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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符 第八 - 열자 제8 설부편
子列子學於壺丘子林. 壺丘子林曰:“子知持後, 則可言持身矣.” 列子曰:“願聞持後.” 曰:“顧若影, 則知之.” 列子顧而觀影:形枉則影曲, 形直則影正. 然則枉直隨形而不在影, 屈伸任物而不在我, 此之謂持後而處先. 열자가 호구자림에게 배웠다. 호구자림이 ‘네가 뒤를 보전할 줄 알면 몸을 보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열자가 ‘뒤를 보존한다는 것에 대해 듣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호구자림이 ‘너의 그림자를 뒤돌아보면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열자가 뒤돌아 그림자를 보니,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구부러지고, 몸이 곧으면 그림자도 곧아졌다. 그렇다면 즉 굽고 곧은 것은 몸을 따라 그러한 것이고 그림자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니고, 굽히고 펴는 처신은 외물에 의한 것이고 나에 의해 그런 것이 아니다. 이를 ‘뒤를 보존하여 앞에 위치한다.’고 한다.
關尹謂子列子曰:“言美則響美, 言惡則響惡;身長則影長, 身短則影短. 名也者, 響也;身也者, 影也. 故曰:愼爾言, 將有和之;愼爾行, 將有隨之, 是故聖人見出以知入, 觀往以知來, 此其所以先知之理也. 度在身, 稽在人. 人愛我, 我必愛之;人惡我, 我必惡之. 湯武愛天下, 故王;桀‧紂惡天下, 故亡, 此所稽也. 稽度皆明而不道也, 譬之出不由門, 行不從徑也. 以是求利, 不亦難乎? 嘗觀之神農‧有炎之德, 稽之虞‧夏‧商‧周之書, 度諸法士賢人之言, 所以存亡廢興而非由此道者, 未之有也.”
嚴恢曰:“所爲問道者爲富, 今得珠亦富矣, 安用道?” 子列子曰:“桀‧紂唯重利而輕道, 是以亡. 幸哉余未汝語也!人而無義, 唯食而已, 是雞狗也. 彊食靡角, 勝者爲制, 是禽獸也. 爲雞狗禽獸矣, 而欲人之尊己, 不可得也. 人不尊己, 則危辱及之矣.”
列子學射, 中矣, 請於關尹子. 尹子曰:“子知子之所以中者乎?” 對曰:“弗知也.” 關尹子曰:“未可.” 退而習之. 三年, 又以報關尹子. 尹子曰:“子知子之所以中乎?” 列子曰:“知之矣.” 關尹子曰:“可矣, 守而勿失也. 非獨射也, 爲國與身, 亦皆如之. 故聖人不察存亡, 而察其所以然.” 열자가 활쏘기를 배워 간혹 적중을 시키니, 관윤자에게 자기 실력을 물었다. 관윤자가 ‘자네는 자네가 맞추는 까닭을 아느냐.’라고 말하니, 열자가 ‘알지 못하오.’라고 대답했다. 관윤자가 ‘아직 안 됐네.’라고 말했다. 열자가 물러나 삼년 동안 활쏘기를 연마하고, 또 관윤자에게 이것을 말했다. 관윤자가 ‘자네는 자네가 맞추는 까닭을 아는가.’라고 물으니, 열자가 ‘아오.’라고 말했다. 관윤자가 ‘됐네. 그것을 지켜 잃지 말게. 단지 활쏘기뿐만이 아니고, 나라와 자신을 다스리는 것도 역시 모두 그러하네. 고로 성인은 당장 눈에 보이는 존망을 살피지 않고, 그렇게 되는 까닭을 살핀다.’라고 말했다.
