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한은 시작없는 시작인 하나요, 그러므로 하나의 시작이기는 하지만 시작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한이다.
이 진리를 아는 이는 어떻게 말해도 틀렸다 할 것이요, 모르는 이는 어떻게 말해도 모르겠다 할 것이니, 말이 필요없는 자리라
하는 것이 바로 이 것을 가리킴이다.
그렇지만 이 단락을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한'은 '하나의 시작이면서도 시작이 아니니, '한' 속의 '나'인 '한나'가 '한' 속을 벗
어나지 않으면서 '한'이 아닌 '하나'로 독립하는 순간이 일시무시일이다.
불교에서 모든 사물에 부처의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이 '하나'요, 성리학에서 물건마다 하나의 태극이 있다고 한 것도 이 '하
나'요, 도교에서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된 도가 아니라 하면서도 또 도가 자연을 본떴다고 말하니 자연을 본 뜬 도가 바로 '하
나이다.
이 하나의 형상은 동그라미이니, 앞의 한에 대해 설명한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은 이 하나를 설명한 것이다. 우리가 헤아릴 수
있는 천지의 시작이 이 '하나'이니 여기서 설명하는 것이 옳지만, 그 근원이 '한'에 두어지지 않으면 또 한과 하나를 떼어서 생각
할 염려가 있어서 한의 해설에 포함시켰을 뿐이다.
마음 즉 천부경의 하나는 앞에서 말한 여러 진실들을 이미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하나를 깨달은 성인들은 모든 존재의 존엄
성을 가르치고, 주는 대로 받는 도리를 역설하면서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4) 일석삼극무진본(一析三極無盡本)
일석삼극무진본은 나뉨 없는 나눔이라 표현할 수 있다. 하나는 세 끝으로 나뉘나 그 근본은 변함이 없다는 것은 '하나'의 모
습인 원의 속성 또는 구성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원은 중심, 반지름, 둘레의 세 요소로 분석된다. 그렇지만 그 분석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편의를 위한 구분일 뿐, 동그라미 자체
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수학이나 물리학에서는 이런 분석이 아주 중요하며 용도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원주율을 구하고 각도를 나누지만, 절대진리
인 도를 탐구하는 입장에서 마음을 살피는 데에는 편의적인 분석일 뿐이고, 때로는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까지 한다.
아무튼 하나인 마음이 스스로를 나누어 인식하는 천지창조의 과정에서 자연을 세 요소로 나누면 '나', '너', '사이'가 된다.
'나'와 '나 아닌 모든 것'과 '그 둘 사이의 관계'가 마음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된다.
그리고 이런 분석 또한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 내가 그린 동그라미에 의해 나누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주자연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모형으로 인정받고있는 클라인 병의 그림을 보라. 이 그림의 어떤 곳에서 출발해도 계속 나아
가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이 그림의 동그라미는 안쪽을 둘러싸고 있는가. 아니면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가?
마음이란 것이 펴면 우주에 가득하고 닫으면 겨자씨 속에도 들어간다 하는 말은 이런 우주의 실상을 보고나서 하는 말이다. 의
심하지 말고 믿고 공부하다 보면 당신도 머지않아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그림을 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은 이미 자연과 나를 분리시켰다.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뒤에 이
어지는 단락인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이다.
다음 단락 해설에서는 실제로 나뉜 측면을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나뉘되 근본을 벗어나지 않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
하자.
마음이 스스로를 지각(知覺)하는 맨 처음에는 전체를 전체 그대로 알아챈다. 그래서 하늘은 하나 그대로 원이다. 이것이 천일
일이다.
이미 좋은 말이 있으니 살려 쓰도록 하자. 지각은 천도교에서 깨달은 마음의 인지작용을 가리키는 말로 벌써 사용되었으니 말
이다. 해월 선생은 "경에 이르기를 「마음은 본래 비어서 물건에 응하여도 자취가 없다」하였으니, 빈 가운데 영이 있어 깨달음
이 스스로 나는 것이니라. ...... 없는 데서 생기어 빈 데서 형상을 갖추나니, 없는 듯 비인 듯 한지라, 보려하 나 보이지 아니하고
들으려하나 들리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하여, 보고 듣는 것과 다른 앎의 형태가 있음을 분명히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은 천지를 창조하면서, 다른 말로 하자면 스스로를 자각(自覺)하면서 스스로를 둘로 나눈다. '나'와 '나 아닌 모든 것'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내 몸'과 '내 몸 밖의 모든 것'이다. 동그라미 안에 또 하나의 동그라미가 생긴 것이다. 물론 그 크기는 거의
언제나 무시되고, 자기가 주인이라는 생각인 중심성이 드러나면서 원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이것이 지일이의 분리창조이다.
그런데 마음은 천지를 창조할 때, 다시말해 나와 너를 나눌 때 나눈 것과 똑 같은 힘으로 이미 합해 놓았다. 나누었지만 나누어
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것이 인일삼이다. 즉 나와 너 사이가 이미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그 연결상태인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인일삼이다.
나누었으면서 나누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다시 연결상태까지 인식을 해 내니 이것이 셋으로 나누어도 근본은 없어지지 않는다
는 경전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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