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2 득수법(得水法), 정혈법(定穴法) · 좌향론(坐向論) · 기타 풍수설화(風水說靴)
득수법(得水法)
풍수에서 물의 역할이나 그 중요성은 몇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타당한 것이 음양론적 해석 방법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일음일양(一陰一陽)을 도(道)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양이나 음 홀로는 생성하지 못하고 음양이 상배(相配) 되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형세를 논함에 있어서 산은 음이요, 수(水)는 양이다. 무릇 산수가 상배해야 음양이 있는 것이 된다. 산과 수는 모두 정(靜)하면 음이고 동(動)하면 양이 되기 때문에 결국 산수는 각각 음양이 있는 것이다. 음래(陰來)하면 양수(陽受)해야 하고 양래(陽來)하면 음수(陰受)해야 하니 용혈(龍穴)도 상배해야 음양이 있게 되는 까닭이다.[註]」
즉 득수(得水)는 음양의 화합에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그 중요성이 인식된다. 장서(葬書)에서도 ‘풍수의 술법은 득수함이 으뜸이요, 장풍이 다음이라(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함은 앞서 밝힌 바 있다.
음양이기(陰陽二氣)에 의한 산수 설명은 명산론(明山論)에 잘 지적되어 있는데
「무릇 음양이기(陰陽二氣)가 융결(融結)해야 산이 되고 물이 되는 것이니 산수를 음양이라 일컫는다.
산수가 상보(相補)해야 음양이 화(和)하고, 화(和)해야 충기(沖氣)된다. 산수가 취집(聚集)해야 음양이 회(會)하고, 회해야 생기가 있게 되니, 즉 길(吉)하다고 한다.
이 때 산대(山大)하고 수소(水小)하면 독음(獨陰), 산에 기복(起伏)이 없으면 고음(孤陰), 수에 침적(沈寂)이 없으면 고양(孤陽)이라 한다.」 하였고, 또
「음양이 화(和)하고 회(會)하지 못하면 소위 흉한 것이다. 지리로 산수를 봄에 있어서 산은 천리(千理)의 원(源)을, 수는 천리의 위(委)을 보아야 한다. 산은 높은 것이 좋고 수는 긴 것이 좋다. 산이 어렵지 않게 솟으면 그 기가 취(聚)하고 수가 어렵지 않게 만곡(灣曲)하면 그 기가 지(止)한다. 산수가 날줄 씨줄처럼 정교하게 짜이면 천관(天關)의 보람을 얻는다.[註]」 고도 하였다.
산수가 상보해야 함을 역시 음양론의 입장에서 설명한 글이다. 이러한 지적은 대부분의 술서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예컨대 ‘蓋聞天開地闢 山峙川流 二氣妙運於期間’[註]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수(水)를 음양론에서 벗어나 약간 다르게 해석한 경우도 있다. 물론 산수 해석을 음양에서 본다는 본질적 원칙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지리신법(地理新法)』에 산수를 체(體)와 용(用), 혹은 형체(形體)와 혈맥(血脈)으로 대비시킨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풍수에서의 산수의 역할을 음양이라는 원리론보다 훨씬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부분으로
「산은 정물(靜物)로 음에 속하고 수는 동물(動物)로 양에 속한다. 그런데 음은 체상(體常)을 도(道)로 하고 양은 변화를 주로 하기 때문에 길흉화복은 수(水)에 더 잘 나타난다. 대개 산은 사람의 형체와 같고 수는 사람의 혈맥과 같은 것으로, 사람에 있어서 형체의 생장고영(生長枯榮)은 모두 혈맥으로 비롯된 것이다. 혈맥이 사람의 몸 속을 흘러 다님에 있어서 그 度數가 순조로우면 그 사람은 반드시 건강하고 튼튼할 것이오, 그렇지 않고 실절(失節)케 되면 그 사람은 병들어 망함이 자연의 이치인 것이라[註]」 하여 산을 사람의 몸체, 물은 혈맥에 비유하고 있다.