列子曰:“色盛者驕, 力盛者奮, 未可以語道也. 故不斑白語道失, 而况行之乎? 故自奮則人莫之告. 人莫之告, 則孤而無輔矣. 賢者任人, 故年老而不衰, 智盡而不亂. 故治國之難, 在於知賢而不在自賢.” 열자가 ‘얼굴이 한창 일 때는 교만하고 힘이 한창일 때는 울컥하여, 도를 말할 수 없다. 고로 늙지 않고서는 도를 말할 기회는 잃게 되니, 하물며 그것을 행하랴. 고로 스스로 교만하면 남이 아무도 그에게 도를 고하지 않고, 아무도 그에게 고하지 않으면 고립되어 도울 사람이 없다. 현자는 남에게 맡겨서, 고로 나이가 들어도 쇠퇴하지 않고 지력이 소진해도 쇠란하지 않는다. 고로 나라의 어려움을 다스리는 것은 현능한 이를 알아보는 것에 달려있고 스스로 현능한 것에 달려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宋人有爲其君以玉爲楮葉者, 三年而成. 鋒殺莖柯, 毫芒繁澤, 亂之楮葉中, 而不可別也. 此人遂以巧食宋國. 子列子聞之曰:“使天地之生物, 三年而成一葉, 則物之有葉者寡矣. 故聖人恃道化而不恃智巧.” 어떤 송나라 사람이 그 임금을 위하여 옥으로 닥나무 잎을 만들기 시작하여, 삼년이 지나 완성했다. 그 줄기와 가지는 뾰족하고 가늘고, 가는 까끄라기는 많고 윤이 났다. 그것을 닥나무 잎 사이에 섞어 놓으니, 구별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결국 그 재주로 송나라에서 넉넉히 물질적 대우를 받았다. 열자가 그것을 듣고서 ‘가령 천지 사이에 있는 식물이 삼년 동안 잎 하나를 이뤘다면, 즉 식물이 잎 하나 있게 한 것은 사소한 것이다. 고로 성인은 도화(道化. 도로 교화시킴)에 의지하고, 지교(머리나 기교)에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子列子窮, 容貌有飢色. 客有言之鄭子陽者, 曰:“列禦寇蓋有道之士也, 居君之國而窮. 君無乃爲不好士乎?” 鄭子陽卽令官遺之粟. 子列子出, 見使者, 再拜而辭. 使者去. 子列子入, 其妻望之而拊心曰:“妾聞爲有道者之妻子, 皆得佚樂, 今有飢色, 君遇而遺先生食. 先生不受, 豈不命也哉?” 子列子笑謂之曰:“君非自知我也. 以人之言而遺我粟, 至其罪我也, 又且以人之言, 此吾所以不受也.” 其卒, 民果作難, 而殺子陽. 열자가 궁핍하여 얼굴에 굶주린 기색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열자를 정나라 자양에게 ‘열어구(열자)는 도가 있는 사람입니다. 임금의 나라에 사는데 (내버려두어) 형편이 어려우니, 임금께서 인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함이 없겠소.’라고 말했다. 정 자양이 즉시 관리에게 명하여 열자에게 곡식을 주게 하였다. 열자가 나와 사자를 보고 두 번 절하고 사양했다. 사자가 떠나고 열자가 들어오니, 그 처가 그를 바라보고 가슴을 두드리며 ‘저는 도가 있는 사람의 처자는 모두 편안히 산다고 들었소. 지금 굶주리고 있어, 임금이 예우하여 당신에게 먹을 것을 주었소. 당신이 받지 않으니, 어찌 (궁핍함이) 운명이 아니겠소.’라고 말했다. 열자가 웃으며 처에게 ‘임금이 스스로 나를 안 것이 아니네. 남의 말을 듣고 나에게 곡식을 주니, 나에게 벌을 내릴 때에도 또 장차 남의 말을 듣고 그러할 것이네. 이것이 내가 받지 않은 까닭이네.’라고 말했다. 마침내 백성이 난을 일으켜 자양을 죽였다.
