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

[스크랩] 형충회합론 강의 9 /이수

장안봉(微山) 2013. 4. 19. 23:35

三十四강. 명상

● 命想



☞ ‘애퓨’에는 많은 어르신들도 내방하시는 곳이라 이 같은 평어체가 얼마나

결례인 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좀 더 작문에 속도를 붙이고 요약식 정리의

효율성을 도모코자 함이니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하하..독자들,


근자에 이 이수가 여러분들을 적지 않게 혼돈으로 몰아간 것 같아 대단히 미안하면서도,

한편은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형충회합의 단서와 운용법의 기본 원리만 가지고 현상의 상황을 궁구하기에는

아직까지 너무나도 미흡한 재료만을 선보였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항시 무릇 학문의 기본은 그것의 운용술상에서 고도의 기예를 펼치는

단계에 오를지라도 늘 그 뿌리를 기본 원리에 두게 되므로 이것은 백번 반복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 이제 이미 여러분들이 인지한 刑沖會合의 원리와 운용법의 초급단계

(hooking & 놓친 고기)에서 보다 확장된 2차 연산의 단계로 돌입하여 다시

과거생을 복기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이수가 학습자들과 동호인들에게 2003년을 마지막으로 선사하고자 하는

‘프레젠트’, 각자의 과거사를 팔자술의 확장된 기법으로 보다 명료하고

정교하게 읽어내는 테크닉을 선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 다만 이미 수차 밝혔듯이, 팔자술에 입문한 이래 하나의 벽을 넘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에 젖어들었던 과거의 유쾌한 경험에 비해 이 형충회합의

원리와 운용법, 확장자를 터득하고 자유자재로 운용하게 된 지금, 머리는 명료해졌으나,

가슴은 아주 시리다는 것이다.


광활한 삼라만상계의 먼지 티끌 하나에 불과한 이수라는 위인은 술법에 입문하기

이전이나 이후, 원 태생이 급한 성정에다 매사 쇼브를 보지 않으면 갑갑해서

못 견디는 바, 닥쳐오는 무엇이든 걷어내고 정리하여 결론을 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지라. 안 되면 되게 하고, 안 될 것은 없다는 주의로 밀어 붙여왔다.


왠간한 태클이야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는 양념 같은 것이며 폭탄도 한번 맞아 보고,

지뢰를 밟아 흠칫 하는 스릴이 있어야 더욱 격정적인 분투심과 분발심을 자극하니

어찌했거나 항상 살 만했던 것이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저 고지만 넘으면

오아시스가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볼 만한 삶이 아닌가. 더욱이 팔자술은

그 고지 다음에 분명히 오아시스가 있다는 점에 확신을 보태주니

‘골수운명론자’가 얼마나 강건해질 수 있는 가로 팔자술의 효용성을 과시하고

이 술법을 장착한 나 자신을 해피하게 여겼으며, 항시 닥치는 고비마다 긴장감이

희열로 변하는 술사 특유의 오르가슴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전에 나는 두려운 상대나 현상은 피하지 않고 끊임없는 대시의 반복으로

두려움을 벗어 버리려고 노력하였으며 운이 좋게도 그것이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팔자술을 장착한 이후에는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두려운 대상을

극복하게 된다는 신념까지 더해져 더욱 성숙해진 자신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게 다다. 남자가 나이 마흔이 되기 직전에 이르러 절정의 자신감에 휩싸인다는 것은

참으로 유쾌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나는 올해 한 해에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영감을 일으켜

준 많은 이들이 있다. 여기에는 은인도 있고, 원수도 있으며 은인이었다가

원수 된 자도, 소원했던 이가 각별한 동반자로,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원수도,

응징해야만 하는 은인도...이러한 복잡 다양한 인간관계의 무한 확장 구분이 명료하게

그어지는 계기가 있었으니. 선의를 품고 친절하게 타인을 도왔으나 이내 후회하기도

하였으며, 수분을 넘는 지출을 수반하고, 명예를 품기도 하였다.


☞ 왜 刑沖會合이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가. 근세 사주학의 大師, 서락오도 일관되지

못한 지식체계의 무한 생성 과정에서 학자다운 양심을 모두 표출해 내기에는 그릇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刑沖會合은 풀리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고백하였다.


무릇 복잡다단한 인생사, 이것이 본인의 일로 다가올 때도 잘 납득이 되지 않으면

술사로서 얼마나 허무찬란한 일이겠는가. 이것은 단순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지적과는 또 차원을 달리 하는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술사라도 모르는 것, 일말의 여지는 남기는

게 차라리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골수운명론자를 주창하며 매우 용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가슴을 으쓱 펴고. 지금의 고비를 한참 전에 예지했고 전개 과정이

어떠하며 매듭까지 눈에 선명한 데 어찌 두려운 바 있으랴.

‘죽을 운’이 아니면 날아오는 총탄 조차 굽어 지나갈 것이라는 신념, 어찌

‘용감한 전사’가 되지 않으랴.