즉 인체의 건강 여부가 혈맥에 의존하는데, 이 혈맥이 정상적으로 순환하고 순조로우면 건강하고 반대로 불규칙적이면 반드시 질병에 걸리는 것처럼, 산수도 이와 같이 수와 산이 합쳐지지 않으면 산의 길함은 이루어질수 없다는 것이다. 풍수에 있어서 수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산에 대한 수의 길흉은 산으로 보아 길(吉) 방향에서 와서 흉(凶)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좋은 것이다.[註] 좋은 것을 갖고 와서 찌꺼기를 가져간다는 생각일 것이지만 보다 구체적인 술법은 좌향론(坐向論)을 상세히 알아야 알 수 있다.
『음택요결(陰宅要訣)』은 산수의 관계를 남녀관계로 더욱 재미있고 알기 쉽게 풀이하기도 한다. 즉
「무릇 수는 내룡(來龍)의 혈맥기내(血脈氣內)에 취(聚)하야 외설(外泄)하는 것이니 그 법은 대개 산은 음이고 수는 양이니 어떠한고, 산은 본정(本靜)이라 용사(用事)를 못하니 부도(婦道)와 같고 수는 본동(本動)하야 출입용사(出入用事)를 하니 부도(夫道)와 같다.
부(婦)가 미호(美好)해도 부성(夫性)이 흉악하면서 어찌 화합하여 생성의 이(理)가 있으며 부(婦)가 혹 막모(莫母)라도 부성이 인선(仁善)하면 애호(愛護)를 불태(不怠)하야 마침내 자손이 진진(振振)하고 면면(綿綿)의 부귀를 볼 것이니 이렇게 추구하면 산가(山家)의 길흉화복은 전혀 수법(水法)에 있으니 어찌 잘 상찰(詳察)치 않겠는가.
경(經)에 말하기를 천산(千山)의 길함이 능히 일수(一水)의 해(害)를 구(救)치 못하고 일수(一水)의 해가 능히 백자(百子)의 재(災)라 하니 참된 말이로다.」 고 표현하고 있다.
모든 수(水)에 관한 설명에서 공통적인 것은 수가 산보다 그 용(用)에 있어서 보다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점이다.
그런데 물은 원래 유동(流動)을 본성으로 하지만 그 본성대로 유동해 버리면 아무리 호세(好勢)의 산과 회합한다 할지라도 생기의 순화(純化)를 이룰 수가 없고, 오히려 산의 생기까지도 씻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분류(奔流)하는 물은 흉수(凶水)로 보고 꺼리는 것이다. 따라서 주작(朱雀)은 그 상무(翔舞)를 요하는 것인데 이는 산주작(山朱雀)의 경우이고 물로써 주작을 형성할 때에는 결코 약동해서는 아니된다. 왜냐하면 물이 천천히 흐르지 않으면 빨리 흘러서 성국(成局)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득(得)이란 혈장(穴場)으로 오는 수(來水)를 말하는 것이고 파(破)란 가는 수(去水)를 말한다.
산을 생명체인 소우주(小宇宙)로 볼 때 입(口)이 있어 먹어야 하고 항문이 있어 배설해야 그 생명을 유지 보전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득은 용혈(龍穴)의 입이 되고 파(破)는 그의 항문으로서 득에서 얻은 물과 바람의 정수(精髓-風水之精)를 용혈에서 흡수하고 찌꺼기를 파(破)로 배설하는 것이다.
입과 항문이 득파(得破)의 본질은 아니지만 득파의 기능이나 위치를 이해하는 데는 적절한 비유라 생각된다.
득(得)은 용혈이 생명소(生命素)를 받는 입이기 때문에 정위치에 있어야 함은 물론 튼튼해야 한다.
득은 내득수(內得水)와 외득수(外得水)가 있다. 내득수에는 청룡에서 백호 사이, 내명당(內明堂)에서의 시견수처(始見水剔8를 내득수라 하는 설과 주룡(主龍)과 혈장의 변화 굴곡작용에서 생기는 자생수처(自生水剔8를 내득수라 하는 설이 있다.
외득수는 용호 밖에서 용혈을 향해 유입하는 외수(外水)의 시견지처를 기점으로 한다.
파(破)는 혈지명당(穴地明堂)의 대문처(大門剔) 이다.
파에도 내파구(內破口)와 외파구(外破口)가 있는데 내파구란 중명당(中明堂), 내수(內水)의 낙수처(落水剔)를 말하는 것이며, 외파구란 대명당내 외수의 종견처(終見剔)를 말하는 것이다.
