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06월 30일에 작성한 답산기입니다.
택당 이식(澤堂 李植) 선생 묘에 대한 소고(小考)
삼정승 육판서의 발복지(發福地)로 알려진 택당 이식선생과 이섭(李涉)선생 묘를 둘러보고 의아한 마음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지(大地)를 생각 했었는데 소지(小地)에 불과한데 어떻게 삼정승 육판서의 발복이 있었는가
이 자리는 먼저 혈(穴)인지 아닌지 부터 분석해야 한다.
대부분 혈이 아닌 두줄기 사이의 골진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작은 자리이긴 하나 혈증(穴證)이 살아 있으므로 혈임이 틀림없다.
그 혈증은 다음과 같다.
첫째 : 입혈맥(入穴脈)이 솟아올라 내려왔다 . 인작(人作)이라면 혈 바로 뒤의 뇌두(腦頭)부분만 융기(隆起)
되었을 텐데 그 위에 까지 계속 솟아올라 있고 양쪽으로 물이 나뉜다. 이것으로 볼 때
기(氣)가 이곳으로 들어 온 것이 틀림없다.
둘째 : 이곳의 최대 혈증은 순(脣)에 있다. 볼록하게 금성체로 탱탱하니 여기(餘氣)가 뭉쳐
있다. 만약 이것이 인작이라면 이곳은 혈이 될 수가 없다. 마치 예천의 정사(鄭賜)선생 묘의
최대 혈증은 순전(脣氈)에 있으므로 그것이 인작(人作)이면 정사선생 묘도 혈(穴)이 아닌 것과 같이
이곳도 순(脣)이 천연적(天然的)인 것인지 인공적(人工的)인 것인지에 따라 혈인지 아닌지가 판별 된다.
하지만 인작으로 보이지 않기에 혈증이 된다.
셋째 : 양쪽의 청룡백호에 해당하는 부분이 굽어서 둥글게 감싸며 지나가니 혈증에 도움이
된다. 만약 이곳이 곧게 지나갔다면 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상과 같은 점으로 생각할 때 혈임에는 틀림이 없겠으나 청룡백호인 양다리 (枝脚)로 설기(洩氣)가 심하고 앞으로 무정(無情)하게 나가고 다시 돌아 보아 이쪽을 환포(環抱)하지 못하므로 소지(小地)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옥녀(玉女)가 나신(裸身)을 드러내고 수줍은듯 다리를 벌리지 못한 숫처녀의 모습이 연상되는 기이한 형국(形局)이다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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