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63)상주 용포의 충열각(忠烈閣

장안봉(微山) 2019. 7. 25. 17:52
63)상주 용포의 충열각(忠烈閣)입니다.
번호66작성일2016.03.16조회수511
작성자김광희
첨부파일파일받기 크기변환_20160310.용포충열각.jpg
  • 상주 용포의 충열각(忠烈閣)입니다.

    백두대간「여남지맥」의 수선산에서 돌티를 지나 상주의 진산 갑장산(甲長山:806m)을 빗었는데 이 산에서 동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 아래 전형적인 아담한 촌락이 있으니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용담)이다.

    이 마을 어귀에 고목의 느티나무와 함께 한 칸의 맞배기와지붕이 있으니
    「충열각忠烈閣」으로 낙동면 수선로 767입니다.
    도로 가에 높게 쌓은 석축 위에 시멘트 블록으로 방형으로 담장을 쌓았고, 남향으로 단칸 규모의 각(閣)을 세웠는데, 건물은 기단 없이 원형주좌를 가진 가공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올렸고, 앞면에만 살대를 세웠는데 세월의 무게에 무너지고 있네요.
    내부 뒤쪽에는 가느다란 원기둥을 세워(忠臣通政大夫兵曹參議李彦眞之門崇禎紀元後四癸丑三月命施)’라 쓴 정려판(旌閭板)이 걸려 있으며, 가구는 간략한 3량가(三樑家)이고, 골기와를 올려 단아하고 엄숙한 매무새인데 이제 많이 낡아 있지요.

    이언진(?~1637)은 조선중기 무신으로 慶州人이고, 號는 용담(龍潭)으로, 父는 백(舶)이요, 母는 안동권씨이다.
    公은 관(官)의 수문장(守門將)으로 1636년 병자호란시 창의하여, 쌍령전투(현 경기도 광주: 1637. 1)에서 순국(殉國)하였다 한다. 그 후 사림(士林)에서 公의 충절을 조정에 알려 1853년 병조참의로 증직되고, 이곳에 충열각을 세운 것이다.

    상산지 충절 편에는「경주인이며 관 수문장이었다. 병자란 때 창의하여 쌍령에서 대적하니 세부득하여 아군이 패산하게 되자 그는 높이서서 활을 쏘아 토적하며 매적하고 굴함이 없이 끝까지 싸우다가 순국하니 호적도 감탄하여 이 사람이야말로 동국에 진남자라 극찬하였다. 장사 때 한줄기의 백기가 혼백을 따라 3일간이나 뻗쳐 있었다. 사림에서 상천하여 병조참의가 증직되었고 자손과 향인들이 용담리에 충열각을 세우고 춘추로 정일에 향사하며 자손이 그의 향리에 거주하고 있다. 李彦眞慶州人官守門將丙子亂倡義赴雙嶺軍皆逃散彦眞屹立發矢罵賊不屈竟死之賊相謂曰此眞東國偉男子葬時一段白氣隨魂長亘三日不滅士林上言 贈兵曹參議子孫立忠烈閣于龍潭里春秋丁享子孫因居其里」라 적고 있어 이는 상주의 자랑입니다.

    충신각 맞은편 산록에 公의 형제분을 모시고 있는 충의사(忠毅祠: 용포리596)와 그 옆에 3칸 팔작기와지붕의 추모재(追慕齋)가 1853년 동시에 창건되어 있습니다.
    용포리 용담마을은 경주이씨 집성촌으로 "이암공파" 이관(李琯)의 후손인 公의 형님 이언홍(李彦弘)公이 입향조로서, 임난 후 이곳에 정착하여 “彦弘公派”를 형성하여 현재도 50여호가 세거하고 있습니다.

    용담마을의 유래는 이언진 장군의 號(호)를 따서 “용담”이라 했다고 하는데, 이 보다 앞서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용담사(龍潭寺)에서 머물다가 간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과용담사(過龍潭寺) 시(詩)에 이미 용담이란 명칭이 있어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합니다(참고: 상산지. 이락지천 낙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