파는 모든 격(格)에 합당해야 하고 허결(虛缺)함이 없이 견실해야 하며 직류직사(直流直瀉)함이 없이 중첩회류(重疊回流)해야 한다.
또 득은 견(見), 파(破)는 불견(不見)이라 부르기도 한다. 득은 물을 얻는다는 의미이고, 파는 물을 보낸다 혹은 버린다는 뜻이므로, 득을 견이라 하는 것은 내수(來水)를 처음으로 본다는 뜻이 되고 파를 불견이라 함은 거수(去水)가 보이지 않게 흘러 나가는 것을 말함이다.
역(易)의 ‘열린 것을 하늘, 닫힌 것을 땅이라 하고,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히어 만물이 생성한다.’[註]는 대목에서 벽(闢)이 득이 되고 합(闔)이 파가 된다. 즉 득파란 개폐(開閉), 시종(始終), 음양(陰陽)을 의미한다.
『지리초묘(地理抄妙)』에서는 득파를 남녀관계에 비기어 견, 불견을 설명하기도 한다. 남녀가 처음 만남에는 견(見)이 당연하지만 상락(相樂)을 함에는 불견이어야 당연한 일이니, 풍수에서 직류수(直流水)를 혐기(嫌忌)함도 그런 까닭이다. 직류하면 불견, 즉 파를 이룰 수 없으니 그를 기대할 수 없다.
득을 천문(天門), 파를 지호(地戶)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 때 파(破)는 국내(局內)의 명당수가 합쳐 밖으로 흘러 나가는 곳이 되기 때문에 수구(水口)라고도 하며 이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예컨대 청룡과 백호가 서로 입을 맞추고 있다 하여 수구라는 설과 내룡(來龍)의 입수(入首)가 용호간(龍虎間)에 입을 내밀고 있어 수구라 한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혹은 청룡을 양, 백호를 음으로 보아 청룡의 양수(陽水)를 백호(白虎)가, 백호의 음수(陰水)를 청룡이 서로 입을 대고 마심으로써 음양충기(陰陽食氣)하여 생기(生氣) 활동한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수구(水口)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로 청룡이 짧고 백호가 길어 백호가 청룡을 안은 듯한 수구를 음수구(陰水口), 둘째로 백호가 짧고 청룡이 길어 청룡이 백호를 둘러싼 듯한 수구를 양수구(陽水口)라 하고, 끝으로 용호의 길이가 같아서 서로 마주 대한 듯한 수구를 음양합수구(陰陽合水口)라 한다.
수(水)의 음양 판별은 앞서 제시한 청룡 양수, 백호 음수 외에도 방위에 의한 방법이 있다. 24방위 중 갑(甲) · 병(丙) · 경(庚) · 임(壬)은 양간(陽干)으로 여기서 흘러오는 물은 양수(陽水), 을(乙) · 정(丁) · 신(辛) · 계(癸)는 음간(陰干)으로 이것은 음수(陰水)로 취급한다.
또 한 가지 좌발우행(左發右行)은 양수, 우발좌행(右發左行)은 음수로 간주하는 방법도 있다.
수(水)를 음양으로 구분하는 것도 역시 음양론의 기본적 성격에 따르기 위함으로 양내음수(陽來陰受) 또는 음내양수(陰來陽受)의 원칙에 부합하는 수(水)의 성국(成局)이 필요하다.
즉 양수가 오면 음수가 그를 받아야 하고 음수가 오면 양수가 그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양수는 남자에 관계가 되고 음수는 여자를 말하는데, 음수가 승(勝)하면 자손에 여자가 많고 양수가 승하면 남자가 많다고 한다.
또 수(水)가 흉방(凶方)에서 오거나 혹은 탁한 냄새가 나면 음수(淫水)라 하여 음분(淫奔)한 남녀가 후손에 나타나는 것으로 안다.
한양의 수구를 크게 보면 우선 명당수의 경우, 사신사(四神砂)로부터 명당내로 유입되는 물은 개천(開川) 즉 지금의 청계천으로 흘러드는데, 과거 지형이 도시 건설로 크게 파괴되어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동쪽으로 흘러 도성을 지나 삼수구(三水口)로 나와 중량포(中梁浦)로 유입되는 형세이다.
