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천대(擎天臺)와 무우정(舞雩亭)
소재지: 상주시 사벌면 경천로 652
백두대간 ‘밤원숭덕지맥’의 끝자락 옥주봉(玉柱峰159m)기슭 낙동강 가에 위치한 「경천대」는 예부터 낙동강 1,300리 물길 중에서 아름답기로 첫 번째라 한다. 강돌이 듬성듬성 박힌 역암(礫巖)으로 이루어진 바위와 수백 년의 나이를 자랑하는 송림이 우거져 있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혹자는 부여 낙화암, 충주 탄금대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절경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하며, 안동의 하회마을과 예천의 회룡포와 함께 낙동강의 3회(三回)로 불리는 회상 벌판은 물길이 급히 휘감아 돌면서 은빛 백사장과 절벽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 드디어 낙동강 제1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도처에 개발을 명목으로 본래의 모습이 훼손되거나 없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곳만큼은 아직도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상산지에는 「擎天臺 在州南二十里國士峰之右麓新坪村後峰巒秀偉洞壑幽深遂開雲谷曠區差西北面越數岡三四百弓重重巨岩盤錯蹲踏圍可數百尺高可八九丈頭盤陀而坐可十人箎齋趙緯經盤旋之地有記及題詠 주남 20리 국사봉 우록 신평촌 후에 봉만이 수위하고 동학이 유심하며 운곡이 열리고 서북이 넓게 트였으며 수강을 넘어 삼사백궁허에 거암이 중중이 반선하여 주위가 수백 척이고 높이가 팔 구장이나 되며 위가 평평하여 십여 인이 앉을만하다. 호재 조위경이 반선하던 곳이니 기와 제영이 있다」라 적고 있다.
옛 이름은 자천대(自天臺)였으나, 1636년(丙子年)에 국운이 쇠약하여 병자호란을 당하고, 1637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심양에 볼모로 가게 되었을 때, 호종(扈從)한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1604~1646)선생이 8년 만에 돌아와 낙향한 뒤 이곳 ‘자천대’에 물러나 은거하고 있었다. 봉림대군(鳳林大君)을 도와 북벌의 의지를 다졌으니 이때부터 경천대라 한다. 선생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字)는 영이(詠而), 호(號) 우담(雩潭)·학정(鶴汀)이고, 경사백가(經史百家)에 통달하였고, 특히 역학에 밝았으며, 천문, 지리, 의학, 복서, 음률, 병법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한다.
그리고 봉일정(捧日亭)에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올곧은 충절의 뜻을 세웠는데, 이 후 그 대(臺)는 경천대로 이름하고, 그 정자는 봉일(捧日), 언덕은 미구(薇邱), 원(園)은 율원(栗園), 암석은 난가(欄柯)라고 하여 백년의 부(訃)로 우거하니 풍천에 감정이 능히 한 명구(名區)를 보전 하였다 한다. 귀국한 뒤 봉림대군이 불렀으나 나가지 않으니 화사(畵師)로 하여금 ‘자천대 28경’을 그려 산수병풍을 바치게 했다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 충의공 정기룡(鄭起龍, 1562~1622)이 경천대 남쪽 용마봉(龍馬峰)아래 용소(龍沼)에서 용마(龍馬) 한 마리를 얻어 훈련시켰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을 굽어보는 절벽에 세워진 「무우정」은 우담선생이 경천대에 터를 닦고, 은거하면서 기우제(祈雨祭) 터 우담(雩潭) 위에 지은 강계연변형(江溪沿邊形) 정자로 충절과 북벌의지를 다지며 공부 하던 곳이라 전한다.
상산지에 「舞雩亭 在洛江上自天臺下別坐蔡得沂所建金淸陰尙憲崔遲川鳴吉李澤堂植皆有記中廢有遺址今 上戊辰春牧使李侯埉重創募人守護有記詩 낙강상 자천대하에 별제 채득기가 세우고, 청음 김상헌 지천 최명길 택당 이식이 기를 썼으며, 중간에 폐하고 유지만 있었는데, 1748년에 목사 이협이 중창하고, 사람을 두어 수호하게 하며 기와 시를 썼다」라 적고 있네요. 1748년 목사 이협이 중건했으나 허물어진 것을 1948년에 크게 보수하고, 2005년에 서까래를 교체하고 번와(翻瓦)를 했다.
정자의 이름은 우담선생이 공부뿐만 아니라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악공과 무희를 동원하여 기우제를 지내 해갈이 되었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라 알려지고 있다. 한글가사 봉산곡(鳳山曲)을 낳은 창작 공간으로, 이 곡(曲)은 당시 경천대를 떠날 때 그가 읊은 한글가사이다. 이 노래는 일명 천대별곡(天臺別曲)이라고도 하는데, 101구로 3·4조 또는 4·4조로 된 충신연주(忠臣戀主)의 노래다.
봉산곡은 「가노라 옥주봉(玉柱峯)아, 잇거라 경천대(擎天臺)야, 요양만리(遼陽萬里) 길이, 머다야 얼마 멀며, 북관일주년(北関一周年)이 오래다 하랴마는.....」이다.
이곳은 많은 선비들이 시문을 남기기도 한 곳으로 낙강시회(洛江詩會)의 중심이 되어 문향(文鄕)상주를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이곳에 오르면 맑은 바람이 늘 스치고 있어 땀을 가뿐하게 날려버리는 이 정(亭)은 전면 3칸, 측면 1.5칸의 5량가(五樑架),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으로 사방이 모두 트이게 마루를 놓았네요. 정면에 ‘舞雩亭’이라는 현판을 달고, 내부에는 택당 이식의 무우정기(舞雩亭記), 청음 김상헌의 우담신정기(雩潭新亭記), 방후손(傍後孫) 광식(光植)의 경천대감음(擎天臺感吟)의 편액이 걸려 있고, 정자 옆의 봉우리 암반사이에「擎天臺 大明天地 崇禎月日」이란 1704년에 세운 비(碑)와 말구유 등이 있지요.
198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경천대 일원에 많은 투자를 하여, 옥주봉 정상 3층 전망대는 사방 60여 명산을 조망할 수 있으며, 2007년에는 경천대 서쪽에 상주박물관을 열었으며, 이후 자전거박물관, 국제승마장, 상주보, 자전거국토종주길,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수상레포츠, 오토캠핑촌 등 많은 즐길 거리와 체험공간이 들어서면서 최근 관광객이 날로 증가하는 상주의 자랑스러운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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