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㊽ 또 하나의 삼산이수의 명승지

장안봉(微山) 2019. 7. 25. 17:27
㊽ 또 하나의 삼산이수의 명승지...
번호51작성일2015.11.25조회수1356
작성자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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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하나의 삼산이수의 명승지
    함창 금곡 봉황대(鳳凰臺)

    상주에는 중동면 우물리에 세칭 이수(二水: 낙동강, 위강)삼산(三山: 속리산, 일월산, 팔공산)의 명승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 또 한곳의 이수삼산의 승경지가 있으니 함창읍 금곡리(산69-1)의 봉황대(鳳凰臺)이다.

    이 대(臺)는 백두대간 「밤원숭덕지맥」이 오봉산(五峰山:235m)을 지나 영남대로의 지름길인 송현(松峴:128m)으로 내려 앉았다가 금지산을 솟구치기 전에 북동으로 가지를 친 끝자락으로, 봉황이라는 이름값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것이다.
    대개 대(臺)는 산의 높이에 관계없이 그 산의 높은 봉우리를 봉(峰)과 대(臺)로 주로 쓰여 져 왔다. 봉은 주로 산의 정상에 붙여지는 것이며 대(臺)는 봉(峰) 보다는 대부분 높이에서 조금 낮다. 대(臺)를 붙혀 부르는 유명한 곳으로 입석대, 서석대, 비선대, 문장대 등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함창의 봉황대는 높은 산도 아니고 그렇다고 봉우리라 할만큼 높지도 않다. 그러나 이곳이 얼마나 멋지고 장엄한 절경인지 누구나 지나다가 쳐다보면 올라가고픈 충동을 느낀다. 바위 절벽에 鳳凰臺 세자와 다른 암각서가 있고 대(臺)위에는 봉황정(亭)이 있다. 이 정(亭)에 오르는 높은 계단 입구에는 봉황단(鳳凰壇)이라 새겨진 입석이 있지요.

    함창현지에 소개된 내용을 빌리면
    鳳凰臺 - 在郡東十里金谷路傍 高數百尺可坐百餘人層巖削立蒼翠薈蔚串川猪川二水合于下戞雲飛鳳德鳳三山列于前故昔人取李白二水三山之句以名云 其上有井其北有倉庫遺址新羅時近邑田稅田此漕運云.

    鳳凰亭 - 在郡東十里金谷里鳳凰臺上 習讀柳希任愛此山水之明麗風烟之浩蕩甞逍遙於臺上占得壽藏之地於其上故後昆追遠敬慕之義建此亭 晩松全胤錫撰記로 적고 있지요.

    옛 부터 이곳은 곶내와 저천의 두 물이 앞에서 합치고 알운(戞雲: 299.2m 보현지맥의 끝자락), 비봉(飛鳳: 219m 운달지맥의 끝자락), 덕봉(德峰: 139.5m 갈령지맥의 끝자락)의 세산이 앞에 솟아 있는 절경에 있어 이태백(李太白)의 삼산이수시(三山二水詩)구를 따라 대(臺)의 이름으로 했다고 전 한다.
    또한 이곳 산수가 좋아 일찍이 습독(習讀) 류희임(柳希任)이 대(臺) 위에 소요(逍遙)하고 그 위에 수장(壽藏)할 곳을 얻으니 그 연유로 후손들이 추원사모(追遠思慕)하는 뜻으로 1,500년대에 이곳에 봉황정을 세웠다고 한다.
    정자는 시멘트로 만든 방형 일곽(一郭)안에 정면 2칸 · 측면 칸 반에, 소로수장 5량가 팔작 기와지붕으로 동남향이다. 앞면에는 툇마루와 측면에는 쪽마루로 지어졌으며, 내부는 장마루의 마루방으로 꾸몄다.

    만송(晩松) 전윤석(全胤錫)의 기문(記文)에는 「함창고을의 남쪽 십리에 백척이나 되는 암대(巖臺)가 우뚝하게 깍아지른 듯 길가의 언덕위에 서 있으니....... 무릇 봉황은 신조(神鳥)라서 성세(聖世)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으니.... 훌륭한 많은 선비들이 오채(五彩)의 문장을 이루고, 육율(六律)의 시를 잘 지어서 사람 중에 봉황이 되어 조양(朝陽)에서 명성을 날리는 것을 장차 볼 것이리라, 이와 같게 된다면 봉황대 위에 봉황이 노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정자의 이름이 진실로 서로 잘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며, 감히 못난 사람의 견해를 펴서 봉황대 담장벽을 더럽힙니다. 병진년 중추」라 했으며

    채휴징(蔡休徵,1684~1747)의 등봉황대유감(登鳳凰臺有感)이라는 詩도 전 하기도 하는데 정상에는 우물이 있고 그 위쪽에는 습독공의 묘소가 있다. 북쪽에는 옛 창고 터가 있는데 옛날 근처의 전세(田稅)를 이곳에 모아 뱃길로 운반 했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이곳에 옛날에는 애환이 서린 봉황대 나루가 있었으나 금곡교가 놓아지면서 없어지고 말았다.

    정자에서 건너 북동쪽으로 보면 옛날 곶천(영강)물이 간간이 범람하여 왔으나 이곳 봉황대 밑 단애(斷崖)를 받아치고 흘러감으로서 늘 금곡마을은 안전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어지며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은 이안천(저천)과 영강(곶천)의 제방은 “국토종주자전거길”로 변하여 전국의 자전거 애호가들로 늘 붐비고 있으며, 넓은 들판엔 하천변의 질 좋은 충적토(沖積土)의 영향으로 그 명성이 자자한 「자주색 금곡감자」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참고: 상주의 문화재, 웅주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