[註] 현재 지형도상의 판단으로는 수류(水流)의 발원처(發源剔8인 득(得)은 북악산과 인왕산 산록이 될 듯하고 이것이 북악과 남산 줄기의 산각(山脚)을 절개하면서 거의 정동(正東)으로 오늘의 청계로를 따라 흘러 상왕십리동에서 안암천(安庵川), 마장동에서 정릉천(貞陵川)을 합류하여 한양대 동편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류된 뒤, 이 중랑천이 금호동과 성수동 사이 뚝섬 부근에서 한강에 유입된다.
즉 한양의 명당수인 청계천은 동대문쪽의 구릉지 때문에 직접 남진(南進)하여 한강 방면으로 흐르지 못하고 동류(東流)하게 된 것이다.
한강은 한양의 객수(혹은 外水)로 북한강, 남한강의 2대 줄기가 양평(楊平) 양수리(兩水里) 용진(龍津)에서 서로 합쳐 삼각산 골짜기의 물을 받아 들이면서 한양을 둘러싸듯 하며 북서쪽으로 나아가 바다로 들어간다. 따라서 한양의 수국(水局)은 명당수와 객수라는 두가지 면을 모두 살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풍수득수법을 알아야만 한다.
수법(水法)의 개략을 살펴보면 수법에 있어서 내수 즉 득(得)은 반드시 생왕방위(生旺方位)여야 하고, 거수(去水) 즉 파(破)는 사절방향(死絶方向)이어야 한다.
그런데 인(寅) · 오(午) · 술(戌) · 신(申) · 자(子) · 진(辰)의 여섯 방위는 무곡성(武曲星), 계(癸) · 간(艮) · 갑(甲) · 신(辛)의 네 방위는 염정성(廉貞星), 손(巽) · 정(丁) · 곤(坤) · 경(庚) · 임(壬)의 다섯 방위는 탐랑성(貪浪星), 그리고 을향(乙向)은 녹존성(祿存星)의 관국(管局)인데 이것들은 좌수도우(左水倒右)해야 길(吉)하다.
그렇지 않고 거꾸로면 흉하다고 본다. 이때 탐랑, 무곡성의 수는 오는 것은 괜찮으나 흘러가는 것은 불가하고, 문곡(文曲) · 염정 · 녹존성은 가는 것은 괜찮으나 오는 것은 불가하며, 거문(巨門) · 좌보(左輔) · 우필성(右弼星)은 오고 가는 것이 모두 괜찮고 파군성(破軍星)은 오고 가는 것이 모두 불가하다.
한양의 명당수와 객수를 살펴보면 명당수는 대체로 건해방위(乾亥方位)에서 와서 묘(卯) · 을(乙) 방향으로 흘러가고, 객수는 묘방(卯方)에서 와서 유방(酉方)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많다.
대축척 지도가 없는 상황에서는 정확한 방위 판단이 수세(水勢)의 굴곡까지 염두에 두고 내려지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고, 또 보는 위치(이 경우는 물론 경복궁 근정전을 혈로 하여 보았을 것이지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자신의 이론에 맞추는 방향으로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보면 한양의 수법방위는 앞에서 설명한 이론에 그대로 부합됨을 알 수 있다.
즉 명당수가 오는 건방(乾方)은 탐랑성, 해방(亥方)은 거문성, 묘방(卯方) 역시 거문성이 되어 오는 것이 길한 방위이고, 가는 묘방은 거문성, 을방(乙方)은 녹존성으로 역시 가는 것이 길한 방위가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수법방위법은 24방위로 나뉜 15도(度) 간격의 차이에서 길흉을 판별해야 하는 술법인 만큼, 위학적(緯學的) 해석은 가능할 지 모르나 지형적인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찾아 보기란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한양의 수세(水勢)에서 지세적(地勢的) 합리성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대체로 다음의 두가지 경우가 아닐까 한다.
하나는 『택리지』의 지적대로 수구(水口)가 낮고 허(虛)하다는 문제인데 객수인 한강의 수구가 경기도 북서쪽의 저평(低平)한 지대를 관류하기 때문에 적절한 지적이라 여겨지며, 이것은 역시 겨울철의 한랭한 계절풍의 직사(直射)를 의미하게 되어 취락입지상(聚落立地上) 불리한 조건일 수 밖에 없다.
