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불교)

[스크랩] 조계사[曹溪寺]

장안봉(微山) 2013. 4. 10. 23:49

 

 조계사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절이자 총본사로 중앙 총무원, 중앙 종회 등이 집결해 있는 한국 불교의 중심지이다.

1911년 한용운과 이회광이 중동중학교 자리에 각황사(覺皇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1915년 포교와 교육사업을 위해 31본산 연합사무소를 설치했으며, 1929년 승려대회를 열어 조선불교 선교양종의 종헌을 제정하고 중앙교무원을 설립했다. 1937년 조선불교총본산을 설립하기로 결의하고, 17만 원의 경비를 들여 1938년 각황사를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이때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곳으로 옮겨오는 형식을 취해 절이름을 태고사로 바꾸었다. 1955년 이 절을 중심으로 불교정화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시 절이름을 조계사로 고쳤는데, 현재 대부분의 절은 조계종에 속해 있다. 

 1937년 각황사를 현재의 조계사로 옮기는 공사를 시작, 이듬해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태고사로 창건하면서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정읍에 있었던 보천교(普天敎) 십일전(十一殿)을 이전하여 개축하고, 1938년 10월 25일 총본산 대웅전 건물의 준공 봉불식을 거행했다. 1954년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난 후 조계사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한국불교와 그 대표종파인 조계종의 주요 사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웅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큰 영웅이 계신 곳으로, 모든 것에 있어서 걸림이 없는 분, 대자유인, 스스로를 극복하고 능히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분, 하늘과 땅, 모든 존재로부터 마땅히 존경받는 분을 모신 곳 즉,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조계사의 경우처럼 좌우에 아미타부처님과 약사여래부처님이 봉안되어 있는 경우에는 대웅전이라는 명칭보다 더 격이 높은 대웅보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조계사는 창건 당시부터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을 모셨기 때문에 대웅전이라고 불러져, 2006년 삼존불(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아미타부처님, 우측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이후에도 이전에 부르던 명칭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조계사 대웅전 편액은 전북 구례 화엄사에 있는 대웅전 편액을 탁본하여 조각한 것을 대웅전 낙성 당시에 단 것이다. 글씨는 조선 시대 선조대왕의 여덟 번째 아들인 의창군 이광(1589~1645)의 것이다.

대웅전은 십일전의 건물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 불교적인 색채보다 도가적인 문양이 많다.

 석가모니부처님을 가운데 모신 이유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기도 한 깨달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웅전의 부처님은 오른 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끝을 가볍게 땅에 댄 형태를 하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앞에 놓은 형태다. 이는 각각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선정인(禪定印)(조계사 대웅전의 석가모니부처님의 수인은 항마촉지인입니다)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수인은 주로 석가모니부처님을 표현할 때만 나타나는 형식으로써 일체 모든 삿된 것을 굴복시키고 선정에 들어간다는 뜻의 표현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을 표현한 것. 서있는 곳에서 중앙에 계신 석가모니부처님을 바라볼 때 석가모니부처님의 우측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부처님은 지금 당장 고통을 받는 병자나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으로, 일반적으로 손에 약합이나 약병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구별한다.

 좌측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조상의 극락왕생 및 내세에 누릴 자신의 행복을 관장하고 계신 부처님으로, 손 모양을 보면 양손 모두 엄지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데, 이는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아미타부처님의 구품(九品) 가운데 하나로 하루 밤낮 동안만이라도 계율을 지킨 범부는 죽을 때에 부처나 보살의 마중을 받고 왕생하여 반겁(半劫) 뒤에 아라한과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계사 삼존불은 각각 17자반(약 5m 20cm) 크기로 2006년 11월 14일 봉불식(부처님을 새로 모시는 의식)을 가졌다. 세분 부처님은 현재 단층 규모의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으로서는 국내 최대 크기다. 그리고 대웅전에는 불상을 안치하는 수미단을 중심으로 대웅전을 바라보고 오른쪽 벽면에 신중(神衆: 부처님 도량을 옹호하는 호법선신)을 모시는 신중단 그리고 왼쪽에는 영가(靈駕: 돌아가신 분)를 모시는 영단을 두고 있다.

