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이기론)

[스크랩] 인간을 위한 명당

장안봉(微山) 2013. 3. 24. 21:55

인간에 따라 명당이 될 수도 아닐 수도

무엇을 ‘위한다’는 것은 그 무엇이 목적 그 자체가 된다는 말이다. 가령 조상을 위한 제사, 자식을 위한 사랑, 국민을 위한 봉사, 국가를 위한 희생 등의 표현에서 조상, 자식, 국민, 국가 등은 제사나 사랑, 봉사, 희생 등의 수단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위한 명당’은 ‘인간 또는 인간살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수단으로써 명당’ 정도로 풀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시선은 풍수로 옮아간다. 명당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왜 중요한지 알진 못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명당하면 곧 풍수, 풍수하면 명당’이라는 식의 선입견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 지식체계로서 풍수를 정리한 수많은 종류의 풍수서(地家書, 地理書)를 보더라도 그 주된 내용이 바로 명당(또는 혈)과 관련된 다양한 방법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풍수에 대한 일반의 선입견을 그저 제쳐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명당은 인간 삶을 가능케 하는 수단 중 하나

풍수서마다 개념을 달리하여 용론(龍論)-혈론(穴論)-사론(砂論)-수론(水論)-방위론(方位論) 또는 간룡법(看龍法)-장풍법(藏風法)-득수법(得水法)-정혈법(定穴法)-좌향론(坐向論), 형세론(形勢論)-이기론(理氣論), 형국론(形局論), 비보론(裨補論) 등 다양하지만, 결국 그 이론들이라는 것은 흔히 명당이라고 불리는 입지를 찾고 그 위에 인위적 시설물(도시, 촌락, 주택, 묏자리 등)을 배치시키기 위한 산, 물, 방위와 관련된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우리의 삶터가 되어 온 도시나 촌락의 입지적 특성을 말할 때 ‘뒤에는 산을 등지고 앞에는 물을 면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이나 ‘남향집에 동향대문’ 식의 방위 등과 관련된 조건을 조금은 어색하고 낯 설은 표현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입장에서 풍수에 접근하는 것을 ‘명당이라는 구체적 입지점을 찾고자 하는 풍수’, 즉 ‘입지론으로서 풍수’라고 구분한다. 말하자면 ‘입지론으로서의 풍수’는 인간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으로써 명당 찾기와 관련된 풍수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입지론으로서의 풍수’를 현대 입지론적 개념에 따라 순차적인 과정으로 재정리하면, ‘입지선정의 원리(看龍法-藏風法-得水法-定穴法)’와 그렇게 선택된 입지점에 구체적인 ‘시설물을 배치하는 기준(坐向論)’, 그리고 명당 주위의 산천지세를 개관하거나(形局論) 부족한 여건을 인위적으로 보충하는 이론(裨補論)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풍수 입지론적 측면에서 찾아진 장소는 인간의 사용목적과 관련해 충분히 합리적 측면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조선 초 국가 수도 입지를 정하는 데 있어서 풍수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풍수 입지론은 우리의 자연환경조건에 대한 적응과정의 산물(경험적 법칙), 지리적 지식, 환경론 등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백안시, 안쪽으로 깊이 스며든 풍수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찾아진 입지, 즉 명당이 인간의 생물학적, 사회적 욕구와 관련해 의미 있는 환경적 조건을 갖춘 땅이라는 입장에서 저만치 한걸음 나아갔을 때 발생한다.

역시 명당에 대해서도 인간의 욕심이 발동했다고 밖에! 인간을 위한 명당은 말 그대로 인간 삶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인데, 어느 순간 그것은 인간살이를 결정한다는 식의 결정론적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명당은 인간 삶이라는 결과를 결정짓는 원인으로써, 결국 명당(땅)과 인간간의 관계는 인과론적으로 설정되고 만다.

당연히 인간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고의 명당, 남들이 쉽게 알아보거나 차지하지 못하는 명당을 찾아야 하는 것이 삼척동자도 다 생각할 수 있는 사실이 된 것이다.

그를 위해 보다 많은 풍수적 식견과 경험을 가진 명풍수사(지사, 지관)를 구하거나, 그럴 여력이 없거나 못미더우면 평생의 업으로 풍수를 공부해 나가거나, 그것도 안 되면 이미 명당이라 소문난 남의 땅(묏자리)을 빼앗거나 기생하는 일 등이 현재의 자기 삶이나 앞으로 그 소중한 후손들을 위한 일생일대의 의무 아닌 의무가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현재에도 ‘풍수하면 명당, 명당하면 풍수’를 떠올리면서 무언가 인간사에 영향을 미칠 어떤 절대적 힘을 가진 땅 즉, 절대적 명당(인테리어 풍수를 포함하여)이 있지 않을까 하여 은근히 걱정도 하고 욕심도 내고, 심지어 기대도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겉으로는 이미 미신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무지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 정도로 싸늘한 시선을 보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풍수가 더욱 안쪽으로 숨어들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안에 내면화된 일종의 종교적 신념처럼.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인간을 위한 명당. 말 그대로 명당은 그저 인간을 그 최고의 목적에 두는 수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명당결정론, 풍수결정론(풍수환원주의)이라 할 만큼 명당(땅)이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신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앞서 다양한 개념들로 명당 찾기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수많은 풍수서들의 말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당 찾기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쉽게 놓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일종의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말미의 요점은, 수단으로써의 명당은 그와 관련된 인간에 따라 명당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명당을 찾기 위해 또 명당이 되기 위해서는 명당, 즉 땅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더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선을 쌓는 인간만이 풍수를 통해 경사로움이 있고, 그렇지 않을진대 반드시 재앙이 따를 뿐이다.

일순간 명당과 인간간의 관계에서 명당이 수단이 아닌 인간이 수단이 돼버리는 역전. 결국 명당(땅)과 인간은 서로 순환적 관계에 얽혀 있는 동기간(同氣間) 관계임을 전제할 때 ‘인간을 위한 명당’, 또는 ‘명당의 수단화’도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명당은 지금까지 거기 있어왔고, 현재도 거기 있고, 앞으로도 항상 거기 있을 것이다. 변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결국 어디에서 명당을 찾을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 아닌가 한다.
[권선정의 풍수스케치]

출처 : 서경대 경영대학원 풍수지리전공[석사]
글쓴이 : 金賢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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