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05월 22일에 작성한 답산기입니다.
廣州 李氏 李唐 先生 墓를 가보니
많은 발복으로 조선의 8대 명당으로 까지 일컬어진다기에 큰 기대를 안고 경북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에 가서 선생의 자리를 보니 아쉬운 점이 있어 소감을 밝힌다.
먼저 뒤의 용을 보려고 혈성(穴星)에 올라 주산(主山:그림1)을 보니 개자(个字)로 중출(中出)하여 좋았다. 그리고 개장천심(開帳穿心)한 과협이 기복(起伏)하고 속기(束氣:그림2)하니 굴곡은 없지만 합격이다. 이어서 밟고 서 있는 혈성(穴星:그림3)을 살펴보니 첨원방정(尖圓方正)한 형태와는 거리가 있고 기운을 누설시켜 달아나는 지각(枝脚:그림4)이 눈에 거슬렸다.
이어서 입수룡(入首龍:그림5)으로 내려와 보니 횡룡입수(橫龍入首)인데 혈쪽을 등지고 달아나는 형세로 혈쪽을 감싸지 못하고 반궁(反弓) 또는 일자(一字)형태로 무정하게 청룡쪽으로 지나간다. 다시 혈을 향하여 입혈맥(入穴脈:그림6)을 살펴보니 정신이 통일되지 못하고 넓게 퍼져 갈라지니 기를 모아 혈에 전달해 주는 자기의 역할을 망각한 듯 했다.
이어서 혈장을 보니 너무 넓고 기운을 한군데로 응결시킬 의지가 없어 보였다.
이당선생의 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혈장에 있는 것이다.
옛글에 이르기를 혈성을 찾으면 혈장을 논하는데 혈장은 정세하고 황망함이 없어야 한다.(尋著穴星論穴場 穴場精細無慌忙)고 하였다. 혈장이 너무 넓고 게을러 느러져 긴장된 모습이 없으니 이런 곳에는 반드시 혈증(穴證)이 있어야 한다. 즉 분합(分合), 뇌두(腦頭), 선익(蟬翼), 우각(牛角)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분명하지 못하며 곡동처(曲動處)의 生氣를 볼 수가 없었다.
혹시 치산(治山)하는 과정에서 인작(人作)에 의하여 본의 아니게 파괴 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혈장이 주변국세에 비하여 너무 넓으니 마치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부른 어린아이의 몸체가 연상 된다.
혈을 지나 순전(脣氈:그림7) 아래로 내려와 보니 순전 끝부분이 일자로 반듯하게 경계(그림8)되어 있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둥글게 금성체(그림의 점선9)인데 이곳의 일자선(一字線)은 인작일지는 모르겠으나 순전의 양쪽 끝이 (그림 빗금부분) 자연 그대로 살아서 나와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순전이 끝난 아래 부분에 양택지(陽宅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림 10의 곳에서 전후좌우를 둘러보니 위의 묘자리에서 와는 달리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 차이는 묘자리에서 보면 청룡백호와 안산이 잘 감싸 안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낮기 때문에 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곳은 포근하게 감싸여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흠은 있을 수 있고 모든 것이 완전한 자리는 없는 법이다. 필자는 산에 오르면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이 보이니 소심한 소인배로 수양이 덜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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