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루(門樓)가 독특한 옥동서원(玉洞書院)
백두대간이 웅이산에서 황악산으로 내달리기 전 왼쪽으로는 여남지맥을, 오른쪽으로는 지장소맥을 내보내는데 오도재를 지나 석천으로 인하여 더 나아가지 못하고 높이 솟으니 헌수봉이다. 이 산 아래 사액(賜額)서원이 있으니 바로 옥동서원으로 모동면 수봉2길 29 (수봉리 546번지) 이다.
상산지에는 「在牟東白玉峰下肅廟甲午享翼成公黃喜配以忠簡公全湜而舊有翼成公影堂陞阮後以舊址不合修藏移建于其北數百步之地(新增)在州西六十里正廟己酉賜額配享吏曹參判黃孝獻持平黃紐 재모동백옥봉하숙묘갑오향익성공황희배이충간공전식이구유익성공영당승원후이구지불합수장이건우기북수백보지지(신증)재주서육십리정묘기유사액배향이조참판황효헌지평황뉴」라 적고 있는데,
1518년에 예조참판과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황맹헌과 홍문관 수찬 황효헌이 모동면 수봉리 신덕촌에 방촌 황희(黃喜)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독서하던 ‘백화서당’이 그 모태이다. 이후 1580년 영당(影堂)을 건립하여 향사를 일 년에 두 차례 지내왔다. 1714년 사서(沙西) 전식(全湜)을 추가 배향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건 하였으며, 1746년 축옹 황효헌(蓄翁 黃孝獻), 반간 황 뉴(槃澗 黃 紐)를 추가로 배향하여 모두 4현이다. 1789년 "玉洞"으로 賜額되어 선현배향과 교육을 담당하여 왔다. 특히 청백리 명재상인 황희선생(1363~1452년)은 56년의 관직생활 중에 24년을 재상으로 지내셨으며, 그중에서 18년간을 영의정으로 지낸 인물이며, 묘소는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산 1번지에 소재한다.
조선왕조 실록 영의정부사 황희의 졸기에는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서 그대로 치사(致仕)한 황희(黃喜)가 졸(卒)하였다. 황희는 장수현(長水縣) 사람인데, 자(字)는 구부(懼夫)이며, 판강릉부사(判江陵府事) 황군서(黃君瑞)의 아들이다. 출생해서 신기(神氣)가 보통 아이와 달랐는데, 고려(高麗) 말기에 과거(科擧)에 올라서 성균관학관(成均館學官)에 보직(補職)되었다. 우리 태조(太祖)께서 개국(開國)하시매 선발되어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를 겸무하고, 조금 후에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을 맡았다가 사헌감찰(司憲監察)과 우습유(右拾遺)에 전직(轉職)되었는데, 어떤 일로서 경원교수관(慶源敎授官)으로 폄직(貶職)되었다. 태종(太宗)이 사직(社稷)을 안정시키니 다시 습유(拾遺)의 벼슬로써 불러 돌아왔는데, 어떤 일을 말하였다가 파면되었는데, 조금 후에 우보궐(右補闕)에 임명되었으나 또 말로써 임금의 뜻에 거슬려서 파면되었다. 형조(刑曹)·예조(禮曹)·병조(兵曹)·이조(吏曹) 등 여러 조(曹)의 정랑(正郞)을 역임(歷任)하였다...........(중간생략) 졸(卒)한 지 5일 만에 임금이 도승지(都承旨) 강맹경(姜孟卿)을 보내어 의정부(議政府)에 의논하기를, “황희를 세종(世宗)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시키려고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김종서(金宗瑞)· 정분(鄭苯)· 허후(許詡) 등이 아뢰기를, “황희는 수상(首相)이 된 지 20여년 동안에 비록 전쟁에서 세운 공로[汗馬之勞]는 없지마는, 임금을 보좌한 공로는 매우 커서 대신(大臣)의 체통(體統)을 얻었으니 선왕(先王)에게 배향(配享)시킨다면 사람들의 청문(聽聞)에 충분할 것입니다.” 하였다. 명하여 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시키게 하고 익성(翼成)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사려(思慮)가 심원(深遠)한 것이 익(翼)이고 재상(宰相)이 되어 종말까지 잘 마친 것이 성(成)이다. 아들은 황치신(黃致身)· 황보신(黃保身)· 황수신(黃守身)이다(1452. 2.8)』라 쓰여 있다.
본 서원의 건물로는 3칸 맞배지붕의 경덕사(景德祠), 5칸의 강당(講堂), 5칸의 문루(門樓), 3칸의 전사청(典祀廳), 고사(雇舍)2동, 화직사(火直舍), 묘직사(廟直舍)등과 팔각정이 있습니다. 강당은 착로재(斲露齋), 탁장재(琢章齋), 온휘당(蘊輝堂)이라 편액이 걸려 있으며, 문루는 2층으로 아래층은 출입문으로 회보문(懷寶門), 위층 남쪽은 진밀료(縝密療), 북쪽은 윤택료(潤澤療), 중간마루는 청월루(淸越樓)라 걸려 있어 참으로 독특한 건물구조입니다. 경북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3월과 9월 上丁에 향사를 지낸다.
1868년 서원 철폐 때 훼철되지 아니한 47개에 속하며, 그 중 31개소의 충열서원중의 하나이다. 인접한 곳에 백화산, 금돌성, 저승골, 임천석대, 항몽대첩기념탑, 천년옛길등이 있으며 이는 모두가 상주의 자랑이다. 상주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방촌의 청백리 정신을 배우고 호국의 숨결을 찾아서”라는 1일 프로그램을 알차게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참고:옥동서원자료, 상산지,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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