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㉓ 상주 화동의 어만각(御挽閣)

장안봉(微山) 2019. 7. 25. 16:46
㉓ 상주 화동의 어만각(御挽閣)
번호26작성일2015.06.08조회수1445
작성자김광희
첨부파일파일받기 크기변환_20150329.어만각2.jpg
  • 상주 화동의 어만각(御挽閣)
    세종이 내린 만사(挽詞)를 목판에 새기다.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화령지맥(팔음지맥)이 천택산(683.2m)을 지나
    팔음산(八音山:762.3m)에 닿기 전 임도 아래 소박한 와가(瓦家)가 있으니
    「어만각」으로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 135번지이다.
    이 각(閣)은 조선 세종이 개국공신 신유정(辛有定)에게 내린 만사를 목판에
    조각하여 게시 보존한 곳이다.

    신유정의 본관은 영산(靈山)이고 시호는 무절(武節)이며 판개성부사 신부(辛富)의 아들로 1347년에 출생하여 조선조의 개국공신으로 형조, 예조, 공조의 판서를 역임하였고, 태종 때에는 여진을 소탕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리하여 그가 1426년(세종8년)에 세상을 떴을 때 세종께서 그 공을 찬양하고 그를 애석히 하는 정을 담은 만사를 지어 내린 것이다.
    이 각은 한 채는 맞배지붕이고 옆의 다른 한 채는 팔작지붕인데 모두 골기와로
    한 칸씩이고 단청이 아름답다. 담장은 튼튼하게 쌓았으며 출입하는 솟을대문도
    역시 맞배지붕이다.

    담장 밖에는 세(三)기의 비석이 서 있는데, 맨 왼쪽에는 세종이 지은 신유정 만사가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는 무절공 평산 신유정사적비이며, 오른쪽은 신유정의 일생을 적고 있는데, 그 내용은

    御製二絶(어제이절)
    世宗大王挽節制使辛有定(세종대왕만절제사신유정)
    秉心淸匣躡台班(병심청갑섭태반) 名節應垂竹帛間(명절응수죽백간)
    握手談論會幾日(악수담론회기일) 忍聞哀挽向花山(인문애만향화산)
    年踰七耋位仍尊(년유칠질위잉존) 日世皆推積善門(일세개추적선문)
    瀼瀼家聲應更大(양양가성응경대) 旣生文子又文孫(기생문자우문손)
    마음을 가지기를 맑고 곧게 하니,
    자연이 중신을 반열에 들어 명절이 마땅히 죽백에 드리워졌다.
    손을 잡고 의논하던 것이 얼마였던가,
    차마 어찌 만사를 써 산으로 향하랴.
    나이 70이 넘어 위도 자못 높아,
    세상에서 모두 적선한 가문이라 했다.
    융성한 가문이 마땅히 다시 더 크리니,
    이미 문장이 뛰어난 자손들이 나고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1426.6.11) 전 도안무사 신유정의 졸기(卒記)에는
    .....졸(卒)하니, 향년 74세이었다. ......부음(訃音)이 들리니, 임금이 매우 슬퍼하여
    내관(內官)을 보내어 조위(弔慰)하고, 3일 동안 조회를 폐하였다. 부의(賻儀)를 내리고 무절(武節)이란 시호를 내리니, 강강(剛强)하고 곧게 다스림을 무(武)라 하고,
    청렴함을 좋아하여 스스로 절제함을 절(節)이라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조선왕조실록에 생사당(生祠堂)을 받은 8명중의 한 사람 이라고도 한다.

    신유정은 불사이군, 우국충정, 용맹성, 만고의 충신이시며, 영산신씨 초당공파(상주파)의 후손이라 1426년경 아마도 이곳에 어만각을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상주지역의 화령지맥을 지나는 길손은 꼭 들리는 곳으로 조선조 전기 왕의 만사는 상주에서는 보기 드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스상주 201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