또 하나는 소위 우선국(右旋局)에 의한 내외수류역세(內外水流逆勢) 혹은 산수역세(山水逆勢)의 국면(局面)이다. 한양은 백호인 우지(右枝)가 길고 좌지(左枝)인 청룡이 짧아 우선국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서쪽의 바다로 들어가는 한강과는 산수가 서로 역(逆)하여 있게 된다.
수류(水流)만을 보더라도 명당수인 청계천이 동으로 도성내를 관류하여 한강으로 유입되는데 한강은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명당수와 객수는 완연히 역세(逆勢)의 국면을 갖게 된다.
좀 더 부연하면 한강은 서울 부근에서 한양을 북으로 감싸듯 돌며(環抱), 서울 남쪽을 지나 북서진(北西進)하는 대규모의 곡류하천(曲流河川) 형태를 취한다.
이 때 현재의 영등포, 강남 일대가 곡류하천의 공격면(攻擊面)이 되고 용산쪽이 포인트바(point―bar)면을 이루기 때문에 한강이 범람하는 경우에도 포인트바 쪽인 도성내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그에 겹쳐 명당수가 객수와는 반대방향을 취하여 심한 범람이 일어나는 경우라 할지라도 도성내가 급속도로 침수되는 것을 방지해 주고 있다.
게다가 청계천은 포인트바 쪽인 뚝섬에서 한강에 합류하기 때문에 홍수발생시 도성내의 하수(下水)와 지표수(地表水)를 쉽게 배수할 수 있는 이점을 갖는다.
즉 공격면 쪽에서 유입되는 지류(支流)가 본류(本流)의 수압 때문에 배수 불능이 되는 경우일지라도 포인트바 쪽은 본류의 수압이 훨씬 낮기 때문에 지류의 배수가 공격면 쪽보다는 훨씬 유리한 것이다.
이러한 자연조건은 풍수의 산수환포(山水環抱), 수구관쇄(水口關鎖), 산수역세(山水逆勢)와 일치되는 것으로 풍수이론이 현대의 취락입지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타당성이 있다는 좋은 근거가 되는 관례이다.
결국 한양은 산취수곡(山聚水曲)의 최선, 유정(有情)의 땅[註]이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득수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수 관계건(關係件)으로는 명당수인 청계천 문제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한성부의 개천은 백악, 인왕, 목멱산 여러 골짜기의 물이 합하여 동쪽으로 흘러서 도성 가운데를 가로 지나서 삼수구(三水口)로 나가 중량포로 들어간다.
세종 26년에 이현로(李賢老)가 풍수설을 가지고 도성 안 개천에 오예물(汚濊物) 던지는 것을 금하여 명당의 물을 맑게 할 것을 청하였는데, 집현전교리 어효첨(魚孝瞻)이 상소하기를 ‘신(臣)이 이 살피건데 동림조담(洞林照膽)’이란 책은 범월봉(范越鳳)이란 풍수사(風水師)가 지은 것인데, 월봉은 오계(五季-5代) 때의 한 술사(術士)였습니다.
그 중에서 말한 바, 명당에 냄새나고 더러우며 불결한 물이 있으면 역흉잔(逆凶殘)의 징조이라 한 것은 장지(葬地)의 길흉을 말한 것이오 도읍지의 형태에 대하여는 말한 것이 없습니다.
대개 월봉의 의견으로는 신도(神都)는 정결함을 숭상하기 때문에 물이 불결하면 신령(神靈)이 불안하여 그러한 징조가 있다는 것이오, 국가 도읍지에 대하여 말한 것이 아닙니다.
도읍하는 곳을 말씀드리면, 인가(人家)가 번성한 즉 자연히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쌓이는 것이니, 여기에는 반드시 소통시키는 개천과 넓은 내가 있어서 그 사이를 가로 세로 흘러 그 나쁜 것을 떠내려 보낸 후에라야만 맑게 할 수 있는 것이니, 도성지에는 그 물이 맑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만일 도읍지의 물을 한결같이 산간(山間)의 청정(淸淨)한 물과 같이 하려 한다면 이것은 사세(事勢)에 맞는 일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치로 말하더라도 사생(死生)이 길이 다르고 신과 사람이 처지가 다르온데 무덤에 대한 일을 어찌 국가 도읍지에 해당시키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그 상소를 보고 근신(近臣)에게 이르기를 ‘효첨의 의론이 정직하다’하고, 드디어 이현로의 말을 쓰지 않았다.」 라 하였다.
