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도선사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264번지에 있는 사찰로 호국참회기도도량이다. 이 사찰을 창건한 개산조(開山祖)는 신라말 유명한 도승이었던 도선국사다. 대방중창기(大方重創記)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명산 승지를 두루 답사하다가 삼각산(지금의 북한산)에 이르러 산세가 절묘하고 풍경이 청수한 이곳에서 천년후 말세 불법이 재흥하리라 예견하고 사찰을 건립한 뒤 신통력으로 사찰 옆에 우뚝 서있는 큰 바위를 반으로 잘라 그 한쪽면에다 20여척에 달하는 관세음보살상을 주장자로 새겼다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아무리 살펴봐도 정을 사용하여 쪼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사찰 입구의 청동지장보살상은 도선사 자매사찰인 일본의 고야산 진언종 안양원에서 1983년 11월 15일 청담대종사 열반재때 삼각산 도선사에 봉정되어 이곳에 모셔져 일체 중생의 서원처가 되게 하였다.
조선조 광무(光武) 7년에 광무황제로부터 정식으로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받은 바 있는 도선사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은 한국 불교정화유신운동의 총수인 청담대종사로 인해서였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을 역임한 청담스님은 참회를 통한 호국을 제창하시는 대원력을 세우워 「호국참회원」을 1968년 11월 20일에 건립하여 호국참회 불교사상을 널리 펴시었다. 「호국참회불교」란 신라불교의 통일염원, 고려불교의 호국염원, 조선불교의 구국염원, 현대불교의 평화염원에 입각하여, 미신불교가 아닌 수행불교, 이론불교가 아닌 실천불교, 관념불교가 아닌 생활불교로 불교 재흥을 꾀하자는 청담스님의 사상이다.
청담대종사께서 생전에 주석하시던 백운정사가 명부전으로 개조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고 박정희 전대통령 부처의 영정과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설립자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의 앞 뜰에는 지금으로부터 200여년전 어떤 고승이 인도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보리수가 고목이 되어 서 있으며, 명부전 옆에는 청담대종사께서 직접 조성하셨던 심지가 수줍은 듯이 사리고 있다. 그리고 왼쪽은 호국참회원, 정면 오른쪽으로 대웅전, 옆쪽의 약간 솟은 위치엔 석불전이 있다. 대웅전 마당 건너편으로 삼성각과 반야굴, 윤장대가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은 1,100여년전 신라 경문왕 때 창건하여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그 후 고승 혜명, 관수, 연은, 근명스님 등이 광무황제의 어명을 받아 중건하는 한편 아미타불 본존불상을 개금하고 상단불화 등을 그려 봉안하였다 한다. 대웅전의 외벽에는 팔상도가 조성되어 있다.
대웅전에서 나와 옆쪽 석조계단을 오르면 야외기도도량인 석불전인데, 옛부터 관세음보살 기도 영험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일년 내내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또하나 의미 깊은 것은 이 석불전 7층 석탑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의 사리다. 지금은 비문이 없어 애석한 일이지만 구전에 의하면 조선 말엽인 철종 14년에 동호스님이 명산을 두루 다니며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다가 도선사에 인연이 닿아 머물게 되면서 10년 동안 석불전에서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으리라 발원하며 주야를 쉬지 않고 지성으로 발원하였더니 어느날 갑자기 주위가 금빛으로 빛나는 가운데 홀연히 한 도승이 주장자를 들고 나타났다. 엉겹결에 동호 스님이 무릎을 꿇자 그 도승은 주장자로 남쪽을 가리키며 "어찌하여 저쪽으로 나가보지 않느냐?"하시며 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때서야 꿈을 깨듯 정신을 차린 동호 스님은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며칠을 열심히 가다가 보니까 폐사가 된 남지장사에 닿았다. 그런데 그 절터에서 방광하는 부처님의 사리와 치아를 발견하게 되어 소중히 모시고 와 자신이 주야로 발원하던 석불전에 탑을 세우고 봉안하였다 한다.
도선사 마애불은 도봉산 중턱에 위치한 도선사의 대웅전(大雄殿) 뒤편에 있는 높이 20m 정도의 커다란 바위 면에 얕은 부조로 새겨져 있는 거대한 마애불입상이다. 현재는 청동으로 된 장방형의 보호각 안에 보호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도선사는 통일신라시대인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의해 1천년 후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견되는 이곳에다 절을 창건하고 큰 바위를 손으로 갈라서 관음보살상을 새겼다고 하는 창건설화가 전해오고 있으나 이 마애불상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상의 머리는 소발(素髮)로 표현되었고 그 위에 육계(肉?)가 솟아 있다. 얼굴은 넓은 편으로 이목구비가 큼직하며 어깨와 거의 붙어 있는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각이 진 양쪽 어깨를 덮고 있으나 가슴 밑으로 몇 개의 크고 둥근 원을 그리며 길게 늘어진 옷 주름은 얕은 선각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가슴 위로 새겨진 ┛자 모양의 띠는 내의(內衣)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 앞에 놓고 손가락을 약간 오므리고 있다.
도선사 마애불상은 전반적으로 입체적인 표현이 거의 없는 밋밋한 원통형의 형태로 토속적인 얼굴의 모습이나 간략한 옷 주름 표현 등에서 이 절이 창건된 통일신라 말의 불상으로 보기에는 어려우며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민간신앙에 의해 조성된 조선시대 마애불상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명칭도 도선사마애불입상으로 표기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청담 대종사는 1902년 10월 20일 진주시 수정동에서 태어나, 진주농고를 졸업, 일본 병진현 송운사의 추원순치에서 행자로 수행하다 귀국한 후 1927년 5월 고성군 옥천사에서 박한영 스님에게 득도법을 이어받아 백파 율사의 제 8대손이 되었다. 그 후 서울 개운사의 불교 전문강원 대교과 수료후 만주 수월선사회를 거쳐 충남 예산 정혜사에서 수선 안거 후 20여 년 전국 선원에서 참선 수도를 하였다.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중앙종회 의장, 해인사 주지, 정법수호, 순교단 조직, 동국학원 선학원 이사장, 불교재건 비상종회 의장, 군법사단 창설, 신도회 총재, 통합종단 종정 등 역임. 밖으로 세계 불교신도회 한국대표, 세계 불교협의회 한국지부 위원장, 한국 종교협의회 의장, 세계불교연합회 장로원장, 3·1운동 국민회의 의장 등 추대됨.
국민헌장 무국화장, 동국대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나의 인생관」, 「현대위기와 불교마음」, 「신심명 강의」, 「금강경 강론」, 「반야심경 강의」등을 저술하였다. 1971년 11월 15일 세수 70세로 입적, 종단장으로 다비하였고 사리 15과를 서울 도선사, 고성 옥천사, 고성 문수암에 나누어 모셨다.
"육신은 멸하나 법신은 멸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을 남겼다.
'여행이야기(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용주사(龍珠寺) (0) | 2013.04.11 |
|---|---|
| [스크랩] 신륵사(神勒寺) (0) | 2013.04.11 |
| [스크랩] 至德祀(지덕사) (0) | 2013.04.11 |
| [스크랩] 개화산 약사사(開花山 藥師寺) (0) | 2013.04.11 |
| [스크랩] 봉은사 2 (0) | 201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