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의 정문인 장락문 - 편액은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이다.
솟을대문 문지방이 나무가 아닌 돌로 다듬어져 있다. 가운데 홈은 초헌이 다니는 수레길이다.
낙선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八作)기와지붕. 누마루가 깔려 있고, 모두 17칸 반의 규모이다. 장대석(長臺石) 위에 초석(礎石)을 놓고, 네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모기둥이며, 기둥머리에 대들보를 걸었으며, 익공(翼工)을 끼웠다.
누마루 아래에는 아궁이를 내기 위하여 단을 높였고, 아궁이의 벽에는 작은 돌을 불규칙적으로 붙여놓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안허리의 굽음새도 적당하게 잡혔다. 또한 정면 6칸, 측면 2칸의 석복헌(錫福軒)과 이어져 있다. 원래 이곳은 상중(喪中)에 있는 왕후들이 소복(素服) 차림으로 기거하던 곳이며,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이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상중에 왕후들이 기거하던 곳이라 하여 단청(丹靑)도 하지 않았다.
빙열문.
석복헌[昌德宮- 錫福軒]은 낙선재, 수강재와 연이어져 있는 공간으로, 낙선재 동쪽에 있다. 1993년 복원공사에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헌종 14년(1848)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복헌은 후손을 보기 위해 맞아들인 후궁 경빈 김씨(慶嬪金氏)를 위해 헌종이 마련해준 처소였다. 유난히 경빈 김씨를 아꼈던 헌종은 석복헌을 짓기 한 해 전에 자신의 개인 휴식공간인 낙선재를 먼저 지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1966년 숨을 거둘 때까지 거처했던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 일대의 복원 작업을 마친 후 2006년부터 공개되었다.
석복헌의 아궁이.
수강재[壽康齋] - 정조 9년(1785)에 지었으며, 단종이 머물렀던 옛 수강궁(壽康宮) 자리에 세워 수강재(壽康齋)라 이름 붙였다. 순조 27년(1827)부터 대리청정을 했던 효명세자(익종)의 별당이었으며, 헌종 14년(1848)에 헌종의 할머니였던 순원왕후의 거처로 중수하였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가 1989년 77살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거처했던 곳이며, 장례식도 이곳에서 치러졌다.
수강재는 낙선재, 석복헌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낙선재 일대의 복원작업 후 2006년부터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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