풍수에서 명당수 즉 내수의 물이 맑고 냄새가 나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위에 소개한 논쟁의 골자는 명당수가 맑아야 한다거나 혹은 흐리고 냄새가 나도 괜찮다거나 하는 풍수론 자체의 논란이 아니라, 명당수의 맑음이라는 원칙은 준수한 채 다만 도성의 경우는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만큼 그 오염이 부득이 하다는 어효첨의 현실론을 받아 들인 내용인 것이다.
물론 그의 현실론은 타당하다. 그러나 환경공해에 시달리는 오늘의입장에서 보자면 이현로의 주장이 아쉽다 아니할 수 없다. 명당수가 더러워도 괜찮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정혈법(定穴法) · 좌향론(坐向論) · 기타 풍수설화(風水說靴)
장풍(藏風)과 득수(得水)가 적격임이 인정되면 명당은 결정된 셈이다. 이 명당 중에서도 혈처(穴剔8를 찾는 방법이 정혈법이다.
혈(穴)은 풍수에서 요체가 되는 장소이다. 혈은 음택(陰宅)의 경우 시신이 직접 땅에 접하여 그 생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양택(陽宅) · 양기풍수(陽基風水)의 경우 거주자가 실제 삶의 대부분을 얹혀 살게 되는 곳이다.
주자(朱子)는 그의 『산릉의상(山陵議狀)』에서
「소위 정혈(定穴)의 법이란 침구술(鍼灸術)에 비유할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 일정한 혈의 위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터럭 끝만큼의 차이도 있어서는 안된다.」
고 하여 풍수의 혈이 인체의 경혈(經穴)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하였다.
경혈이란 경락(經絡)에 존재하는 공혈(孔穴)이란 뜻으로 경맥(經脈)의 출(出) · 주(注) · 과(過) · 행(行) · 입(入)한 곳의 모든 점을 일컫는데 기혈(氣血)의 영위현상(榮衛現象)이 반응하는 경락의 노선 중에서도 특정한 위치에 생리적 또는 병리적(病理的) 반응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곳을 말한다.
침구(鍼灸)는 모두 이 공혈의 부위에서 실시하게 되므로 공혈의 부위를 잘 알아 장부(臟腑)와 신체의 각 부위에서 일어나는 병원(病原)과 경락공혈과의 침구관계를 자세히 밝히도록 하는 것이 침뜸술의 요결(要訣)이 되며, 풍수에서 혈을 정하는 정혈법의 어려움도 이로 미루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국(局)을 이루고 있는 혈이라 생각되는 지점 주변의 전후좌우 산세(山勢)와 수국(水局)을 살펴야 진혈(眞穴)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진혈은 앞에 아름다운 조산(朝山) · 안산(案山)이 있고, 명당이 바르고, 수국이 모여들 듯 흐르고, 뒤에는 낙산(樂山)이 솟아 귀성(鬼星)을 버티고, 좌우의 청룡, 백호가 유정(有情)하고, 전호(纏護)가 얼싸안고, 주변 산세는 십도진결법(十道眞結法)에 맞게 조화를 이루며, 계수(界水)가 그 분합(分合)을 분명히 하고 있는 곳에 있다.
요컨대 나쁜 자리를 피하고 좋은 땅을 찾자는 것인데, 욕심이 동하면 생기가 숨는 법이라, 일반적으로는 흉지(凶地)를 피하는 방법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지하수맥(地下水脈)을 피하는 일은 가장 좋은 피흉(避凶)의 예가 될 듯하다. 지하수는 지표로부터 끊임 없이 물을 공급받기 위하여 계속적인 파괴작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수맥 위에 건물을 세우면 벽이 갈라지고 나무나 풀도 잘 자라지를 못한다. 철근 콘크리트가 금이 갈 정도의 힘이니 그 위에 사람이 집을 짓고 산다면 그 사람이 견디어 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산소를 그 위에 모시게 되면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에 의하여 그 자식들에게 흉사(凶事)가 끊이지 않게 된다. 예컨대 이런 자리를 피하자는 것이 풍수정혈법(風水定穴法)의 목적인 것이다.
