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城李氏(=眞寶李氏)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시조 이석(李碩)은 누대로 진보현에 토착해온 호족의 후예로 고려 충렬왕때 진보현의 아전으로 있다가
생원시에 합격했고, 그의 맏아들 자수(子修)가 홍건적의 난때 전공을 크게 세워 안사공신으로 송안군에 봉해졌으므로 그공으로
인하여 시조 석(碩)은 봉익대부로 밀직사에 증직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이석을 시조로 받들고, 선조의 본향지인 진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면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시켰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맥으로는 풍산현 망천에 터를 잡았던 송안군 자수(子修)의 아들 운구(云具)와 운후(云侯) 대에서 중흥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에 공조참의를 역임했던 운구(云具)는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군수를 역임했던 차남 양검(養儉)과 주부를 지낸 막내 양호(養浩)가 유명했다. 한편 송안군 자수의 둘째 아들로 부정을 지내고 사복시정에 증직된 운후(云侯)의 아들 정(禎)은 선산도호부사를 역임한후 호조참판에 증직되었고, 슬하에 아들 우양(遇陽), 흥양(興陽), 계양(繼陽)이 현달하여 가세를 일으켰다. 노송정 계양(繼陽)의 둘째 아들 우는 병조의 좌랑을 역임한후 승지로 있다가 중종 반정에 공을 세워 정국4등공신으로 청해군에 봉해졌으며, 1508년(중종 3) 진주 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진사 식(埴)의 아들 6형제 중 넷째인 해(瀣)는 사간과 정언을 거쳐 직제학, 도승지, 대사헌,대사간, 예조참판 등을 역임했고, 예서(隸書)에 뛰어나 필명을 떨쳤으며 그의 아우 황(滉)이 가문을 명문의 위치에 올려 놓았다. 특히 퇴계 황(滉)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大儒學者)로 율곡 이이와 함께 쌍벽을 이루었으며, 시문과 글씨에도 뛰어났고 겸허한 성격의 대학자로 중종,명종,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다.
구한말에 와서는 퇴계 황(滉)의 10대손 휘령(彙寧)이 철종때 동부승지와 돈령부 도정을 거쳐 부총관에 올랐으며, 가학을 계승하여 성리학에 전심했고 [십도고증(十圖考證)]과 국문 시가인 [방경무도사(邦慶舞稻辭)]를 지어 학문의 가통을 이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한일합방을 개탄하여 단식 끝에 순사한 중언(中彦)과 애국지사 명우(命羽)가 유명했으며, 육사 활(活)은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운동가로 활약하다가 1937년 서울에서 신석초, 윤곤강 등과 함께 동인지인 [자오선(子午線)]을 발행하면서 [청포도(靑葡萄)], [교목(喬木)] 등 목가풍의 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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