 대웅전 삼존불을 바라보고 서 있는 곳에서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목조석가모니부처님은 창건 당시「조계사 대웅전 총본산 건설위원회」에서 논의하여 전라남도 월출산 도갑사의 부처님을 이운하여 모신 것이다. 창건 당시 모셨던 목조 불상 조성 시기는 조선 초기(1460년대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조선 초기 불상이나 보살상 중에는 목조로 된 것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아주 드물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목조 불상은 조계사 창건 당시부터 대웅전의 주불로 모셔졌으나 대웅전 크기에 비해 불상이 지나치게 작다는 뜻에 따라 새로 삼존불을 모시게 되었다. 목조 불상은 향후 따로 영산전을 신축하여 그곳에 주불로 모실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조계사 회화나무는 500년가량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서울시 지정보호수이다. 회화나무는 가장 늦게 잎이 돋아 가장 늦게 잎이 지는 것으로 예로부터 군자의 성품을 닮았다고 해서 군자목으로도 불리고 있다.

 

 극락전 - 내부 중심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좌우에는 각각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그 좌우 측면으로 십대명왕이 자리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십 만 억 국토를 지난 극락정토라는 곳에 계신 부처님이다. 극락이란 모든 중생을 청정하고 완전하게 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주로 제사와 영가천도 의식이 봉행되고 있다. 2층에는 여러 법회, 신행단체 모임, 교육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활용되고 있는 대설법전과 소설법전이 위치하고 있다.

 범종루 - 법고, 운판, 목어, 범종 등의 사물이 있는 곳. 매일 새벽 예불(오전 4시경)과 저녁 예불(저녁 6시경) 그리고 특별한 행사 때 친다. 사물을 치는 순서는 법고 → 범종 → 목어 → 운판이다. 이 중 법고는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목어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범종은 욕계의 6천과 색계의 18천과 무색계의 4천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 범종은 새벽 예불 때 28번 저녁 예불 때 33번을 치는데 이는 새벽에 28개의 지옥문을 열어 사시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저녁에 33개의 천상의 문을 열어 모두 극락으로 인도하는 의미에서 조석으로 울리고 있는 것이다. 

 8각10층부처님진신사리탑 - 과거의 조계사 부처님진신사리탑은 일제 강점기에 건립되어 우리나라 전통양식에 맞지 않고 왜색을 띄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리탑은 이러한 지적을 개선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여법히 모시고자 하는 사부대중의 염원을 반영하여 팔정도와 십선법을 상징하는 8각 10층으로 2009년 10월 8일에 새로 건립하였다.

 탑의 외부에는 8여래상, 8보살상, 8신중상 등을 부조 장엄하였고, 내부에는 1913년 스리랑카로 부터 전해진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하고 소형불상 일만 사천 분을 모셨다. 또한 1660년 은진 쌍계사각판 법화경 7권 한 질과 25조 가사 한 벌 등을 안치하여 한국불교 중심지에 길이 전승될 사리탑의 위엄을 갖추도록 하였다.

 

 조계사 백송 -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종이다. 조계사 백송은 조계사 전신인 각황사에 있던 것을 절을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함께 이전해 온 것이다. 조계사 백송의 수령은 5백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계사의 전신인 각황사가 있던 조계사 바로 옆 수송동은 이 백송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사적비 - 지관스님(전 총무원장)이 80년 역사의 한국불교 중심도량에 사적비가 없음을 아쉽게 여겨, 9천자에 가까운 사적을 담아 25자 높이로 2009년 10월 8일에 제작되었다. 비문은 지관스님(전 총무원장)이 직접 작성하였고 귀부와 이수는 장중한 고달사원종국사탑비의 귀부와 이수를 바탕으로 하되, 중도조화의 미덕을 갖추도록 제작하였다.

 

 사적비의 내용은 일본의 식민통치 일환인 한일불교 통합 획책에 대응하여 진행된 한국불교 총본산 건립운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80여 년의 종단 근현대사를 담아 조계사의 연혁을 정리하였다.

 

출처 : 바람 통신
글쓴이 : 문화 탐험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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