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㊾ 그 원류는 동일(同一), 동원亭

장안봉(微山) 2019. 7. 25. 17:28
㊾ 그 원류는 동일(同一), 동원亭
번호52작성일2015.12.02조회수775
작성자김광희
첨부파일파일받기 크기변환_20151120동원정2.jpg
  • 그 원류는 동일(同一)하다!!! 동원정(同源亭)

    상주시 은척면의 「동원정 同源亭」입니다. 두곡2길 84-7(두곡271)에 소재 합니다.
    백두대간 "갈령작약지맥"이 칠봉산을 지나 뭉어리재에서 잠시 쉬었다가 작약산을 들어올리기 전 용산에서 동으로 길게 내리 뻗은 산줄기로 텃골 마을 바로 옆 입니다.

    亭의 뒤편은 고송의 자태가 그 연륜을 말하고 있는데, 팔작와가 지붕으로 구조가 조금은 특이 합니다. 기단 위에는 사각 기둥으로 세웠으며 마루위에는 원기둥입니다. 후면을 제외한 3면으로는 툇마루를 둘러 마치 누마루처럼 시설하였으며 전면4칸, 측면 2칸인데 亭의 일반적인 구조인 "중당협실형"의 반대입니다.
    가운데가 방이고, 전면과 좌우에는 툇마루가 깔려 있지요, 전면과 측면이 높아 정자로 출입할 수 있는 계단이 앞이 아니라 뒤에 있는 것이 이 정자의 특징입니다.
    정자의 툇마루 안쪽 가운데 온돌방문 위에 걸려 있는 현판이 “同源亭”이라 걸려있네요.

    함창현지에는「在郡西二十五里杜谷北崖柳光源同堂六從兄弟設義稧養蒙造士之方 英祖壬午乃營建書塾扁之曰同源」이라 적고 있지요.
    정자의 명(名)은 빼어난 수석(水石)과 초수(草樹)의 성대함을 가지고 그것으로 편액을 삼기도 하고, 또 옛 성현을 모방하고, 또는 앞 시대의 뛰어난 분들을 본받아서 멀리 가게 하려는 생각으로 기록하여, 속되지 않는 이름을 높게 걸어 놓고 그곳에서 마음을 닦기도 하며, 즐기려는 것에 마음을 두어 거기에 亭을 붙여서 지은 것도 많은데, 동원정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각각 그 성을 부모에게서 받아 기(氣)로 형태가 만들어지고, 세대가 펼쳐져 대대로 이어지게 된다는 뜻으로, 한 형제간도 긴 세월을 지나면서 서로 온갖 파(派)라고 하며 분산되지만 또한 그 처음으로 돌아가면 그 원류는 동일(同一)하다는 말에서 그 이름을 정(定)한 것이라 전한다.

    1746년에 동원정 류광원(同源亭 柳光源:1706~1764)이 세웠다고 하는데, 동원정公은 어버이 섬김이 지극 하였다고 하며, 아래에 學源, 덕원이 있어 3형제라고 합니다. 이 亭 아래에 효열비(孝烈碑)가 맛배지붕의 비각 속에 서 있는데, 이는 학원公의 子인 사인(士人) 추(樞)의 처(妻)로 夫君이 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졸(夭卒)하니, 그는 90일이 되는 날 절명사(絶命詞) 일절(一絶)을 화하(花霞)로 써서 유서로 남기고 자결, 종부(從夫)하니 사림(士林)에서 그 열행을 칭송하였다 합니다.

    함창현지에도 「李氏 晋州人士人樞之妻拙軒柳祥翼歷典三邑縣監之孫婦親家韓山人牧隱后大山李象靖之從姪女英祖戊寅夫享年二十八夭卒李氏九十日後遺書絶命詞一絶而從夫自決士林稱烈大山李象靖撰遺事立齋鄭宗魯撰碣銘」이라 적고 있는데,

    절명사는 “ 유유창천아 이 설음을 어찌할고 전생에 무삼일로 적악하야 인세간에 남겨두고 이듯 지척 불변을 하는고 이세상 살자니 흉채한 행실과 불측한 일만.... 중략 ... 내팔자 기구하여 한일이 없아오나 과연 군자의 신세 가탄고 슬픈지라 이리 생각건대 엇지 일시나 살아가리요마는 흉안하여 구찬하였거이와 화조나인의 죽음이 군자의 뒤를 쫓으려이 황천후 후생에나 복록을 구원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相靖)이 유사(遺事)를 쓰고, 입재(立齋)정종로(鄭宗魯)가 묘갈명을 썻다고 한다. 지척에 지방문화재기념물 제1호인 4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뽕나무"와 제75호인 500년의 세월을 이겨낸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지방도 32호의 함창~농암간 험로인 뭉어리재 아래로 터널이 뚫려 찾아가기가 한결 수월하다.
    (참고: 상주의 문화재, 웅주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