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 양촌동 강원 효자각(康源 孝子閣)
상주시내에서 남쪽으로 상주캠프스를 지나 국도3호 4차선 도로를 이용 하거나 또는 옛길로 상주남부초등학교 옆 4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청리 방향으로 진행 하다가 양촌마을 표지판을 보고 4차선 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우회전하여 갑장산을 보며 마을로 들어서면 전형적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곳이 효자(孝子) 강원(康源)의 고향인 양촌동 터골 마을 입니다. 마을 왼편에 오뚝하고도 당당히 서 있는 아담한 한 동의 각(閣)이 보입니다.
이 閣(양촌동(터골)669-1)은 1755년에 세운 것으로,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으로 맞배기와지붕이고, 옆에는 풍판(風板)을 드리웠는데, 閣안에는 "康孝子遺墟碑"라 음각 되어 있으며, 기단위에 세워진 비(碑)는 높이 110cm, 폭50cm, 두께15cm이다. 원지헌(遠志軒) 이달중(李達中)이 짓고, 강백명(姜百明)이 썬 "강효자유허비각기"와 이경유(李敬儒)가 찬(撰)한 "비각 상량문"이 지나는 보는 이의 발걸음을 잡아두네요.
효자 원(源)은 1656년 1월14일에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6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났으며 10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여러 형제들과 같이 예(禮)를 다 하였으며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상산지 효행 편에는「康源應哲之孫家貧事母至孝曲備甘旨母病斷指事聞贈戶曺佐郞」이라 적고 있지요. 임난시 상주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남계 강응철(南溪 康應哲 1562~1635)은 그의 할아버지로 찰방(察訪)을 지내셨으며, 연악서원에 제향 되었고, 남계집(南溪集)이 전한다.
효자 강원은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는데,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낙동강에 얼음 구멍을 뚫고 낚시를 넣었더니 잉어가 잡혀 드렸다고도 하는데, 마침내 어머니가 병환에 드시니 백약(百藥)이 무효라 산신에게 자신이 어머니의 병환을 대신 하도록 기도하였다고 한다. 1년이 넘도록 대소변을 받아 내는 간호를 하였으나 끝내 위급함에 이르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어머니 입속에 흘러 넣어 다시 소생되어 5일 동안 살아 계시고 또다시 운명직전에 또 다시 손가락을 잘라 피를 어머니에게 드렸으나 효험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3년간 십여리(十餘里) 묘소에서 시묘(侍墓)를 하였다한다. 이때 밤마다 호랑이가 찾아와 그를 보호 하였다고도 한다.
그 후 상주 유림들이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리자 1753년(영조29년)에 승의랑 호조좌랑의 벼슬을 증직하였으며, 1755년 정려를 받고 자손과 향당(鄕黨)에서 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하며, 이 후 1817년(순조17년)에 비각을 보수하였고, 또 1984년에도 보수를 하여 그의 효성을 기리고자 주민과 자손들은 언제나 정성을 모으고 있는데, 재령강씨 문중에는 효행을 실천한 명성이 높은 분으로 강용정(康用正)과 강세해(康世楷) 두 분이 더 계신다고 하니 효자집안인가 보다. 효자각 너머로 저 멀리 갑장산 정상이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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