들어댄다.

지령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운명이 선천적으로 결 정지어 진다면 명상가와 도인, 스님들에게 적합한 기도처나 수도처, 병든 사람에게 적합한 요양지 같은 곳은 결코 따로 있을 가치 조차 없지 않은가.

더구나 현대는 분명 자연의 원리와 인간사회의 원리가 엄격히 분리돼 있 는 사회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재벌가든 그 어떤 사람도 예전의 명현들이 추구했던 자연에 합일하는 행태(行態)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사 회원리, 즉 정치원리나 자본경제원리 등에 의해 각자의 지위나 부(富)를 획득한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게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자라면서 집 뒤의 효자봉에 자주 올라 명상에 잠기는 것은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금오산과의 끊임없는 대회를 통해 서서히 큰 인물의 면모를 갖추어 나간 듯하다. 그가 남긴 편지글이나 시(詩)에 어김없이 금오산이 등장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같은 사실은 충분히 입증된다. 5.16 거사가 혁명인지 쿠데타 인지는 내 알 바 없지만, 당시에 고향의 선배들에게 남겼다는 다음의 시는 그가 분명 금오산을 품은 인물이었음을 재삼 확인시켜 준다. /영남에 솟은 영봉(靈峰) 금오산아 잘 있거라/삼차 걸쳐 성공못한 흥국일념(興國一念) 박정희는/일편단심 굳은 결의 소원성취 못하오면/쾌도할복(快刀割腹) 맹세 하고 일거귀향 못하리라/

출처 :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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