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기도)

[스크랩] 창덕궁 3 - 희정당 / 대조전

장안봉(微山) 2013. 4. 11. 00:03

 

 〈궁궐지〉에 희정당은 편전으로, 또 〈동궐도〉에는 중층 누각으로 되어 있어 현재의 모습과 다르다. 희정당으로부터 구름다리 모양의 행각이 북쪽으로 뻗어 희정당 자리보다 높게 자리잡은 대조전은 침전으로 장방형의 행각이 둘러싸고 있고, 이 뒤쪽으로는 아름다운 후정이 조성되어 있다. 대조전 영역의 동남쪽에 내의원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낙선재(樂善齋), 승화루(承華樓), 백칸 안쪽에 이르는 행각들만 남아 있다.

 희정당은 내전에 속하여 침전으로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에는 왕의 집무 공간인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되어 1920년에 경복궁의 강녕전을 창덕궁으로 옮겨와 사용하였다.

희정당은 대한제국 말까지 사용되었다. 1920년에 중건하면서 서양식으로 개조되었는데 가운데 대청을 서양식 응접실로 사용하였고 서쪽으로는 회의실, 동쪽으로는 방과 창고를 두었으며, 바깥 둘레는 통로, 목욕탕, 칸막이방 등으로 사용하였다. 서양식 응접실에는 카펫을 깔고 유리 창문과 커튼, 전등 등을 달았다. 벽면에는 당대 최고 서화가였던 해강 김규진이 그린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와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가 있다. 또한 남행각 정문은 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전체적인 외부는 한옥이면서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며져 있어 전통과 근대의 격변의 모습을 보여준다.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서양식 실내장식을 하고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 9칸·옆면 3칸을 거실로 하고 주위는 복도로 사용하였다. 앞면 9칸 중 3칸은 응접실이며 서쪽은 회의실로 꾸미고, 동쪽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응접실에는 김규진의 금강산도, 해금강도 등의 벽화가 걸려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왕의 사무실과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희정당과 대조전 사이의 선평문.

 창덕궁 내전에 있는 침전이다. 희정당과 같이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와 중건하였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왕의 침전인 동온돌로 나누어지는데,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몄다. 중앙 응접실 양벽에는 오일영과 이용우의 <봉황도(鳳凰圖)>, 김은호의 <백학도(白鶴圖)>가 그려져 있다. 봉황도의 낮과 백학도의 밤이 어우러져 왕실의 안녕과 위엄을 나타낸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는 1907년 즉위한 후 경운궁(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후 순종황제는 ‘창덕궁 이왕(李王)’으로 격하되었다. 나라를 잃은 비통함 속에서 창덕궁에 머물던 순종황제는 53세를 일기로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그가 남긴 유언은 ‘광복하라’였다.

 대조전은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를 비롯하여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었다.

  1917년 또 화재를 당하여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고 그 부재로 이곳에 옮겨지어 ‘대조전’이란 현판을 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기 때문에, 건물 자체는 물론 주변의 부속 건물들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대조전은 현재 36칸으로 앞면 9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가운데 3칸은 거실로 삼았으며, 거실의 동·서쪽으로 왕과 왕비의 침실을 두었다. 각 침실의 옆면과 뒷면에는 작은 방을 두어 시중 드는 사람들의 처소로 삼았다. 건물 안쪽에는 서양식 쪽마루와 유리창, 가구 등을 구비하여 현대적인 실내 장식을 보이고 있다.

 현대화된 수랏간.

 왕실 개인 화장실이었던 매화틀이 드나드는 곳.

 

 

 화계.

 굴뚝.

 

 청향각.

 청향각의 굴뚝.

출처 : 바람 통신
글쓴이 : 문화 탐험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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