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스크랩] [안동]충렬공 김방경(忠烈公 金方慶)장군 묘소-구안동김씨

장안봉(微山) 2012. 12. 16. 20:35

 

김방경(1212~1300)

 

본관 안동(). 자 본연(). 시호 충렬().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며, 음보()로 16세에 산원()이 되어 식목녹사()를 겸하고, 감찰어사()를 거쳐 1248년(고종 35) 서북면병마판관(西)으로 있을 때, 몽골의 침입으로 주민들과 위도()에 들어가 저수지를 만들고 농토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게 하였다. 1263년(원종 4) 어사대지사()에 승진되고 후에 상장군()으로 있다가 남경유수()로 좌천되었으나 곧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형부상서() ·추밀원부사(使)를 거쳐 1269년(원종 10)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을 때, 임연()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 창(淐)을 세우자 원나라 세조()가 보낸 맹격도()의 2,000명의 군사와 협력하여 임연을 치려고 동경()에 이르렀으나 왕이 복위된 것을 알고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1270년(원종 11) 장군 배중손() 등이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삼별초()의 항쟁을 일으켜 진도()로 들어가 연안을 침범하자, 이듬해 몽골의 장군 흔도(忻) ·홍다구() 등과 함께 진도를 함락시키고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가 되었다.

김통정() 등이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탐라()에 들어가서 항전하자 1273년(원종 14) 행영중군병마원수()로서 흔도 ·홍다구와 함께 또다시 삼별초를 쳐서 완전히 평정하였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원나라에서 합포(:)에 정동행중서성()을 두고 일본을 정벌할 때, 중군장()으로 출정하여 2만 5000여 명의 여 ·원연합군()과 함께 쓰시마섬[]을 공략하고 일본 본토로 향하던 도중 규슈[]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실패하고 돌아왔다.

1281년(충렬왕 7) 원나라가 다시 일본을 정벌할 때 고려군 도원수로서 종군하여 이키섬[]을 공략하고 하카타[]에 이르러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번에도 태풍과 전염병으로 실패하고 돌아와 벼슬을 사양하고, 추충정난정원공신()에 삼중대광 ·첨의중찬 ·전리사판사 ·세자사로서 물러나고 상락군개국공()에 봉해졌다. 충직하고 근검하였으나 부하 장병들의 민폐를 막지 못하고 일본 정벌 후의 불공평한 논공행상 등으로 상하 민심을 잃어, 89세로 병사하였을 때 예장()을 치르지 못하고 고향 안동()에서 장례를 지냈다. 충선왕() 때 다시 벽상삼한삼중대광()이 추증되었다. 

 

 

안동김씨 충렬공 김방경장군 묘소

묘는 1300년 9월에 조성된 후 약 200년간 실전되어 찾지못했는데 이때 [광산김씨 양간공파/밀직부사공파/전직공파/예안파 ] 입향시조

 김효로의 묘를 썼으며 1594년 봄 김효로의 묘앞에 증손인 近始齋 金垓의 묘를 조성하던중 '高麗忠烈公金方慶之墓'라는 誌石이 출토되어

안동김씨 문중에 이사실을 알려 실전된 김방경장군의 묘를 찾게 되었다 한다.

김방경장군 묘소(윗쪽의 묘소는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시조 김효로공의 묘소이다)

광산김씨 김효로공은 안동김씨 김방경장군의 7대외손이다. 즉, 김효로의 5대조인 장영공(章榮公)휘(諱) 진(稹)께서 김방경의 외손자이다.

 

묘갈명은 李時發이 撰하고 曺友仁이 썼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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