魯施氏有二子, 其一好學, 其一好兵. 好學者以術干齊侯;齊侯納之爲諸公子之傅. 好兵者之楚, 以法干楚王;王悅之, 以爲軍正. 祿富其家, 爵榮其親. 施氏之鄰人孟氏, 同有二子, 所業亦同, 而窘於貧. 羨施氏之有, 因從請進趨之方. 二子以實告孟氏. 孟氏之一子之秦, 以術干秦王. 秦王曰:“當今諸侯力爭, 所務兵食而已. 若用仁義治吾國, 是滅亡之道.” 遂宮而放之. 其一子之衛, 以法干衛侯. 衛侯曰:‘吾弱國也, 而攝乎大國之閒. 大國吾事之, 小國吾撫之, 是求安之道. 若賴兵權, 滅亡可待矣. 若全而歸之, 適於他國. 爲吾之患不輕矣.” 遂刖之而還諸魯. 旣反, 孟氏之父子叩**흉[胸]而讓施氏. 施氏曰:“凡得時者昌, 失時者亡. 子道與吾同, 而功與吾異, 失時者也, 非行之謬也. 且天下理無常是, 事無常非. 先日所用, 今或棄之;今之所棄, 後或用之. 此用與不用, 無定是非也. 投隙抵時, 應事無方, 屬乎智, 智苟不足, 使君博如孔丘, 術如呂尙, 焉往而不窮哉?” 孟氏父子舍然無慍容, 曰:“吾知之矣, 子勿重言!” 노나라에 어떤 시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학문을 좋아하고 하나는 병법을 좋아했다. 학문을 좋아하는 아들은 유도(儒道)로 제후(제나라 왕)에게 뜻을 구하니, 제후는 그를 받아들여 여러 공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병법을 좋아하는 아들은 병술(兵術)로 초왕(초나라왕)에게 뜻을 구하니, 초왕이 그를 좋아하여 군정으로 삼았다. 이리하여 녹봉이 그 집안을 부유하게 하고, 작위가 그 집안을 영예롭게 하였다. 시씨의 이웃 맹씨도 같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배운 것도 역시 같았으나 가난에 허덕였다. 시씨의 부유함을 부러워하여, 넌지시 성공한 방법을 물었다. 두 아들이 사실로써 맹씨에게 고하니, 맹씨의 한 아들은 진나라에 가서, 유도로 진왕(진나라 왕)에게 뜻을 구하였다. 진왕이 ‘지금은 제후들이 무력 경쟁에 힘쓰니, 힘을 기울일 것은 당연히 군사와 군량이다. 만약 인의로써 우리 나라를 다스리면, 이는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라고 말하고, 결국 그에게 궁형을 가하고 내쫓았다. 또 다른 아들은 위(衛)나라로 가서, 병술로 위후(위나라 왕)에게 뜻을 구하였다. 위후가 ‘우리는 약한 나라이고, 큰 나라 사이에 끼여있소. 큰 나라는 우리가 섬기고 작은 나라는 우리가 보듬는 것, 이것이 편안함을 구하는 방법이오. 만약 병권에 의지한다면 금방 우리나라는 멸망할 것이오. 만일 네가 온전히 돌아가 다른 나라에 간다면 적지 않게 내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결국 그에게 월형을 내리고 노나라로 돌려보냈다. 이윽고 돌아가, 맹씨 부자는 가슴을 치며 시씨를 꾸짖었다. 시씨가 ‘무릇 때를 만난 자는 창성하고 때를 놓친 자는 쇠망하오. 자네들이 쓴 방법이 우리와 같았으나, 효과가 우리와 다른 것은 때를 놓친 것 때문이지, 한 행위가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네. 또 천하에 이치가 항상 옳은 것도 없고, 일이 항상 그릇된 것도 없으니, 앞전에 쓰이던 것이 지금은 혹 버림을 받고, 지금 버려지는 것이 후에 혹 쓰이기도 하오. 이는 쓰이고 쓰이지 않음에 옳고 그름이 정해 있지 않는 것이네. 상황을 무시하고 때를 거슬러 일에 대처함에 방도는 없고, 오직 지력(智力)에 의존하면, 지력으로는 진실로 부족할 것이네. 가령 자네들이 박식하기가 공자 같고 방술(方術)이 여상(강태공) 같다고 해도, 어디를 간들 곤란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맹씨 부자가 마음이 풀려 성내는 모습이 없어지며, ‘우리는 이제 알았소. 당신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晉文公出, 會欲伐衛, 公子鋤仰天而笑. 公問何笑. 曰:“臣笑鄰之人有送其妻適私家者, 道見桑婦, 悅而與言. 然顧視其妻, 亦有招之者矣. 臣竊笑此也.” 公寤其言. 乃止. 引師而還, 未至而有伐其北鄙者矣. 진문공(진나라 왕임)이 밖으로 나와 제후들과 회합을 갖고, 위나라를 치려고 하니, 공자 서가 하늘을 쳐다보고 웃었다. 진문공이 왜 웃냐고 물었다. 공자(公子)가 ‘제가 웃은 이유는 한 이웃 사람이 그 처가 친정으로 가는 것을 배웅하고, 오는 도중에 뽕따는 여인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뒤돌아 그 처를 보니 또한 어떤 남자가 그 처에게 손짓하여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감히 이것을 비웃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진문공이 그 말을 깨닫고, 군사를 끌고 돌아갔다. 미처 돌아가 당도하기 전에 누군가 그 북쪽 변방에 침입을 했다.