서울의 경우는 음택을 운위하기가 결코 합당한 곳이 못되기 때문에 산소 얘기는 거론치 않기로 한다.
지하수맥을 찾는 일은 풍수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라디에스시(radiesthesie), 영미인(英美人)들의 다우징로드(Dowsing Rod) 같은 기술도 바로 그 지하수맥의 위치 · 깊이 · 흐름 방향 · 수량 등을 알아내는 학문이다.
좌향론(坐向論)은 방위에 관계된 술법으로 가장 어려운 풍수 기술이다. 좌향은 국면(局面) 전반이 일정한 형국으로 좌정되었을 때 전개후폐(前開後閉), 즉 혈의 앞쪽으로 트이고 혈의 뒤쪽으로 기댈 수 있는 선호성(選好性) 방위를 선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공기 중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포착되지 않는 수많은 파장(波長)들이 지나간다. 지자기(地磁氣)에 의한 자력선(磁力線)은 그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원래 0.5 가우스(gauss)의 자력선이 공기 중에 지나는 것이지만, 빌딩이나 기타 인공건조물에 의하여 아파트 등에서는 0.25∼0.26 가우스 밖에는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신체에 이상을 유발시킨다.
또 이것은 사람이 어느 방향에 가장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에 큰 차이가 생긴다. 철새는 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력선을 감지하여 갈 길을 찾는다는 것이 실험 결과 밝혀져 있다.
아직 확연한 설명을 할 수는 없으나 인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이 밝혀져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태양풍(太陽風)이라든가 우주선(宇宙線) · 복사선(輻射線) 등 수 많은, 우리가 아직 해명하지 못하는 파장들이 풍수좌향론에서는 상당 부분 이미 감지되어 있으리라고 믿는다.
흔히 한양은 고려 때부터 이씨득국설(李氏得國說)이 전해져 왔다고 말해진다. 태조 이성계의 개국에 관한 설화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운관(書雲觀) 구장(舊藏)의 비기(秘記) 중 하나인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라는 것과 이인(異人)이 지리산 암석 중에서 얻어서 태조께 바쳤다는 『석실비기(石室秘記)』가 꼽힐 수 있을 것이다.
『구변진단지도』는 진단(震檀) 조선의 도국(圖局)이 아홉번 변한다는, 즉 조선의 왕조 변혁(立國 建都)이 9회에 이른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건목득자(建木得子)’의 설이 있다는 것이다. 건목득자는 곧 이자(李字)의 파획(破劃)으로 혹은 십팔자(十八字)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이성인(李姓人)이 구변도(九變圖) 중의 1인이 되어 입국(立國)하겠다는 참설이다. 한편 『석실비기』의 내용도 ‘木子更正三韓’으로 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들은 풍수가 아니라 도참(圖讖)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실(史實) 또한 전혀 믿을 바가 못되어 이 정도로 그치고자 한다. 다만 이것이 지명(地名)에 남아 있는 사실은 지적해 둔다.
즉 번동(樊洞)은 원래 고양군(高陽郡) 숭인면(崇仁面) 번리(樊里)였다가 서울로 편입되어 현재 강북구에 속해 있는 동이다.
번리는 본래 벌리(伐里)라 했는데 고려 공양왕 때 이성계를 상징하는 오얏(李)나무를 심게 하고, 한창 자랄 때 오얏나무를 자르게 함으로써 이씨의 정(精)을 끊게 하였다. 이곳에 심었던 오얏나무를 베게 하였다 하여 벌이리(伐李里)라 하다가 벌리로 줄여진 것이 음전(音轉)에 의하여 번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의 영천(靈泉) 부근을 무악동(毋岳洞)이라 하는데 무학대사(無學大師)와 음이 같으므로 무학현(無學峴)이라 하게 되었다.