그리고 전장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하늘의 섭리에 무한 감동으로 가슴을 얼룩

지으리라. 그런데 ‘죽지 않고 살 것이다’

혹은 조금만 더 나아가면 ‘오아시스를 본다’라는 경계를 넘어 앞으로 다가

올 열 번의 死地와 오아시스 뒤에 펼쳐진 사막의 황량함,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선명한 ‘탈진하여 쓰러진 모습’ 그 그림자를 생성시키는 태양의 고도, 위치,

시점까지 자못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면 팔자술 운용의 차원은 이제 경지를

달리하는 것이다. ‘대운이 남방운이니 난 해피해’가 아니라 남방운 중 火 歲運에

나자빠 죽어나가는 필살기적 방술법을 터득한다면 등골 뒤로 쓸려 내려가는 땀방울의

존재가 가볍지 않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올해는 좀 시그널이 안 좋으니 자중하자’로 적당히 타협하는 수준의 술수 단계와

‘올해는 아예 쓰러진다’고 확정되는 절정의 술수 차가 백지장 한 장의 가벼움으로

다가올 리 만무하다.


내 인생이 피곤할 때 ‘이미 예지했던 바,..,오히려 꽤 상쾌하다’며 미소 짓던

여유가 변화되고 있음을 지감 했을 때, ‘아! 이제는 어디로 가는 구나’의 지극히

담담한 지경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 독자들. 이 술사가 적정 지식체계의 수준에서 여유로운 행보를 할 때,

그대들에게도 여유로운 언사를 표출하며, ‘오아시스’를 맛보여 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좋고 안 좋고의 구간을 살펴주는 이 작업도 할만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 좋아서 후차의 좋음을 보지 못 하겠다’까지 보인다.

혹은 GOOD OR BAD의 정도와 구간이 매우 선명하게 구분된다.

GOOD이면 다행이되, BAD면 BAD로 끝나야지, 이 BAD의 종류, 다양성, 깊이 까지 다

구분해서 ‘그냥 통과’라고는 눈씨고 찾아볼 수 없는 ‘물상의 나들이’를 다

읽어내게 되면 술사의 입이 떨어지겠는가.


나는 이제 아무리 값비싼 추명료를 준다 해도단기간 내 bad sign, bad signal 이

포착되면, 일체 물리칠 작정을 하였다.


근자에 나는 이 八字術이 너무나 지긋지긋하다. 이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정말 던져 버리고 싶다. 어처구니없게도 ‘왜 했나’ 싶은 것이다.

정말 이 우물의 밑바닥은 보지 않았어야 했다. 요사이는 과거의 쾌활함을 잃었다.


☞ 나는 어제 하루도 너무나 처절한 경험을 하였다.

日柱가 공히 干支合되고 다시 時支와 刑되는 껄끄러운 이 날, 역시 한 치의 오차가

없는 물상의 나들이가 진행되었다.


合이 되고 刑이 되는 바, - 이것은 한번 묶이고, 재차 흔들림을 의미 한다 -

가장 마땅치 않은 상황이 전개된다.


차라리 ‘모르고 당하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개운치 않게 조망해 보는 日辰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면 그것의 喜忌를 떠나

이 팔자술의 효용성에 감탄해마지 않았던 자신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아니다. 과거에는 ‘좋다, 나쁘다’만 알았지,

이제는 이 날 하루에 일어난 물상의 나들이로 得失을 다 가려 재고 맞추어 낸다.

나쁜 일이 있으면 한 잔 술이나 수다로 털어내도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당일의 현상 자체도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현장에서 나눠지는

彼我와 잃고 얻음을 모두 목도하였다.


그러니 대충 여럿이 어울려 술잔을 나누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수다를 떨 상대도

가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오전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진법(형충회합)의

연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좋은 현상이 아니다.


무조건 일정 기간 쉬거나 잠수를 타던지 해서 머리를 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명학술은 이런 이성적 판단을 현실이 용납하지 않으리란 점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이 새벽이 지나고 오전부터 벌어질 오늘 하루의 물상

나들이가 곧 ‘현상으로 다가 오겠구나’하는 생각에 미친다.


이런 생각이 내년, 수 삼년, 십수 년에 걸쳐 모두 연산되려면 머리 안 깨지겠나.

과거사를 돌이켜 복기하는 것만도 탈진할 지경이다.


제 아무리 융통성을 개입시키고 속도가 빠르다 한들 제 것도 벅찬데, 타인의 命이라.

이건 너무 갑갑한 일 아닌가.

나는 빨리 戌月이 지나고 제발 내 머리가 좀 더 鈍해지기 만을 기대할 뿐이다.


그리고 팔자술로 회득(會得)이 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길 은근히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돌연 이 형충회합의 과정을 ‘야부리’라는 필명으로 제한된 횟수의 강의를

올리고자 한 이유들은 대략 위와 같은 사연들 때문이었다.

다만 ‘최근 한 두 달 간 머리가 아팠다’ 정도로 내 심리의 일단을 묘사하였을

뿐이다. 


