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㊼ 남재사(南齋舍)는 4성씨(郭·權·曺·蔡)

장안봉(微山) 2019. 7. 25. 17:25
㊼ 남재사(南齋舍)는 4성씨(郭·權·曺·蔡)
번호50작성일2015.11.17조회수1047
작성자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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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재사(南齋舍)는
    4성씨((姓氏:郭·權·曺·蔡)의 아름다운 화합의 장(場)!!! ·

    백두대간 「밤원숭덕지맥」이 공검의 국사봉을 빗고, 예주고개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큰 산을 이루니, 고녕가야국(古寧伽倻國)의 진산으로 알려지고 있는 숭덕산(崇德山:231m)이다.
    이 산의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자락아래 고풍이 넘치는 목조와가 1동이 자리하고 있는데, 지역민들은 이안의 남(南)에 있다하여「남재사」라 이름하고, 현판은 영모재(永慕齋)와 추원루(追遠樓)가 걸려있지요.

    건물의 모양과 그 성격이 특이한 이 재(齋)는 상주시 공검면 숭덕산길 93-31에 소재하고, 창건 년대가 1720년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안동권씨 검교공파 함창 입향조인 군사(郡事) 권회(權恢)公이 여기(율곡리)에 처음 유택을 정한 후, 전후좌우의 기슭에 대(代)를 이어서 장사를 지낸 사람들은 군사(郡事)의 직계파와 같은 외파(外派)인 인천(仁川)채(蔡)씨, 창녕(昌寧)조(曺)씨, 청주(淸州)곽(郭)씨 후손이 조상을 잘 받들기 위해 함께 지은 재실이다.

    품격이 돋보이는 재실은 다소 낡아 보이지만 우리지역에서는 흔치않은 건물로서 영모재와 솟을삼문은 나란히 二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담이 없는 터진 공간이다.
    전면은 규모가 5칸이며 측면은 2칸으로 규모가 제법 큰 재사로 보인다. 중앙의 3칸은 마루가 깔려 있으며, 양쪽의 끝에는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로 아래쪽에서 난방을 위해 불을 지필 수 있는 구조이다.
    전면에는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앞면과 좌우면에는 쪽마루에 난간을 세워 누각형으로 꾸며 건물이 길게 보이지만 아주 독특한 구조로 지어져 있다.
    특히 일반 재사에서는 보기 힘든 기둥 상부에 익공을 볼 수 있는데, 연꽃모양으로 조각되어 그 기법에 화려함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창건 내력은 본래는 동계(桐溪) 권달수(權達手)선생의 묘 아래에 재사가 있었는데 그 흥폐가 과연 어느 시기에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어, 신묘년(1711년)에 여러 어른들이 합의하여 후일 묘를 어지럽히는 폐단을 막을 규례를 세우고, 또 각 문중에서 곡물을 모아 해마다 이식(利息)을 늘려서 약간의 토지를 마련하고, 몇 칸의 기와집을 짓기로 함에 경자년(1720년) 봄에 시작하여 가을에 공사를 끝냈다고 전하고 있다.
    당초는 3칸이었으나 재사에서 회합할 때 방이 협소하여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음을 병폐로 여겨, 재사 앞에 문루(門樓)를 상하 2층으로 하여 무신년(1728년)에 완공하여, 두 편액을 재(齋)와 루(樓)에 각각 걸고, 재사는 ‘영모’라 하고, 문루는 ‘추원’이라 했다고 한다.

    이 재실의 지근(至近)거리에는 권회(權恢)公과 증손까지의 묘소들이, 뒤쪽에는 난재(懶齋) 채수(蔡壽)의 묘소를 비롯하여, 오른쪽 위에는 조계권(曺繼權)· 그 아래에 곽존중(郭存中)· 왼쪽 아래에는 졸재(拙齋) 채소권(蔡紹權)의 묘소가 자리하고, 재실 입구에는 상주 최고(最古)의 난재선생 신도비가 서 있는데, 최근 풍수지리연구가들이 간산(看山)차 이 지역을 많이 찾기도 한다.

    지금은 3개(郭,權,蔡) 문중이 일종의 계(契)를 형성하여 조상을 함께 추모하고 있는데, 취회(聚會)는 매년 음력 동짓달 10일이며, 재사장(齋舍長) 아래 각 성씨마다 한 사람의 유사가 있다. 성(姓)이 다른 문중이 끈끈한 혈육의 정을 지니고, 재실을 함께 관리하고 운영하는 아름다운 화합의 모습이 아주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는데, 시속에 따라 조상숭배의 정신이 엷어지는 것과 함께 부러진 문살과 허물어지는 기왓장이 아쉽기만 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