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여행(2) - 참도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태강릉의 태릉 참도(표준) |
참도란... |
홍살문을 지나서 능으로 들어가는 길은 박석(薄石)이라는 납작한 돌로 길게 놓여져 있습니다. 이 길을 참도(參道)라고 합니다. 참도는 왼쪽이 오른쪽 보다 넓고 높이가 한 단(5cm 정도) 더 높습니다. 한 단 높은 왼쪽 길은 신들만이 다닌다는 신도(神道)이며, 오른쪽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해서 어도(御道)라고 합니다. 신도는 신로(神路), 어도는 인로(人路)라고도 합니다.
부득이 참도 위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는 그 반대로 건너가게 될 때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건너야 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왕릉을 참배하실 기회가 있으면 신도로 걷거나 함부로 참도를 건너지는 않으시겠죠... |
▲ 태강릉의 강릉 참도 |
▲ 참도가 3번 꺽여 있는 곳(현릉) |
▲ 여주 영릉의 참도 |
또한, 홍살문에서 보면 정면에 정자각이 배치되어 참도 역시 일직선으로 되어 있으며, 정자각 앞에서는 정자각을 오르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틀어집니다. 그러나 예외로 지형에 따라서 홍살문과 정자각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지 않은 곳은 정자각 앞까지 두 번이나 세 번, 참도의 각이 틀어지는 곳(동구릉의 현릉)과 신도와 어도의 높이가 너무 차이(15cm 정도)가 나는 곳(태강릉의 강릉)도 있습니다. 그리고 참도의 길이는 짧게는 20여 미터 정도에서 긴 곳은 50여 미터가 넘는 곳도 있습니다.
홍살문에서도 여주의 영릉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참도 역시, 어도를 신도 양옆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든가, 모난 박석을 얼기설기 깔아야 하는데, 잘 다듬어진 직각의 돌을 사용하여 참도를 너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거슬립니다. 홍살문과 함께 참도도 원형에 맞게 복원하도록 제언을 했습니다만... |
배위와 참배석은... |
홍살문 바로 오른쪽에는 사방 2 미터 정도되는 돌로된 판이 있습니다. 이것은 왕이 제례(祭禮)시에 홍살문 앞에 내려서 절을 하고 들어가는 곳으로 배위(拜位) 또는 판위라고 합니다. 그리고 배위는 박석으로 깔려 있어야 하나 훼손되어 복원된 곳들은 전돌을 깔아 놓은 곳이 대부분이더군요.
정자각 앞의 참도 양쪽에는 넓은 박석을 깔아 놓았는데 이는 궁궐에서 조회하는 것을 모방하여 정자각 동쪽은 문관, 서쪽은 무관과 종친들이 4배하는 자리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왕릉들은 정자각 앞의 좌우에 작은 공간의 참배석을 만들어 놓았으나 융건릉의 융릉과 건릉은 참도 시작하는 곳부터 양쪽으로 참배석이 상당히 넓게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
▲ 배위의 표준(태릉) |
▲ 여주 영릉의 배위 |
▲ 참배석(건릉) |
예외인 곳은... |
예외로 신도, 어도가 구분되지 않은 곳(헌인릉의 헌릉)과 어도가 신도 양 옆으로 있는 곳(서삼릉의 예릉)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왼쪽 어도는 제례시 왕비가 들어갔다가 정자각 왼쪽 계단 앞에서 왕을 기다렸다고 합니다.(2003년 당시, 서삼릉 관리소장님의 말씀)
또한, 광릉같은 경우는 참도가 훼손되어 아예 없으며, 참도가 없는 곳은 광릉 한 곳 뿐입니다. 광릉의 참도는 복원을 제언했으며, 문화재청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광릉 참도의 설치 및 훼손 시기에 대하여 정확한 기록이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문헌에 대한 정확한 고증을 거쳐 우리청에서는 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추후 이에대한 정확한 기 록이 발견되어 복원 계획시 이에 대한 사항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2005-06-13 궁능활용과)
그리고, 배위가 훼손되어 없는 곳(선정릉의 정릉)도 일부 있습니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간단한 것은 조속한 복원이 필요합니다. |
▲ 헌인릉의 헌릉 |
▲ 서삼릉의 예릉 |
▲ 광릉(참도가 훼손되어 없음) |
의릉이 최근에 복원되고 있습니다만, 복원 예산이 170억원입니다. 어마아마한 금액이죠? 문화재가 훼손되어 복원하는데는 국민들의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투자된다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
박석에 대한 신문기사는... |
◈ 2004년 11월에는 종묘의 참도를 훼손했다고 해서 언론에 집중 보도되었고, 급기야는 유홍준 문화재청장 까지 나서서 부랴부랴 사과를 하고 복원한다는 선에서 끝난 일이 종묘 참도 훼손 사건입니다. 유청장이 박석의 미학이란 제목으로 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일부 발췌하면...
"본래 ‘박석’이란 문자 그대로 얇은 돌판으로,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로 포장 방식이었다. 서울의 옛 지명을 보면 ‘박석고개’가 여럿 있다. 서오릉으로 가는 불광동 고개, 창경궁에서 성균관으로 가는 명륜동 고개, 헌인릉으로 가는 내곡동 고개 등이 모두 박석이 깔려 있던 박석고개다.
박석은 크게는 구들장, 보통은 빨래판만한 넓적한 돌판으로, 두께는 보통 네 치(12cm)쯤 된다. 박석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은 미끄럼도 방지하고 햇살을 난반사시켜 눈부심을 막아준다.
박석이 건축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실현된 곳은 종묘 정전(正殿)의 앞마당인 월대(月臺)와 경복궁 근정전의 아래뜰이다. 자연스러운 박석들이 마치 조각보를 만들 듯 이를 맞추며 천연스럽게 돌로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면 너무도 현대적이어서 21세기의 건축가들도 감탄에 감탄을 더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박석의 미학을 아름다움과 슬기로움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불성실의 소치가 아니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창덕궁 인정전의 정연한 돌포장을 가 보라고 권한다. 인정전 앞마당 역시 옛날엔 박석 포장이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그것이 맘에 안 들었는지 이를 모두 걷어내고 잔디를 심었었다. 훗날 우리가 다시 창덕궁을 정비·복원하는데, 박석의 기술도 없고 재료도 못 구해서 지금처럼 화강암 사각 돌판을 깔아놓아 한마디로 멋이 없다.
이런 박석은 궁궐과 왕릉의 어도(御道)와 신도(神道)에서도 멋지게 구현되었다. 이번에 훼손된 종묘의 어도 역시 신향로(神香路), 어로(御路), 세자로(世子路) 등 3단의 박석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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