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실록(정조편)에 유유발(劉有發)의 효행
상주시 청리면에서 낙동면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변 청상저수지 뒤편 상현마을 입구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개선문처럼 서 있는 곳에 정갈한 단칸의 맞배 기와지붕이 있으니, 이곳이 바로 유유발 효자각(劉有發孝子閣) 으로 청리면 청상리 661-2번지 입니다.
公의 휘(諱)는 유발(有發)이고, 字는 유인(有仁)이며, 본관은 강릉(江陵)이시다. 청상리 입향조 세웅(世雄) 의 현손으로 1688. 4에 출생하시고 1756. 3에 돌아가시니 69세 이시고, 묘소는 배위 김해김씨와 합분으로 낙동면 용포리 산141-1이다. 劉 公은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여, 부모봉양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시고, 부친이 이복동생 집에 계실 때에 눈, 비를 불문하고 문안 인사를 드려 부친이 감동하여 돌아오게 하였으며, 부친병환 중에는 대변의 맛을 보고 병세를 가늠 하였고, 생명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이시니 반나절을 연명 시켰다고도 한다.
초상을 당하여 3년 시묘살이에 호랑이의 보살핌을 받았는데, 어느 날 부터 호랑이가 보이지 않았는데, 꿈에 그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곧 죽게 되어 있어, 실제로 그 현장을 찾아 가서 구출 하므로서 호랑이의 은혜를 갚았다는 일화도 전하여 오고 있으며, 또한 계모가 병환 중에 잉어를 원하니 낙동강에 나가 얼음 구멍 속에서 잉어를 잡아 돌아오던 길에 난데없는 솔개가 그 잉어를 가로채 가 통곡하며 집에 돌아와보니 잉어는 집의 마당에 있어 봉양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출천지효심(出天之孝心)은 겨울에도 산에서 딸기를 구하여 계모를 기쁘게 해드렸고, 장마철에도 公의 여막 주위에는 햇빛을 볼 수 있었다 하여 그 지역을 지금도 빛보기들(景見野)이라 불리운다.
영남의 효자로 조선왕조실록(정조편) 1779년(정조3년)6월14일에 「人才, 尙州故良人劉有發, 事親有至行. 인재, 상주고량인유유발, 사친유지행」 “인재(人才)로 상주(尙州)의 고(故) 양인(良人) 유유발(劉有發)은 부모를 섬김에 있어 지극한 효행(孝行)이 있었습니다”라 적고 있으며 복호(復戶)를 받기도 하였다.
상주 상산지에는 「劉有發孝誠出天事聞 復戶. 유유발효성출천사문 복호」 “효성이 출천하여 복호를 명하였다” 라 기록은 전 한다.
이 각은 1760년에 세웠다고 하나 안내판에는 1823년에 지어졌으며, 1900년에 중수하고, 2013년에 복원, 개축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비명은 "劉孝子碑"로 수계거사 이승배가 짓고, 글씨는 이몽표가 썼다라고 알리고 있네요. 주변은 劉 公의 마음과 같이 아주 단아하고 청결하며 후손인 "강릉유씨군수공파청상중친회" 에서 십시일반 동참한 흔적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며 늘 후손들의 보살핌이 아주 대단한 곳이다.(참고문헌:상주시사, 상주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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