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98) ‘육군 제2군단창설기념’ 표지석

장안봉(微山) 2019. 7. 25. 18:51
(98) ‘육군 제2군단창설기념’ 표지석
번호101작성일2016.10.11조회수622
작성자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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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주 함창의 ‘육군 제2군단창설기념’ 표지석
    소재지: 상주시 함창읍 함창중앙로 85

    작약산(芍藥山:770m) 정기가 어린 가야 벌 첫 마루에 자리한 함창중·고등학교는 상주 함창 교육의 요람(搖籃)으로, 중학교(개교:1948. 2. 5)는 11,729명(2016년)의 졸업생을, 고등학교(개교:1973. 7.19)는 9,269명(2016년)을 배출하였으며, 건학이념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 이곳에서 1950. 7.15 역사적인 육군 제2군단이 창설되었는데, 교사(校舍)앞 화단에는 ‘쌍룡군단창설기념표지석’이 있다.

    우리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 시키고, 현재의 남북 분단체제를 고착 시킨 6.25 한국전쟁은 공식적으로 그 전쟁기간이 북한군이 불법 남침한 1950년6월25월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1953년7월27일까지 이다.
    한국은 1945. 8.15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을 맞이하자, 군사적인 편의에 따라 북위 38° 선을 경계로 미․소에 의해 남북으로 분할 통치하게 되었다.
    이후 북한은 남침을 지속적으로 준비하여 오다가 국외적으로 1949.10 중국대륙이 공산화 되고, 이어 1949. 6 남한에서 미군철수가 완료되고, 더욱이 1950. 1 극동방어선에서 한반도와 타이완을 제외 한다는 미 국무장관의 성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6.25 새벽 38선 전역에서 불법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당시 남한병력이야 10만이나 되었지만 장비는 빈약하기가 이를 데 없어 초전부터 무너지고 사분오열하기 시작하여, 6.27에 북한군 전차부대 일부가 서울에 진입을 하게 되었고, 더 다급해지자 6.28. 03시에 한강인도교를 폭파하기에 이른다. 맥아더 장군의 보고를 받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6.30 지상군 투입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전세는 계속 불리하게만 이어지자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해체하고, 그 기간요원을 모체로 하여 한국군 제1군단(군단장: 김홍일 소장)을 1950. 7. 5 평택에서 창설하게 된다. 치밀한 계획 하에 남침을 감행한 것이라 오합지졸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후퇴에 후퇴를 거듭 하였다.

    전선조정과 국군의 재편성(국방연구소,한국전쟁〈상〉1995년) 자료에 「......사단의 재건 및 관구의 신설노력과 지연전의 전개에 따라 중동부의 제6·8사단이 이화령-조령-죽령 선으로 물러나자 이들 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가 더욱 어렵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적(敵) 제2군단의 주력이 지향됨에 따라 또 다른 군단사령부의 필요성이 부각되어 급히, 7.15 상주 함창의 함창중학교에서 제2군단을 창설하고, 제6·8사단을 배속시키고....라 적고 있는데, 군단장에 육본참모부장 김백일 준장을 임명하였다. 이후 제1군단 부군단장인 유재흥 준장을 임명하고, 제1군단에 제1·3사단을, 제2군단에 제6·8사단을 배속하고, 수도 사단을 예비로 하는 지휘체제를 정리한 후 개편을 단행하였다.

    7. 15 창설 된 육군 제2군단(군단장: 김백일 준장)은 곧바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돼 6.25한국전쟁사에 그 유명한 다부동과 영천지구 전투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군 2군단을 궤멸시키는 등 반격작전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는데 많은 큰 공을 세웠다. 제2군단은 1950. 9.15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전세가 반전되자, 2군단 예하 7사단 8연대가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하는 큰 전공을 세웠으나, 중공군의 대규모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어 1951. 1.10 대전에서 일시 해체되는 아픔을 겪은 뒤 '100 야전 전투사령부'로 남부지역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지리산 작전을 끝낸 백전사의 기간요원은 중부전선으로 이동하여, 1952. 4. 5 해체된 2군단을 춘천시에서 재창설하게 된다.

    이러한 처음 제2군단 창설을 연유로 함창중․고등학교와 육군 제2군단은 2002. 7.15 자매결연을 맺고, ‘Ⅱ창설기념표지석’을 설치하였다. 그 내용은 「1950년 6월25일 북괴의 기습 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던 동년 7월15일 육군쌍룡군단이 이곳 함창중학교에서......쌍룡부대 전 장병은 반세기가 넘는 부대창설의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 조국과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으로서 조국통일의 선봉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창설52주년을 맞이하여 부대창설지인 이곳에 기념 표지석을 건립한다. 2002년7월15일 육군쌍룡부대 장병 일동」이다. 표지석 옆에 기념식수도 하였는데 식수명(植樹名)은 용송(龍松)이다.

    그 끈끈한 정을 유지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안보의식 함양과 체력을 다지기 위하여, 함창중․고등학교에서는 매년 7월에 고등학교 제1학년 전원을 군단 특공연대에 병영체험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2010년은 육군 제2단이 창설된 지 耳順(6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 이기에 창설기념일인 7월15일 함창중․고등학교 교정에서 군단장이 참석한 가운데에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하였다. 많은 상주인들이 호국의 고장 시민답게 6.25 전쟁 최대의 전승지 화령전투(1950. 7.17~21)와 역사적인 육군 제2군단 창설지가 내 고장 상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더 한층 국가안보와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