독자들, 이제 대략 한 10꼭지 분량의 ‘刑沖會合 써머리’ 분을 올릴 것이니

그 때 마다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운용법으로 과거사를 재차 복기해보라.


물론 머리는 아프고 과정이 수월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빠르다. 命의 준엄함,

그 경지에 무참하게 무너지는 아픔을 감수하겠다는 처연함과 극도의 냉정한

가슴으로 부대낄 바가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만 두어도 무방하다.


어쨌든 독자들. 선택은 항상 자유고 자신의 의지처럼 여겨지는 법이니까. 꼴리는 대로

하시라. 나도 후딱 찜쪄먹고 이젠 정말로 이 팔자술에 쏠리지 않고 싶다.

 

 

三十五강. 형충회합 1차 써머리

★ 刑沖會合 써머리 1차


1. 刑


   刑이란 同氣 내지 相生의 조합으로 에너지가 극히 강렬해진 상태를

   말한다. 이미 우리는 地支를 어항에 비유하는 바에 익숙해졌다.

   이 어항을 가열시켜 온도가 서서히 높아지는 현상으로 개념화하면 된다.


   물을 끓어오를 정도가 되면 (刑)

   - 어항의 고기가 튀어 오른다.

   - hooking 과 놓친 고기로 나누어진다.


   물이 끊어 넘칠 정도로 심하게 가열하면 (再刑)

   - 어항이 깨진다.

      - hookingrhk 놓친고기 그리고 죽은고기로 나누어 진다.


   ☆일반적인 刑은 支藏干을 소멸시키지 않으나 再刑이 되면 支藏干이

     소멸되어 죽어 버리는 무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후자에

     해당되지 않는 한 刑은 발전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再刑이란 ?


     명식에 이미 형성된 刑을 運에서 다시 刑하거나 大運에서 刑한

     바를 세운에서 재차 刑하는 것을 말한다.


     명식에 戌未刑이 있고 運에서 戌이오면


     戌의 支藏干은 튀어 올라 hookinge 되거나 놓친고기가 되며

     해당되지 않는 것은 모두 생명을 부지하니 재차 刑을 당한 未는 깨진

     어항이 되어 후킹되거나 놓친 고기 나머지는 죽게 된다.


  

2. 沖


  沖이란 crash 즉 어항 두개가 충돌하여 깨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때 하나는 깨지고 하나는 온전한 경우가 있다.

  子와 午가 沖하면  - 午만 깨진다.


  子를 午 2개가 협공하면

  子와 午 1개가 깨진다.

  寅과 申이 沖하면

  寅과 申 모두가 깨진다.

  -申도 깨지는 이유는 刑도 성립되기 때문이다.


☆申은 결국 충격과 가열의 두 가지 작용이 복합되어 깨진 셈이다.


☆왜 三刑이 무서운가 ?


  刑은 沖을 動하게 하고 沖은 刑을 動하게 하기 때문이다.

  명식에 巳申刑이 있고 이를 寅이 沖해 오면

  寅巳申 이 3개의 어항이 모두 깨진다.


  명식에 丑戌刑이 있고 이를 未가 沖해 오면 丑戌未 이 3개의 어항이

  모두 깨진다. 戌은 再沖이고 丑未는 沖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 발생한 물상의 빈번한 나들이를 다 체크해 보라.

    그런데 지금 왜 다 깨져 죽었는데 무탈한지가 묻는 경우가 있다.

    죽은 고기가 財星이라 할 때 남아 있는 財星이 있으면 財宮의 완전

    소멸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명식에 달랑하나만 존재하는 財星이 죽은 고기가 되면 그 타격이

    심대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

  ☆고서는 이러한 점을 명료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刑에 대한 관점은 모두 각기 다르다.

    이것은 실전 케이스 별로 후킹 놓친 고기. 죽은 고기 등을 분별해서

    구분하는 지식체계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會


   合局의 사안별로 운용법은 이미 지난 야부리 특강에서 정리해 둔 바 있다.

   합이 <묶는 것>을 의미한다면 合局은 <묶어서 하나를 낳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4. 合

   

   合은 묶이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식 지지에 온전한 財星이 늘상

   풍요로움을 주는 데 비해 合으로 묶인 地支 財星은 그것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니므로 이를 沖으로 풀어 주는 시점에 이르어야만 내것이

   된다는 것이다.


   온전한 地支는 沖에 의해 소멸되고 合된 地支는 沖에 의해 내 것이

   되니 전자와 후자의 장단점이 있다. 평균적인 풍요로움의 측면에서는

   전자가 낫고, 안정성의 측면에서는 후자가 낫다.


   일반적으로 刑沖은 상해. 소멸. 제거의 의미를 지니며

   合은 동결의 의미를 지닌다.

 

 

 

 

출처 카페 > 부동산과 금융의 열린 정보 / 금수강산
원본 http://cafe.naver.com/1472topman/16387

출처 : 역학살롱
글쓴이 : 우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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