무학대사가 서울에 도읍을 정하려고 왕십리에 이르렀을 때 한 농부가 소를 부리면서 힐책하는 소리가 ‘이 놈의 소가 미련하기를 무학(無學)과 같은 놈이로구나’하는 소리에 놀라 물으니. 농부는 ‘여기에서 10리만 가면 도읍지가 있는데 무학이 되돌아가려 하니 하는 말이다’라는 말을 듣고, 지금의 서울을 도읍지로 정하였고 여기에서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 외에도 지명에 관계되는 풍수설화를 몇가지 더 언급하기로 한다. 문방사우(文房四友)라 불리우는 지(紙) · 필(筆) · 묵(墨) · 연(硯)은 문필(文筆)에서 존대받는 한편 풍수지명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서울 중랑구의 묵동(墨洞) · 연촌동(硯村洞) · 필암산(筆巖山-지금의 불암산)은 이들이 서로 지세를 비보(裨補)하고 있는 지명이다.
또 중구에도 필동(筆洞) · 묵정동(墨井洞) · 주자동[鑄字洞-지(紙)에 해당됨] 등이 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풍수상 현무(玄武)가 북쪽이므로 북쪽에 있는 지역에 이에 관계되는 지명을 붙인 경우가 있는데 이는 혼동하기가 쉽다. 현(玄)은 검다는 뜻으로 이에 준하는 묵자(墨字)를 붙이는 것이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뒷산에 있는 응봉(鷹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말로 매봉이라 하는 응봉은 사나운 매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기상에는 난폭한 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육식을 하는 매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짐승잡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백정(白丁)을 옮겨 살게 하는 것이었다.
백정들을 이 곳 성 밖으로 강제 이주시켜 난폭한 기를 압승(壓勝)케 함으로써 왕궁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백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공자(孔子)를 모시는 성균관 가까운 곳에 백정이 많이 모이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되지 못한다 하여 백정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였으며, 대신 육고기를 산제(山祭)에 올려 매를 달랬다고 한다.
한편 다음과 같은 설화는 풍수상 비보(裨補)의 방법을 알려준다.
「한양에 외성(外城)을 쌓으려고 하였으나 둘레의 원근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던 중인데 하루 밤에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쪽은 눈이 쌓이면서 안쪽은 곧 사라지는 것이었다.
태조가 이상하게 여겨서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도록 명하였는데 곧 지금의 성 모양이다. 비록 산세를 따라서 성을 쌓은 것이나 정동방과 서남쪽이 낮고 허하다.
또 성 위에 작은 담을 쌓지 않았고 해자도 파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임진년(壬辰年) 병자년(丙子年)의 두 번 난리 때에 모두 지켜내지 못하였다.[註]」
곧 풍수에서 동쪽(震方)은 목(木)인데 이씨의 서울이므로 양목상쟁(兩木相爭)에 해당되고 서남쪽(坤方)은 오행상(五行上) 토(土)에 해당되는데 목극토(木克土)이므로 역시 상극(相克)이 된다.
그래서 그 두 방향의 허약(虛弱)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중환(李重煥)은 비보의 방법으로 높은 누대를 짓고 그 앞에 깊은 호(濠)를 파 두었어야 했다고 하였다.
한양의 풍수지리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은 불에 관한 것일 것이다. 여러 가지 풍수상의 이유를 말하지만 그 중 관악산이 화성(火星)이라는 설이 제일 설득력이 있다.
이것을 압승하기 위하여 숭례문(남대문) 밖과 모화관(慕華館 독립문 북쪽 언덕) 앞에 풍수지[風水池(못)]을 파두었다고 한다.
박제형(朴齊炯)의 『근세조선정감(近世朝鮮政鑑)』에는 해태 얘기가 나온다. 즉 한양의 조산(朝山)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시흥(始興) 삼성산(三聖山)이 형화체(形火體)이기 때문에 이 산이 맞보이는 곳에 해태를 건조하여 이를 압승코자 하였다는 것이다.
또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도 그 방향의 허(虛)함을 메우기 위하여 오늘의 서울운동장 부근에 가산(假山)을 쌓는 한편 문의 이름에 내룡(來龍)을 상징하는 ‘지(之)’자를 삽입, 풍수적 허를 메우려 했다는 설화이다.
가산의 경우는 합리적 배려의 흔적도 보인다. 동대문 인근이 청계천이기 때문에 이 개천을 준설하여 그 긁어낸 진흙을 쌓아두는 핑계 구실을 이 가산이 맡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 - http://blog.naver.com/jbh0127/110015116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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