晉國苦盜, 有郄雍者, 能視盜之貌, 察其眉睫之閒而得其情. 晉侯使視盜, 千百無遺一焉. 晉侯大喜, 告趙文子曰:“吾得一人, 而一國盜爲盡矣, 奚用多爲?” 文子曰:“吾君恃伺察而得盜, 盜不盡矣, 且郄雍必不得其死焉.” 俄而羣盜謀曰:’吾所窮者郄雍也. “遂共盜而殘之. 晉侯聞而大駭, 立召文子而告之曰:“果如子言, 郄雍死矣!然取盜何方?” 文子曰:“周諺有言:察見淵魚者不祥, 智料隱匿者有殃. 且君欲無盜, 莫若擧賢而任之;使敎明於上, 化行於下, 民有恥心, 則何盜之爲?” 於是用隨會知政, 而羣盜奔秦焉.
孔子自衛反魯, 息駕乎河梁而觀焉. 有懸水三十仞, 圜流九十里, 魚鼈弗能遊, 黿鼉弗能居, 有一丈夫, 方將厲之. 孔子使人竝涯止之曰:“此懸水三十仞, 圜流九十里, 魚鼈弗能遊, 黿鼉弗能居也. 意者難可以濟乎?” 丈夫不以錯意, 遂度而出. 孔子問之曰:“巧乎? 有道術乎? 所以能入而出者何也?” 丈夫對曰:‘始吾之入也, 先以忠信;及吾之出也, 又從以忠信. 忠信錯吾軀於波流, 而吾不敢用私, 所以能入而復出者, 以此也.” 孔子謂弟子曰:“二三子識之!水且猶可以忠信誠身親之, 而况人乎?”
白公問孔子曰:“人可與微言乎?” 孔子不應. 白公問曰:“若以石投水何如?” 孔子曰:“吳之善沒者能取之.” 曰:“若以水投水何如?” 孔子曰:“淄‧澠之合, 易牙嘗而知之.” 白公曰:“人故不可與微言乎?” 孔子曰:“何爲不可? 唯知言之謂者乎!夫知言之謂者, 不以言言也. 爭魚者濡, 逐獸者趨, 非樂之也. 故至言去言, 至爲無爲. 夫淺知之所爭者, 末矣.” 白公不得已, 遂死於浴室.
趙襄子使新穉稚穆子攻翟, 勝之, 取左人中人;使遽人謁之. 襄子方食而有憂色. 左右曰:“一朝而兩城下, 此人之所喜也;今君有憂色, 何也?” 襄子曰:“夫江河之大也, 不過三日;飄風暴雨不終朝, 日中不須臾. 今趙氏之德行, 無所施於積, 一朝而兩城下, 亡其及我哉!” 孔子聞之曰:“趙氏其昌乎!夫憂者所以爲昌也, 喜者所以爲亡也. 勝非其難者也;持之其難者也. 賢主以此持勝, 故其福及後世. 齊‧楚‧吳‧越皆嘗勝矣, 然卒取亡焉, 不達乎持勝也. 唯有道之主爲能持勝.” 孔子之勁, 能拓國門之關, 而不**[冖+月]以力聞. 墨子爲守攻, 公輸般服, 而不**[冖+月]以兵知. 故善持勝者, 以彊爲弱.
宋人有好行仁義者, 三世不懈. 家無故黑牛生白犢, 以問孔子. 孔子曰:“此吉祥也, 以薦上帝.” 居一年, 其父無故而盲, 其牛又復生白犢. 其父又復令其子問孔子. 其子曰:“前問之而失明, 又何問乎?” 父曰:“聖人之言先迕後合. 其事未究, 姑復問之.” 其子又復問孔子. 孔子曰:“吉祥也.” 復敎以祭. 其子歸致命. 其父曰:“行孔子之言也.” 居一年, 其子又無故而盲. 其後楚攻宋, 圍其城. 民易子而食之, 析骸炊之;丁壯者皆乘城而戰, 死者大半. 此人以父子有疾. 皆免. 及圍解而疾俱復.
宋有蘭子者, 以技干宋元. 宋元召而使見其技, 以雙枝長倍其身, 屬其踁, 竝趨竝馳, 弄七劍, 迭而躍之, 五劍常在空中. 元君大驚, 立賜金帛. 又有蘭子又能燕戲者, 聞之, 復以干元君. 元君大怒曰:“昔有異技干寡人者, 技無庸, 適値寡人有歡心, 故賜金帛. 彼必聞此而進, 復望吾賞.” 拘而擬戮之, 經月乃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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